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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 기업들의 경영혁신기법들이 병원으로 속속 들어오고 있다.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린생산방식도 그중 하나다. 최근 리콜사태로 그 명성이 무색해지긴 했지만 도요타의 린생산방식은 제조업분야의 획기적인 경영혁신이었다. 뒤늦게 자동차시장에 뛰어든 도요타는 컨베이어시스템 상의 대량생산체제에서 다품종소량생산이 가능한 생산방식을 강구했다. 린(lean)은 '군살 없는, 날씬한'이란 뜻으로, 린경영은 현재의 낭비요소들을 끊임없이 제거해 기업을 날렵한 상태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도요타의 군살빼기 노력들은 다채로웠다. 업무가 끝나도 남아서 품질 향상을 위한 '카이젠(개선)' 분임토론 하기, 혼자 여러 기계를 볼 수 있는 다기능공 교육, 재고를 줄인 적기 생산, 부품 모듈화를 통한 외주화, 경비 절감을 위한 비정규직 활용 등. 이런 노력들은 후발주자 도요타를 단숨에 자동차업계 1위로 올려놨다.

미국 모토로라가 도요타 등 80년대 일본 기업들을 연구해 내놓은 경영혁신방식 6시그마운동도 병원에 도입됐다. 6시그마운동은 100만 개 제품이나 서비스 가운데 단 3, 4개의 불량만을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6시그마운동은 90년대 중반 제너럴일렉트릭(GE) 사장 잭 웰치에 의해 비제조업분야에까지 퍼졌다. 이 경영혁신은 단순한 '불량률 감소' 운동이 아니다. 생산공정뿐 아니라 제품의 판매, 구매, 회계, 서비스 등 회사 내 모든 부문에서 오류가 발생할 수 있는 구조, 시스템을 찾아내 그 자체에 칼을 대는 구조혁신이다.

그를 위해 생산활동이든 관리활동이든 모든 과정은 통계화된다. '숫자로 비교 가능해지면 문제 해결의 방법이 찾아진다'는 것이 6시그마의 철학 중 하나다. 경영진들은 통계화를 통해 개선목표를 정하고 업무개혁을 추진해 나가면서 엄청난 비용과 시간을 줄이고 품질이 향상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에 대한 병원노동자들의 생각은 좀 다른 듯하다.

목표는 늘고 효율은 줄어

병원에서 6시그마운동은 의료질개선(QI)활동으로 외화되고 있다. 병원측은 이런 활동들로 환자의 대기시간이 줄었다고 홍보하지만 실상은 병원노동자의 노동강도 강화로 나타나고 있다.
 병원에서 6시그마운동은 의료질개선(QI)활동으로 외화되고 있다. 병원측은 이런 활동들로 환자의 대기시간이 줄었다고 홍보하지만 실상은 병원노동자의 노동강도 강화로 나타나고 있다.
ⓒ 보건의료노조 건강나눔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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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식 린경영, 6시그마운동은 몇 년 전부터 대형병원들 안에 생기고 있는 의료질 개선(QI, Quality Improvement) 관리부서, QI경진대회들을 통해 벌어지고 있다. 진료 대기시간 축소, 병상 회전율 증대, 검사 결과 확인시간 축소 등을 내건 의료질개선운동이 1년 내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고려대의료원안암병원 영상의학과 영상기사 김진용씨는 지난해 영상의학과 QI팀에서 활동했다. 영상의학과 QI팀은 'CT, MRI 판독건수를 늘리면서도 안 밀리고 민원 없이 처리하기'를 목표로 여러 가지 방법들을 시도했다. 집이 가까운 사람을 새벽 6시에 출근시키기, 전화가 몰리는 시간에 업무직을 한 명 투입하기, 일요일 CT당직자 따로 세우기 등. 김씨는 결과가 신통치 않았다고 밝혔다.

"인원을 아예 늘려주는 것도 아니고 변형근로를 하는 거여서 그 효과가 높지 않다. 6시에 출근하면 낮 3시30분에 퇴근해야 하는데 한참 밀리는 시간에 퇴근할 수 있겠나. 결론적으론 매일 2시30분씩 더 일하게 되는 셈인데 나중에 가면 효율성이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환자가 늘어나 일요일 담당을 늘리는 거 역시 주5일제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거다. 새로운 장비를 도입하는 것도 아니고 인력을 충원할 수도 없으니 결국은 노동강도가 세지는 방향으로 결론이 난다."

