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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9일]

김포공항 맞이방에 짐을 놓고 시계를 보았다. 오후 12:50. 비행기 탑승 시간까진 1시간이나 남았지만 긴장 탓인지 많은 시간이 흐른 기분이 들었다. 노트북을 보고 있는 회사원, 친구와 함께 여행 가는 친구들 그리고 가족들. 그리고 노트를 쥐고 의자에 홀로 누워 있는 나.

'히토오오리, 히토요오옹 리  히이이이 토오리'

일본지하철 노선 확인
▲ 일본여행 시작 일본지하철 노선 확인
ⓒ 이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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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도 덥고, 끈적 거리고 일본으로 떠나기도 전에 더위를 먹은 것일까? 히토리(ひとり)는 '한 사람, 한명 그리고 홀로', '히토리봇치'(ひとりぼっち)는 외톨이. 오래 전 보았던 일본만화에 자주 나오던 단어였다.

갑자기 떠오르는 건 지금 내가 히토리, 아니 히토리봇치로 느껴졌기 때문일까? 홀로 2주 여행. 외롭고, 위험한 여정일 수도 있겠지? 갑자기 걱정이 밀려왔다. 하지만 이미 구매해 버린 표는 어찌하리오. 탑승 안내 안내방송이 나왔다. 그래, 저지르는 거다. 우르르 모여드는 사람들 속에 아무렇지 않게 스며들었다.

김포에서 간사이 공항까지... 승무원의 주문에 걸려들다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 있을 때 비행기 안에서는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상큼한 감귤 아가씨 같은 승무원이 마이크를 잡고 안내를 시작했다.

"실례합니다. 여러분. 일본까지 여행하시는데 무료한 시간을 틈타 저희 항공에서는 간단한 이벤트를 마련했습니다. 주무시거나 조용한 여행을 워하는 분들께 방해가 된다면 미리 양해의 말씀 드리겠습니다…."

승무원의 낭랑한 한국어/일어 목소리가 비행기 안에서 쨍쨍 거렸다. 이 항공사에선 승무원과의 가위바위보 게임을 통해 소정의 상품을 주는 이벤트를 마련했단다. 자던 사람들도 부스럭 대며 일어나고 떠들던 꼬맹이들도 승무원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벤트 참가를 위해 높이 치켜든 팔들을 보니 호응도가 대단하다. 2~3분간 진행된 간단한 가위바위보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금세 비행기 내에 활력이 돌았다.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승무원은 상품을 우승자에게 나눠 준 후 흡족한, 완벽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 저희 항공을 이용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여러분 모두 가족과 연인과 친구의 즐거운 여행 하시길 바랍니다. 잠시 후 오사카 간사이 공항에 도착하게 됩니다. 좋은 여행하시길 바랍니다."

승무원의 활기찬 목소리에 모든 사람들에게 주는 따뜻한 에너지가 실려 있는 듯했다. 승무원은 다시 한번 예쁘고 완벽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여러분의 가정과, 직장과, 그리고 사랑에서도 항상... 좋은 일들만 가득하세요."

크리스마스날 길거리에서 나눠주는 사탕 선물 같이 예쁘고 달콤하지만 얇게 스쳐 지나가는 승무원의 인사말. 승무원은 매번 비행을 할 때마다 이 가벼운 주문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걸어왔을까? 승무원에게는 "즐거우세요"라는 주문을 읊조리는 일이 매 비행의 끝무렵마다 수행해야 하는 일종의 의식일지도 모르겠다.

그 주문에 걸려 많은 사람들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폴짝 폴짝 옮겨다니겠지. 그리고 사람들은 여행은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가겠지. 하지만 가벼운 행해진 의식일지라도 순간 내겐 진실되게 다가왔다. 얼마 만에 들어보는 말이던가? '노력해라, 열심히 살자, 돈을 많이 벌자, 예뻐지자'라는 식상하고 무거운 말들보다 얼마나 따뜻하고 예쁜 말인가?

정말 모두에게 좋은일들만 가득하기를 다시 한 번 마음 속으로 주문을 외웠다. 여행에서도, 그리고 추억을 훌훌 털고 돌아갈 일상에서도 말이다. 히토리건 히토리봇치건 뭐 어떠랴. 분명히 일본에 가서도 재밌고 즐거운 일들이 가득할 텐데.

일본어로 도배된 풍경들... 일본에 왔구나

이륙한 후 정확히 1시간 40분 만에 오사카 간사이 공항에 도착했다. 1시간 40분은 차가 막힐 때 우리집에서 서울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바다 건너 섬나라까지 이 짧은 시간에 와버렸다니, 일본은 정말 가깝고도 먼 나라였다. 

카우치 서핑 호스트 진을 만나기 전까지 약 3시간 남짓 여유가 있었다. 이 시간 동안 간단히 관광을 하려고 난바역으로 향했다. 간사이 공항역에서 오사카 중심부로 가기 위한 방법으로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택시, 리무진, 지하철이 대표적인 방법이다. 나는 사람 구경도 할 겸 지하철을 이용하기로 했다.

local 지하철
▲ local tratin local 지하철
ⓒ 이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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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사이 공항에서 시내 중심부로 연결해 주는 지하철 라인은 2가지. 난카이 라인과 JR 간사이 공항 라인이 있다. 나는 난바역에 빨리 도착하기 위해 난카이 선을 이용했다.

공항과 마찬가지로 지하철 역도 매우 붐볐다. 난카이 라인의 붉은색이 우리나라 우체국 간판과 비슷한 느낌이 들어서 어쩐지 친근했다. 또한 지하철 시스템은 한국과 유사한 부분이 많으므로 어렵지 않았다. 

