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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원짜리 여인숙 쪽방이었지만 편한 밤을 보냈습니다. 온종일 땀흘려 길의 이야기에 귀기울인 덕이겠지요. 첫날 여정을 담아 편지를 전하고 짐을 챙겨 숙소를 나왔을 때가 오전 8시 30분경이었습니다. 하지만 해가 내뿜는 열기가 한낮 같았습니다. 

원래는 7시 3분발 진영 가는 기차를 타려 했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근처에서 밥을 먹고 신문을 보다 10시 17분 열차에 올랐습니다. 빠르다는 거 외엔 차창 밖을 볼 수도, 편안한 단잠에 빠지기도 어려운 KTX와 달리 무궁화 같이 느린 기차는 언제나 반갑고 친근합니다. 

진영역 플랫폼. 말그대로 눈부시게 푸른 하늘입니다.
 진영역 플랫폼. 말그대로 눈부시게 푸른 하늘입니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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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 가는 길

구포에서 진영까지는 1시간여가 걸렸습니다. 가면서 몇 번 저보다 급한 열차들에 길을 내주더군요. 지정된 시각보다 늦게 도착했지만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평일 낮에 기차를 이용할 땐 자유석 티켓을 활용하면 경비가 절약되겠습니다. 내릴 때 보니 자유석 객실이 텅 비어 있었습니다.

열차서 내리니 아치형의 장미덩쿨과 소박한 들꽃들이 승객들을 반겼습니다. 꽃들의 인사를 받으며 역 내부로 들어가니 의자 뒤 벽면에 노무현 전 대통령 생가로 가는 교통편 안내글과 지도가 보입니다. 대략 위치를 파악해 건물 밖으로 나가니 '이리 소박한 마을이었나' 싶게 휑뎅그렁한 게 괜스레 맘이 짠했습니다. 

길에서 만난 소년과 소녀. 생면부지의 이방인에게 살갑게 인사를 건네는 아이들이 참으로 예뻐 보였다.
 길에서 만난 소년과 소녀. 생면부지의 이방인에게 살갑게 인사를 건네는 아이들이 참으로 예뻐 보였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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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마당을 벗어나 좌측 도로를 탔습니다. 가는 길에 소년 두 명, 소녀 한 명이 "안녕하세요" 인사를 했습니다. 생명부지의 이방인에게 살갑게 인사를 건네는 아이들이 참으로 예뻐 보였습니다. 풍경 고운 마을엔 사람도 짐승도 정이 많고 순합니다. 그냥 지나치기 아쉬워 부탁을 하고 사진을 찍었는데 전해줄 방법은 묻지 못했습니다.

얼마지 않아 길 건너에 제일 고등학교 표지판이 보였습니다. 좀전 지도에서 봤던 이름입니다. 대로변의 분식집 주인에 물으니 이정표 따라 들어가면 육교가 나올 거고 거기서 봉화마을이 멀지 않다 했습니다. 말처럼 한얼 중학교와 제일 고등학교 사이로 난 흙길을 달려 철문 하나를 통과하니 육교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우측 도로를 타고 다시 길을 건너려면 무척 위험하므로 도보나 자전거 여행자는 각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대형 트레일러가 살벌하게 달리는 공단 지대를 빠져나오니 눈부신 초록빛 평야가 펼쳐진 기분좋은 도로가 나왔습니다. 그 분이 돌아와 살고자 했던 곳이 이런 곳이었구나, 생각했습니다. 얼마지 않아 노란 바람개비들의 행렬이 시작되었습니다. 실감이 났습니다. 애써 구겨서 접어뒀던 마음이 외면했던 시간이 무색하게 울컥울컥했습니다.

진영에서 자전거 타고 봉하 가는 길. 지름길이긴 하나 매우 험한 도로를 지나가야 하니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진영에서 자전거 타고 봉하 가는 길. 지름길이긴 하나 매우 험한 도로를 지나가야 하니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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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을 "왕"이라 불렀던 분

노사모 전시관 입구에서 모처럼 환하게 웃는 노 전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눈가가 시큰해지더니 또 주착없이 눈물이 솟았습니다. 얼굴을 버프와 선글라스로 중무장한 게 다행이었습니다. 이어서 추모의 집과 '작은 비석'을 보고 더위를 피해 촌국수 한 그릇을 사먹은 뒤 부엉이 바위와 정토사까지 둘러 봤습니다.

생각해보면 어이없는 일입니다. 살아선 그렇게들 '못 한다', '맘에 안 든다' 원성 자자했던 대통령을 죽어서 이렇듯 많은 사람들이 추억하고 되새긴다는 것이. 한편으론 염치없고 씁쓸하기도 합니다.

그의 회고록 <성공과 좌절>에서 노 전 대통령은 국민을 "왕"이라 칭했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의 권능이 "작다"고도 했습니다. 역대 어느 정치인이, 권력자가 국민 앞에서 머리 조아리고 권력이 사유화될 수 없음을 스스로 인정했습니까. 하지만 사람의 못된 습성 중엔 몸을 낮추면 그 어깨를 짓밟고자 하는 것이 있나 봅니다. 우리가 그랬습니다.

노 전 대통령 생전 모습. '참 좋은 어른이셨습니다.'
 노 전 대통령 생전 모습. '참 좋은 어른이셨습니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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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없이 살아야겠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참으로 많으나 이제 와 어떤 말이 소용있나 싶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노 전 대통령이 매우 '폭력적이고 비상식적인' 방식으로 검찰 조사를 받고 언론을 위시해 다수의 이익집단이 그를 한입으로 두말한 죄인 취급할 때도 그 분의 온 삶이 증명해준 믿음만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가난하면서 곧았던 게 죄라면 죄랄까요. 저는 그리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도 변명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습니다"라고 회고록 속 그 분 독백이 참으로 아팠습니다.

반이라도 헤아릴까 싶지만 생각할수록 외로운 삶이었다 싶습니다. 그러고도 원망스럽습니다. 오죽했으면… 오죽했으면… 하면서도 그리 가시진 마시지… 하면서. 그리고 돌아서면  또 그립습니다. 오늘날 그 분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대통령을 뫼시는 국민이 되고 보니 더더욱 절실합니다. 

"앞서가고 싶은 지도자가 있어도 국민들이 이 새로운 상황이나 혼란스러운 변화를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절대로 결단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국민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보면 결단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한국 국민들에 대한 그만한 믿음은 가지고 있습니다."  -  노 전 대통령 <성공과 좌절> 안에서  

몸이 무척 피곤하고 생각 또한 많은 밤입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고 바꿀 수 있는 건 앞으로 살 날들입니다. '열심히 살겠다' 말은 좀 우습고 여튼 후회없이 살아야겠습니다. 배낭 끈에 눌린 어깨가 아립니다. 그래봤자 사서하는 고생이니 투정부리고 싶진 않습니다. 가신 분 추억하다 보니 훌쩍 자정이 넘었습니다. 이제 자렵니다.

봉하마을 가는 길.
 봉하마을 가는 길.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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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국내일주 , #자유여행 , #봉화마을 , #대통령 ,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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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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