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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실의 불법적인 '민간인 사찰'로 한 개인의 인생이 망가졌고, 양천경찰서의 '날개꺾기' 고문 수사로 피의자의 인권이 꺾였다. 지난 2년 동안 이명박 정부에서 발생한 일이다.

 

안경환 전 국가인권위원장(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은 이러한 반인권적 일들에 대해 "약간의 불법이 있더라도 질서 유지가 더 중요하다는 쪽으로 비중을 두는 정서가 (현 정권에) 있기 때문"이라며 "정권이 바뀌면 정권을 가진 이의 생각이 어떠냐에 따라 권력 기관이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흐르는 반주가 바뀌면 춤추는 장단도 바뀌는 법"이라고 말했다.

 

안 교수가 국가인권위원장직에서 자진 사퇴한 지 1년 남짓 지난 시점인 26일, 서울대 법대에 있는 연구실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현 정부 들어 일어난 반인권적 행보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으로 "경제 성장과 민주화가 같이 가야 하는데 이 정권은 경제 성장이 먼저 가면서 인권, 자유는 눌러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것이 근본적 원인이다"라고 지적했다.

 

안 교수는 "대통령은 외교를 하면서 물건 팔겠다는 얘기를 너무 강조하는데 오히려 나라 이미지에 좋지 않다"며 "경제만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국제적으로 효과가 떨어진다"고 덧붙였다.

 

대통령이 경제 대통령을 자임하며 경제 운운하는 것이 오히려 국가적 이미지에는 마이너스라는 것이다. 인권보다 경제를 앞세운 정권의 기조 때문에 국내 인권 상황도, 국제적 위신도 후퇴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국제사회에서 한국 인권 문제 계속 지적... 창피한 일"

 

국제적 위신의 추락은 ICC(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 의장국이 될 기회를 정부가 제 발로 차버린 탓도 크다. "인권위 또는 인권 현장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실토했던 현병철 현 인권위원장을 앉혔고, 그 결과 인권 지식과 경험이 필요한 ICC 의장직에 현 위원장이 나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안 교수는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ICC 의장은 유엔에서 인권을 논의하는 삼대 축 중 하나"라며 "국제사회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내는 것에 준하는 효과를 낼 수 있음에도 정부가 정말 잘못 대처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위상이 많이 떨어지고 있다, 또한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 인권 문제를 계속 지적하고 있다, 창피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안 교수는 인권위에서 지냈던 일들에 대한 회고록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인권을 팔아먹은 '인권 양아치'에 대한 이야기를 비롯해 인권위 조직 내부의 문제부터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일갈도 담을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다음은 안경환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 전문이다.

 

"지나치게 '물건 팔겠다' 강조하는 이명박 대통령, 나라 이미지에 좋지 않다"

 

- 이명박 정권 이후 2년 반의 인권상황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우리나라 인권이 과거에 비해 상당히 진전돼 왔는데, 현재는 답보 내지 후퇴하고 있다는 걱정을 국제사회에서 많이 하고 있다. 국제기구나 단체에서 지적된 바도 있다. 국제적인 평가가 현 인권 상황을 바로 가르쳐 주는 지표가 되고 있다.

 

경제적 선진국이면 이에 상응하여 인권도 선진국이라는 전제가 있는데 우리나라는 선진국 하면 너무 경제적 수치에만 비중을 두고 다른 부분은 소홀히 한다. 경제와 인권이 같이 간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특히 대통령은 외교를 하면서 세일즈 외교를 강조하고 있다. 경제적인 비중을 크게 둔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장사 얘기를 너무 강조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생긴다. 민간에 내버려둬도 잘하게 되어 있는데 물건 팔겠다, 장사하겠다 하면 나라 이미지에 좋지 않다. 경제만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국제적으로 효과가 떨어진다."

 

- 구체적인 인권 침해 상황을 들면?

