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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시간만 되면 어김없이 오는 전화, 7살 아들 녀석이다. 멘트는 항상 똑같다.

 

"아빠 일찍 와?"

"응, 일찍 갈 거야."

 

늦게 가는 날이 거의 없건만 아들 녀석은 항상 이렇게 퇴근시간만 됐다하면 일찍 오는지를 확인한다. 이유인즉, 놀기 위해서다. 위로 3살 많은 딸과 놀 때는 종이접기, 그림 그리기, 색칠하기 등 주로 앉아서 하는 놀이가 많았는데 남자 아이라 그런지 뛰어다니며 노는 놀이를 즐겨한다.

 

요즘 주 종목은 축구와 야구, 탁구다. 집에 가자마자 "아빠~"하고 달려오는 아들 녀석. 이미 녀석의 손에는 (장난감) 야구 방망이가 쥐어 있다. 말 안 해도 아들의 눈빛은 '아빠 야구하자~'라고 써 있다. 녀석의 눈빛을 거부 못해 옷도 못 벗고 일단 공을 던져 준다.

 

하지만 여기서 아주 신중해야 한다. 아들 녀석이 아주 잘 칠 수 있도록 느리고 정확하게 스트라이크 존으로 던져야 한다. 왜냐면~ 대충 던졌다가 아들 녀석이 삼진 아웃되면 아빠가 못 던져서 못 쳤다고 항의가 들어오고, 그러면 녀석이 안타를 칠 때까지 또 다시 공을 던져야 하는, 즉 그만큼 시간이 연장되기 때문이다.

 

다행히 안타를 치면 옷 벗고 밥 먹을 권리가 나에게 주어지고, 어쩌다 홈런이라도 치면 "아빠, 좀 쉬었다 해줘도 돼"라는 크나큰 선물을 받으니, 투수로서의 자존심 다 버리고 '제발 쳐라'라는 심정으로 공을 정말 정말 치기 좋게 잘 던져야 하는 것이다.

 

뭐, 나의 이런 전략은 십중팔구는 적중한다. 간혹 "아빠! 일찍 쉬려고 일부러 잘 못 던지는 거지?"라는 아들 녀석의 의구심 가득한 항의(?)를 받지만, "아냐, 네가 잘 치니까 그렇지!" 하면서 아들 녀석의 타격 솜씨를 한껏 치켜세워주는 멘트와 '최고'라는 표시의 엄지손가락을 보여주면 녀석의 의심은 눈 녹듯 사라지고 우쭐대는 표정까지 보게 된다.

 

그렇게 난 퇴근하자마자 시작된 녀석과의 야구 한 판에서 녀석이 강타자임을 입증해 준 후에야 잠깐의 자유 시간을 얻어 옷을 벗고 밥을 먹을 수 있다. 

 

자유 시간 연장 꼼수, 혹 떼려다 혹 붙였다!

 

아침에 '배 아프다', '졸립다',  '기운 없다' 등 온갖 핑계를 대면서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아침밥을 먹는 녀석. 하지만 저녁만 되면 아빠하고 놀 생각에 토끼처럼 '후딱~' 밥을 먹어치운다.

 

난 녀석의 비어가는 밥그릇을 슬쩍 슬쩍 쳐다보면서 본격적으로 자유 시간 늘리기 꼼수를 생각한다. 소위 잔머리를 굴린다는 뜻.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거늘, 딸과 아들 키우기 10년에 7살 아들 녀석 속아 넘기기 쯤이야.

 

"아들, 천천히 꼭꼭 오래 오래 씹어야지."

"아들, 오늘 유치원에서 가장 신났던 일이 뭐야."

"아들, 오늘 아빠는…."

 

즉, 녀석이 밥을 빨리 먹지 못하도록 온갖 말을 시키는 전략. 하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이 전략이 어느 정도 먹혀들어가는 듯 하더니 며칠이 지나자 빨리 야구를 하고 싶은 녀석의 머리는 나의 이런 꼼수에 본능적인 맞대응 전략을 내 놓았으니.

 

"아들, 천천히 꼭꼭 오래 오래 씹어야지."

"먹고 운동하면 돼."

 

"아들, 오늘 유치원에서 가장 신났던 일이 뭐야"

"아빠는 만날 똑같은 걸 물어보고 그래."

 

"아들, 아빠는…."

"이따 잘 때 얘기해주면 안돼?"

 

그래서 그날 이후로 난 후딱 밥을 먹고, 똑같은 걸 안 물어보고, 잘 때 이야기 해주고, 그리고 놀아주어야만 했다.

 

그렇다고 뭐 여기서 내가 완패했다는 것은 아니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고, 또 하나의 꼼수를 생각했으니, 그건 바로 헛스윙 7번에 안타 하나를 내 주는 전략적 투구다. 왜냐하면 녀석이 안타를 많이 치게 던지면 내가 공 주우러 다니기 힘들기 때문이다. 최대한 손쉽게 놀아주는 전략인 셈이다. ㅋㅋ

 

그런데, 늘 꼼수에는 치명적 허점이 따라온다는 사실을 새삼 또 느꼈다. 아웃 당하는 횟수가 늘어나자, 야구에 별 흥미를 못 느꼈나, 어느 날 녀석이 이렇게 말한다.

 

"아빠 나 야구 안 해. 축구하자."

 

그래서 난 그 다음날부터 녀석이 야구하다 실증을 느끼면 곧바로 종목을 바꿔 또 다시 축구를 해야만 하는 신세가 됐다. 억지까지 늘었다. 안타를 못 치면 못 치는 대로 재미없다며 축구하고, 안타를 많이 치면 많이 치는 대로 재미없다고 축구하고.

 

야구에, 축구에, 탁구에, 책 읽기에. 아무리 놀아도 전혀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는 '차두리 체력' 7살 아들과 '체력 바닥' 38살 아빠의 놀이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덧붙이는 글 | 빠른 시간 안에 두 번째 이야기 올리겠습니다.


태그:#아들과 놀기,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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