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수신료 인상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23일 KBS 이사회는 현재 월 2500원인 수신료를 최소 4600원에서 최대 6500원으로 올리는 안을 상정했습니다. 그러나 시민사회단체들과 누리꾼은 수신료 인상에 반발하고 있습니다. 500여개 시민사회단체와 야당, 누리꾼단체들이 수신료 인상 강행에 대응하기 위해 결성, 6월 29일 발족한 'KBS 수신료 인상저지 범국민행동'과 <오마이뉴스>는 KBS가 추진하는 수신료 인상의 타당성을 따져보고, 시민사회단체들과 누리꾼이 수신료 인상을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짚어보는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편집자말] |
이 정부 들어 늘 반복되는 일이지만, 수신료 논쟁에 정작 시청자들의 목소리가 끼어들 자리는 없어 보인다. 인상안을 만든 보스톤 컨설팅사의 여론조사는 물론이고, 심지어 한 시민단체의 여론조사에서는 국민의 80.2%가 수신료 인상에 반대하고 있다.(미디어행동, 수신료 국민공청회 여론조사, 2010년 6.9-6.10, 전화면접, 전국 1000명, 95% 신뢰수준에서 +_3.1% 표본오차) 하지만 KBS 여당 측 이사들로만 독단적으로 추진된 수신료 인상안이, 역시 대통령의 멘토라는 최시중 위원장의 지휘 아래 방통위를 통과하고, 여당의원들의 날치기를 거쳐 시청자들의 호주머니를 털어갈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시청자들은 '봉'? 우리도 알 건 안다연간 최대 4만 8천원, 인상률은 무려 260%다. 해도 해도 너무한다 싶지만, 싫다고 거부하기도 힘들다. 그래도 세금인데, 준법정신에 투철한 법치국가 국민으로 싫다고 마냥 거부하는 것이 맞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최소한 왜 돈을 더 내야 하는지, 그 이유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선거를 통해 뽑힌 정권이라지만, 국민의 부담을 지우는 정책행위에서 당사자인 국민의 의견은 안중에도 없다.
이 정권에게 국민은 바지저고리에 불과한 모양이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때리면 때리는 대로 죽은 듯이 엎어져 있으라는 뜻일 게다. 니들이 알긴 뭘 알아. 똑똑한 우리가 다 알아서 결정할 건데. 그러라고 니들이 선거에서 뽑아줬잖아!
그런데 말이다. 우리도 알 건 다 안다. 수신료가 왜 필요한지, 그리고 왜 지금은 아니라고 하는지 말이다. 공영방송이 아니라 관영방송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듣는 KBS, 독립성을 지키기는커녕 권력 눈치 보기에 급급한 이사회 그리고 '낙하산사장', '특보사장'이 존재하는 한 인상은커녕 수신료 거부가 인지상정이다.
"KBS가 수신료를 인상하면 7000~8000억 원 규모의 광고가 민간시장으로 이전되는 효과를 낼 것이고 이는 미디어업계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최시중 위원장의 발언 속에서 조중동 방송에 몰아 줄 광고파이에 목매는 이들의 속내를 찾아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수신료 인상? 지역방송은 죽는다수신료인상 논의에서 무시되는 건 지역언론도 마찬가지다. 한국사회에서 중앙과 지역간 불균형의 문제는 계층 간 갈등이나 영호남 지역차별과 같은 전통적 이슈에 비해 그 심각성이 덜하지 않다. 특히 지역언론의 실체적 부재는 지역 풀뿌리민주주의의 위기를 심화시키고, 한국사회 전반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악순환의 고리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수신료인상은 지역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지방방송들 모두 비슷한 영향을 받겠지만 이 글에서는 우선, KBS 지역국의 문제를 살펴보겠다. 특히 수신료 인상에 즈음하여 발표된 KBS의 지역성 강화대책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 KBS가 수신료 인상을 토대로 실현하겠다는 지역방송과 문화발전 선도는 모두 7가지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 지역방송 자체제작 비율 확대 ◦ 라디오 2FM, 전국 방송 실시 ◦ 취재, 중계, 제작 장비 HD 조기전환 등 지역 프로그램 품질 향상 ◦ 지역 사옥 문화센터 활용, 지역민 개방 ◦ 지역별 대표 문화행사 지원 육성 ◦ 지역 시청자 미디어 창작교육 지원 ◦ 경기·인천 로컬방송 확대 실시 적당히 보도자료나 베끼고, 단체장 인터뷰 프로그램이나 만들라?여기서 가장 본질적인 부문은 '지역방송 자체제작 비율 확대'다. 지역사회의 관심사와 요구를 반영하고 실현하기 위한 프로그램 제작비율의 확대와 편성비율의 확대는 지역성 강화의 1차적 요구이기 때문이다. 2007년 지역KBS의 자체 편성 비율은 7.93%에 불과하며, 이 정도로는 지역정보의 유통과 공론장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기 어렵다. 때문에 지역성 강화대책으로 자체 제작비율 확대계획을 포함하고 있는 것은 유의미하다.
