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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

요즘 같은 여름 한철에는 '태안해안국립공원'을 끼고 사는 덕에 바다 손님 치르는 일도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나이 들어가면서 내 손님은 거의 없게 되었는데, 대학생 아들 녀석 손님들이 생겨나서 내가 시간 쓰고 돈 쓰고 고생하는 현상을 겪기도 한다.

엊그제는 서울과 대전에서 대학생 다섯 명이 와서 내 차로 안면도 방포해수욕장의 펜션에 태워다 주고, 꽃지해수욕장에도 데려다주고, 저녁과 다음날 아침 두 끼 밥을 해먹을 여러 가지 음식거리들을 한 상자 가득 사서 넣어주고 왔다.

바다 구경이 처음인 대학생들 밀집모자를 쓴 내 아들녀석과 친구들이 꽃지해수욕장에 들어서며 즐거워하고 있다. 놀랍게도 손님 다섯 명 중 무려 네 명이나 바다 구경이 처음이라고 했다.
▲ 바다 구경이 처음인 대학생들 밀집모자를 쓴 내 아들녀석과 친구들이 꽃지해수욕장에 들어서며 즐거워하고 있다. 놀랍게도 손님 다섯 명 중 무려 네 명이나 바다 구경이 처음이라고 했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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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들을 내 차에 태우고 안면도에 가면서 본전을 빼자는 생각으로 여러 가지 얘기를 해주었다. 안면도가 조선 인조 때 섬이 된 이야기, 삼남지방 세곡선의 안전 운항을 위해 태안반도 천수만과 가로림만의 바닷물을 개통시키려 했으나 끝내 실패하고 만 '굴포운하' 이야기, 1990년대 초반 안면도를 들깨웠던 반핵항쟁 이야기 등….

또 대학생들이라면 여름철 피서 가운데서도 공동선과 관련하는 '사회적 고민' 쪽으로도 관심을 가져야 하고, 천혜의 자연환경을 즐기는 가운데서도 '4대강 없애기' 등 무분별한 자연파괴 현상에 대해 공분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 등등….

기후·토질·풍광 등 천혜의 자연 조건을 갖추고 있는 태안반도는 그러나 리아스식 해안 탓에 일찍부터 왜구(倭寇)들의 침입이 잦았던 피어린 수난사도 가지고 있고, 동학혁명의 웅혼한 불꽃을 피워 올렸던 장대한 민중사도 지니고 있는 고장임을 알려 주었다.

모래조각 페스티발 참가자들 지난달 31일 몽산포 해변에서 열린 제8회 모래조각 페스티발 참가자들이 오전 11시 개회식 행사를 기다리고 있다.
▲ 모래조각 페스티발 참가자들 지난달 31일 몽산포 해변에서 열린 제8회 모래조각 페스티발 참가자들이 오전 11시 개회식 행사를 기다리고 있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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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야기들 끝에 태안반도에는 도합 38개의 해수욕장이 있다는 얘기도 해주었다. 그렇다. 태안군은 무려 38개의 해수욕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조금은 부끄러운 얘기지만 그 38개소의 해수욕장을 나도 다 가보지 못했다. 태안군 근흥면 두야리에 350년 이상의 뿌리고 두고 사는 토박이 처지임에도 우리 고장의 해수욕장들을 다 가보지 못했다니, 정말 면구스러운 감이 없지 않다.

지난 2008년 태안반도 '기름과의 전쟁' 때 기름제거 자원봉사 관계로 여러 곳을 가보았는데, 그때 처음 가본 곳이 많다. 전국 각지에서 오신 천주교 신자 자원봉사자들을 안내하고 작업 뒷바라지를 하느라 계속적으로 들락거린 곳도 여러 군데나 된다. 새 작업장을 물색하고 현장 파악을 하기 위해 한번 가보기만 한 곳들도 있다. 기름유출사고가 아니었으면 생전 가보지도 못할, 이름조차 생소한 곳들을 보면서 '기름사고 덕분'이라는 생각에 쓴웃음을 짓기도 했다.

내빈들의 깃발전 참여 김세호 태안군수(가운데 안경 쓴 이)를 비롯한 내빈들이 몽산포 하늘에 띄울 깃발들에 그림과 글씨를 새기고 있다.
▲ 내빈들의 깃발전 참여 김세호 태안군수(가운데 안경 쓴 이)를 비롯한 내빈들이 몽산포 하늘에 띄울 깃발들에 그림과 글씨를 새기고 있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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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 글을 쓰기 위해 한번 헤아려보니 우리 태안 군내 38개 해수욕장들 중에서 내가 가본 곳이 3/2 이상은 될 것 같다. 나머지 3/1 정도 되는 해수욕장들을 앞으로 가볼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건 그렇고, 우리 고장 해수욕장들 중에서 내가 가장 많이 간 곳은 어디일까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몽산포일 것 같다. 몽산포는 내가 사는 태안읍에서 가장 가까운 해수욕장인 데다가(자동차로 10분 거리), 아이들을 데리고 가 놀기에는 가장 안전한 곳이기 때문이다.

