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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시장을 자하철에서 면담한 후, 서울시청 정문에 서서 성미산을 지켜내자는 마음을 다지며 대원주민들이 한 컷!
 이명박시장을 자하철에서 면담한 후, 서울시청 정문에 서서 성미산을 지켜내자는 마음을 다지며 대원주민들이 한 컷!
ⓒ 유창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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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7 공청회에서 주민들이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상수도사업본부와 구청이 당초의 약속과는 달리 일방적으로 전화 여론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는 것이 주민의 제보로 확인된 것이다. 공청회에서 아무런 설득력 있는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고 오히려 추가적인 배수지 건설이 필요 없다는 반대 측 입장이 근거 있게 제시되자 서울시와 마포구청은 일방적으로 주민 여론 조사를 해서 강행할 명분을 찾으려 했다.

우리는 당장 구청장 면담을 요구했다. 하지만 구청장 면담 요청일, 주민 20여명과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를 맞이한 것은 1개 중대 분량의 전투 경찰이었다. 경찰 병력은 정문부터 1층 바닥,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까지 막아섰다. 우리들은 구청장 면담을 계속 요청했으나 행정관리국장이라는 사람이 나와 구청장이 부재중이라며 오후 4시에 다시 오라고 했다.

우리는 청장실에서 기다리겠다고 버텼으나 경찰들이 막아서는 바람에 오후 4시 면담을 확인받고 나왔다. 4시에 맞추어 김종호, 권규대, 구교선, 김성섭, 환경련의 김영란, 나 이렇게 6명이 대책위를 대표해서 구청장을 만나러 갔다.

그런데 우리는 청장을 만나기 전에 24~25일 이틀에 걸쳐 시행한 여론 조사 결과를 미리 확인했어야 했다. 여론 조사 결과가 어떠냐에 따라 구청장이 우리를 만나 할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 뻔한지라 우리도 청장을 만나기 전 청장의 패를 미리 읽고 있어야 이야기 풀기가 수월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마침 주민 중에 여론 조사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 있어 곧 집계가 완료될 것이고 집계되는 대로 즉시 결과를 보내주기로 돼있다고 해 4시가 되기 전 부터 결과가 나오기를 청사 로비 앞에서 초초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하지만 약속 시간이 다 됐는데도 아무 연락이 없었다. 일단 일부가 먼저 면담실로 들어가기로 했다. 다행히 얼마 안 돼 문자가 아왔다.

'생태숲 유지 찬성 93%'

휴~! 구청장, 너 이제 죽었다! 우리는 당당하게 바로 면담실로 향했다. 먼저 도착한 일행이 일제히 내 눈치를 살폈다. 난 씩~ 하고 활짝 웃었다. 모두들 엷게 웃으며 안도의 숨을 함께 내쉬었다. 우리는 시치미 뚝 떼고 먼저 일방적인 여론조사 실시는 약속을 어기는 비신사적인 처사임을 따졌다. 청장은 할 말이 없었고 배석한 행정관리국장이라는 사람은 재협의 시한을 정하지 않은 탓이라며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이날 구청장이 여론 조사 결과를 보고 받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아마 몰랐을 것이라 짐작된다) 우리는 결과를 미리 알고 만났기에 퇴로가 없는 청장을 심하게 몰지는 않았다. 오히려 가급적 스스로 성미산을 살리는 쪽으로 다가설 기회를 주고 싶었다. 그래야 이후에도 원만하게 성미산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될 테니까 말이다.

면담 결과 구청장, 대책위, 상수도사업본부가 함께 공청회 내용을 중심으로 전문가 검토 기구 틀을 만들기 위한 준비 모임을 갖기로 했다. 시간과 장소는 구청장이 정해 연락하기로 했다. 우리는 이렇게 긴 투쟁의 여정의 끝을 향해 또 한 발짝 디뎠다. 물론, 그 끝의 향방 역시 더더욱 또렷해졌다.

결국 구청장이 약속한 검토 기구 마련을 위한 준비 모임은 흐지부지됐다. 하지만 반가운 소식도 있었다. 6월 11일 문화재청이 상수도사업본부에 '지표 조사 뒤 사업을 착수하라'는 행정 명령을 내린 것이다. 상수도사업본부는 안 그래도 갈 길이 멀고 바쁜데 설상가상이었다. 그렇다고 우리는 고삐를 늦출 수 없었다. 마냥 상수도사업본부를 기다릴 수도 없었다.

