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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다. 더워도 너무 덥다. 더운데 습도까지 높아 더욱 더 힘들다. 여름이니, 더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 줄은 잘 알지만, 견디기가 어렵다. 여름은 더워야 제 맛인 줄은 알지만 너무 더우니, 짜증이 난다. 마음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되면, 더위를 비켜갈 수 있을 터인데, 그것이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관점을 달리하려고 애를 써도 더위가 턱밑에서 웃고 있으니, 피할 수가 없다. 더위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절박감이 더욱 더 덥게 한다. 악순환이다. 더위가 없는 나라로 가고 싶다.

 

더위 속에서도 시간은 간다. 초복 중복 말복이 지나갔다. 처서를 바라보게 되었으니, 더위도 얼마 가지 않아 힘을 쓰지 못할 것이란 생각은 든다. 그러나 당장 더위를 이겨낼 수 없다. 다른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무뎌지는 것이 상례다. 처음에는 견디기 힘들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면역력이 키워지면 나중에는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더위만큼은 다르다. 열대야가 계속되고 있어 면역력이 생길 법도 한데, 그렇지 않다. 면역력이 커지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견디기가 힘들어진다.

 

피하고 싶다. 더위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러나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물가에 가도 잠깐이고 그늘에 들어가도 마찬가지다. 더위에서 벗어나는 일이 쉽지가 않다. 피한다고 하여 피할 수가 없다. 더위를 피하기 위하여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하였다. 그러나 모두가 마찬가지다. 돌아서면 더위가 웃고 있으니, 난감하다. 도망을 친다고 하여 될 일이 아니다. 아니 도망치면 칠수록 더욱 더 불쾌감이 상승하다. 도망쳐서 피할 수 없다면 방법은 하나다. 정면으로 맞서는 일이다.

 

이열치열. 피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당당하게 맞서는 것이 현명하다. 소극적인 자세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덥다고 그늘만 찾아다닐 것이 아니라 더욱 더 활동적이 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운동을 통하여 땀을 마음껏 흘리게 되면 더위가 발 붙일 곳이 없다. 땀을 뻘뻘 흘리고 있으면 해결할 수 있다. 더위도 땀 앞에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두려움을 버리고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더위를 피하는 좋은 방법이다. 대신 땀 흘리고 난 뒤에 마무리를 잘 해야 한다. 영양 보충을 잘해야 부작용이 없다.

 

장길힌 빈친 정성이 들어간
장길힌 빈친정성이 들어간 ⓒ 정기상

 

더위를 이길 수 있는 보양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이 삼계탕이다. 닭에 인삼과 갖은 약재를 넣어서 만든 삼계탕은 보양식으로 가장 좋다. 그런데 보통의 삼계탕은 실망시키는 경우가 많다. 닭이 부실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탕에 들어간 약재들이 너무 허술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마음먹고 찾은 식당에서 부실한 삼계탕을 마주하게 되면 가지게 되는 허탈감은 크다. 집에서 정성들여 끓인 삼계탕이 최고이기는 하지만, 번거로워서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동계(전북 순창군 동계면)의 식당이 생각났다. 오래 전에 우연히 알게 된 식당이다. 후덕한 주인아주머니의 따뜻한 웃음이 마음에 남아 있다. 거짓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분이었다. 있는 그대로 진심으로 대해주어서 인상이 깊었다. 거리가 있어서 자주 찾아가지는 못하지만, 가끔 일부러 찾아가곤 하는 곳이다. 갈 때마다 실망하지 않는다. 충실한 식재료에 감동한다. 그 아주머니가 만드는 삼계탕이라면 더위를 극복할 수 있게 해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집사람과 함께 집을 나섰다. 거리상 멀었지만 믿음이 있어 문제될 것은 없었다. 왜 진즉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였는지 모르겠다. 더위에 시달리다 보니, 미처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달리는 차창으로 다가오는 풍광들조차 시원하게 보인다. 초록의 벼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들녘의 모습이 정겹다. 작열하는 열기가 헛된 것은 아님을 본다. 여름의 열기를 모아서 풍성한 가을을 만들어가고 있음을 본다. 더위가 마냥 미워할 수 없다는 진리에 도달한다.

 

한가하다. 동계 장날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많지 않다. 후덕한 주인아주머니가 반갑게 맞이해준다. 세월을 영원히 빗겨갈 것처럼 보였던 아주머니의 얼굴에도 세월이 진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아름다운 미소는 변하지 않았지만 세월의 훈장을 달고 있는 얼굴은 왠지 모를 서글픔을 느끼게 된다. 더위가 사람을 심각하게 고통의 나락으로 추락시키지만, 세월보다는 훨씬 더 심술이 적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더위는 가을을 영글게 하지만, 지나간 세월은 돌이킬 수가 없지 않은가?

 

삼계탕 녹두 넣어 만든
삼계탕녹두 넣어 만든 ⓒ 정기상

 

삼계탕. 녹두를 넣고 끓였다. 인삼을 물론이고 녹각과 황기 그리고 대추와 은행 등 다양한 재료를 넣고 삶은 삼계탕이었다. 우선 향부터 달랐다. 아주머니의 정성이 들어갔다는 것을 한 눈에 들어왔다. 무엇보다도 식욕을 자극하는 것은 연둣빛의 녹두였다. 일반 식당에서는 보기 힘든 녹두다. 그러니 더욱 더 먹음직스럽다. 참지 못하고 맛을 보았다. 환상적이다. 그래 바로 이 맛이다. 더위를 몰아낼 수 있는 그 맛이었다. 음미하면 할수록 더욱 더 진하다. 삼계탕의 맛에 푹 젖었다.

 

더위 사냥

 

더위야, 물렀거라.

귀한 몸 나가신다.

 

인삼에 황기에다

은행에 대추 넣은

 

삼계탕 여름의 별미

두려울 것 없어라.

 

시간 가는 것을 잊고 먹었다. 마음이 참 편안하다. 느긋해진 마음으로 나를 본다. 좋다. 더위에 밀려 갈 때에는 시간에 얽매여 있었다. 시간에 밀려서 살아가게 되면 그 자체만으로 무거운 짐이 된다. 시간에 쫓기면서 살아가고 있었기에 더위를 더 견디지 못하였다. 땀 흘리면서 삼계탕을 먹으면서 많은 것을 배운다. 더위는 피한다고 하여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더위를 도망친다고 하여 도망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더위에 맞서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삼계탕을 먹으니, 더위를 이길 수 있었다. 더위가 사랑스럽다.


#삼계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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