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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아이들의 고향 마을 느티나무. 이 느티나무가 보고 싶다며 큰 아이 인효녀석이 한참을 흐느겼다.
 우리집 아이들의 고향 마을 느티나무. 이 느티나무가 보고 싶다며 큰 아이 인효녀석이 한참을 흐느겼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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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레? 이게 뭔 소리여…."

다락방에서 밥벌이 원고를 쓰고 있는데, 그것도 자정이 넘은 야심한 밤에 어디선가 곡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잘못 들었나 싶어 컴퓨터 자판기에서 손을 멈추고 귀를 세웠습니다.

"어 어엉, 으흐흐…."

그 어떤 서러움에 흐느끼는 울음소리였습니다. 다락방 바로 아랫방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분명했습니다. 아들 녀석 중에 한 놈이 우는 소리였습니다.

"자식들이…. 자다 말고 뭔 짓여…."

녀석들이 잠자다 말고 아빠를 놀리기 위해 귀신 장난이라도 하고 있나 싶어 다락방 계단을 내려와 슬그머니 귀를 기울였습니다. 울음소리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어 어엉, 으흐흐"... 밤중에 흐느끼는 소리

"누구냐? 누가 자다 말고 장난 하는 겨?"
"어, 어 엉, 으흐흐흐!"

녀석은 좀 더 큰 울음소리로 답했습니다. 가슴이 꽉 메여 왔습니다. 방안으로 들어서자 큰 아들 인효 녀석이 서러움에 복받쳐 큰 소리로 엉엉 울어대고 있었습니다.

"인상아, 형아 징말로 우는 겨?"
"어, 그런가 봐…."

옆에 누워있던 작은 아들 인상이 녀석이 몸을 뒤척이며 아주 난감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왜 그려, 뭐 때미 한 밤에 곡소리를 내는 겨?"
"어 어엉엉, 우리 동네 가 보고 싶어, 어어엉."
"이제 여기가 니들 동네지 인마! 어딜 간다구 그려?"
"아니, 우리가 살던 동네 공주, 느티나무가 보고 싶어."
"뭐 느티나무?"
"어 어엉, 거기 가고 싶어, 어어엉."

우리집 아이들은 고향 느티나무 아래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사오기 전까지 마을 아이들은 우리집 아이들과 이웃 사촌 영주가 전부였다.
 우리집 아이들은 고향 느티나무 아래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사오기 전까지 마을 아이들은 우리집 아이들과 이웃 사촌 영주가 전부였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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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되면 느티나무 그늘아래에서 아내에게 그림을 배우는 아이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여름 되면 느티나무 그늘아래에서 아내에게 그림을 배우는 아이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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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공주 시골집에 살 때 동네 앞에 수백 년 된 느티나무 한그루가 있었는데 녀석들은 어려서부터 틈만 나면 그 느티나무 주변에서 놀곤 했습니다. 친구들이 찾아오면 느티나무를 향해 내달리곤 했습니다. 녀석은 종종 느티나무를 껴안곤 했다는데 그때 그 까칠 까칠한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져 와 더욱더 그립다는 것입니다.

"느티나무를 껴안고 싶어서 울고 있는 겨?"
"장승 있는 데도 가고 싶어…. 어어엉."
"아이구 자식이, 덩치는 산만한 놈이 별거 다 가지구…."

그렇게 말하고 있는 나 역시 목이 메였습니다. 서러움에 복받친 녀석의 울음소리는 그칠 줄 몰랐습니다. 가슴이 꽉 미어져 왔습니다.

공주의 자연을 그리워 하는 아이들

"다 큰 놈이, 인저 그만 울어. 나중에 아빠가 세상 떠나도 그렇게까지는 안 울겠다 자슥아, 너 며칠 있다가 친구들 만나러 공주에 가기로 했잖어? 그때 가보면 되잖어. 느티나무도 보고 장승도 보러 가믄 되잖어. 니가 살았던 집에도 가보고…."

전남 고흥 산간 오지 바닷가로 이사 와 생활한 지 5개월째로 접어들고 있었지만 녀석의 가슴 속에는 내내 충남 공주 시골집이 떠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세 살 무렵부터 살아왔던 곳이었으니 녀석에게는 고향이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에이 씨, 집 앞에 있던 뽕나무도 없어졌다며? 어 엉엉, 얼른 가보고 싶어 어어엉…."
"그려 내일이라도 가고 싶으면 얼릉 갔다 와."
"어 어엉엉, …알았어 갈겨."
"알았다면서 계속 울고 있냐?"
"고속철도가 지나가면 장승도 없어질지 모르잖어, 그래서 더 슬퍼…."

