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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89단독 정영훈 판사는 '천성산 지킴이' 지율 스님이 박재완 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비서관을 상대로 명예훼손과 모욕 발언으로 해를 입었다며 냈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기각했지만, 판결문에서는 "박 전 수석의 발언은 허위사실 적시에 해당한다"고 밝힌 것으로 드러났다.

 

박 전 수석은 2008년 7월 25일 제주도 서귀포호텔에서 열린 대한상공회의소 주최 포럼에서 천성산 문제를 거론하며 '대한민국 발전의 걸림돌' 내지 '설익은 민주화의 적폐', '이념을 둘러싼 집단 이기주의' 등이라 하고, "특히 천성산 터널을 뚫는 과정에서 도롱뇽을 보호하기 위해 2조5161억원이나 소요됐다"거나 "차라리 말이(대화가) 통해서 도롱뇽을 집단 이주시키고 공사 후에 돌아오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됐다"고 발언했다.

 

이에 지율 스님은 2008년 10월 서울중앙지법에 박 전 수석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경부고속철도(대구~부산) 천성산 터널 공사 반대운동(도롱뇽 소송)에 대해 <조선일보>를 비롯한 상당수 언론들은 '도롱뇽 소송=2조(2조5000억) 손실'이라 보도했다가 정정하기도 했다.

 

지율 스님은 서울중앙지법으로부터 우편으로 판결문을 받고, 26일 홈페이지(초록의공명)에 판결문의 일부 내용을 공개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89단독 정영훈 판사는 지난 16일 선고 때 '기각' 결정을 했지만, 구체적인 판결 내용을 밝히지는 않았었다.

 

정영훈 판사는 판결문에서 대법원의 판례(1994년 5월)를 인용하면서 "명예훼손 등에 의한 불법 행위가 성립하려면 피해자가 특정되어 있어야 하지만, 그 특정을 함에 있어서 반드시 사람의 성명을 명시하여야만 하는 것은 아니고 사람의 성명을 명시하지 않은 경우라도 그 표현의 내용을 주위 사정과 종합해 볼 때 그 표시가 누구를 지목하는가를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이면 피해자가 특정되었다고 볼 수는 있다"고 설명해 놓았다.

 

그러나 정 판사는 박 전 수석의 발언이 지율 스님을 지목해 한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정 판사는 "발언에서 원고(지율 스님)의 신상에 관한 아무런 설명이 없을 뿐 아니라 그 발언 내용을 전후의 문맥에 비추어 보더라도 원고를 지목하여 한 발언으로 보기 어려우므로(원고가 도롱뇽 소송을 제기하는 등 천성산 터널공사에 대한 반대운동의 주도적인 인물이라고 하더라고 그러한 사정만으로 이 사건 발언이 원고를 지목하여 한 것이라고 추단할 수 없다), 이 사건 발언이 원고에 대하여 명예훼손이나 모욕에 의한 불법행위가 성립한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원고의 주장은 더 살필 것이 없이 이유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 판사는 '2조5000억 손실'에 대해서는 '별론'으로 설명해 놓았다. 그는 "천성산 터널공사의 지연으로 인한 손실을 설익은 민주화의 적폐 사례로 들면서 이 사건 발언을 하였다"며 "허위사실에 근거한 위 피고의 위와 같은 인식의 옳고 그름은 별론으로 한다"고 설명해 놓았다.

 

 

정영훈 판사가 밝힌 '별론' 내용은 다음과 같다.

 

"2조5161억원이라는 금액은 대한상공회의소 소속의 연구원이 2005년 4월경 경부고속철도공사가 2010년 개통되는 것을 기준으로 그 완공이 1년 지연될 경우의 예상 추정손실액으로 산정한 금액에 불과하고, 그 무렵 위 내용이 일간지에 보도된 후 이 사건 강연이 있기 전에 이미 '천성산 터널공사의 완공일이 앞당겨져 공사 지연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은 발생하지 않았고 천성산 터널공사 반대운동으로 인한 시공사측의 직접적인 손실은 145억원에 그친 것으로 밝혀졌다'는 취지의 정정보도 등이 있었으며, 2조5000억원의 현실적인 손실이 있었음을 인정할 근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2조5000억 정도를 지불했다'는 발언은 허위사실의 적시에 해당한다."

 

지율 스님은 26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항소할 뜻을 내비쳤다.

 

그리고 판결문에 대해, 지율 스님은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법원의 판결문은 천안함 사건이나 BBK 수사 사건을 바라볼 때처럼 유치하고 조잡하고 역겹다"고 밝혔다.

 

지율 스님은 "카프카의 말처럼 법이 가진 자의 법이라는 점에서 위 판결의 피폐한 논리를 그대로 인정한다 하더라도, 이 판결문을 보며 실소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500배나 과장 된 채 지난 7년 동안 통용되었고 작금에 이르기까지 인용되고 있는 허위사실 배포의 책임을 피고 측에서도 주장하지 않았던 '연구자를 밝힐 수 없다'고 하는 대한상공회의소의 연구원에게 돌리고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도롱뇽 소송=2조5000억 손실' 주장에 대해, 지율 스님은 다음과 같이 설명해 놓았다.

 

"대한상공회의소에서 2조5000억원의 보도자료를 배포한 것은 2005년 4월 6일이었다. 2조5000억원의 손실 문제를 (처음으로) 거론하고 배포한 건 대한상공회의소의 논문이 발표되기 18개월 전인 2003년으로, 국토해양부 정종환 장관이 고속철도공단 이사로 재직할 당시였다. 500배가 넘게 과장된 이 수치는 2004년 11월 도롱뇽 소송의 2심 판결문(당시 재판부는 김종대 현 헌법재판관)에도 예시되어 있으며, 2심 판결 이후 개발사례, 혹은 천성산 대응 논리로 언론에 인용되기 시작했다."

 

즉 판결문에서는 '도롱뇽 소송=2조5000억 손실' 주장이 대한상공회의소 보도자료 배포 이후부터라고 하지만, 그 이전부터 고속철도공단에서 주장해왔고 언론에 인용되었다는 것이 다.


태그:#천성산 터널, #경부고속철도, #지율 스님, #박재완 전 수석비서관, #서울중앙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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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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