890엔을 주고 자판기에서 표를 구매한 뒤 로컬 트레인을 타고 오사카 시티의 중심부, 난바역으로 향했다(일본 지하철/버스 표 구입은 대부분 자판기를 통해 이루어진다). 한국의 지하철과 비슷하면서도 작은 듯한 지하철 그리고 일본어로 도배된(당연한 일이지만) 풍경들. '와 정말 나 일본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하철개찰구 난카이선
▲ 지하철개찰구 지하철개찰구 난카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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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시간에 걸쳐 난바역에 도착하니 자전거, 사람들 그리고 무더위로 꽉꽉 채워진 거리가 눈앞에 펼쳐졌다. 여행 회화에서 배운 짜투리 일본어가 생각났다.

콘니치와 니뽄(こんにちは にっぽん:안녕하세요 일본)
오아이 데키떼 우레시이데스 니뽄(お会いできてうれしいですっぽん: 만나서 반갑습니다 일본)

일본서점 책발견
▲ 일본책 일본서점 책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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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난바역 주변의 첫인상은 매우 강렬했다. 열도의 여름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더운 열기를 불어댔지만 사람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발걸음을 옮겼다. 이날의 온도는 35도. 이 더운 날씨에도 긴팔을 입은 사람들이 꽤 있었다. 평균 일본인들은 열에 강한 것일까?

의아함을 억누르고 거리 거리를 돌아다 보았다. 이 거리에 있는 일본어 간판을 한국어로 바꾸면 한국의 거리풍경이라 해도 믿을 만큼 비슷했다. 거리 구경을 하는데 눈에 띄는 서점. 독서는 국력이라던데 세계 2위 독서인구를 보유하고 있는 일본의 서점이 궁금해졌다.

서점문을 열자마자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를 반겨주었다. 명성에 걸맞게 서점은 많은 사람들로 채워져 있었고 다양한 소리로 뒤엉켜 있는 시내와는 정반대로 서점은 매우 조용한 분위기로 깊게 깔려 있었다.

일본어를 하지 못하는 죄로 같단히 책들을 훑어보며 구경을 하고 있는데,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1Q84>. 한국에서도 유명한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 서적이다. <1Q84>가 일어 서적인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한국어 버전에 익숙한 나로선, 한국어 버전의 할아버지 책을 보는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계산대에 주인은 없고, 자판기만...

음식점 자판기
▲ 음식점 자판기 음식점 자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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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돌아다녔더니 배꼽시계 알람이 진동을 했다. 맛집이라 소개된 여러 상점들 속에서, 시원하고 특이한 음식을 먹고 싶었다. 그러다 어느 좁은 골목에 위치한 음식점을 발견했다. 돈 계산과 주문은 자판기를 통해서만~! 주방장은 요리에만 신경을 쓴답니다~라는 느낌의 음식점. 계산은 자판기에서 선불이다.

차후에 알고 보니 카운터 대신 자판기를 들여 놓은 음식점은 일본에 무척이나 많다. 이러한 음식점들의 특징은 빨리, 저렴하게 먹는 음식점이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신기하고 이국적이고 저렴하므로 이곳에서 저녁식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일본어를 몰랐기에 손가락 감각에 의지해 아무 버튼을 눌렀다. 금액을 넣고 자판기 버튼을 누르면 메뉴와 금액이 적혀진 티켓이 나온다. 이것을 주방장님께 보여주면 주방에선 쿵딱 쿵딱 작업에 들어가고 곧 주문한 음식이 나온다. 의문의 표는 메밀 소바와 밥이었다. 저렴한 가격에도 너무 맛있어서 행복했다.

오사카 시내
▲ 오사카 시내3 오사카 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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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음식점
▲ 국수집 일본 음식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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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은 후 골목 골목을 돌아다녀봤는데, 와우! 사주 관상 손금 봐주는 집이라고 추정되는 곳을 발견해 버렸다. 손금이 5000년 이상 기나긴 역사를 갖고 있다 하니, 일본에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일본어로 된 손바닥 손금판을 보니 또 신기함이 감돌았다. 일본어만 잘했다면 일본에서 손금 한 번 봐보는 것인데, 일본어를 못한다는 것이 정말 안타까웠다.

2~3시간의 짧은 관광을 마치고 슬슬 첫 번째 호스트인 진을 만나기 위해 길을 찾아갔다. 지도를 보고 물어 물어 길을 찾아가고 있는데 노란색 간판의 커다란 상점을 만났다.

'아, 이곳이 소문으로만 듣던 백엔숍이구나.'

일본의 100엔샵
▲ 일본의 100엔샵 일본의 100엔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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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본 여행자들을 통해 백엔숍 극찬을 여러번 들어왔던지라 친숙하게 느껴졌다. 백엔숍에 대해 쉽게 설명을 하자면 한국의 다이소와 비슷한 곳이라고 할까. 백엔숍은 다이소보다 다양한 종류의 용품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 생활용품, 음/식료품에서부터 문구류/ 장난감까지 없는 게 없는 저렴하고 귀여운 만물박사 같은 곳이었다.

수많은 여행자들이 지름신을 억누르다가 한꺼번에 욕구발산하는 곳이기도 하다. 요즘엔 99엔숍이 생길 정도로 백엔숍은 인기이고 일본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나도 백엔숍에서 지름신과 접신할 뻔했지만, 빨리 자리를 옮겨야 했다. 첫 번째 카우치 호스트를 만나는 데 지각을 할 순 없었다.


태그:#카우치 서핑, #일본, #COUCH SURF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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