몽산포를 가면 맨 먼저 반기는 것이 드넓은 송림이다. 울창한 송림은 햇볕을 잘 가려주지만 소나무들이 조밀하지 않기 때문에 소나무 사이사이로 작은 차들의 이동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송림이 드넓다는 것은 그만큼 텐트를 칠 자리가 드넓고 많다는 뜻이다. 전국의 수많은 해수욕장들 중에서 몽산포의 드넓은 송림은 단연 최고이며, 그 송림 속의 텐트들은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몽산포 하늘 제8회 '몽산포모래조각페스티발과 제3회  ‘태안국제바다깃발미술제’를 알리는 대형 풍선이 몽산포 하늘을 장식하고 있다.
▲ 몽산포 하늘 제8회 '몽산포모래조각페스티발과 제3회 ‘태안국제바다깃발미술제’를 알리는 대형 풍선이 몽산포 하늘을 장식하고 있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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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으로 이어진 몽산포 해변은 북쪽 몽대포에서 남쪽 마검포까지 해변 길이가 무려 30리에 이른다. 동양 최대 길이라고 한다. 몽산포와 마검포 사이에는 달산포도 있고 청포대도 있다. 지금은 해변으로 자동차가 함부로 들어갈 수 없지만, 예전에는 국내 최고의 해변 드라이브 코스였다.

가끔 모래벌판에서 자동차 경주대회가 열리기도 하고, 승마대회가 열리기도 한다. 또 경비행기들이 연습 비행을 하는 것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물이 나갔을 때는 까마득하게 멀어져서 한참을 가야 물을 밟을 수 있고, 또 한참을 들어가야 겨우 허리까지 물에 담글 수 있다. 그렇게 모래밭의 경사가 완만하니 그대로 안전이 보장된다. 몽산포 유사 이래 몽산포에서는 단 한 번도 익사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

태안사랑 40점의 모래조각 작품들 중에는 태안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 작품도 있었다. 고장 주민의 작품인지 외지에서 오신 이의 작품인지 확인을 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 태안사랑 40점의 모래조각 작품들 중에는 태안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 작품도 있었다. 고장 주민의 작품인지 외지에서 오신 이의 작품인지 확인을 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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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경주대회와 승마대회도 열리고, 여러 팀이 동시에 맨발 축구경기도 할 수 있는 것은 모래벌판이 넓어서이기도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적당히 흙이 섞인 모래밭이기 때문이다. 100% 모래로만 되어 있는 해변이라면 발이 빠져서 마음껏 뛰놀지 못한다. 적당히 흙이 섞여 있어서 바닥이 무른 듯 단단하니 마음껏 뛰놀 수가 있는 것이다.

적당히 흙이 섞인 모래밭은 또 한 가지 '특징'을 선사한다. 그것은 바로 '모래조각'을 만들 수 있는 조건이다. 다른 해수욕장들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몽산포만의 특징이다. 100% 모래로만 되어 있는 해변에서는 모래조각을 만들 수가 없다. 그런데 몽산포 해변은 적당히 흙이 섞여 있어서 힘없이 흘러내리지를 않으니 누구라도 모래를 가지고 자기가 만들고 싶은 형체를 창조할 수 있다.

<3>

모래 위의 무희들 지난달 28일 몽산포 해변에서는 세계여자비치발리볼대회 결승전 경기가 열렸다. 네델란드가 스페인을 2:1로 이겨 우승을 차지했다.
▲ 모래 위의 무희들 지난달 28일 몽산포 해변에서는 세계여자비치발리볼대회 결승전 경기가 열렸다. 네델란드가 스페인을 2:1로 이겨 우승을 차지했다.
ⓒ 배봉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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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산포 해변에서는 지난달 27-28일 '2010 세계여자비치발리볼' 대회가 열린데 이어 31일(토)에는 제8회 '몽산포모래조각 페스티발'이 열렸다. '몽산포해수욕장번영회'(회장 최규열)에서 주최하고, 한국미술협회 태안지부(지부장 문연식)에서 주관한 이 행사는 신청자들이 많아 선착순 접수로 전문부 4개 팀, 일반부 36개 팀, 도합 40개 팀이 경연에 참여했다.

오전 11시 김세호 태안군수, 정광섭 태안군의회의장, 강철민 도의원, 명수남 태안문화원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개회식 행사를 했고, 심사위원장인 현남주 충남미협 회장의 심사 기준 발표에 이어 곧바로 40개 팀은 배당 받은 모래더미와 삽과 모종 삽 등을 가지고 모래조각 작업에 들어갔다.

