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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조그만 어촌마을인 포항시 흥해읍 오도리에도 어둠이 찾아왔다. 평상시라면 적막함이 감돌 텐데, 휴가철이라 바닷가는 휴가를 즐기는 이들로 붐빈다. 아이들은 바닷가에서 폭죽놀이를 하고 어른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아 웃고 떠들고, 청소년들은 노랫소리를 높이고 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좁은 어항에서 반딧불 같은 불이 보이고,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가보았다. 나이가 듬직한 어부 아저씨가 바퀴를 굴리며 어망을 당기고 있었다.

 

"아저씨 어두운데서 뭘 하고 계세요."

 

 

뭘 하고 있는지 보면 모르냐는 눈길을 한번 주고는 어망을 당기며 "출항 준비를 하고 있지요"라는 말을 건넨다. 무거운 목소리에 이야기조차 귀찮다는 자세다.

 

내가 말을 건네는 게 일하는 분에게 도움되지 않을 거라 생각해, 할 말을 잊고 멍하니 구경만 하고 서 있었다. 그런데 어부 아저씨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피서 오신분이세요?"

"아닙니다. 저는 신문에 글을 쓰는 사람인데 저렇게 피서를 즐기고 있는데 아저씨는 일을 하고 계시니까. 몇 말씀 질문을 해 볼까 해서요."

"뭘 알고 싶은지 물어 보세요."

 

- 남들이 여행 가고 놀러가는 휴가철에 일하시는 것이 힘들진 않으세요? 휴가오는 사람이 부럽거나 밉거나...

"모두가 제각기 흔들며 사는 게 이 세상 사람들인데, 뭐 원망할 것까지는 없지요. 있는 사람들은 있는 대로, 없는 사람 없는 대로 다 제 멋에 사는 것 아니오. 제 살기도 바쁜데 언제 남을 욕하고 살 여가가 있겠습니까. 남을 부러워하고 남을 질타하며 사는 것은 오히려 사치가 아닐까요."

 

- 남들이 바캉스를 가고 여행을 하는데 이 더위 속에서도 일을 하셔야 됩니까. 좀 쉬어야 할 연세도 되신 것 같은데요.

"하루 벌어서 하루를 사는 사람들이 비바람 분다고, 덥다고 일 하지 않으면 됩니까. 쉬면 쉬는 만큼 밥을 먹지 않아야 되니 이 짓을 하는 것 아닙니까. 있는 사람들이야 좋은 승용차 타고 여행 가고 좋은 음식 즐기며 푹 쉬며 피서 할 수 있겠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어디 그런 것 꿈인들 꿀 수 있겠어요."

 

 

- 그러면 아저씨 꿈은 뭔데요.

"우리 같은 사람이야 꿈같은 것 생각할 여유가 있겠소마는 그저 바다에 나가서 고기를 많이 잡아서 만선을 하는 것이 꿈이지요(쳐다 보지도 않고 일을 하면서 혼자 말처럼). 하늘은 복을 한 사람에게만 모두 주지 않아요. 있는 사람들도 있는 대로 걱정이 있는 기라요. 우리는 만선의 꿈을 가지고 바다에 나가서 죽을 힘 다해 비바람과 파도와 싸우면서 살지만 그 만선의 꿈을 이루어 돌아 왔을 때는 행복 한 거라요."

 

- 배를 타신 지 몇 년이나 되셨나요.

"내 나이 육십 여덟이니 그럭저럭 한 오십 년 되네요. 그 세월 동안 자식 세 놈 대학 졸업시켜서 좋은 직장 얻게 하고 장가보낸 것이 모두지만 한 편 보람이라 할 수 있지요. 그렇다 보니 내 손에 남은 것이 없어 오늘도 바다에 나가야 하는 거요. 그래도 살아 있다는 것이 행복하고 늘 용왕님께 감사드려요."

 

- (농담으로) 날마다 남들이 쉽게 가보지 못하는 시원한 바다로 여행 많이 하셨네요.

"에이 여보시오. 그게 여행입니까. 먹고 살기 위해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괴기잡으로 가는 게지요. 밤바다에 한번 가보소. 당신네들은 한 시간도 못 견디고 넘어질 게요. 비바람 불고 파도치면 배는 흔들거리지요. 파도는 갑판을 덮어 씌우지요. 사람은 온몸이 젖지요. 정말 목숨 걸고 작업하는 겁니다."

 

- 그렇게 고생 하더라도 요즈음 고깃값이 좋지 않습니까.