6월17일, 서울시청에사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장의 약속이행과 공사중단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6월17일, 서울시청에사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장의 약속이행과 공사중단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 유창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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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시 시청으로 향했다. 그리고 6월 17일 '성미산 배수지 철회를 위한 서울시청 앞 기자회견'을 열었다. 심재옥 서울시의회 의원은 "주민 스스로 배수지 정책의 잘못을 알려 왔고, 공사 중지 가처분 신청을 제출한 배수지 건설에 대해, 공사 중단 입장을 공식화하기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김종호 대책위원장도 "지역 주민들이 5개월 째 천막 농성을 이어가며 성미산을 생태공원으로 조성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명박 서울시장은 지역 주민 의견을 수렴 반영하겠다는 약속을 조속히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7월 29일, 성미산 배수지 건설 사업이 '함께하는 시민행동'에서 수여하는'밑 빠진 독상'을 수상하였다. 정부 예산 감시 전문 시민단체로부터 불필요한 사업에 서울시 예산을 낭비하는 사업으로 낙인이 찍히는 순간이었다.

공무원들에게 예산 낭비는 결정타인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쓸데없는 데에 시민의 혈세를 쓴 것이 되니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고 심지어는 감사 대상이 되어 책임을 져야 할 테니 말이다. 결국 2003년 10월 16일, 상수도사업본부는 시의회에서 공식적으로 스스로 사업을 철회한다고 밝히고 드디어 백기를 들었다.

"현재 진행 중인 성산 배수지 건설공사를 일단 유보하겠다. 이는 인근 지역의 배수지로도 수돗물 공급에 지장이 없어 장래 급수 수요가 예측되는 상암 택지 개발 및 디지털 미디어센터 개발 사업의 개발 추이에 따라 최종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기술 자문 회의의 의견 제시에 따른 결정이다."

인근 지역의 배수지로도 수돗물 공급에 지장이 없어… 이 간단한 문장을 그들의 입으로 얻어 내는 데 2년여의 희생이 필요했던가? 속 깊은 곳에서부터 화가 치밀어 오른다. 2년간 쌓인 피로와 고통이 한꺼번에 솟구칠 것 같았다. 허탈하기조차 했다.

서울시 의회에서 성산배수지 건설을 철회하는 선언이 있고나서, 성미산지킴이들은 모두 성미산에 올라 축하잔치를 벌였다.
 서울시 의회에서 성산배수지 건설을 철회하는 선언이 있고나서, 성미산지킴이들은 모두 성미산에 올라 축하잔치를 벌였다.
ⓒ 유창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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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산이 노래이기 때문이다

11월 8일 토요일 오후 3시, 성미산 비둘기산에서 '성미산 배수지 공사 중단' 기념 마을 잔치가 열렸다. 감개무량이라는 말로도 부족했다. 사람들이 모처럼 홀가분하게 기분 좋게 산에 모여들었다. 애들도 어른도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다들 올라왔다.

이날 잔치도 내가 사회를 보았다. 풍물패가 판을 열었다. 나는 2년전 이 자리에서 성미산에게 했던 약속이 떠올랐다. 주민들에게 2001년 가을 숲속 음악회 때 성미산과 한 약속을 기억하는지 물었다. 모두 기억한다고 했다.

"그럼 우리 같이 외쳐볼까요?"

성미산아, 걱정마! 
성미산아, 우리가 지켜줄게!
성미산 사랑해!

성미산아, 걱정마! 
성미산아, 우리가 지켜줄게!
성미산 사랑해!

모두 눈시울이 펑, 젖어들었다. 나는 그때보다 가슴이 두 배나 더 뻐근해졌다. 이날 주민들은 한결같이 서로의 수고를 위로하고 자신들에게 가야 할 공을 다른 이에게 돌렸다. 그 자리에는 특히 감사를 표할 사람이 와 있었다. 마포경찰서 정보과 형사였다. 살면서 정보과 형사에게 감사할 일은 없었지만 그 자리에는 있었다.

3・13 대첩 때, 마포경찰서에서 출동한 경찰들은 참 고마웠다. 말로만 하던 '민중의 지팡이' 그 자체였다. 용역 깡패들과의 충돌에서 주민들이 다칠까 봐 용역들의 거센 행동을 막아 주었다. 위기 때 주민들의 안전을 위해 나서 주었던 것이다. 다시 보게 된 경찰이었다. 그날 현장에 있었던 주민들의 공통된 소감이었다. 

"형사님 나오세요, 한마디 하셔야죠."

그는 덩치만 컸지 수줍은 사내였다. 손사래를 치며 뒤로 물러섰다. 모인 주민들도 '나오세요!' '나오세요!' 외쳤다. 그러자 아예 뒤로 빠지려 했다.

