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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 고전읽기 강의를 하고 있는 조국 교수.
 법 고전읽기 강의를 하고 있는 조국 교수.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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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점수가 높은 강남 지역 학생이 점수가 그보다 낮은 비수도권 지역 학생에게 밀려 서울대 입시에서 탈락했다면 이는 우리 사회에서 옳은 일일까, 옳지 않은 일일까.

조국 서울대 교수는 "사회적으로 강남 지역 학생의 탈락이 옳은 일일 수 있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13일 오후 7시 30분에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법 고전읽기' 특강에서 "약자 배려는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 요구되는 역할 중 하나"라며 "이런 형태의 정의는 각기 다른 계급·계층의 사람들을 통합시켜주는 강력한 접착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를 교재로 진행된 이날 강의에서 조 교수는 토마스 모어부터 존 롤즈까지 형성된 정의의 흐름을 설명하며 정의와 법의 관계를 강조했다. 조 교수는 "정의는 법이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적용되고 지켜질 때만 실현될 수 있다"며 "법을 수단으로 사용하며 약자인 국민들을 통치하는 이명박 정부의 법치관은 매우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형벌 잔혹하다고 흉악범죄 줄지 않는다"

<유토피아>는 영국의 철학자 토마스 모어의 대표작이다. 헨리 8세가 통치하던 시절에 영국의 대법원장을 지냈던 토마스 모어는 이 책에서 유토피아(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 사회)에 대해 언급하면서 법과 정의에 대한 담론들을 우회적으로 다루고 있다. 조 교수는 "<유토피아>의 내용은 '비례성의 원칙'이나 '사형 폐지' 등 현대 형사정의의 쟁점들과 관련이 많다"고 설명했다.

"비례의 원칙이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과 목적 사이에는 합리적인 비례관계가 있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이를테면 다른 사람의 돈을 빼앗았다고 해서 사형을 시키는 것은 정의롭지 않다는 것이죠. 당시 영국은 절도범을 모두 사형에 처했는데 토마스 모어는 이런 형벌이 합리적이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죄질이 심각한 범죄를 유도한다고 보았습니다."

토마스 모어는 <유토피아>에서 비례성의 원칙에 어긋난 형벌의 악영향을 지적하고 있다. 절도만 해도 사형이고, 살인을 해도 사형이면 절도를 한 뒤 증거인멸을 위해 살인을 하는 게 절도범에게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얘기다. 조 교수는 "최근 아동 성폭력 사건이 반복되면서 강간범을 사형시키자고 하는 여론이 있다"며 "강간만 해도 사형, 강간 후 살인을 해도 사형이면 범죄자들은 강간 후 살인을 택하며 이는 통계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사형제도도 형벌로서 의미가 떨어지기는 마찬가지다. 조 교수는 "통계를 통해 사형제도가 흉악범죄를 줄이는 데 거의 기여하지 못한다는 것이 드러났다"며 "돌이킬 수 없는 오심의 가능성까지 고려해보면 사형제도도 폐지로 가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현재 우리 사법 시스템 아래에서 무죄인 사람이 유죄가 되는 경우는 1% 미만입니다. 하지만 그 1% 안에 당신이 걸려들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이 문제가 좀 더 절실하게 느껴질 겁니다. 현행법은 사형 판결 1년 이내에 형을 집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오심으로 인한 피해자가 있을 경우 돌이킬 수 없기 때문에 저는 적어도 사형 집행 유예제도는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강자가 손해보며 약자 배려하는 게 정의"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 을유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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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가 현대에도 의미를 갖는 이유 중 하나는 공평한 법치에 기반한 정의 구현을 사회 통합의 도구로 파악했다는 점이다. 조 교수는 "토마스 모어의 이러한 통찰은 현대 정의론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사회에는 다양한 계급의 사람들이 있고 분쟁이 꼭 발생합니다. 이런 분쟁 당사자들이 합의점에 도달하는 게 정의거든요. 사회의 강자든 약자든 정의가 집행되면 둘 다 머리를 끄덕거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정의는 사회를 통합하는 강력한 접착제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토마스 모어가 주창했던 정의와 현대의 정의는 어떻게 다를까. 조 교수는 "존 롤즈가 기반을 닦은 현대 정의론의 특징은 약자에 대한 배려가 강조되어 있다는 것"이라며 "이는 사회민주주의 국가나 복지국가의 철학적 토대"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도 계층 계급이 다 다른데 어려운 집에서 태어난 아이가 있다고 하면 형식적으로는 충분한 기회를 주더라도 실질적으로는 기회가 동등하게 가지 않거든요. 이걸 그대로 고착시키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이 롤즈의 정의입니다. 강자와 약자의 출발선 차이를 줄이고 최대한 맞춰야 한다는 거죠."

