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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장포 마을에서 하루를 보냈습니다. 오전엔 전날 벗어둔 옷가지를 빨아 널고 TV 앞에서 낮잠을 청했습니다. 여정을 더할수록 피로감이 커져 체력 유지에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먹을거리를 사러 갔다 현금을 인출하려는데 근처에 은행이나 ATM이 없다 해서 꾀를 냈습니다. 외도행 배표를 사면서 다른 승객의 것도 카드로 함께 결제해 현금으로 돌려 받았습니다.

 

오늘은 길 건너 신선대 얘길 먼저 해야겠습니다. 도장포 마을 입구 도로 남쪽에 자리해 해금강, 바람의 언덕과 더불어 이 일대 대표 비경으로 꼽히는 곳입니다. 어제 학동서 이곳에 도착한 뒤 제일 먼저 둘러봤습니다. 그런데 사람 편하라고 만든 나무계단 옆으로 해변가 풍경이 참으로 딱했습니다.  

 

 

아래로 내려가 보니 낡은 어구를 비롯해 소주병과 고추장통, 참치캔과 라면 봉지, 테이크아웃 용기까지 온갖 쓰레기가 널부러져 있었습니다. 바다 곤충이나 동물이 물어다둔 건 아닐테고 분명 이곳을 다녀간 관광객과 주민들 소행일 겁니다. 다리 난간에 부착시킨 국립공원관리공단 명의의 간판에는 최근 청소 실시일이 지워져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럴까요…. 정말 어찌들 그리 무심할 수 있는지 참으로 모르겠습니다.

 

 

오후 3시에 외도에 들어갔다 나왔습니다. 선장님 말에 따르면 오늘 배 탄 사람들이 운이 무척 좋은 거라 합니다. 거제 앞바다가 이날처럼 고요한 게 1년에 50일이 채 안 되며 그 중에서도 십자동굴을 볼 수 있는 날은 30일 남짓이라고 했습니다. 게다가 바로 내일부터 조류 수위가 여덟물이 돼서 당일 오후 2시부터 아예 모든 운행이 중단된다고 합니다.

 

해금강은 옛날 이 곳을 찾은 선비들이 그 비경에 반해 바다의 금강산이다 해서 붙인 이름이랍니다. 그리고 외도의 보타니아는 70년대 초반 선착장도 없는 척박한 섬에 이창호·최호숙 부부가 들어와 수십 년 공들인 끝에 오늘날 같은 환상적인 정원을 일궜답니다. 이래도 저래도 한 평생이라지만 사람이 무슨 마음을 품느냐에 따라 그 결과물이 참으로 다릅니다.

 

배표 가격은 1만4000원부터 항로에 따라 달라지며 출발 시각이 따로 없습니다. 한 배의 정원이 차면 그때 방송으로 알려줍니다. 막배는 대략 오후 5시 전후입니다.

 

외도에 도착할 때쯤 배의 직원이 얼음생수와 멀미약 구입을 권하는데 입담이 좋아 마치 안 사면 큰 일 날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섬 안 곳곳에 음료 자판기와 먹을거리 파는 곳이 있으니 안심하십시오. 

 

저녁은 모처럼 해물된장국에 밥을 두 그릇이나 먹었습니다. 내일 다시 길 떠날 생각을 하니 든든히 먹어야겠다 싶었습니다. 맛도 좋았고요. 하지만 앞 테이블에 연인과 있던 여자가 "나 배불러" 하고 있는데 혼자 앉아 공기밥 하나를 더 시키자니 다소 뻘쭘했습니다.

 

밥 다 먹고 바람의 언덕에 올랐습니다. 아래로 다도해와 마을 전경이 한눈에 보였습니다. 봐도 봐도 참 아름답습니다. 대자연 품에서 그것을 보고 있으면 고맙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합니다. 가만히 두면 이리 고운 것을 사람이 손을 대서 망치는 일이 허다합니다.

 

참, 낮에 외도에서 '영희♡철수' '순이와 민수 다녀감' 같은 낙서를 새겨진 용설란을 봤습니다. 제주도 식물원에 갔다 온갖 선인장 위 사람들의 난도질을 보고 뜨악했던 기억이 납니다. 언덕 위를 걷는데도 수풀 속 군데군데 먹고 버린 음료 용기가 보였습니다. 어느 몰지각한 남자는 죄없는 염소에 무자비하게 돌맹이를 던졌습니다. 자주 사소한 일상에서 목격하는 사람의 이기가 두렵습니다.

 

수평선 위로 노을이 번질 때까지 벤치에 앉아 있었습니다. 여느 때와 달리 외롭다거나 쓸쓸하지 않고 평온하고 충만했습니다. 

 


태그:#국내여행, #거제도, #여름휴가, #바람의언덕,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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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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