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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고용노동부장관 고시를 통해 내년도 최저임금이 4320원으로 확정됐다.
 지난 3일 고용노동부장관 고시를 통해 내년도 최저임금이 4320원으로 확정됐다.

미 대통령이 되기 전 오바마는 연방 상원의원에 출마하기 위해 '민심기행'에 나섰다. 보통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그는 만나는 사람이 '두세 명이든 50명이든', 찾아간 곳이 '으리으리한 집이든 엘리베이터가 없는 아파트든, 외곽의 농가든' 상관하지 않고 몇 달 동안 전국을 돌아다녔다. 오바마에게 사람들은 어떤 얘기를 했으며, 그들이 바라는 '꿈'은 무엇이었을까?

보통 사람들의 꿈, 생계를 꾸려갈 만한 급여를 지급하는 일자리

오바마를 대통령으로 만든 책으로 꼽히는 <담대한 희망> 머리말에는 시민들의 '꿈'이 적혀있다.

"나는 보통사람들이 과하지 않은 온당한 소망을 품고 있으며 인종이나 종교, 계급에 관계없이 이들의 판단 가운데 상당 부분이 옳다는 점을 새삼 깨달았다. 이들 대부분은 일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계를 꾸려갈 만한 급여를 지급하는 그런 일자리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중략) 그런 정도였다. 많은 것을 바라지도 않았다."

그렇다. 사람들은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대신 바라는 것은 하나다. 일하고 싶을 때 일할 수 있고, 일한 대가로 최소한의 생계를 꾸려갈 만한 급여를 원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최저임금, '너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

최저임금제는 법으로 임금의 최저 수준을 정해 저임금 노동자의 최소한의 생활안정과 기초생계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다. 보통사람들의 '꿈'에 대한 제도 보장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보통사람들의 '꿈'의 현실화는 너무도 늦다. 최저임금과 관련된 오해 때문이다.

최저임금에 대한 첫번째 오해는 최저임금은 단순히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 문제라는 것이다. 일용직이나 아르바이트 등 극히 소수에게 적용되는 문제라고들 느낀다. 과연 그럴까?

올해 최저임금은 노동자 6명 중 1명에게 직결된 문제다. 최저임금이 시간당 4110원인 올해의 경우 전체 1610만 3000명의 노동자 중 약 256만 6000명(15.9%)이 최저임금의 적용대상이다. 나와는 무관한 정책이 아니다. 언제든 '너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 '내 가족의 문제'가 될 수 있다.

또 하나의 오해는 최저임금은 단순히 임금의 문제일 뿐이라는 것이다. 설령 6명 중 1명의 문제라 해도 임금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므로, 크게 개의치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저임금의 영향범위는 대단히 넓다.

최저임금은 임금만이 아니라 사회보장제도의 하한선을 정하는 의미로서도 작용한다. 최저임금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최저임금액을 기준으로 활용하는 법률은 무려 14개다. 최저임금에 대한 그간의 오해를 없애기 위해 일일이 나열한다.

고용보험법,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국군포로의 송환 및 대우 등에 관한 법률,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체결 이후 납북피해자의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 북한 이탈 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 사회보장기본법, 산업재해 보상보험법,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전염병 예방법, 특수임무 수행자 보상에 관한 법률, 특정 범죄 신고자 등 보호법, 형사보상법이 바로 그것이다.

군복 입은 보수단체도 '최저임금 인상' 외쳐야

셋째 최저임금은 '진보'만의 어젠다가 아니다. 위에서 길게 언급했듯이 최저임금은 무려 14개 법률에서의 기준점이다. 법률명에서도 바로 알 수 있듯이 최저임금은 흔히 '보수'로 지칭되는 계층들의 이해관계와도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좀 더 쉽게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최저임금은 국군포로 가족에 대한 지원금에 대한 보상금의 지급기준이다. 정전협정체결 이후 납북피해자의 보상금의 지급기준이다. 북한이탈주민 정착금의 기준임은 물론 특수임무수행자의 공로금이나 특별공로금의 지급기준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최저임금 논의는 일견 '노동자'의 어젠다이자, '진보'의 어젠다로만 치부된다. 최저임금 인상률 논의에 있어 국군포로 가족, 납북피해자 가족, 북한이탈주민, 특수임무수행자가 나서는 경우는 없다. 모르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이 단순히 '임금'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진실을 안다면, 군복을 입은 역전의 용사들이 거리에서 '최저임금 인상하라'고 소리 높여 외쳐댈 것이다.