현대 사회에서는 약자 배려를 위해 강자가 다소 손해를 보는 것이 정당하며 이는 사회 통합을 위해 필수적인 요소라는 얘기다. 상속세나 누진세는 사실 부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요구하는 불평등한 제도지만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조세정의에 부합한다고 판단해 채택하고 있다. 조 교수는 "미국의 워렌 버핏이나 빌 게이츠 같은 최고의 부자들은 현행의 높은 상속세 비율을 찬성한다"며 "그들이 찬성하는 이유는 상속세를 낮추면 사회 접착력이 깨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모든 사람에게 직업이나 직책의 기회만이 아니라 삶의 기회까지 평등하게 주어져야 한다는 롤즈의 정의론이 잘 구현된 사례로 미국의 소수집단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과 서울대의 지역균형선발제를 꼽았다.

흑인인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소수집단 우대정책의 대표적인 수혜자 중 하나. 하와이에서 캘리포니아 주로 이주해, 작은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학업을 시작했던 그가 컬럼비아대학을 거쳐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할 수 있었던 이유는 소수집단 우대정책 때문이었다.

"어느 사회나 교육은 사회 통합의 중요한 도구 중 하나입니다. 일정 비율을 정해서 성적이 나빠도 지방 학생을 뽑는 서울대의 지역균형선발제도 같은 맥락입니다. 성적이 높은 강남 학생들은 서울대 떨어져도 서울의 다른 좋은 대학에 충분히 갈 수 있습니다. 이 제도로 비교적 성적이 낮은 지방 학생들이 서울대에 들어오게 됐는데 졸업할 때는 일반 전형으로 들어온 학생들보다 성적도 더 좋고 졸업 후 사회 기여도도 아무런 차이가 없었습니다."

조 교수는 미국의 대법관을 지낸 벤자민 카도조(Benjamin N. Cardozo)의 말을 인용하며 "형식적 평등이 강조되고 국가가 개입하지 않게 되면 사회 경쟁에서 누가 계속 승리할지는 분명하다"며 "국가가 약자 배려에 개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관으로 재임 중에 중립적이라고 생각했던 판결은 나중에 보니 강자에게 기울어진 판결이었고, 재임 중 약자에게 더 유리한 판결을 내렸다고 한 것은 나중에 보니 중립적이었다."

"MB정부부터 법 잘 지켜야 정의 사회 온다"

자기 집을 지키기 위해 망루에 올랐던 용산 철거민들은 죽거나 징역형을 받고, 수천억에 가까운 비자금을 만들고 불법적으로 세금을 내지 않은 기업 총수는 사면 후 복권되는 것이 2010년 한국 사회의 풍경이다. 이런 사회에서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조 교수는 "우선 법에 의한 지배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법을 통한 평등한 정의 구현은 가장 많은 사람의 동의를 얻어낼 수 있기 때문. 약자 배려나 사회 통합의 정신은 모두 한국 헌법 안에 있기 때문에 법만 잘 지켜져도 정의는 저절로 서게 되어 있다는 분석이다.

조 교수는 마지막으로 "이명박 정부가 법치를 얘기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행동들은 법치가 아니라 오히려 반헌법적 행위들이다"라며 "사회적으로 헌법읽기 운동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민주주의 사회의 법치란 권력이 뭔가를 하려고 할 때 법에 의해서 제약당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법을 수단으로 사용해서 약자인 국민들을 통치한다는 개념이 아니거든요. 그건 고대 중국의 법가사상입니다. 사회가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구성되는 사회의 특징이지요. 그런 걸 법치라고 하는 사고방식은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정의는 법을 지켜야 정의로운 겁니다."

 '조국 교수의 법 고전읽기' 특강이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리고 있다.
 '조국 교수의 법 고전읽기' 특강이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리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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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정의론#조국#법 고전읽기#유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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