"그럼 우리 큰 박수로 대신하지요."
짝짝짝짝짝짝!

태어나 정말 진심으로 경찰이란 이에게 전하는 감사의 박수였다. 눈물 많은 서울환경운동연합의 양장일 사무처장도 마이크를 잡았다. 역시 말을 시작하기도 전에 눈시울이 벌겋다.
"여러분들께서 함께 싸워 주었기 때문에 오늘이 왔습니다."

심재옥 서울시의원도 감격에 겨운 축사를 했다.
"3월 13일 포클레인과 용역들에 맞서 성미산 주민들의 눈두덩이 찢어지고 갈비뼈가 나가던 날, 행정 속에 사람이 있도록 사람이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서울시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는데 오늘 양장일 처장의 눈시울이 붉어지는 이유를 알겠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이야말로 성미산의 진정한 주인입니다. 망가진 성미산을 살리는 데 미력이나마 보태기 위해 이 자리에 왔습니다. 앞으로 여러분과 함께 마포의 하나뿐인 성미산을 지키는 데 힘닿는 대로 노력해 보겠습니다."

환경수자원위원회 소속인 김성구 서울시의원도 약속했다. 예림아빠 권변도 한마디 했다.
"성미산 지키기가 만 2년 3개월, 햇수로 3년이 됐습니다. 지금까지 함께 싸워온 각 개인들과 단체들의 노력의 결실이고 앞으로 성미산을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 지나온 길을 되짚어 보았으면 합니다."

성지연 공동대표로서 지역 사회의 여론을 얻는 데 애를 많이 쓰신 이현찬 할아버지가 많은 박수와 함께 앞에 나오셨다.
"우리 일이 잘 되어 보람 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노력했습니까? 우리 당당하고 떳떳하게 자신들에게 박수를 보냅시다."

김종호 대책위원장은 "서울시의회 의원들과 나눈 담소에서 250억 정도의 서울시 예산이면 성미산을 매입해 생태공원으로 복원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며 "이제 성미산을 생태공원으로 만드는 일에 여러분이 함께 해 주셨으면 한다"고 위원장답게 앞으로의 과제를 제시했다.

행사에 참여한 한 주민은 즐거움을 이렇게 표현했다.
"처음엔 반신반의했어요. 공사를 막을 수 있을까. 한 사람이라도 힘을 합치기 위해 촛불시위 때나 행사에 아이들을 데리고 꼭 참석했지요. 너무 기뻐요. 마포구에 하나밖에 없는 산이잖아요. 훼손되지 않고 공원으로 자연 그대로 놔두었으면 좋겠어요."

역도부 회원이라고 밝힌 한 주민은 감격해하며 "2년 전 처음으로 배수지 공사 소식을 듣고, 서로 모르던 주민 5명이 모여 이야기를 시작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성미산을 지키기 위한 투쟁 내내, 아이들은 전과 같이 산에 올라 꽃잎물을 들이며 놀았다.
 성미산을 지키기 위한 투쟁 내내, 아이들은 전과 같이 산에 올라 꽃잎물을 들이며 놀았다.
ⓒ 유창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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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다들 기쁜 마음으로 감격에 겨운 덕담을 나누었다. 끝으로 도토리 방과후 아이들이 노래를 불렀다.

성미산이 이렇게 밝은 것은,
즐거운 노래로 가득한 것은,
성산동에 성미산이 자라고 있어서다.
그 산이 노래이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모를 거야, 성미산이 해인 것을.
하지만 금방이라도 알 수 있지. 알 수 있어.
성미산이 잠시 없다면
성미산이 잠시 없다면
낮도 밤인 것을.
노랫소리 들리지 않는 것을.

우리는 성미산과 한 약속을 2년 3개월 만에 지킬 수 있었다. 산을 지키는 길고 지난한 싸움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이웃과 다정한 주민으로 다시 만났다. 그러고 보니 결국 성미산이 우리를, 성미산마을을 지킨 셈이었다.

이듬해 초봄 비바람에 지쳐 스러진 장승을 다시 깎아 세우고 기념 촬영 찰칵!
 이듬해 초봄 비바람에 지쳐 스러진 장승을 다시 깎아 세우고 기념 촬영 찰칵!
ⓒ 유창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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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003년 성미산투쟁 기록은 7회로 마감합니다. 그동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회는 본 연재기사의 에필로그로 성미산의 2차 위기, 홍익대와의 지난한 투쟁과정을 소개합니다. 감사합니다.



태그:#2003년 성미산투쟁, #승리 축하 잔치, #성미산, #유창복, #마을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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