문제는 재원과 인력이다. 구체적인 계획이 아예 없으니 평가가 쉽진 않지만, 몇 가지 배경지식을 동원하면 그 실체에 대한 접근이 좀 더 용이해진다.
지역KBS의 경우 본사 단일 시스템으로, 지역방송은 본사에 소속된 총국, 지국의 형태로 운영되며, 서울 KBS의 사장과 부사장 아래 수직적으로 편재된 하위기관에 불과하다. 또한 지역국의 예산 편성, 인사, 프로그램 편성 등도 전적으로 본사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독립적인 지역방송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게다가 경영최고의결기관이라는 이사회는 구성에서부터 지역인사가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그 결과는 예산과 인력으로 나타난다. 2005년 기준 본사는 전체 예산의 77.57%를 사용한 반면, 지역국은 모두 합해 18.92%에 불과하다. 자본예산은 더욱 차이가 나 본사의 자본예산은 99.04%인 1484억 6800만원이고, 지역국 전체의 자본 예산은 14억 3500만원(0.96%)에 불과하다.
인력 현황도 마찬가지다. 전체 KBS 인력 5479명 가운데 본사 인력이 3548명(64.76%)인데 비해, 18개 지역방송국의 인력은 1931명(35.24%)에 불과하다. 프로그램 제작에 종사하는 방송직의 경우는 그 편차가 더욱 크다. 전체 인력 2284명의 71.05%인 1623명이 본사소속이고, 나머지 661명만이 지역국 소속이다. 본사 인력이 지역국 전체의 2.45배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임동욱, 2007)
이런 상황에서 지역방송 자체 제작비율 확대를 외친다고 저절로 이뤄질까? 물론 획기적인 인력재배치와 예산확대에 나선다면 실현가능성은 높아질 것이다. 하지만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우선, 수신료 인상으로 늘어나는 KBS 재원은 거의 '0'에 가깝다. 이미 최시중 위원장은 수신료 인상을 광고 폐지와 연계하고, 그렇게 발생한 광고 물량을 다른 곳(아마도 조중동 종편)에 활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기 때문이다. 또한 방송 제작비는 2000년 이후 매년 평균 10% 이상 상승하고 있다. KBS는 이를 수신료 인상의 명분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로컬프로그램 제작비는 어떻게 충당한다는 것일까?
다음은 인력문제다. 단순히 편성비율을 높이는 것이 아닌 양질의 로컬프로그램 제작을 확대하는 것은 지역성 구현에서 필수적인 요소다. 문제는 이것이 인력충원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인력은 그대로 둔 채, 또는 줄이면서 프로그램 제작은 늘인다? 그건 적당히 보도자료나 베끼고, 단체장 인터뷰 프로그램이나 만들라는 말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 이번 보고서에서 KBS는 효율적인 인력운영 체계를 위해 현행 5100명 규모에서 5년 후 약 4300~4400명 수준으로 인력 규모를 조정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지난 2004년 11월에는 25개 지역국 중 7개 지역국을 폐지하면서 발생한 인력의 대부분을 지역총국이 아닌 본사에 배치한 바 있기도 하다.
그래서다. 구체적 계획이 제시되지 않은 공적책무 확대계획은 사기에 불과하다. 특히 조중동 종편이라는 수신료 인상의 정략적 목표가 수정되지 않는 한 KBS의 보고서는 허구에 불과하다.
"지역국 기능 강화? 지역국 구조조정을 그럴싸하게 포장한 용어"KBS의 지역성 강화의지를 가늠하는 더욱 중요한 대목은 KBS혁신안에 포함된 '지역국 기능 강화' 항목이다.
