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의 기말고사 시험이 있었다. 사실 우리 집 아이들의 학습문제는 전적으로 엄마한테 맡기는 편이다. 물론 이번에도 시험 일주일 전부터 불타는 엄마의 승부욕(?) 덕분에 다른 학교 기출문제에 단원평가에 총정리까지 나름 철저한 대비를 했다.
하지만 지난 중간고사도 두 아들 모두 1등을 했던 터라 엄마는 이번에도 별 걱정은 하지 않는 눈치였다. 중간고사 때도 그다지 빡세게(?) 안 했어도 2학년 아들은 올백에, 5학년 아들 녀석은 국어에서만 한 개 틀렸으니 말이다.
이번 시험 때도 예체능을 제외한 과목에서 100점을 맞으면 방학동안 컴퓨터게임을 '해방'시켜주기로 한 엄마의 약속에 두 아들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하는 것처럼 보였다. 중간고사도 잘했으니 이번에도 문제없을 거라 칭찬까지 해주며 마음 놓고 있던 것이 화근이었을까?
그동안 시험을 보고나면 엄마 선에서 점수만 확인했지 문제를 꼼꼼히 살피고 틀린 문제를 확인해본 적은 별로 없었다. 꿈엔들 예상했으랴. 두 아들의 상상 못할 점수와 기상천외한 답안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시험문제에 대처하는 아이들의 답안 '백태'#1. 우선 큰아들, 시험당일 자신 있다는 아들의 말에 엄마는 내심 '올백'을 기대했으니 그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시험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큰 아들의 대답은 가관이다.
"호호호, 우리 아들 시험 잘 봤어?" (엄마)"엄마... 절대 화내지 마요... 약속할 거죠? 다른 과목은 모르겠는데, 선생님 채점하는 걸 살짝 봤는네.... 국어가... 말이지... 치일~십 유우~욱점..." (아들)그렇게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마지못해 대답하는 아들 녀석도 엄마도 적잖이 실망하는 눈치였다. 특히 엄마의 얼굴은 점점 사색이 되고 있었다. 그렇게 어색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퇴근 후 돌아온 아빠는 그 소식을 듣고 속없는 위로를 한다.
"그럴 수도 있지, 만날 100점만 맞으면 재미없잖아! 76점 맞는 사람도 있어야 90점 100점 맞는 사람도 있지, 안 그래?"(아빠)분위기를 무마해보려는 아빠의 궁색한 멘트에도 불구하고 엄마와 아들은 무반응이다. 알고 보니 아들은 총 20문제 중 10문제만 인쇄된 국어시험지 앞면만 풀어놓고, 다 풀었다고 느긋하게 잠까지 잔 모양이었다. 시간도 많이 남았지, 전날 밤늦게 엄마와 공부한 여파로 슬슬 잠이 몰려와 엎드려 잠까지 주무셨다고….
종료 5분을 남기고 "다시 한 번 검토하라"는 선생님의 말에 깨어 문득 뒷면을 열어본 아들은 사색이 되어 남은 문제를 급히 풀었다는데, 점수가 좋을 리 만무하다. 총 8과목 중 벌써 한 과목이 76점이니 결과는 뻔 한 일 아닌가.(그래도 1등을 자신하는 아들의 거만함은 어디에서 나오는 건지....)
#2. 둘째아들, 4과목을 합하여 한 문제밖에 안 틀렸다고 우쭐대는 둘째아들은 시험을 망쳤다고 울상인 형의 쓰라린 패배감은 안중에도 없다. 큰 아들의 불효(?)를 작은아들의 점수로 위로하며 달래던 차, 다음날 다른 용무로 학교에 간 엄마는 우연히 이번에 채점된 시험지를 보게 된다. (원래 기말평가지는 반출이 되지 않는다)
"이번에 시험을 잘 본것 같아요. 자기주장만 좀 굽히면 공부도 잘하고 참 좋은 아인데..."(선생님) "호호호, 우리 애가 좀 개성이 강하죠. 자기가 하는 일이 맞는 일이라고 너무 주장해서 큰 일이예요"(엄마)"그래서 말인데요, 틀릴 문제도 아닌데 틀려서 저도 궁금하던 차였어요"(선생님)"?"아들은 역시 자기주장이 강했다. 틀린 문제를 살펴 본 엄마는 이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착실하게도 아들이 고민 끝에 고른 답은 (1). 집에 돌아온 엄마는 친구들과 놀고 집으로 돌아오는 둘째아들을 인사를 받을 틈도 없이 다그치기 시작한다.
"너. 신발 뒤꿈치를 구부려 신는 아이가 올바른 어린이야? 빨리 대답해봐!""…….""차라리 수학문제 '단위'를 빠트려서 틀렸다면 이해라도 하겠다. 어려운 수학 계산문제를 틀렸으면 또 몰라! 바른생활 중에서도 이런 문제를 틀리는 애가 어디 있냐?"알고 보니, 평소에 신발 뒤꿈치를 구부려 신는 둘째아들은 자신의 행실(?)이 당연한 행동이라는 생각에 (1)번을 덥석 골랐다나. '신발을 집에서 빨아서 신는 어린이'에 대한 아들의 답변이 가관이다.