"인권의 핵심인 정치적인 의사표현의 자유가 많이 위축되어 있다. 언론과 집회 결사의 자유 등의 주제에 대한 유엔 특별보고관이 방한하기도 했다. 야간 집회에 대해 원천 금지했던 것은 과거에 전깃불도 안 들어오던 시대에 정했던 내용이다. 따라서 폐지는 바람직한 결정이었다. 집회는 사후에 혹시라도 위험한 일이 벌어졌을 경우 그때 가서 규제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도 현재 집시법은 사전검열과 같은 방식으로 집행되고 있다. 앞으로는 평화로운 집회는 보장되는 쪽으로 가야 한다. 그 방향으로 가는 시대의 흐름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또한 현재 우리나라는 다문화·다인종 사회로 가고 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 나라가 힘쓰는 부분이 약하다."

 

"이 정권은 경제 성장이 먼저 가면서 인권, 자유는 눌러야 한다고 판단"

 

- 민간인에 대한 사찰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일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이라 보는가.

"정치권력을 강화하려는 사람들이 방해되는 쪽을 감시하게 되는 것이다. 사회 전체적으로 과거처럼 정치권력 중심으로 사회를 움직이려는 것 같다. 정보기관은 또 정치권력에 민감하니까 과잉 대응한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는 사찰 등에 대해 으레 있는 일로 체념하고 살았지만 지금 시대에는 맞지 않는다."

 

- 양천서 사건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경찰 입장에서는 사건을 해결하려는 욕망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부당한 방법으로 사건을 해결하려는 것을 강하게 규제해야 한다. 그럼에도 요새 다시 경찰 고문사건 등이 불거지는 것은 전반적으로 약간의 불법이 있더라도 질서 유지가 더 중요하다는 쪽으로 비중을 두는 정서가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관용해 주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일이 발생한다는 의심이 든다. 정권이 바뀌면 정권을 가진 이의 생각이 어떠냐에 따라 권력 기관이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흐르는 반주가 바뀌면 춤추는 장단도 바뀌는 법이다." 

 

- 현 정부의 반인권적 행보의 근본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짧은 시간 동안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루었다. 그러다 보니 관념에서 많이 차이가 난다. 우리 세대는 경제적 성장의 결과로서 자유와 인권이 주어졌다고 본다. 이들은 인권이라는 것이 빨리 성장했는데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새로 정권을 잡은 이들이 대부분 산업화, 근대화에 비중을 둔 세대들이다. 그들 입장에서는 새로운 세대가 가지고 있는 기준이 너무 과하다고 본다. 경제 성장과 민주화가 같이 가야 하는데 이 정권은 경제 성장이 먼저 가면서 인권, 자유는 눌러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것이 근본 원인이다."

 

- 인권위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인권위원회는 기능 자체가 국민에게서 문제제기를 받아서 그 내용을 정리해 국가기관에 문제제기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국가기관과는 불편한 입장이다. 그렇기에 독립성이 강조 되는 것이다. 신념이 없으면 역할을 잘하기 어렵다. 지난 정부 때 각료 제의가 들어왔지만 거절했다. 각료는 위에서 하는 말을 무조건 따라야 해서였다. 그러나 인권위원장은 수락했다. 정부와 척을 지고 싸우는 것이 인권위원장이 할 일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과도 숱하게 싸웠다. 싸우면서도 노 대통령은 인권위가 원래 그런 곳이라 이해하고 넘어갔는데, 현 대통령은 인권위 존재 자체에 의문을 갖고 있는 듯하다."

 

"한국이 ICC 의장국 되지 못한 것, 지금도 아쉽다"

 

- 임기를 남겨두고 사퇴했다, 그 배경은.

"국제사회에서 우리가 ICC 의장국을 맡는 것이 나라에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등도 다 알고 있었다. 그래서 후임자가 임명되면 그를 도와서 우리나라를 의장국으로 만들겠다고 생각해서 (의장 선출) 시기에 맞춰서 비켜준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대통령과 어느 정도까지 교감이 된 것이라 기대했는데 그게 아니었나보더라. 새 위원장이 오고 의장국 부분은 포기했다. (국제사회에서 인권 쪽으로) 알려진 분이 아니어서 어려움이 있지 않았나 싶다. 지금도 아쉽다."

