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통령들에게 8.15 경축사는 대북 메시지나 남북관계에 대한 비전을 천명하는 중요한 무대였다. 해방과 동시에 분단을 맞이한 광복절에 '진정한 광복'인 남북통일에 대한 의지와 계획을 밝히는 것은 분단국 대통령의 의무로 인식돼 왔다.
북한과 정상회담을 했던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뿐 아니라, 보수정권 시대에도 그랬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0년에 남북한이 평화공존하면서 선의의 경쟁을 통해 평화통일기반을 조성하자고 요구했고, 노태우 대통령은 1988년에 남북한당국 최고책임자 회담이라는 이름으로 정상회담을 제안했다. 김영삼 대통령도 1994년에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천명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지난해 8.15 경축사에서 "북한이 핵포기의 결심을 보여준다면"이라는 전제 아래 "한반도의 새로운 평화구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고, "재래식 무기 감축을 논의하자"는 제안도 했다.
이 대통령은 올해 8.15에는 '통일세'와 '평화통일 3단계 방안'을 꺼내들었다.
이 대통령은 "통일은 반드시 온다"고 강조하면서 통일세 신설 논의를 제안했는데, 8.15 경축사 독회 과정 막판에 이 대통령이 직접 집어넣은 것이라고 한다. 이 대통령은 "주어진 분단 상황의 관리를 넘어서 평화통일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청와대는 '통일세'에 대해 "북한의 특정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통일 대비 장기 투자의 의미"라며 "재원 마련 방안의 성격과 내용 등 구체적인 사항에 대해 국민 여론을 수렴하고 조세 부담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검토해 나갈 예정"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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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당 "MB 통일세? 국민에게 돈 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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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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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관리도 못하면서 통일세? "국민들이 남북관계 악화 비용 부담하라는 것"
이 대통령 집권 이후 남북관계가 파탄 난 상태, 이 대통령의 표현대로 하면 '분단상황의 관리'도 못하는 상황에서 통일세 논의는 현재의 맥락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지난 2008년 4월 방미 중에, 사전에 북한과는 아무런 물밑 논의도 없이 서울과 평양에 상설 연락사무소를 설치하자고 제안했다가 바로 북한으로부터 거부를 당한 전례를 연상시킨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출구전략'은 미뤄놓은 채 올해 말까지 매달 한미연합훈련을 실시한다고 해놓고 느닷없이 '통일세'를 꺼냈다는 점에서, 이후 사회적인 논의로 연결될 동력은 미약해 보인다.
주목할 점은 이 대목이다. 청와대는 통일세에 대해 "북한의 특정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오히려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 악화 이후 힘을 얻고 있는 북한 붕괴론과 흡수통일을 그 배경에 깔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여기에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평화를 말할 뿐 통일은 제쳐놨다"고 평가하면서 "북이 남에 흡수되는 것은 당위" (박세일 서울대 교수)라고 주장하는 보수세력의 시각이 그대로 투영돼 있다. 이 대통령이 이날 경축사에서 "통일은 꼭 온다", "분단관리를 넘어서 평화통일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등 여러 차례 통일을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된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이에 대해 "뜬금없이 통일세를 논의하자는 것은 북한 붕괴론이 그 배경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규정한 뒤 "어떤 경로와 과정을 거쳐 통일로 가느냐에 따라 통일비용은 달라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김대중 정부에서 남북 교류협력의 확대를 통해 사실상의 통일상태를 만들어가자고 한 것은 이것이 통일비용을 줄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었다"면서 "남북관계를 악화시키면서 통일비용을 극대화해온 현 정부가 통일세를 만들자는 것은 그 비용을 국민들이 부담하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남북교류·경협 후퇴와 함께, 이에 따라 중국에 대한 북한의 의존도가 높아지는 등의 상황을 지적한 것이다.
아무리 이름 바꿔도 결국 '비핵·개방·3000'
이 대통령의 '평화통일 3단계 방안'은 평화공동체(공존단계) → 경제공동체(경제협력단계) → 민족공동체(완전한 통일)라는 3단계로 통일을 이루자는 구상이다.
청와대가 설명한 대로 이는 1989년 노태우 정부가 발표한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테두리에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내용은 없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평화공동체를 구축하려면 무엇보다 한반도의 비핵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 것처럼 이 구상의 전제는 '북한의 핵포기'다.
"00통일 0단계 방안' 같은 통일론의 고전적인 표현을 따오기는 했지만, 결국 핵문제와 남북관계를 꽁꽁 묶어 놓은 '비핵·개방·3000'의 다른 표현인 셈이다. 이는 북한의 핵포기를 전제로 "한반도의 새로운 평화구상을 추진하겠다"고 한 지난해 경축사의 동어반복으로, 핵문제 진전 없이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겠다고 다시 확인한 것이다. 따라서 천안함 사건 이후의 남북관계 파탄 상황을 풀어낼 대북 메시지가 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이 대통령의 '통일세 신설'과 '3단계 통일론'은 진정성을 가진 제안과 구상이라기보다는 8.15 경축사 때마다 무엇인가 대북메시지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나온 산물이라고 표현한다면 지나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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