우리집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새벽 산책길을 나섰는데 그때마 마을 장승을 만나 인사를 했다.
 우리집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새벽 산책길을 나섰는데 그때마 마을 장승을 만나 인사를 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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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앞 느티나무는 앞으로도 계속, 오랫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장승은 조만간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마을을 관통하는 호남고속철도 공사가 곧 착공될 모양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래 윗마을 중간쯤에 서 있는 장승의 운명은 불 보듯 빤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무지막지한 개발의 삽질이 시작되면 사라질 것이 어디 장승 뿐이겠습니까? 녀석과 정들었던 수없이 많은 것들이 개발 앞에 가뭇없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느티나무는 그렇다치고 녀석이 왜 그토록 장승을 보고 싶어하냐구요? 장승은 녀석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새벽 산책길에서 늘 아침 인사를 했습니다. 인사를 하면서 녀석들은 장승을 마을 지킴이이자 자신들의 지킴이로 여겨왔습니다. 

녀석들이 "안녕하세요? 장승 할아버지!" 인사하면 내가 대신 "오~오냐!" 대답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녀석들에게 사람이든 장승이든 그 어떤 사물에 애정을 품게 되면 그 사물들이 너희들의 마음속에 들어와 든든하게 지켜 주게 될 것이라 말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 장승 길을 지나면서 아이들에게 '너는 누구냐?' '어디서 왔냐' 식으로 뜬구름 잡기 식의 선문답을 주고받곤 했었습니다. 녀석은 그 과정에서 생명체가 아닌 장승일지라도 자신과 그 어떤 기운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받아들였던 모양입니다.

산책길에서 만났던 하늘 향해 뻗은 키큰 미루나무. 호남고속철도가 뚫리게 되면 장승은 물론이고 아이들이 하늘을 올려다 볼수 있도록 해준 키 큰 미루나무 또한 사라지게 될 것이다.
 산책길에서 만났던 하늘 향해 뻗은 키큰 미루나무. 호남고속철도가 뚫리게 되면 장승은 물론이고 아이들이 하늘을 올려다 볼수 있도록 해준 키 큰 미루나무 또한 사라지게 될 것이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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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나 동물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만물에는 세상을 움직이는 생명의 기운이 깃들어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느티나무며 장승은 물론이고 녀석과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던 고향 집과 산과 들이 녀석의 마음 속에 생명의 기운으로 자리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생명의 기운으로 고향 산천에 대한 애정이 쌓인 것입니다. 하여 느티나무며 단지 통나무를 조각한 형상에 불과한 장승조차 눈물겹도록 보고 싶었던 것이겠지요. 그런 애정물들이 사라지게 될 위기에 처해 있다니 또 얼마나 서글프겠습니까?

"그려, 울고 싶을 때 실컷 울어라"
"어이구 자식이 그만 울어, 손님방에 있는 사람덜이 니 곡소리 다 듣겠다. 중학교 3학년이나 된 놈이 아직 어린애구먼."
"자꾸만 눈물이 나오는걸 어떻게 해, 어 허어엉…."

마치 신 잡힌 무속인 처럼 녀석은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나는 녀석의 복받쳐 오르는 울음소리를 들으며 저 울음소리야 말로 녀석이 앞으로 살아갈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힘의 원천은 자연에서 나왔습니다. 자연물에 대한 애정을 품는 순간 녀석의 가슴 속에 그 순수한 힘이 고이게 됐을 것입니다. 자연물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면 녀석에겐 복받쳐 오르는 서글픔도 없었을 것이니까요.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놀았던 마을 들녘. 멀리 계룡산이 보인다.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놀았던 마을 들녘. 멀리 계룡산이 보인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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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인효야! 그러면 되겠다. 너 요즘 노래 만들고 있지? 그거 노래로 한번 만들어 봐라! 지금처럼 아빠 가슴을 찡하게 하는 그런 노래하나 만들어 봐라! 좋겠지?"
"어 엉엉, 알았어~어, 어 흐흐흐…."

녀석은 대답을 하면서도 여전히 흐느끼고 있었습니다. 내가 죽어도 녀석은 저토록 서럽게 울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녀석의 울음소리는 잔혹한 인간에게 살을 맞고 있는 만물에 대한 살풀이 굿판과도 같았습니다. 살풀이 굿판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미어져 오기도 합니다. 녀석의 울음소리에 가슴이 꽉 미어져 왔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려, 울고 싶을 때 실컷 울어라, 울다보면 뭔 수가 나기도 하니께…."

그날 밤 나는 녀석의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울음소리를 뒤로 하고 다락방으로 향하는 계단에 올라서면서 뜬금없이 무지막지한 개발로 죽어가는 4대강을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녀석의 울음소리를 계단 오르듯 몇 단계 높여 생각해 보면 온갖 추악한 잡귀들에게 살을 맞고 있는 4대강의 곡소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녀석에게 고향 마을은 녀석의 심성을 키워준 작은 강줄기나 다름없으니까요.


태그:#곡소리, #정든고향,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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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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