인체 조형 총 40점의 모래조각 작품들 중에는 인체의 장기들을 조형한 작품도 있었다.
▲ 인체 조형 총 40점의 모래조각 작품들 중에는 인체의 장기들을 조형한 작품도 있었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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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예총 회장인 나도 개회식에 참석해서 '내빈소개'를 하는 문연식 태안미협 회장으로부터 '태안의 예술대통령'이라는 과분한 칭호를 들었다. 점심식사 후에는 잠시 집에 왔다가 오후 4시쯤 다시 몽산포에 가서 심사 작업에 참여했다. 심사위원은 나를 포함하여 8명이었다. '조형성·창의성·재료에 대한 이해·협동성' 등에 대해 점수를 매긴 후 각자 합계를 내고, 8명의 합계를 합산하여 전문부와 일반부 대상 각 1팀, 최우수 각 2팀, 우수 각 3팀을 선정하는 것이었다.

오후 4시에 모래조각 작업이 완료되고 30분부터 1시간 동안 심사가 진행되었는데, 나는 심사 시간이 다소 촉박함을 느꼈다. 하나하나를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이모저모 세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한번 보았던 것을 다시 가서 보는 경우도 있었다. '비교 관점'이라는 것이 필요해서였다. 당연히 내가 가장 늦게 심사를 마쳤고, 밀물 시간과 맞물려서 재촉을 받기도 했다.
    
전자계산기로 점수 집계를 하여 각 부문 입상자들을 가려내고 6시쯤 시상식을 가졌다. 일반부 대상은 정광섭 태안군의회의장이 시상을 했고, 최우수는 명수남 문화원장이 시상했다. 또 전문부 대상은 김세호 태안군수가 시상을 했고, 최우수는 예총회장인 내가 시상했다. 각 부분 상금 총액은 300만원이었는데, 전문부 대상 상금은 70만원이었다. 입상하지 못한 참가자들에게도 남면농협 등에서 마련한 기념품이 전달되었다.

시상식 내빈이기도 하고 심사위원이기도 한 나는 태안예총 회장으로서 전문부 최우수상 시상을 하기도 했다.
▲ 시상식 내빈이기도 하고 심사위원이기도 한 나는 태안예총 회장으로서 전문부 최우수상 시상을 하기도 했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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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일반부 대상은 대전시 관저동의 곽호준 외 9명이 차지했고, 전문부 대상은 충남 홍성군·읍 오관리 주남수 외 2명이 차지했다.  

참가자들은 하나같이 혼연일체가 되어 모래조각 제작에 심혈을 기울였다. 작업을 진행하며 가족 간에, 또 동료 간에 의견 충돌을 빚기도 하는 모습은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입상 여부와 관계없이 참가자 모두는 몽산포 해변에서 오래 기억될 알찬 추억을 만든 셈이다. 수많은 피서객들이 모래조각 작품들을 감상하며 카메라에 담기도 했는데, 그들 모두에게도 몽산포 해변의 모래조각 작품들은 몽산포만의 명물로 기억될 것이다.

제8회 '몽산포모래조각페스티발'과 함께 제3회 '태안국제바다깃발미술제'도 같은 장소에서 열려서 볼거리는 더욱 풍성했다. 몽산포깃발미술제에는 국내외 미술작가 100명이 참가하여 100개의 그림깃발들이 모래밭을 장식했다. 그림깃발들과 모래조각 작품들이 함께 어우러지니 몽산포 해변은 별천지가 된 느낌이기도 했다.

밀물에 의해 모래조각들이 하나하나 스러지는 아쉬움 속에서, 100개의 그림깃발들이 허망함을 달래주는 효과를 발휘한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지만 여러 시간에 걸쳐서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제작된 갖가지 형태의 모래조각들, 무려 40개나 되는 작품들이 밀물에 의해 모두 스러지고 마는 현상은 허탈감마저 안겨주는 일이었다.

해변 미술전 관람 몽산포를 찾은 수많은 피서객들이 40점의 모래조각 작품들과 100개의 깃발그림들을 감상하며 몽산포 특유의 문화적 정서를 즐겼다.
▲ 해변 미술전 관람 몽산포를 찾은 수많은 피서객들이 40점의 모래조각 작품들과 100개의 깃발그림들을 감상하며 몽산포 특유의 문화적 정서를 즐겼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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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허망함과 아쉬움을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다. 심사위원으로도 참여한 태안군청 서재청 문화관광과장도 아쉬움을 표했다. 그 모래조각 작품들이 여름 동안 몽산포 해변에서 그대로 유지되어 몽산포를 찾는 피서객들이 모두 볼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해야겠다는 말을 했다. 그렇게 모래조각 작품들에 어느 정도 '생명'을 부여해야 몽산포모래조각페스티발이 더욱 성대하고 의미 있는 행사가 될 수 있다는 얘기였다.

고마운 말이다. 지역의 예총회장이라는 직분을 떠나서라도 내가 각별히 기억해야 할 말이라고 생각한다. 몽산포모래조각페스티발의 작품들이 몽산포 모래밭에 여름철 내내 유지되어 생명을 누리며 몽산포 특유의 '명물'로 자리 잡는 일이 현실화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해 본다.


태그:#몽산포, #모래조각, #해변 깃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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