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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글을 올린 게 저라는 걸 경찰이 어떻게 알아냈는지 당황했습니다. 처음에는 경찰을 사칭한 친구들의 장난 전화인줄 알았습니다. 경찰에 출두하고 나서야, 경찰이 SBS와 MBC에 공문으로 신원정보를 요청해 저의 개인정보를 받아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난 3월 말 천안함 사태가 발생한 직후, SBS와 MBC 뉴스게시판에 천안함 침몰 관련 글을 올렸던 최아무개씨는 5월 17일 경기도경찰청 사이버수사대로부터 소환통보를 받았다. 다음 날인 18일에는 아예 경찰이 집에까지 찾아왔다. 허위사실유포와 명예훼손 혐의가 있다며 경찰에 출두하라는 것이었다.

최씨는 "조사 과정에서 경찰은 저를 허위사실유포죄와 명예훼손 혐의로 몰아갔고, 게시글을 삭제하라는 압박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억울하게 수사를 받았던 기억 때문인지 말을 더듬으며 어렵사리 심경을 털어놓았다. 최씨의 개인정보를 경찰에서 알 수 있었던 것은 '통신자료제공제도' 때문이다.

"영장 없이 내 정보 가져가면 위헌"

 15일 서울 통인동 참여연대에서 열린 '민간인 사찰 가능케 하는 통신자료제공 제도 위헌소송제기 기자회견'에서 박경신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이 기자회견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15일 서울 통인동 참여연대에서 열린 '민간인 사찰 가능케 하는 통신자료제공 제도 위헌소송제기 기자회견'에서 박경신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이 기자회견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 강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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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통신사업법 '제54조 제3항'은 수사기관 등이 영장 없이도 포털이나 게시판 운영자에게 게시물 작성자의 신원을 요청하면 회원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를 '통신자료제공제도'라고 부른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소장 박경신)는 15일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통신자료제공 제도'에 관한 헌법소원을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영장주의를 명문화한 헌법 '제12조 제3항'은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해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해야 한다"고 규정, 영장 없이는 개인의 정보를 수색할 수 없게 돼 있기 때문이다. 

최씨가 이번 헌법소원의 청구인으로 자청하고 나섰다. 기자회견장 연단 뒤에는 '영장 없이 내 정보 가져가면 위헌'이라고 적힌 펼침막이 걸려 있었다.

박경신 공익법센터 소장(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은 "경찰관은 법적 요건이 충족돼야만 불심검문을 할 수 있다"며 "그런데 지금 아무런 조건 없이 신원정보가 수사기관들에 제공되고 있고, 그렇게 신원정보가 제공된다는 것은 개인의 기본권 침해"라고 말했다.

최씨가 '통신자료제공제도는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을 청구했다면 이른바 '회피연아' 동영상을 제작했던 차아무개씨는 포털사이트인 '네이버'를 상대로 '20,000,100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경찰이 영장을 제시하지 않았는데도 네이버가 자신의 신상정보를 경찰에 제공해 개인 정보를 침해했다는 것이다.

청구 금액에 대해 이지은 공익법센터 간사는 "2000만원이 넘지 않으면 소액재판부에 배정돼 '통신자료제공제도'에 관한 본질적인 심리가 진행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차씨가 네이버를 상대로 손배소를 제기하려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대부분의 기업은 고객을 왕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기업이 고객의 정보를 지켜줘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입니다. 저는 네이버를 이용하는 고객이지만 네이버는 저의 동의도 없이 경찰에 신원정보를 제공했습니다."

차씨는 "누구를 음해하려고 동영상을 올린 것도 아닌데, 그 글로 인해 경찰 수사를 받았다"며 "이 사건이 마음에 짐이 돼,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고 정신적인 피해를 호소했다.

특히 차씨는 자신 말고도 다른 네이버 사용자들의 개인정보가 수사기관에 제공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차씨는 "이메일로 네이버에 '내 정보가 수사기관에 제공됐느냐'고 물어봤더니 (내가 아닌) 다른 아이디를 제시하며 '이 사람의 신원정보가 수사기관에 제공됐다'는 답변이 왔다"며 "그 사람도 기소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는 나 외에도 매우 많은 사람의 개인정보를 수사기관에 제공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소장은 "개인의 기본권이 침해된 사안이 발생할 경우 (포털사이트 운영자는) 본인에게 개인정보 유출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 적법절차"라며 "영장이 없는데도 신원정보를 유출하는 포털의 관행이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차씨의 손해배상 청구에 대해 네이버의 한 관계자는 "수사기관이 법적 근거를 통해서 개인정보를 요청한다면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정보를 제공할 수밖에 없다"며 "도의적인지 아닌지는 판단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만약 헌법소원으로 해당 법이 바뀐다면 수사기관이 개인정보를 요구해도 바뀐 법에 따라 개인정보를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며 말했다.

네이버 뿐 아니라 '다음'에 대해서도 손해배상청구소송이 제기됐다. 박경신 소장은 "다음의 누리꾼으로 활동하는 참여연대 회원 4명은 다음측에 자신의 정보가 유출되고 있는지 확인해 달라는 메일을 보냈으나 다음으로부터 확인해 줄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이들 누리꾼들은 다음의 이러한 반응이 정보통신망법 제30조의 '이용자의 권리'를 위반했다고 보고, 1인당 20만원의 손해배상소송도 제기했다"고 덧붙였다.

정보통신망법에 따르면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이용하거나 제3자에게 제공한 현황 등에 대해 이용자는 열람이나 제공을 요청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다음이 이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통신자료 제공 건수, 수색영장 발부 건수보다 많아

이들 세 가지 소송의 법적 대리인인 박주민 변호사(민주주의를 위한 변호사 모임)는 "실제로 2008년 한 해 동안 수사기관의 요청에 의한 정보 취득이 11만 건에 이르며 이 수치는 같은 기간 동안 대한민국 법원이 발부한 압수수색 영장 숫자인 10만 건을 넘는다"며 영장 없이 진행된 개인 신상정보 취득이 경찰의 주요한 수색 수단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앞으로의 소송 진행에 대해서 박 변호사는 "1년 이후에나 결과가 나오겠지만 어느 정도 승소 가능성도 있다"며 "결과를 보고 더 많은 사람들을 손해배상청구 소송의 원고로 넣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강민수 기자는 오마이뉴스 12기 인턴기자입니다.



#통신자료제공제도#참여연대#위헌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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