어느 새 CT실의 출근이 아침 8시 30분에서 7시로 빨라졌단다.

간호사들의 업무목표는 훨씬 다양하다. 대기환자 줄이기, 병동의 친절 등수 올리기, 수액 등 물품 관리 철저 등 다채로운 목표들을 달성하기 위해선 결국 간호사들의 업무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박인혜 서울성모병원 간호사는 "대기시간 줄이는 방법으론 환자가 오는지 안 오는지 미리 확인하는 방식이 있다. 간호사들이 외래 환자들에게 '00님, 0월 0일 0시에 예약돼있습니다'고 문자 보내고, 일일이 전화해서 확인한다. 또 친절한 서비스를 위해 해피콜을 하기도 한다. 업무 끝나고 퇴원한 환자들한테 약은 잘 복용하고 있는지, 외래 환자들한테 잘 갔는지 확인 전화를 하는 거다. 전화 몇 통화 돌리고 나면 30분~1시간이 후딱 간다"면서 부수적인 업무가 너무 늘어났다고 토로했다.

이 밖에도 수액관리 등을 목표로 세우면 재고 확인 등을 위해 일찍 출근해야 한다. 업무이월 때문에 교대시간보다 1시간 일찍 출근하는 간호사들로선 근무시간이 더 늘어나는 걸 감수해야 하는 셈. 박 간호사 소속 병원은 가톨릭계 병원이어서 수술환자 기도율을 높이겠다는 목표를 세우기도 한단다.

울며 겨자먹기식 자율업무목표

최근 대형병원들이 고객 만족도(CS) 향상을 최우선으로 하면서 교육과 친절사원 시상 등을 강화하고 있다. 한 병원에 설치된 고객만족도조사 설문장치.
 최근 대형병원들이 고객 만족도(CS) 향상을 최우선으로 하면서 교육과 친절사원 시상 등을 강화하고 있다. 한 병원에 설치된 고객만족도조사 설문장치.
ⓒ 노동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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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업무목표도 위에서 강제로 내리지 않는다. 개인이 자기 목표를 세우고, 본인이 직접 평가를 하게끔 한다. 그럼 자율성이 확대 됐을까. 이에 대해 김선화 보건의료노조 서울성모병원지부장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고 설명했다.

 "업무목표가 일정하게 표준화돼 있다. 병원 이념, 부서, 개인별 목표 등으로 나눠진 그룹에서 몇 개씩 고르는 식이다. 또 목표를 세울 때도 부서장의 확인을 받아야 한다. 예전엔 개인목표로 토익점수 올리기 등도 가능했는데 요즘은 업무 관련한 것만 하라고 하고, 연차가 높으면 위암환자 관리 등 수행이 어려운 목표를 정해주기도 한다."

반강제적 성격이 더 강하다는 뜻이다.

김 지부장은 "평가 역시 문제가 있다. 내가 어떤 업무를 15건 하겠다고 목표를 세우고 13건을 했다고 하자. 나는 최선을 다한 거여서 A를 줬더라도 상사가 목표를 다 채우지 못 했다고 B로 깎을 수도 있다. 더 큰 문제는 상사가 B든 C든 어떻게 고쳤는지 그 결과를 본인한테 알려주지 않고, 그 평가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노조든 노동자 개인이든 알 수 없다는 거다"라면서 평가와 인사제도의 연계 여부에 불안감을 내비치는 조합원들의 우려를 전했다.

물론 병원 경영진이 얻는 효과는 분명 있다. 병원에서 이런저런 목표를 세우라고 강제하면 내부 불만이 나오지만 개별목표관리제는 자기가 세운 목표여서 실행하도록 스스로를 추동하고, 못 지키면 스스로 자책하게 되는 것이다.

병원으로 쏠릴 화살이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것. 그러니 '교육을 듣겠다'고 하면 쉬는 날에도 나와서 교육을 듣고, '해피콜을 하겠다'고 하면 일이 끝난 후에도 환자들에게 전화를 거는 자발적인 연장근무가 이루어지는 짭짤한 부수익이 따라온다.

이런 맛에 대형병원들은 직원들의 자발적인 의견을 듣는다는 명목 하에, 인센티브 부여라는 떡고물과 함께 각종 제안제도를 만들고 있다. 병원노동자들은 이런 '자율' '개선' 이란 단어에 가려진, 노동자들이 더 세진 노동강도에 시달리고  있는  그늘을 봐 달라고 전했다.

