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늘 유난히 헝클어진 머리, 너무나 맘에 안들어. 소개로 만난 새침한 그 아이 그 얘와 약속했는데… 그대가 직접 써준 전화번호 야릇한 그 느낌처럼, 들뜨는 마음 진정시킬수록 이상한 웃음만 나네.(중략) 조금 조금 떨렸던 마음은 반기는 그대 웃음에 날아가 버리고, 나를  나를 부르는 그대 입술에 입 맞추려고 했지만 용기가 없어'

 

영원히 늙지 않을 것 같은 남자 이승환의 '좋은날'이라는 노래다. 얼마 전에는 모 여성그룹이 리메이크해 부르기도 했다.

 

반복된 가사에 경쾌한 리듬 그리고 비교적 박자가 단순한 편이라 노래방이라면 손사래를 치고 빠져나가기 바쁜 내가 그나마 18번으로 애용하는 곡이다. 꽤 오래된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올드'한 느낌이 덜 드는 것도 이유 중 하나다.

 

 

사회생활을 위해서는 무조건 피할 수 없었던 노래방

 

음치에 속하는 나는 웬만하면 노래방을 가고 싶지 않다. 하지만 사회생활이 어디 그런가, 노래방은 남녀노소, 나이불문하고 한꺼번에 어울릴 수 있는 흔치 않는 장소중 하나다. 모두가 다 가자고 하는데 어찌 혼자 거부할 수 있겠는가, 가끔 눈치보면서 내빼기도 하지만 한동안은 주변의 갈굼(?)을 당해야하는지라 요즘 들어서는 그냥 참석하려고 노력한다.

 

참석해도 문제다. 노래방이 체질인 친구나 선배들처럼 광란의 몸짓은 펼치지 못한다 해도 남들 서너곡 부를 때 나도 한곡 정도는 불러야만 한다. 분위기는 띄우지 못해도 적어도 죽이는 행동만큼은 자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음치인 내가 그나마 노래같이 부를 수 있는 곡이 뭐가 있을까?'

 

일단 이 노래 저 노래 혼자서 불러본 다음에 최종적으로 선택했던 곡은 구창모의 '희나리'였다. 일단 음 자체가 높지 않고 비교적 잔잔하게 깔리는지라 약간 감성적인 톤으로 부르면 그럭저럭 18번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상대로 희나리는 내가 노래방에서 소화시킬 수 있는 몇 안되는 노래 중 하나가 되었다. 어쩌다 술이라도 한잔 들어갈 때면 더욱 자신감이 업되어 최대한 감정을 실어 부르노라면, 모르는 여성들은 내가 노래를 잘 부르는 줄 착각을 하게 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용기를 얻은 나는 이후 희나리의 뒤를 이을(?) 새로운 18번 개발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 결과 희나리 정도는 아니지만 김광석의 '그녀가 처음 울던 날' 송시현의 '꿈결같은 세상'등을 어느 정도 소화할 수 있게 되었다. 안치환의 '위하여'도 따라 부르기 편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나는 연인과 함께 분위기를 잡으러 노래방에 가는게 아니다. 사회생활을 위해서 최소한의 단체생활 목적으로 마이크를 잡게되는 경우가 대부분인지라 이른바 축 가라앉는 노래는 그다지 바람직하지 못했다. 한창 분위기가 방방 뜨고있는 가운데 갑자기 희나리가 나오면 사방에서 야유(?)가 터져 나오기 일쑤였다.

 

 

 

이 노래는 이래서 안되고, 저 노래는 저래서 안되고

 

즐거운 노래, 경쾌한 노래의 발굴. 이것이 나에게 시급했다. 하지만 느리고 슬픈 노래에 익숙했던 나에게 정 반대 성향의 곡을 찾아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던중 고민 끝에 2가지 노래를 발굴(?)할 수 있었다. 정연욱의 '프래쉬맨의 사랑'과 노이즈의 '상상 속의 너'다. 비교적 음의 변화가 심하지 않아 자신있게 부르면 그런 대로 괜찮은 노래로 보여졌다.