넷째, 최저임금 인상으로 실업이 양산된다는 주장 역시 허구다. 2008년 세계적 경제위기의 근원지인 미국에서는 최저임금이 3년간 46.2%(2008년 6.55달러, 2011년 9.5달러)나 인상된다. 반면 경제위기 극복의 우수사례로 꼽히는 우리나라의 최저임금은 3년간 14.6%(2008년 3770년, 2011년 4320원) 오르는 데 그쳤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유럽연합(EU), 브라질 등 외국에선 경제위기를 맞아 민간소비와 투자활성화를 위한 최저임금 인상정책을 쓰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이 가계소득 증가로 이어지고, 이는 곧 내수 확대와 경기 선순환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보통사람들의 꿈이 실현되는 미국, 좌절되는 한국

5180원으로 최저임금을 인상해야 한다는 피켓을 들고 집회를 벌이고 있는 민주노총 경남본부
 5180원으로 최저임금을 인상해야 한다는 피켓을 들고 집회를 벌이고 있는 민주노총 경남본부
ⓒ 이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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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들의 '꿈'은 곧 오바마의 '꿈'이 됐다. 지난 10년 동안 제자리였던 최저임금이 지난 2007년부터 매년 오르기 시작했고, 오바마 대통령의 등장과 함께 '최저임금 대폭 인상'이 주요 경제공약으로 자리 잡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의 대선 공약에서 2011년까지 최저임금을 2008년 6.55달러에서 시간당 9.5달러 수준으로 인상하겠다고 약속했으며, 그 약속은 2007년 5.85달러에서 2008년 6.55달러, 2009년 7.25달러로 하나씩 현실화되고 있다.

우리나라로 돌아와보자. 내년도 최저임금은 올해보다 210원(5.1%) 인상된 4천320원이다. 전체 1,647만 9천명의 노동자 중 233만 6천명(14.2%)이 최저임금의 적용대상이다. 주40시간 사업장은 월 90만2천880원, 주44시간 사업장은 월 97만6천320원이다. 보건복지부가 산정한 2010년 최저생계비(3인 가구)인 111만원에도 20만 7120원이나 부족하다.

권력자의 의지는 곧 정책이요, 정책은 현실 변화를 이끈다. 양극화 해소의 한 방편으로 '대기업-중소기업 상생'을 외쳐대는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발언이 연일 보도된다. 정부와 여당의 강경발언으로 대기업들은 정부의 눈치를 살피며 금리를 내리고 서둘러 투자계획을 발표한다.

양극화의 대표적 원인으로 꼽히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급여 차별은 최저임금 인상을 통해 구현될 수 있다. 하지만 최저임금 발표를 앞둔 지금은 물론 지난 2년간 최저임금에 대한 '권력자의 의견표명'은 찾아볼 수 없다. 이미 예상된 일이다. 알다시피 지난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자의 공약집 235페이지 중 그 어디에도 '최저임금'과 관련한 공약은 없다.

최저임금 100만원 시대, '따뜻한 진보'의 시작!

내년도 4320원의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는 7명 중 1명 꼴이다. 올해에 비해 적용대상이 적어졌다. '나의 문제'에서 한 걸음 멀어졌다며 안도해야 하나?

그렇지 않다. 최저임금 영향률이 14%로 떨어진 것은 '최저임금 노동자'보다 나은 근로조건 하에 있는 노동자들의 임금인상률이 더욱 높다는 의미에 불과하다.

최저임금 논의는 '88만원 세대'로 직결된다. 심하게 말하자면, 233만여명의 노동자를 제도적으로 사실상 '88만원 세대'로 만드는 시스템이 내년도 최저임금이라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최저임금 100만원 시대, 과연 이룰 수 없는 꿈인가? 그렇지 않다.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꿈, 일자리를 찾고 그 일을 통해 최소한의 생활을 이뤄가고 싶다는 그 소박한 희망을 현실화하는 것은 정치의 제1과제다. 말로만 소외계층 배려를 외치고, 다양한 색깔의 진보 담론을 주창만 할 것인가? 도리어 사람들이 다시금 희망의 꿈을 싹틔울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것, 그것이 진짜 진보의 시작이며 '따뜻한 진보'다. 최저임금 100만원 시대, 내가 꿈꾸는 '따뜻한 진보'의 시작이다.


태그:#최저임금, #따뜻한 진보, #박주선, #오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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