"신발을 빠는 일은 엄마의 일인데, 아들이 했으니까 별로 좋은 일이 아닌 것 같은데? 그리고 어린이가 신발을 빨면 얼마나 깨끗이 빨아지겠어? 이건 문제를 잘못낸거야! 맞아, 이상한 거야!"혹시라도 '시험지에 사인 받고, 틀린 문제는 고쳐서 공책에 다시 공부해오기' 숙제라도 내준다면 도대체 어떻게 설명하고 공부를 시켜야 할지 엄마는 난감하다,
그런데, 우리 집에만 있는 줄 알았던 기말시험 사고(?)가 다른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3. (근영-조카, 초등3학년 여학생)3학년에 다니는 조카의 답안도 걸작중의 걸작이다.
-조카의 답 : 유관순, 3.1운동에 앞장섰다.
"야! 근영아! 유관순이 광양을 빛낸 인물이야? 견학도 가고 공부도 많이 했잖아! 매천 황현선생도 있고 또 월드컵 영웅 '기성용'도 있는데, 왜 하필이면 '유관순'이야!" (엄마)"난, 몰랐지~ 갑자기 유관순언니가 떠올라서 쓴 건데…. 그럼 엄마는 유관순이 어디서 태어났는지 알아? 거봐! 엄마도 모르면서…."
#4. (유원-큰 아들 여자친구, 초등5학년 여학생)"시간 다됐다, 맨 뒷사람 시험지 걷어라!"시험시간 종료와 함께 이어진 선생님의 호령에 맨 뒤에 앉은 친구는 시험지를 걷기 시작한다. 사회문제 중 한 문제를 놓고 고심하던 유원이는 생각나는 답을 급하게 적어 넣는다.
"야! 너 왜 지금 쓰는 거야? 지금 시험 끝났는데 지금 쓰는 거 반칙이야!" (맨 뒷 친구)"아니야! 걷기 전에 썼잖아, 반칙 아니거든!"(유원)
하지만 유원이는 고심 끝에 결정한 답을 결국 지우개로 지우고 말았다. 집으로 돌아온 유원이의 말에 엄마는 유원이의 행동이 아쉽기 그지없다.
"유원아, 너 그거 안 지워도 되는 건데, 왜 지웠어? 그래도 (하나를 못 썼지만) 역시 넌 정말 규칙을 잘 지키는 내 딸이구나!"(엄마) "아니야! 걔 눈빛이 내가 다른 아이 답안지 보고 썼다고 의심하는 눈빛이었어. 그래서 내 결백을 밝히기 위해 그냥 지워버렸어. 앞으론 걔하고 안 놀거야!"(유원) 초등 기말고사에 대처하는 당신의 모습은 어떤가?엄마들은 늘 "초등학교 시험은 아무것도 아니다" "초등학교 성적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라며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과연 그럴까? 초등학생 자녀를 둔 당신,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라. 남에게는 '쿨'하게 보이려고 웃으며 말하지만 막상 나에게 닥치면 초조해지고 결국 애들을 잡게 되는 것이 '시험' 아니었는가?
그런 이중적인 당신의 모습에 '뜨악'하며 놀라지는 않는가? '학부모가 되지 말고 부모가 되라'고 했지만 결국엔 어쩔 수 없는 학부모가 되어 있음은 슬픈 현실일 수밖에 없다. 아이들은 시험을 앞두고도 천하태평이지만 오히려 엄마들만 조급한 마음에 애를 태운다.
인터넷에서 뽑은 출처불명의 기출문제며 평가문제집도 부족해 시험 계획과 목표를 분주하게 짜는 엄마들. "엄마가 공부하라 하지 않아도 과연 언제부터 스스로 할 수 있을까"라며 푸념 아닌 푸념으로 10여일 전부터 아이들을 옆에 끼고 '올백' 작전에 돌입한 엄마들. 그동안 결과에만 '올인' 하지는 않았는가 되돌아보자.
대부분 초등학교에서는 성취도 평가지는 반출이 되지 않는다, 왜 점수만 알려주고 뭘 틀렸는지를 알려주지 않는 것일까? 반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시험을 보는 취지에도 맞는 일인데도 말이다.
"겨우 초등학생인데, 뭘…." 이라는 생각으로 넘어가지 말고 아이가 틀린 문제가 뭔지, 방법에 문제는 없었는지 되돌아 볼 필요는 없는지 생각해 보라. 시험을 마친 후에도 선생님과 의논하여 방법을 찾는 길이 성적 자체보다 더 중요한 일이리라.
점수와 상관없이 뭐가 문제였을까, 어떤 점에서 공부가 부족했을까, 공부 방법은 제대로 였는가 등을 점검해 보고 그것을 개선해 나가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비록 다음에 100점을 맞지 못하더라도 시험이라는 과정이 학습을 보다 발전해 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아이들에게 푸념하는 당신은 초등학교 때 성적이 항상 100점이었고 1등을 도맡아하였던가?
"승규야! 그건 그렇고 신발 뒤꿈치 구부려신는것, 이건 아닌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