 

그러나 위의 노래들은 나의 새로운 18번으로 만들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빠른템포의 신나는 노래라는 점에서는 노래방에서 술 한잔 걸치고 분위기 띄우는데 나쁘지 않은 노래였지만 그것을 소화할 나의 역량이 너무도 부족했던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템포였다.

 

어느 정도 빠른 노래는 되려 느린 노래에 비해 습득이 빠른 경우도 있지만 내가 찍었던 2개의 노래는 빨라도 너무 빨랐던 것이다. 정신 없이 멜로디에 맞춰 가사를 열창하다보면 어느새 음정-박자는 무너지기 일쑤였다.

 

난 부른다고 불렀지만 듣는 이들 입장에서는 "숨넘어가겠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 말다했다. 간혹 컨디션이 안 좋을 때 부르면 노래는 더욱 최악으로 치닫는데 그럴 때마다 주변에서는 "아이구… 수고했다"는 말이 들려오기 일쑤였다.

 

그나마 윤종신의 '내 사랑 못난이'가 나을 것 같아 새롭게 도전해 보기도 했지만 결정적으로 그 노래는 중간에 내가 도저히 소화해내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 중간에 포기해버렸다.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되고, 빠른 노래는 나와 궁합이 맞지 않는 것일까…?'

 

느린 노래는 감정잡고 부드럽게 끌지 못해 어렵고 빠른 노래는 숨넘어가서 어렵고, 정말이지 답이 안나왔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었다. 억지로 끌려가는 노래방이지만 그래도 살아남으려면 뭔가 나한테 맞는 활발한 노래가 꼭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아는 누나와 형 커플이 듀엣으로 합창한 노래가 귀에 확 들어왔다. 그렇다. 바로 이승환의 '좋은날'이었다. 어렵지 않은 박자와 고음처리 능력이 크게 필요하지 않은 노래, 내가 찾던 그 노래였다. 그 후 이 노래는 '희나리'와 더불어 내가 노래를 못 부르는 것을 어느 정도 감출 수 있는 18번으로 애용하게 됐다.

 

 

여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도 노래는 필요하다?

 

하지만 노래는 꼭 사회 생활만을 위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아직 노총각인 관계로 원하든 원치 않든 이성과 노래방을 갈 일이 불가피하게 가끔 생기는데 바로 이 순간 노래를 잘하는 것이 얼마나 플러스가 되는지 점차 깨닫을 수 있었다.

 

시대-환경을 불문하고 '운동 잘하는 남자'-'말 잘하는 남자'-'옷 잘입는 남자'-'노래 잘 부르는 남자'는 여성들에게 어느 정도 먹힌다. 반대로 아무리 말쑥하고 첫인상이 좋더라도 위 4가지 사항에서 최악의 상황을 맞아버리면 엄청난 폭의 호감도 하락은 감수해야만 한다. 물론 예외인 경우도 있겠지만 난 일상적인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어떤 여성을 만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난 수년전 모 여성과 노래방에 관한 아픈 기억(?)이 있다. 언젠가 어떤 여성이 너무 예쁘고 좋아서 미친 듯이 들이대봤다. 다소 낯을 가리고 친해지는데 오래 걸리는 성격이지만 필요할 때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불도저 전법'을 쓰기도 한다.

 

사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여러모로 그 여성과 나는 맞지 않았다. 성격도 취향도 다르고 원하는 미래상에서도 많은 차이가 났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좋은걸…, 나쁘게 말하면 외모에 혹해서 마음을 빼앗긴 부분도 없잖아있지만 남녀가 좋아하는 과정과 이유에는 어차피 정답은 없는 것이다.

