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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말죽거리잔혹사>의 체벌 모습.
 영화 <말죽거리잔혹사>의 체벌 모습.
ⓒ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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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는 우리나라 성인 대다수가 겪은 학교 폭력을 담고 있다. 영화대로 많은 사람들은 학교에서 폭력을 배워 사회에 나간다. 많은 책임이 우리 교사에게 있다는 걸 공감한다. 그런데, 좀 억울하다."

경기도 용인 A고등학교 교사 이모씨는 "체벌 금지는 해야 하고 그렇게 가야 한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뭔가 억울하고 답답하다고 했다. 그는 "오전 11시에 학교에 와 다른 아이들 공부 방해하다가 오후 2시쯤에 '땡땡이' 치는 키 180cm의 남자 고교생을 지도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라고 한숨을 쉬었다.

이 교사는 "사실 일부 무서운(?) 고교생들은 교사들도 잘 손대지 못하지만, 피해 학생들은 일정한 조치를 원하기도 한다"며 "상담교사 확충과 학급당 학생 수 축소 없이 무조건 체벌을 금지하라는 건, 고교 교사들에겐 무리한 요구인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체벌 금지, 학교 제도 개선과 동시에 추진해야 성공"

또 이 교사는 제도 개선 없이 체벌 금지를 강제하고 이를 단속하면 학교의 '잔머리'가 더욱 늘어날 것을 우려했다. 즉 공부 좀 한다는 인문계 고교들이 매년 초 신입생들에게서 약간의 문제가 발견되면 교육을 포기하고 바로 전학을 보내는 일이 폭증할 것이란 지적이다.

이 교사는 "우리 학교에서도 매년 신입생 20~30명을 다른 학교로 전학 보낸다"며 "일종의 퇴학인데, 모범생만 모아 놓고 교육하겠다는 것으로 체벌 금지가 경기도에서도 시행되면 학교의 '잔머리'는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 교사의 말대로 경기도 용인, 수원 지역 일부 고교에서는 입학하자마자 신입생 수십 명이 학교를 옮기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렇다면 많은 관심을 끌고 있는 혁신학교들은 어떨까. 지난 19일부터 경기도 화성시 라비돌리조트에서는 혁신학교 직무연수가 진행되고 있다. 43개 혁신학교 교사 등 200여 명이 여기에 모여 새로운 교수·학습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절대 다수의 혁신학교에서는 이미 체벌을 금지하고 있다. 여기서 근무하는 교사들의 견해를 들어봤다. 

혁신학교인 용인 흥덕고등학교는 체벌은 물론이고 '증오적 발언'도 금지하고 있다. 학생 두발도 자유고, 학생들은 학교운영위원회에도 참여할 수 있다. 올해 신설된 흥덕고에는 1학년 학생 145명이 재학 중이다. 보통 비평준화 지역에서 신설학교는 학생들에게 인기가 없는 게 사실이다.

이범희 흥덕고 교장은 "학생들이 경험이 부족하고 아직 훈련이 덜돼 민주주의와 책임의 원리를 잘 모르지만, 조금씩 눈빛이 맑아지고 스스로 변화하고 있다"며 "의미 있는 성과와 결과가 나오려면 몇 년은 더 노력하고 참고 기다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사-학생이 머리를 맞대고 학교 규칙을 함께 만들고 있는 덕양중학교.
 교사-학생이 머리를 맞대고 학교 규칙을 함께 만들고 있는 덕양중학교.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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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양중, 교사-학생 '대타협' 준비

이 교장 역시 "아무리 험난해도 체벌은 당연히 금지돼야 한다"며 "다만 학교 혼자만의 책임으로 맡기면 안 되고, 상담교사를 늘리는 등 제도 개선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양시 덕양중학교는 현재 '학생-교사 규약'을 만들고 있다. 물론 교사들 몇 명이 모여 뚝딱 만들어내는 규칙이 아니다. 학생들의 의견을 민주적으로 반영해 학생-교사 '대타협'을 이루고 스스로 책임지는 학교 문화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덕양중에서 생활부를 총괄하고 있는 이병주 교사는 "현재도 학교 규칙으로 체벌을 금지하고 있지만 휴대폰 사용 등은 경기도학생인권조례와 배치되는 부분이 있어 개정 작업을 하고 있다"며 "많은 품이 들겠지만 학생들에게 반별로 학급회의를 하게 하는 등 모든 구성원들을 다 만난 후 새로운 규칙을 만들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교사는 "학생인권조례대로 인권을 보장한 뒤 어떻게 책임을 지고, 규칙을 어겼을 때는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풀 것인지에 대해서도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교사들은 체벌 없이도 좋은 교육이 가능하다는 점을 더욱 강조했다. B초등학교의 한 교사는 "유치원-초등학교 때부터 체벌이나 가혹행위가 없어야 그 아이들이 중·고교생이 됐을 때 가르치기 좋다"며 "어린 시절부터 인격적으로 존중을 받은 아이들이 결국 커서 상대방을 존중하는 민주시민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교사 역시 "체벌이 없는 남한산초등학교 등의 주변 집값이 왜 오르는지 알아야 한다"며 "결국 교사들의 체벌이 없어도 충분히 좋고 학부모들에게 인정받는 교육을 할 수 있다는 걸 혁신학교들이 보여주고 있다"고 밝혔다.

"기다려라... 조금함이 폭력을 부른다"

특히 교사들은 빠른 성과를 기대하는 조급함을 버려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모 교사는 "혁신학교라고 하면 모든 게 완벽하고 인권이 자유롭게 흐르고 학업 성적도 높은 줄 아는 사람들이 많다"며 "자율과 책임의 선순환이 정착하려면 최소한 몇 년은 기다려야 하고, 섣부른 조급증이 바로 체벌과 폭력을 부른다"고 지적했다.

이중현 조현초등학교 교장은 "이젠 체벌이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됐다"며 "교사들에게는 교육에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하고, 아이들 역시 외부 환경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교장은 "체벌을 하느냐, 마느냐는 사실 수천년 역사를 가진 논쟁 사안"이라며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해야 체벌을 하지 않아도 되는 교육이 가능한지를 고민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절대 다수의 교사들은 혁신학교를 유토피아로 보는 걸 경계했다. 그리고 이들은 무엇보다 '기다림'과 '존중'을 강조했다.


태그:#체벌금지, #혁신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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