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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방향을 사실상 리드해온 게 조선일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실력이 현저히 뒤지면서도 전통적인 라이벌 의식에 젖어있는 동아일보를 남북관계 보도에서 더욱 더 극단적 우경으로 기울게 했고, 예산의 2%를 대북지원에 쓰자며 유연한 자세를 가졌던 중앙일보마저 강경파로 돌아서게 만든 게 조선일보다.

 

  이 3형제는 똘똘 뭉쳐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과 그 결실인 6·15 및 10·4 선언을 끊임없이 매도하면서 대결분위기를 주도했다. '퍼주기' 라는 한 마디로 이성적인 판단은 상실되었다. 이명박 정부의 '비핵 개방 3000'이라는 대북정책은 이 기조를 따른 것이다.

 

  천안함 사태도 마찬가지다. 중앙일보를 필두로 이 3형제는 처음부터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소행이라고 단정하면서 정부의 단호한 대응을 주문했다. 꽤 오랫동안 신중한 자세를 견지하던 정부도 이 3형제가 쳐놓은 덫을 피해가지 못했다. 오히려 더 죄었다. 그리고 이제 출구를 찾는다.

 

 역시 출구도 조선일보가 찾아주는 것일까? 7월14일의 사설 <'北·中 동맹의 벽' 넘어설 열쇠는 남북관계에 있다>를 보면 그런 의도가 읽힌다. 조선일보가 10년 이상 일관되게 견지해온 기조에 변화가 읽히는 중요한 내용이 들어있다.

 

  비록 "중국은 지난 9일 유엔 안보리(安保理)의 천안함 의장(議長)성명 문안에 북한 소행임을 명기(明記)하는 것을 막았고, 천안함과 관련이 없다는 북의 거짓 주장을 집어넣는 데 주역 노릇을 했다"며 틀에 박힌 '거짓 주장'을 늘어놓았지만 제시한 해법은 다르다. 최근까지 기세를 높이던 전쟁불사론과는 사뭇 다르다.

 

  "동북아 정세(情勢)를 '한·미·일 대(對) 북·중'이란 냉전적 구도로 되돌아가게 해선 안 된다. 이런 구도가 고착화되면 한반도 평화와 안정, 더 나아가 통일을 향한 길은 험난할 수밖에 없다." 한·미·일 동맹 강화를 외치던 조선일보의 사설이라고 믿기지 않을 내용이다. 사설의 결론을 보자. 중요한 변화라서 길게 인용한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때론 긍정적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대한민국의 앞을 가로막는 벽(壁)이 될 것이란 사실이 천안함 사태를 통해 입증됐다. 이제 중국을 통해서 북을 움직이는 방안에만 의존해 온 대한민국 외교의 전략과 전술을 총체적으로 재검토해 볼 때가 됐다. 지금처럼 중국을 움직여 북한을 변화시키는 길이 막혀 있다면 북한을 변화시켜 중국을 움직일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남북관계에 변화를 불어넣어야만 북한이 중국에만 기대서 연명(延命)하려는 현재의 북·중관계에 틈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 틈이 다시 남북관계의 또 다른 변화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결국 '북·중 동맹의 벽'을 넘어설 열쇠는 남북관계에 있다. 문제는 우리 정치가 이런 남북관계의 국제정치적 배경을 국민에게 납득시킬 수 있는 설득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느냐다."

 

  중국을 통해 북한을 움직일 수 있다고 믿은 정부와 그것을 부추긴 조선일보가 근본적인 인식의 변화를 보인 건 아니겠지만, 어쨌건 현실을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중요한 변화다. 북한은 중국에 의존하여 대남정책을 결정한 게 아니라 독자적으로(주체적으로) 남북관계를 개선하려 했다. 특히 6·15 선언 이후 그러했다.

 

  김일성 주석이 생전에 했던 유명한 말이 있다. "크고 작은 나라는 있지만 높고 낮은 나라는 없다." "사회주의 형제국가끼리 명령 복종은 없다." 이런 의식으로 중국이나 소련과 팽팽하게 대립한 적도 있다. 북한을 바로 알아야 바른 정책이 나온다. 북한은 중국에 시장을 통째로 내주는 대신에 남한과 교류함으로써 민족의 자주성을 지키길 원한다. '우리 민족끼리'라는 게 공연한 구호가 아니다. 

 

  북한을 변화시켜 중국을 움직인다? 중국을 움직일 생각은 접어두고 우선 남북관계의 변화를 통해 북한의 변화를 모색하자는 제안은 백번 지당한 생각이다. 당연히, 시급히 그리 해야 한다. 조선일보는 그동안 '잃어버린 10년'을 읊조리며 북한이 변하지 않았다고 불평했지만, 사실은 '퍼주기'가 북한을 변화시키고 있었다. 조선일보와 이명박 정부가 그것을 중단시키고 역류시킨 것이다.

 

  북한은 중국에만 기대서 연명하려고 하지 않는다. 남한과 그리고 나아가서 미국과도 관계를 개선하려고 한다. 그걸 거부하고 훼방을 놓은 게 이명박 정부이고 그 배후가 조선일보였다.

 

  사설은 끝으로 "문제는 우리 정치가 이런 남북관계의 국제정치적 배경을 국민에게 납득시킬 수 있는 설득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느냐"에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조선일보가 그런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본인의 블로그(http://blog.daum.net/dmkim2010/?t__nil_login=myblog)에도 게재합니다.


#남북관계, 조선일보, 천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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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언론정보학회 회장, 한일장신대 교수, 전북민언련 공동대표, 민언련 공동대표, 방송콘텐츠진흥재단 이사장 등 역임, 리영희기념사업회 운영위원. 리버럴아츠 미디어연구회 회장, MBC 저널리즘스쿨 강사, 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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