 

그 여성은 나에게 별로 호감이 없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만나달라고 할 때는 꼬박꼬박 만나주기는 했는지라 많은 얘기를 나누고 나름대로 시간도 많이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여성분에게 약간의 마음의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다른 때와 달리 나에게 굉장히 다정하게 대하며 이것저것 챙겨주려고 애쓰는 것이 아닌가. 순간 느낌이 왔다. 나에게 마음을 아직 준 것은 아니지만 본인 역시도 뭔가 심경의 변화를 가지고 대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술 한잔과 함께 분위기는 좋아져갔고 마지막 코스로 갔던 곳이 바로 노래방이었다.

 

평소 같으면 잘 가지도 않거니와 내가 먼저 거절하는 편이지만 당시에는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근데 문제는 그 여성분은 노래와 춤을 무척 좋아하는 성격이라는 점이었다. 아니 한술 더 떠서 기회가 되면 그쪽 방면으로 직업을 정하고싶을 정도였다. 때문에 그 여성에게 노래와 춤은 상당히 각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것 같이 부르자" 그 여성분은 이것저것 노래를 틀어놓고 같이 듀엣 곡을 시도했고 춤도 같이 출 것을 원했다. 참 난감했다. 난 다름대로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최선을 다했지만 원래 어색하던 이 행동들이 자연스러울 리가 없었다.

 

결국 그 여성분은 혼자 노래하고 춤추는 상황이 잦았고 어느덧 시간이 지날수록 분위기는 다운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노래방을 나왔을 때 그 여성분의 눈빛과 말투에는 실망감이 가득해 보였다. 어느 정도 최소한의 공감대를 원했던 것이겠지만 나와는 너무도 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 여성분이 나에게 준 유일했던 기회는 그렇게 날아가 버렸고, 나 역시 노래방 사건 이후 다소 의기소침해져 예전의 그 들이댐이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그 여성뿐만 아니라 나 역시도 뭔가 우리는 서로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던 것 같다.

 

물론 깊이 사랑하고 서로를 이해했다면 그런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막 시작되려는 순간에 일어났던 충돌인지라 잠깐 켜지려던 불꽃이 그대로 사그라지지 않았나 싶다.

 

다행히(?) 그 뒤로 만났던 여성들은 노래에 대해서 크게 따지는 성격들이 아닌지라 무난하게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상황이 그랬던 것인지 노래방은 거의 갈 일이 없었고 내가 노래를 해봤자 밤늦게 통화할 때 낮은 음성으로 세레나데 정도를 불러주는 일이 고작이었다. 야심한 시각에 전화를 통해 노래를 부를 때는 다소 민망함도 적거니와 그 상황에서 오는 좋은 분위기가 나의 음치적 성향을 많이 커버해주곤 했다.

 

어쨌든 난 지금 노래를 어느 정도는 배워야될 필요를 느낀다. 내 스스로의 자신감을 위해서도 그렇고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 프로포즈하는 순간 진심이 담긴 노래 한곡쯤 선물하고 싶기 때문이다.

 

물론 나를 무척 아껴주시는 어떤 누나가 그런 말은 했다. "노래를 좀 못 부르면 어때? 진심을 가지고 성의껏 불러주면 그 노래에도 수많은 여성들이 감동할거야. 문제는 진심 어린 마음이라는 것을 잊지마."

 

서른을 넘긴 나이에도 자의든 타의든 노총각으로 대한민국을 지키고있는 나, 적어도 노력이라는 좋은 의미를 가슴에 품고 언제가 있을지 모를 그 순간을 위해서라도 노래 한곡 멋지게 불러보고 싶다. '좋은날' 그 날은 분명 오겠지?

 

<계속>


태그:#노총각 일기, #노래, #성격궁합, #서른을 넘어, #희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전) 디지털김제시대 취재기자 / 전) 데일리안, 전) 홀로스, 전) 올레 , 전) 이코노비 객원기자 / 농구카툰 크블매니아, 야구카툰 야매카툰 스토리 / 점프볼 '김종수의 농구人터뷰' 연재중 / 점프볼 농구카툰 'JB 농구툰' 연재중 / 점프볼 객원기자 / 시사저널 스포츠칼럼니스트 / 직업: 인쇄디자인 사무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