불철주야 웃다가 병든다
고객만족관리, 극심한 감정노동 강요해
"고객(환자)의 요구에 무조건 'Yes'라고 답하라."

요즘 병원노동자들의 업무스트레스 증가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게 바로 고객만족(CS) 관리다.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병원들은 대부분 CS팀을 따로 두고 있고, '이달의 친절 직원, 친절 부서'를 알려내는 데도 많은 공을 들인다.

고객만족도 표준화를 지향한다. 의료질 개선(QI)의 단골 메뉴로 등장하기도 한다. 강남성모병원은 지난해 증축해 옮기면서 서울성모병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병원에서는 이전하면서 남녀 직원의 모범적인 복장안을 전시했다. '옷은 구김 없이, 신발은 청결하게, 머리는 삐져나오지 않고 단정하게' 식이다. 어느 병원은 머리 묶는 위치까지 지정해 준다. 립스틱 색깔도 참견한다.

예전에는 간호사들한테 '화장을 짙게 하지 마라, 귀걸이도 하지 마라'고 했지만 요즘은 병원에서 '어느 정도 하고 다녀라'고 지침을 내린다. 외래로 나가는 간호사도 과거엔 연차를 따졌다면 최근엔 외모를 중시한다. '고객'이 다음에 또 찾아줄지 결정하는 병원 이미지 확립에 중요한 부서이기 때문이란다.

전화응대 절차도 정해져 있다. "전화벨은 3번 울리기 전에 받아야 하고, '환자사랑 고대안암병원 00과 누구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멘트를 다한 뒤 전화 응대를 해야 한다. 또 환자가 끊기 전에 수화기를 놓으면 안 된다." 고려대의료원지부 조현종 총무부장의 설명이다.

한 종합전문병원의 간호사는 "예전엔 솔 톤으로 전화를 받으라고 했는데 요즘은 목소리 톤이 너무 높으면 거부감을 준다고 좀 낮추라고 한다. CS트렌드가 항상 바뀌어서 그걸 맞추는 것도 힘들다"라고 말했다.

모든 책임을 '웃음'에 떠넘겨

한편 고객만족활동 역시 평가의 대상이다. 창구에서의 고객 응대 자세를 체크하고, 복장 등도 점검한다. 고객을 가장해 전화 모니터링을 하는 건 기본이다. 작년에 한 대학병원에선 부원장이 가짜 환자 행색을 하면서 전화 모니터링을 하다가 약간 불친절한 간호사에게  '야, 너'라고 훈계하면서 모니터링이 들통난 적도 있다고 한다.

이런 고객만족 모니터링은 점수가 돼 직원별, 부서별 1등부터 꼴등까지 순위가 매겨진다. 인사고과를 염두에 둔 부서장들이 등수관리를 하는 것은 물론 병원 측이 친절 마일리지, 친절 반지 등의 포상제도로 경쟁을 부추긴다. 반면 불만민원에 대한 제재는 가차 없다. 사유서 등을 작성해야 하고 부서장 면담을 하기도 한다.

"작년에 불만민원이 2번 접수된 직원이 관리자한테 불려가서 '다시 또 불만민원이 접수되면 가만 안 두겠다'는 경고를 받았다."

이향춘 의료연대 사무국장이 병원현장의 살벌한 분위기를 전했다.

이에 대해 노동자들은 할 말이 많다.

"간호사들한테 들어오는 민원의 상당부분은 간호사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거다. 2인실을 6인실로 옮겨 달라, 의사가 자주 안 온다, 병원비가 많이 나왔다면서 간호사들한테 불평한다. 그 불만이 해소가 안 되면 퇴원하면서 '불친절하다'고 얘기하는 거다. 병원 측은 이런 사항도 간호사 개인들이 책임지라고 한다."

서울대병원분회 윤태석 부분회장의 말이다.

환자이송, 현관안내 등을 맡은 안전요원실 소속의 한 노동자는 "우리는 손님이 때리더라도 웃으면서 맞아야 한다"면서 서글픈 웃음을 지었다. 병원 경영진들이 웃음을 강요하는 사이, 병원 노동자들은 극심한 감정노동으로 병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월간 <노동세상> 7월호(www.laborworld.co.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병원 신경영, #도요타 린, #대형병원, #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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