"이 양반 아까부터 모르는 소리만 하시네. 요새 기름 값이 얼마나 되는 줄을 모르시나봐. 고기 값이 좋으면 뭐 합니까. 고기 잡아 육지에 돌아오면 말 그대로 헐값으로 상인들은 가져갑니다.

 

이것이 손에서 손을 넘으니까 소매 값이 비싼 것이지 처음 넘길 때는 얼마 받지 못해요.(씩 웃으면서) 사실 중간 상인들이 잡아 오는 우리들보다 더 수입이 많다는 것, 아닙니까. 알았능기요. 그래서 전에는 마누라와 같이 바다에 나갔지만 이제 나 혼자 바다에 나갑니다."

 

- 왜 그럽니까.

"한 푼이라도 더 건지려고 나 혼자 바다에 나가서 고기를 잡아 오면 마누라는 고기들을 머리에 이고 경매장으로 바로 가기도 하고, 적게 잡아 오면 노점에서 소매로 팔러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 과거보다 어획고는 어떤가요.

"기후 변화와 바다오염 탓으로 많이 줄었어요. 우리 인간들이 바다 오염 공기 오염을 시키는 관계로 바다가 오염되니 고기들이 멀리 가버리거나 아주 죽고 말지요. 바다고 육지고 우리 인간 정신머리부터 뜯어 고쳐야 된다고요.

 

아무 데나 쓰레기 버리고 폐유를 쏟아 붓지요. 비닐이고 뭐고 태울 수 있으면 아무 데나 불 지르지요. 공장에서는 정화 되지 않는 연기를 펑펑 내뿜고, 화학약품 폐기물도 쏟아 버리지요. 정말 바다가 살 수 없을 것 같아요. 요사이 바다에 나가면 기름띠와 쓰레기가 천지입니다. 이러니 바다가 오염 되고 기후가 상승하여 어종들도 수온 따라 이동해 버리니 문제입니다.

 

그리고 고기 잡는 우리들도 문제입니다. 그물코를 조물게하여 치어고 뭐고 고기라고 눈 붙은 놈이면 모조리 싹쓸이 해 씨를 말려 버리니까 자연 어획량이 줄지요. 뿐만 아니라 대게를 잡아서 산다는 사람들도 앞날을 보지 않고 현실에만 집착하니 빵게(암게)조차 몰래 잡아 버리는 세상 아닙니까. 알만하시겠지요."

 

- 어종들은 많습니까.

"아니요. 사실은 기후 변화로 과거에 동해 바다에 쉽게 잡히던 귀한 어종들이 북상한데서 수지를 맞추기가 참 어렵습니다. 기껏해야 잡어들이고 오징어 철에 오징어를 좀 잡지요. 그래서 자연히 고기를 따라 더 먼 바다로 나가야 하니 기름이 많이 들어 수지 타산이 잘 맞지 않지요."

 

- 고기를 잡으러 바다에 나가 계시는 시간은 얼마나 됩니까.

"몇 시간이라 말 할 수 없어요. 잘 잡히는 날이면 다섯 시간쯤 작업 하지만 어떨 때는 하루 종일 걸립니다. 이날은 공치는 날입니다. 기름이 많이 들어서 적자가 난 날입니다."

 

- 어구들도 좋아지고 배도 기계화가 되고 했는데 옛날보다 작업이 쉬워졌겠네요.

"쉬워진 것은 맞습니다. 그리고 욕도 할 필요가 없어졌고요."

 

- 그러면 옛날에는 욕을 많이 한 까닭이 있습니까.

"있지요. 바다에서 작업을 할 때에 여간 힘 드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은 반자동화 되어 있지만 옛날에는 그물을 손으로 당겨야 하고 낚싯줄을 당길 때 서로가 힘드니까 욕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지요.

 

거기서부터 육지에 와서 어판 장에서 판매 하려면 또 장사꾼들과 싸워야하니 상호간 욕을 하게 되고 이러한 습관이 가정에서도 이루어져 욕을 욕으로 생각하지 않고 일상 용어인양 사용 하였지요.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포항 사람 치고 욕 못하는 사람 없었습니다. 지금은 언어 순화가 되어 달라진 도시가 되었습니다만 옛날엔 욕 못하면 포항사람이 아니다 할 정도 였지요."

 

* 이야기를 하면서도 얼굴 한번 처다 보지 않고 그물코를 고르는 주름 많은 검을 얼굴의 박달봉 아저씨의 모습에서 어느 누구보다 소박하면서도 의지있는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담배 한 대 권하는 내게 자신은 아무런 선물 할 것이 없다며 잡는 그 갈라 터진 손은 나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태그:#김수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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