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는 강남대로에서 두 보수단체가 대치했다. "00놈들 사과해라", "친일파는 꺼져라"하는 고성이 오가는 가운데 이들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서로 비난하며 밀어붙이고 있었다.
어버이연합 회원 50여 명과 국민행동본부 회원 20여 명이 대치한 가운데 이들의 두 배가 넘는 경찰 100여 명도 혹시 일어날지 모를 무력충돌을 대비하고 있었다. 양쪽 단체는 마치 서로의 말은 들리지 않는다는 듯이 계속해서 자신들의 주장을 외쳤고 주변은 난데없는 소란에 뒤숭숭해졌다.
길을 가던 행인들은 강남대로 한복판에서 벌어진 싸움에 눈이 휘둥그레져 가던 길을 멈추고 상황을 살피기도 했다. 몇몇 어버이연합 회원들은 아예 자리를 잡고 구경하는 시민들에게 "저 놈들(국민행동본부)은 친일을 한 나쁜 놈들"이라며 이 사태를 직접 설명하기도 했다.
어버이연합, "친일파 꺼져라" 국민행동본부 앞 집회
어버이연합은 16일 오후 서울 역삼동 국민행동본부 사무실 앞에서 이들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그런데 같은 시간, 국민행동본부도 그들에 맞서 같은 장소에서 집회를 연 것이다.
이런 상황에 추선희 대한민국어버이연합 사무처장은 "참여연대 등 어떤 진보단체 앞에서 집회를 해도 이렇게 방해하는 곳은 없었다"며 "얼마나 죄를 짓고 잘못했으면 이렇게 희석시키려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어버이연합회 회원들은 "옳소"라며 큰 목소리로 맞장구를 쳤다.
이런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지게 된 이유는 이렇다.
국민행동본부(본부장 서정갑)는 지난 6월 23일, 몇몇 한-일 보수단체와 함께 강원도 철원군 백마고지에서 대북 전단지를 살포했다. 이 중에는 일본 납북피해자 단체인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을 구출하기 위한 전국협의회'(이하 '구출회')가 있었는데 이 구출회의 회장 니시오카 츠토무(西岡 力)가 문제였다.
집회가 열린 이날 어버이연합의 성명서에 따르면 "니시오카 츠토무는 대한민국의 영토인 독도를 일본땅이라 주장하고, 위안부 문제를 매춘으로 규정했으며, 일제식민지배를 정당화해 전 국민을 분노케 한 '후쇼사'판 역사왜곡 교과서 채택을 강력히 주장한 대표적 일본 극우"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국민행동본부가 이런 일본 극우인사와 연계했음에도 불구하고 서정갑 본부장은 '우린 그런 것 따지지 않는다', '목적만 같으면 같이 행동하는 것'이라며 터무니없는 발언으로 일관해왔다"고 주장하며 국민행동본부를 비난하고 나섰다.
국민행동본부 "어버이연합 행위는 애국세력의 대동단결 깨는 것"
어버이연합의 맞은편에 서서 집회를 연 국민행동본부도 "국민행동본부를 거짓과 선동으로 음해하는 것은 애국세력의 대동단결을 깨는 이적 행위"라고 반박하며 이들이 자유민주주의자라고 주장하는 니시오카 츠토무 본인이 직접 입장을 밝힌 문서도 함께 배포했다.
이 문서에서 니시오카 츠토무는 "자신의 사상적 입장을 분명히 하고 싶다"며 "자신은 자유민주주의자이지만 일본을 사랑하는 애국자이기에, 개별적 문제에 있어 한국의 시각과는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는 부분이 있으며, 당연히 국가가 다르기 때문에 역사인식은 일치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추선희 어버이연합 사무처장은 "걸레는 빨아도 걸레다, 같은 보수단체이지만 환멸을 느낀다"며 국민행동본부가 일본 극우인사와 손잡은 것을 강하게 비난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집회를 방해하는 국민행동본부의 행동은 "자기 얼굴에 침 뱉는 것이다"며 "집회의 자유를 방해하는 비겁한 행동"이라고 말했다.
또 추 사무처장은 집회를 마친 후 "진보들이 보수끼리 싸운다고 말이 많은데 상관없다"며 "젊은이들의 바른 역사관을 세우기 위해서는 보수운동이 잘 돼야 하므로 보수가 갈라져도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밝히며 자리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