- 지역국 기능 강화 ․ 총국 → 중장기적 권역화/지역국 → R(라디오), 보도 기능 강화 지역국의 총국은 중장기적으로 광역화하고, 지역국은 라디오 보도기능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것인데, 이에 대해 지역KBS 노조는 "결국 지역국의 개편방향이 을지국의 TV 뉴스 기능을 없애고, 소규모 인젝션센터를 확대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고, 실제 사측이 사용하는 용어도 지역국 활성화가 아니라 지역국 효율화"라면서 이는 "지역국 구조조정을 그럴싸하게 포장한 용어"에 불과하다고 분노하고 있다.
그렇다면 수신료 인상과 지역성의 관계는 자연스럽게 정리된다. 종편 먹거리를 위해 지역을 희생한다는 것이 지역성과 관련한 수신료인상의 또 다른 실체다. 지역의 희생을 바탕으로 서울공화국의 조중동의 번영을 돕겠다는 수신료 인상안에 대해 지역 시청자가 분노하는 또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수신료 인상하면 난시청 해소에도 기여할까2005년 9월, 경기도 고양시와 파주시의 케이블TV에 가입한 30여만 가구의 TV가 6시간이나 먹통이 되는 일이 발생했다. 해당 지역 케이블방송의 전기실이 집중호우로 물에 잠겼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때문에 해당 지역에서는 국가기간방송이라는 KBS는 물론이고 MBC, SBS도 볼 수 없었다는 점이다. 지상파의 직접 수신률(안테나만 달면 수신이 가능한)이 20%대에 불과한 실정에서 대다수 시청자들이 유료방송인 케이블방송이나 위성방송에 대한 이중부담을 감수해야만 지상파서비스를 받아볼 수 있는 현실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이를 통해 성장한 케이블방송사들이 독점화되면서 상황이 완전히 역전되었다는 점이다. 2007년 말 전국을 강타한 케이블방송 관련 투쟁이 대표적 사례다. 일방적인 요금인상과 채널변경에 맞선 주민들의 저항이 전국적으로 확대되었지만, 지금까지도 케이블방송의 횡포를 하소연하는 시청자들의 항의는 끊이지 않고 있다. 이는 해당지역에 단 1개의 케이블방송만이 존재하는 독점구조와 관련되어 있다. 울며 겨자 먹기다.
그럼에도 한나라당은 지난 미디어법 날치기 국면에서 오히려 케이블사업자의 독점권을 더욱 강화하는 내용의 방송법안을 강행처리 한 바 있다. 케이블 방송의 시장점유 제한기준을 변경하여 매출액(33%) 기준을 삭제하고, 겸영규제를 방송구역 1/5에서 케이블 가입자1/3로 크게 완화한 것이다. 전국적 수준에서 케이블방송사의 독점력이 확대되고, 상대적으로 시청자의 선택권은 축소되는 결과가 불가피하다.
여기서 수신료 인상을 바라보는 지역시청자들의 분노는 배가된다. 보편적서비스가 원천적으로 차단되고 있기 때문이다.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무료로 양질의 공적서비스방송(우리나라의 경우 KBS, MBC, SBS, EBS등 지상파방송 서비스)을 제공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보편적서비스 개념은 국가와 공영방송의 최대 책무 가운데 하나로 여겨져 왔다. 실제로 방송법 제44조 2항은 KBS의 공적책임과 관련하여 ② 공사는 국민이 지역과 주변 여건에 관계없이 양질의 방송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공영방송 KBS의 직접수신률 제고 및 디지털 전환에 따른 보편적 시청권 확보를 위한 움직임은 어떨까. KBS 보고서는 "2012년 디지털 전환을 계기로 디지털 방송 수신환경 개선과 난시청 해소에 집중 노력함으로써 국민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디지털 방송을 시청할 수 있는 무료 보편적 디지털 환경 구현"을 장담하지만, 실제로 수신료 인상을 염두에 둔 김인규 사장의 K-view 플랜에는 난시청 해소를 위해 2010년 109억 원, 2011년 250억 원, 2012년 271억 원 등을 투자하겠다는 게 전부다. 수신료 수익대비 2~4% 수준이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부담만 존재하고 권리는 존재하지 않는' 현재의 수신료 인상 논의를 시청자들은 결코 찬성할 수 없다는 점이다. 나아가 우리의 세금으로 사기업의 배를 불리겠다는 발상은 더더욱 용납할 수 없다. 지역시청자의 한사람인 내가 수신료 인상을 거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박민은 전북민언련 정책실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