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사는 동네로 정착하게 된 것은 그 분 때문이었다. 부부와 아들이 농장을 운영하고 잘 가꾸어진 황토방들과 한옥집을 민박으로 운영하며 여유를 누리고 있는 모습이 내가 그리던 삶과 닮아 있기 때문이었다. 그 집에 놀러 가면 이것저것 동네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얼마 전에는 나에게 우리 동네에 학교를 다니지 않는 한 아이에 대해 의견을 물었다. 나는 충분히 그런 선택을 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답했다. 지금의 경쟁만을 강조하는 교육현실에 대해 대안을 펼치는 것이 중학생 또래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길이라고 여긴다고 했다. 내 이야기를 다 듣고 난 그 분은 그래도 그건 아니라며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다른 것들과 무엇보다도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한다는 점을 들며 비판했다.
학교를 그만둔 아이
그 아이는 우리 둘뿐 아니라 학부형들 전체의 입방아에 올라 있을 것이다. 학생수가 얼마 되지 않는 시골학교에서 자퇴를 하는 일도 충격이지만 자발적으로 결심하는 일은 흔치 않을뿐더러 스스로 '소외'를 택하는 매우 특이한 경우다. 당연히 또래의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논쟁하는 일도 생기지만 선생과 부모들은 '그런 아이를 닮으면 안돼'라고 단도리 하는 일로 동요를 막는다.
왜 평화로운 시골마을의 중학생이 학교를 자발적으로 그만두었을까. 무엇보다도 그 아이의 부모의 영향력이 컸을 것이다. 점수로 줄 세우고 경쟁을 최고의 선으로 여기는 지금 제도권 교육방식에 회의적인 그 아이의 부모는 그 아이가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대안'에 대한 이야기와 제도권교육에서 탈출할 것을 설득했다. 결국 중학교는 다니겠다던 아이가 중학교 입학 1년 만에 학교를 그만둘 것을 결심했다.
그 아이는 며칠 전에 인도로 떠났다. 지금쯤 또래 아이들과 인도의 곳곳을 몸으로 겪고 있을 것이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여행단에 기획서를 내서 선정되었다고 한다. 한 달 전엔 사대강 순례를 했다. 청소년들의 모임 '강강수월래단'은 개발을 통한 사대강의 변화를 몸으로 느끼고자 두발로 강을 걷고 그곳에서 숙박을 하기도 한다. 그곳에서 친구를 만나 매달 집을 오가며 우정을 나눈다.
매 분기별로 있는 캠프에서는 다양한 배움의 장이 펼쳐진다. 교과서뿐 아니라 생활과 자연을 통해서 몸소 움직이고 만들고 토론하는 방식이다. 당연히 지금 학교에서 하는 우리가 아는 교육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가 아는 교육의 결론은 이미 나있다. 승리자의 명단만 나와 있지 않을 뿐 싸워서 소수만 손을 들고 환호한다. 누군가는, 그것도 대다수는 틀림없이 패자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의 경쟁은 꼭대기의 아이들에게는 죄책감을 나머지 아이들에게는 열패감을 안기게 되어 있다.
결국 서로 적으로 여기고 믿지 못하고 경계하는 학교생활이 얼마나 즐거울 수 있겠는가. 그런 관계에서 진정한 우정을 쌓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쩌면 지금 교육시스템이 요구하는 학생의 책무를 다하지 않는 일부 아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우리 교육, 다시 생각하기교육이란 무엇인가. 어떤 일이 본래적 진리로부터 멀어졌을 때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서 우리는 그것이 본래 무엇인가를 물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먼저 교육의 개념을 명확히 규명해야 한다. 하지만 교육이란 우리 앞에 감성적으로 주어진 사물적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오직 생각 속에서만 표상할 수 있는 활동의 총체이다. 그런 까닭에 엄밀하게 말하자면 교육이 무엇인가의 규정은 교육의 개념이라기보다 이념이라 부르는 것이 옳다. - '내부로부터 망명 또는 낙오자 되기'중
교육의 정의부터 다시 세워야 할 때다. 우리사회가 길러내고자 하는 인재는 어떠해야 하는가. 경쟁에서 누군가를 누르고 승리하여 만족할 만한 학벌을 따내었을 때 사회의 리더가 될 수 있다는 진리를 좇는 아이들. 희망을 품은 수백만이 문제집과 과외 학원스케줄에 쫓겨 그 나이에 당연히 누려야 할 행복을 포기한다. '조금만 참으면 돼. 12년 후엔 네가 원하는 세상이 펼쳐질 거야'라는 속삭임에 정작 민주주의 시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주요덕목인 자유가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한다.
