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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이 되는 사람한테는 '병역수첩'이 주어집니다. 저는 1995년 11월 6일 군인이 되고부터 병역수첩을 받았습니다. 1997년 12월 31일에 전역을 하면서 이 병역수첩을 어디엔가 놓았는데, 군인에서 민간인으로 바뀐 뒤로는 군대와 얽힌 물건은 들여다보고 싶지 않아 내다 버리지는 않았으나 어딘가에 처박았습니다. 열 차례 즈음 살림집을 옮기는 동안 내 병역수첩은 어느 짐 상자엔가 틀어박힌 채 두 번 다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내 예비군훈련 참가 증명 쪽지와 아버지 병역수첩.
내 예비군훈련 참가 증명 쪽지와 아버지 병역수첩. ⓒ 최종규

 

지난 2002년인가 2003년이 아니었는가 싶은데, 아버지와 어머니가 살림집을 옮기면서 오래되어 낡은 장식장을 저한테 물려주었습니다. 새로 옮기는 곳에는 이 장식장이 쓸모가 없어 저한테 보내 주셨는데, 저로서는 책꽂이가 턱없이 모자랐고 새 책꽂이 장만할 겨를이 없이 지내던 터라 무척 고맙게 받았습니다.

 

우리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장식장은 책장이 되어 이리저리 옮겨다닙니다. 오래되어 낡은 녀석이지만 옛날 장식장이라 제법 튼튼하게 만들었습니다. 무거운 책을 꽂아 놓아도 뒤틀림이 없습니다.

 

밑바닥에 서랍이 달린 장식장인데, 저는 서랍을 쓸 일이 없기에 딱히 서랍을 열어 보지 않았습니다. 장식장을 처음 받을 때에 한 번 열고 나서 다시는 열지 않았는데, 처음 서랍을 열 때에도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들여다보지 않았습니다. 그냥 열어 보았을 뿐입니다.

 

 병역수첩 첫 장.
병역수첩 첫 장. ⓒ 최종규

 

해는 흐르고 흘러 어버이한테서 장식장을 물려받은 지 예닐곱 해쯤 지날 무렵인 올 2010년 여름,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이 장식장 서랍을 열어 봅니다. 옆지기를 만나고 아이를 낳은 내 고향마을 인천을 떠나 시골마을에서 새 살림집을 꾸려야겠다고 생각하며 짐을 꾸리다가 문득 열어 봅니다. 그러고는 장식장에 들어 있는 물건을 하나하나 살핍니다.

 

오래된 장식장 서랍에는 아버지가 쓰던 예전 물건이 몇 가지 들어 있습니다. 이 가운데 꽤 오래된 우리집 족보가 둘 나옵니다. 아버지 젊을 적 사진과 작은아버지 사진도 나옵니다. 그리고 이 오래된 사진 사이에 더욱 낡은 병역수첩 하나가 나옵니다.

 

 사진이 붙어 있는 병역수첩 둘째 장.
사진이 붙어 있는 병역수첩 둘째 장. ⓒ 최종규

 

"전역구분 : 만기전역, 전역일자 : 67년 12월 23일"로 되어 있는 전역증서를 넘겨 봅니다. 아버지는 1965년 6월 24일에 현역입영을 했습니다. 이무렵 아버지가 살던 집은 "인천 남구 도화동2가 280번지"로 되어 있습니다. 형하고 저를 낳기 앞서 살던 곳이 이곳인가 싶어 지도책을 들여다보는데, 2010년 오늘날 "인천 남구 도화2동 280번지"는 나오지 않습니다. 인터넷창에 이 주소를 넣으면 어느 한 곳이 찍히기는 하지만, 인터넷창에 찍히는 곳은 "인천 남구 도화2동 92-13번지" 자리입니다.

 

이곳 옆으로 281번지가 있으니, 아무래도 지난날에는 이 둘레에 280번지이며 279번지이며 278번지이며 …… 줄줄줄 있었을 터이나, 이런 작은 번지를 붙인 작은 집들이 헐리면서 몇 가지 번지로 줄어들지 않았느냐 싶습니다.

 

내 어릴 적 지내던 달삯방 골목집이나 내 어버이 살아가던 달삯방 골목집 들이 오늘까지 남아 있으리라 바라기 힘들다지만, 참말 우리는 우리 어린 나날을 보내던 옛집을 건사하기란 몹시 어렵습니다. 이는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요즈음 사람들한테도 매한가지입니다. 고작 서른 해 즈음 되면 허물어 다시 짓는 아파트이니, 아파트에서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한테 무슨 고향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병역수첩 셋째 장. 할머니 할아버지 이름이 '명령수령인'이라는 이름으로 적혀 있습니다.
병역수첩 셋째 장. 할머니 할아버지 이름이 '명령수령인'이라는 이름으로 적혀 있습니다. ⓒ 최종규

 

병역수첩을 더 들여다봅니다. 이제는 돌아가시고 없는 할아버지 할머니 이름이 '명령수령인 및 가족사항' 자리에 적힙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아버지한테는 어버이인데, 병역수첩에는 '명령수령인'이라는 이름으로 적혀 있습니다. 아무리 군대라 하지만 '부모'란 말이 아닌 '명령수령인' 같은 말을 써야 했을까 궁금합니다. 부모는 그냥 부모라 하면 될 텐데요.

 

아버지 병역수첩에는 1968년 8월 17일부터 8월 31일까지 '근무소집 제 10단계'를 받았다는 도장이 찍혀 있고, 1969년 10월 1일에는 검열점호를 받았다는 도장이 찍혀 있으며, 1970년 11월 10일에 또다시 검열점호 도장이 찍혀 있습니다. 그러고는 '73년도 1·2차 순회교육'을 1973년 7월 30일과 8월 2일에 받았다는 도장과 서명이 남아 있습니다. 가만히 떠올려 보니, 아버지가 전역하고 나서 얼마 뒤에 김신조씨가 넘어왔다고 했습니다. 아버지 뒤부터 군 복무 기간이 늘고 예비군 훈련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전역을 한 이듬해인 1968년에 자그마치 보름에 걸친 예비군 훈련을 해야 한 까닭은 아무래도 김신조씨 때문이었겠지요. 지긋지긋한 군대를 마치고 사회로 돌아와서 한숨을 돌리려는데, 보름에 걸쳐 다시 병영으로 들어가서 지내야 했을 때에는 얼마나 끔찍했을까요.

 

 병역수첩 넷째 장에는 예비군훈련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병역수첩 넷째 장에는 예비군훈련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 최종규

 

내 나이보다 더 묵은 '아버지 1967년 전역 병역수첩'을 덮고 생각에 잠깁니다. 나는 내 아버지 병역수첩을 오늘에 이르러서야 장식장 서랍 한켠에서 뜻밖에 찾아내어 넘기지만, 우리 딸아이는 제 아버지 병역수첩을 앞으로 서른 해쯤 뒤에 자질구레한 짐이 잔뜩 든 종이상자를 뒤적이다가 찾아내어 넘기지 않겠느냐고. 그때그때 얼마든지 버릴 만한 물건이지만, 버리지 않고 어딘가에 처박아 놓고 있을 때에는, 어떠한 물건이든 서른 해나 마흔 해가 지나고 보면 깊디깊은 역사가 되지 않겠느냐고.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골목빛,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호미,2010)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2007∼2010)


#벙역수첩#인천이야기#김신조#생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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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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