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이었던 15일 오후 태안군 소원면의 한적한 시골길을 승용차로 달리고 있는데 마치 밧줄처럼 생긴 물체 하나가 길에 놓여있다.
무심코 그냥 지나치려고 차를 모는데 작은 움직임이 포착됐다. 그 물체는 다름 아닌 물뱀이었다. 길을 가로 질러 길 옆 논으로 이동하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콘크리트 바닥이 하루종일 달구어진 탓인지 물뱀은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마치 굼벵이 기어가듯 서서히 몸을 논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자칫 밧줄인 줄 알고 그냥 지나쳤다면 물뱀은 그 자리에서 쥐포 마냥 납작해졌을 것이다. 일단 차를 정차하고 50센티미터급으로 보이는 가느다란 물뱀을 나무로 들어 풀숲에 놓아주었다.
예전 고향마을에서는 종종 뱀 출현에 기겁을 했던 기억이 있었는데, 올해 처음 뱀을 볼 정도로 그 개체수가 많이 줄어든 듯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추측은 금방 잘못된 생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최근 태안군 보건의료원에 '뱀 물림 사고'로 찾는 환자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최근 고추수확 등 농번기를 맞아 '뱀 물림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어 농민들의 주의가 요구되고 있다.
농번기 '뱀 물림' 주의보 발령, 논밭 가리지 않고 출몰
태안군보건의료원에 따르면 본격 농번기가 시작된 지난 7월부터 최근까지 뱀에 물려 의료원을 찾는 환자들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최근의 '뱀 물림 사고'는 고온다습하고 잦은 비로 인해 논뚝과 논에 무성하게 자란 풀을 베기 위해 논을 찾는 농민들에게 자주 발생하고 있고, 부위 또한 다리가 아닌 손에 물리는 사고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농민들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되고 있다.
논밭일 시 다리 부위는 긴 옷과 장화, 등산화 등을 착용하기 때문에 뱀에 물린다고 해도 예방을 할 수 있지만 손 부위는 마땅히 뱀 물림에서 보호할 만한 장비가 없기 때문에 농민들의 각별한 주의만이 사고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뱀 물림 사고'를 당해 의료원을 찾는 환자 대부분이 맹독을 가진 독사가 아닌 약간의 독을 가진 물뱀(녹색을 띰)으로 의료원은 환자가 응급실을 찾을 경우 곧바로 응급으로 몸에 들어온 독이나 독소의 독성을 중화시킬 수 있는 '살무사 항독소'를 투입하고 항생제와 진통제를 투여하고 있다.
또한, 의료원은 '뱀 물림' 환자의 상태가 응급실을 찾을 시 대부분이 심하게 부어올라 항독소를 투입한 뒤 입원을 권하고 있지만, 농사일에 바쁜 관계로 입원을 고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같은 시기 대비 지난해 2명이었던 '뱀 물림' 환자는 지난 13일 현재 총 12명으로 7월에 6명, 8월에는 중순도 지나지 않아 벌써 6명의 환자가 의료원을 찾는 등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뱀에 물려 의료원을 찾은 한 주민은 "요즘에는 풀이 많이 자라 주로 논뚝에서 제초작업을 하는데 갑자기 뱀이 나타나 손을 물었다"며 "예전에는 장화만 신고 논일 나가도 뱀이 스치고 지나간 일은 있었어도 물린 적은 없었는데…. 그렇다고 풀을 깎지 않을 수는 없고"라고 퉁퉁 부어오른 손을 어루만졌다.
또 고추를 따러 갔다가 마찬가지로 손에 뱀에 물렸다는 주민은 "요즘에는 고추 수확기여서 고추 잎도 무성해 뱀이 있는지 없는지 구분하기 어렵다"며 "고추 이랑사이로 돌아다니는 뱀에 물리지 않으려면 일하면서 주의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보건의료원 관계자는 "뱀 물림 환자 대부분이 아침 일찍 논밭에 일 나갔다가 물리는 경우가 많아 오전에 환자들이 몰리고 있으며, 물린 부위가 다리보다는 손 부위가 대부분"이라며 "음성으로 판명될 경우 항독소 등을 투여하고 입원을 권유하는데 대부분의 환자들이 입원보다는 통원치료를 받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지난해에는 항독소를 2개 정도 밖에 사용하지 않았는데, 올해는 뱀 물림환자가 갑작스럽게 늘어 벌써 많은 양의 항독소를 소비했다"며 "사고를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보다 농민 자신이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라고 당부했다.
한편, 지난 13일 기준으로 태안군보건의료원 입원실에 '뱀 물림 사고'로 입원 중인 환자는 단 1명으로 대부분의 환자들은 바쁜 농사일로 인해 통원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