창의력과 개성을 찾아볼 수 없는 교육현실을 인정해야한다.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과감히 탈출해야 한다. '내부로부터 망명 또는 낙오자 되기'의 김상봉 교수는 지금 정부나 교육당국에 기대할 수 없는 최후의 순간이라고 말한다. 결국 스스로가 학생이든 학부모이든 결정해 학교로부터 떨어져야 희망이 생긴다고 보고 있다. 내부에 있는 자는 그곳의 허물을 볼 수 없다. 밖에서 보는 관점이 필요한 때다.
텔레비전에서나 보는 핀란드교육을 아무리 외쳐봤자 소용없다. 다른 학교가 어떤 것인지 그곳에서 생활하는 학생이 어떤 생각을 하고 여가를 누리고 자아를 개발하는지 시험준비하는 학생은 관심도 없고 알 여유도 없다는 이야기다. 너무 익숙해져 으레 그럴 것이라고 여기고 포기한 상태로 자신을 몰아가는 것이 지금 죽어있는 제도권교육에 속한 아이와 학부모들이다.
주체와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아이들. 자본에 의해 휘둘리고 결국 자본이 계급을 낳는(학원, 과외, 유학, 연수 등은 모두 돈이 있어야 가능하다) 오늘의 구조는 있는 자만이 승리하는 승자독식구조다. 창의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5지선다 문제에서 누가 더 많이 주어진 답을 선택할 수 있느냐가 자신의 인생을 결정한다. 점수는 곧 돈이 되고 돈이 곧 점수가 된다. 시험은 교육을 통해 성장하는 인간을 기르는 수단이 아니라 바로 인생의 목적이 되었다.
'내부로의 망명 또는 낙오자 되기'는 학교, 기업, 학생 모두가 지금 바꾸어야 할 때라고 외친다. 국립대학부터라도 같이 학생을 뽑아 추첨배정하며 교수는 서울지방 가리지 않고 때가 되면 순환근무하며 기업에서 입사자를 뽑을 때에도 입사원서에 학력 란을 없애야한다고 말한다. 가산점제도 없애고 지역안배를 하는 기업에 혜택을 주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껍데기를 위한 희생오늘의 학교교육을 통해서 사회로 진출하는 성인이 얻게 되는 것은 '생산능력'이 아니라 증표인 '졸업장' 뿐이다. 졸업장을 위해 모든 중요한 가치를 희생해야 한다. 등급에 들지 못하는 졸업장밖에 바라볼 수 없는 대다수의 젊은이들은 인생을 포기하는 일도 생긴다. 청소년 사망 원인 중에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자살. 자살 원인 중에 대부분은 지금 경쟁에서 앞서나가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비관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비관과 죽음으로 내모는 교육제도는 당연히 개선되어야 한다.
학교를 벗어나면 갈 곳이 있나. 지금 현실에서라면 대안교육을 담당하는 대안학교들도 '있는 집'이라야 가능하다. 정부의 지원을 한 푼도 받지 못하는 '비인가'학교들은 대부분 운영비를 학부모로부터 조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학교를 그만둔 아이들의 일부만이 대안학교에 몸담거나 홈스쿨러(집에서 스스로 공부하는 학생)이고 대부분은 거리를 떠돌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폭주를 하거나 주유소 알바가 되거나 폭력조직에 몸을 담거나 하게 된다.
이러한 아이들을 받아줄 곳이 필요하다. 대안학교를 정부에서 지원하고 청소년쉼터, 수련관, 문화센터를 늘리는 일도 병행하면 범죄로 잘못 이르는 대부분의 아이들을 구할 수 있고 그것이 사회의 장래로도 훨씬 유익한 일이 될 것이다.
'대안'이 '낙오'나 좋지 않은 의미의 '아웃사이더' 취급받는 지금의 현실에서 정말 국가와 사회의 미래를 위해서 어떤 선택과 정책이 더 나은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졸업장이 상표와 다름없는 시장화된 교육 현실을 돌아보아야한다. 절망의 교육에서 탈출하여 희망을 찾는 일을 우리 스스로가 해낼 수 있으려면 지금이 바로 행동해야 할 때다.
덧붙이는 글 | ‘학교’를 버리고 시장을 떠나라/ 학벌없는사회 지음/ 메이데이/ 13,000\
학벌없는 사회 시리즈 첫 권
글쓴이:김상봉, 채효정, 홍훈, 이청호, 정세근, 하승우, 김재홍, 이병호
- 과격하게 들릴지 모르는 ‘학교버리기’를 종용하는 글들과 시장만능주의를 교육과 연계하는 제도를 비판하고 엘리트체육의 빛과 그늘에 대해도 지적하는 글들이 실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