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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 .
젊음. ⓒ 일러스트 - 조을영
 
 
37. 환각의 계절
 
화닥닥 거리며 수많은 발소리의 주인들이 계단을 올라왔고, 십 여 명의 패거리들은 아가씨가 계단을 내려서려는 순간 정신 없이 올라왔다.
"와아~!"
녀석들은 힘껏 괴성을 지르며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었다. 상대를 어리둥절하게하고, 멍하게 만들기 위한 연막전인것 같았다.
 
그때 그 얼뜨기 놈이 첫 번째로 계단을 밟고 올라왔다.그리곤 놈은 '감히 나를 거절하다니, 좀 안됐지만 내 자존심이 허락을 하지 않으니 너가 좀 당해야겠다'하는 눈빛을 가득 담은 채로 손으로 아가씨의 가슴을 슬쩍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아가씨는 녀석들의 반응에 놀라지도, 당황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꿈쩍도 하지 않고 꼿꼿이 서 있었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있는 그녀의 등은 당당했고, 대범했다. 그 동안에도 놈들은 게속 계단을 올라오면서 차례대로 아가씨의 가슴을 떡주무르듯이 하곤 뒤로 빠졌고, 그러자 그 다음 놈들은 더 강도를 높여서 비비고, 심지어는 젖꼭지를 찾아서 열심히 손가락으로 튕기는 놈도 있었다.
 
그리고 카메라는 아가씨의 시선을 반영하듯 그들의 얼굴을 내려다 보는 자세로 그 얼굴들을 하나씩 슬로모션으로 똑똑히 보여주고 있었다. 40대 아줌마는 철없는 그 아이들 틈에 끼여서 열심히 애들과 똑같이 행동하고 있었다.
 
아마도 실직녀와 실직남은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부끄러운 짓인지를 슬그머니 느끼고서 꽁무니를 빼고 참여하지 않은 듯 했다. 하지만 애처로운 40대 아줌마는 부끄러움 따위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오로지 자신이 얼마나 충성하고 있는지를 아이들이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만 가득한 눈이었다.
 
"저렇게 당하고도! 저 앤, 왜 바보 같이 가만 있는거죠?"
화면을 지켜보던 안내원이 벌떡 일어서며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빨간 하이힐'은 그 쪽을 돌아보며 조용히 말을 시작했다.
"저도 그 애가 제게 이 일을 털어놓았을때 물어보았죠. 왜 가만 있었냐고..그랬더니 이러더군요. 그 당시 자신은 이미 진흙 속에 빠진 기분으로 한걸음씩 내딛으며 겨우 의지를 다져서 하루 하루를 살고 있었대요.  
 
심한 스트레스성 환청에 시달리고 있었고, 마음 속에선 또 다른 자아가 자신을 괴롭히고 있었으니까요. 길을 걸으면 정상인을 혐오하고 증오하는 불구자의 모습만 눈에 들어왔고, 삶의 의지를 잃은 채 평생 거지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 사람 발에 밟힐세라 죽을 힘을 다해서 도망가는 벌레, 학대 받는 동물들만 눈에 들어와서 마음이  한없이 가라앉았고 있었대요. 그들을 보면서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지상에서 받는 하나의 형벌이다'고 생각했었다더군요.
 
어느 누구와도 대화를 나눌 상대가 없었고, 그 덕에 마음의 병은 더 깊어가고 있던 참이었으니까요. 그리고 비록 사람들 틈에서 자신만의 섬에 고립되어서 살아가고 있지만 있는 힘껏 정신을 집중하면 더 이상 진흙에 빠질 위험은 없으리라고도 생각했대요. 그리고 자신이 누구일까를 혼자 알아가면서 입시 공부를 해보자고 결심을 했고요.
 
그런데 그 애들의 그런 모습을 보는 순간, 자신이 보았던 그 불구자나 거지, 벌레, 학대받는 짐승들이 겹쳐 보였다더군요. 저들은 어찌하여 저렇게 되었을까? 사람이라면 응당 가져야 할 도덕, 윤리, 법규가 다 사라져 버리고 세상을 자신의 시각으로만 재단하고 그 안에서 마음대로 상상하고 자신이 주인인 소왕국에 갇혀버린...그래서 영원히 현실에 나아가길 두려워하는 영원히 불쌍한 인생이구나 싶더라더군요.
 
아무리 설득을 해도  지옥에 빠진 그들의 아비규환은 멈추질 않을 것이고, 이미 나이가 20대 중반인데 그런 철없는 짓을 하면서 가책을 못 느끼고 있는 젊음들이나 나이는 40을 넘었는데 자신의 가치관 하나 정립하지 못한 채 양심을 팔고 불쌍한 기대감을 조금씩 배급 받는 어른이나 다를게 뭐가 있을까 싶더래요.
 
그애가 이 얘길 할때 우린 햄버거 가게 테이블에 앉아있었죠. 창밖에는 배달용 오토바이 서너 대가 일렬로 늘어선 채, 어서 자신의 차례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고, 배달원들은 바쁘게 오가고 있었죠. 그때 그 애가 이런 말을 했어요."
 
"젊음이란게 저 오토바이 같이 느껴졌어요. 이름은 오토바이지만 그들은 결코 행로를 벗어나면 안되는 거죠. 왜냐면 저들은 가게의 로고를 달고 다니며 고객들을 향해 달려가야할 의무를 지닌 광고판에 불과하니까요. 자신의 인생을 개척할 그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는 사람을 보는 기분이라고나 할까요? 그리고..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젊음의 브레이크와 가속 페달을 스스로가 쥐고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단 걸 그때 알아버린 거죠."
 
우리는 '빨간 하이힐'의 이야기를 들으며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름이 무르익은 거리풍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고, 카메라는 그것들에서 점차 멀어지더니 수많은 건물들 중 하나의 건물 꼭대기 층에 나 있는 창문으로 가까이 다가가기 시작했다.
 
 
 

여름 .
여름. ⓒ 일러스트 - 조을영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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