 

- ICC 의장국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ICC 의장은 유엔에서 인권을 논의하는 삼대 축 중 하나다. 다른 나라의 인권문제에 대해서도 발언할 수 있다. 그만큼 국제사회에서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내는 것에 준하는 효과가 있다. 한국의 인권이 의장국에 상응할 만큼 성장했다는 표식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15년 지나야 찬스가 올까 말까한 일이었다. 우리나라 인권 상황이 후퇴한 만큼, ICC 의장이 있었으면 이에 대한 보완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을 텐데 정부가 정말 잘못 대처한 것이다."

 

- ICC 의장 선출이 거의 확실시되었는데 현병철 위원장은 의장 선거에 나서지 않았다. 이후 국제사회의 반응은.

"국제사회에서 위상이 많이 떨어지고 있다. 또한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 인권 문제를 계속 지적하고 있다. 창피한 일이다." 

 

- ICC 의장이 된다는 것이 중요한 일인데 이명박 대통령은 이를 고려하지 않고 현 위원장을 임명한 것일까.

"이 대통령을 만났다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직접 설명했을 텐데 한 번도 만날 기회를 안 줘서 평생 아쉬움이 남는다. (나의) 업무보고를 막았기 때문에, 대통령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주변인이 대통령 뜻을 미리 짐작해서 한 건지... 청와대 여러 선을 통해 접촉을 했는데도 전해지지 않은 것 같다."

 

"현 위원장에게 인권위의 독립성에 대한 신념이 있는지 의심이 든다"

 

- 사임 당시 인권위의 조직 축소 문제가 불거졌었다.

"인권위를 무력화하려는 절차의 하나로 보았다. 독립기구인 인권위에 대해 행정안전부가 조직 축소를 하려는 것은 인권위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것으로 판단해서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신청을 한 것이다."

 

- 현병철 위원장이 취임한 지 1년이 됐다. 가장 아쉬운 점은.

"인권위의 독립성에 대한 신념이 있는지 의심이 든다.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신청을 했는데, 1년이 넘게 지났는데도 헌재는 아무런 반응도 안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인권위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모르겠다. 인권위 조직 축소는 인권위의 독립성에 대한 것임에도, 축소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기정사실화하는 듯하다."

 

- 일각에서 '인권위는 북한인권위'라는 비판이 일 정도로 현 인권위 체제에서는 북한 인권이 주안점이 되고 있다. 어떻게 보는가.

"북한 문제를 다뤄야 하는 것은 맞지만 국가인권위에서 북한 인권은 주가 아니다. 북한 문제는 인권위에서 예외적인 일 중 하나다. 인권위에서 할 수 있는 것도 많지 않다. 나서서 한다고 해도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인권은 정치적인 문제를 초월해야 한다."

 

- 위원장과 위원들 간의 관계는 어떠해야 한다고 보는가.

"위원장으로 있었던 당시 상임위원들을 동료로 생각했다. 차관급 세 사람을 위원으로 보낼 때에는 위원장이 이 인력을 적극 활용해서 하라는 뜻이라고 봤다. 위원들은 독립적이지만 또한 동료로서 많은 것을 합의해 나가려고 했다."

 

- 현재 인권상황의 개선을 위해 필요한 것은.

"인권에는 마침표가 없다. 끝없이 좌절하면서도 목표를 향해 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소수자의 입장에서 세상을 봐야 한다. 다수자는 다수이기에 그 자체로 힘이 주어진다. 따라서 소수자 문제에 관심을 갖고 정책을 펴야 사회적 균형을 맞출 수 있다." 

 

- 앞으로 계획은.

"인권위에서 지냈던 일들에 대한 회고록을 준비하고 있다. 내년말쯤에 낼 계획이다. 인권위 조직 내부의 문제부터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일갈도 담을 예정이다. 인권을 팔아먹는 '인권 양아치'에 대한 이야기도 넣을 것이다."


태그:#인권위, #안경환, #현병철, #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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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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