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 금정산 계곡에서 ......
ⓒ 이명화

관련사진보기



오랜만에 등산 짐을 꾸린다. 7월 말에 금정산에 간다고 나섰던 적이 있지만 금정산계곡에 주저앉아 발 담근 채 놀다 온 후 다시 간다. 좀 높은 산에 갈까했지만 날씨도 가늠하기 어렵고 또 오랜만에 나서는 길이라 무리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짙은 안개 자욱한 흐린 날, 가만있어도 몸이 땀에 축축하게 젖는다. 오늘은 금정산 정상까지 갈 수 있을까. 지레 지쳐서 또 계곡에 주저앉아 놀다오게 될까. 아직은 모를 일이다. 이젠 장담도 못하겠다. 산행을 하게 되면 정상까지 갔다 오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고 중도에 내려올 경우엔 마음 한 구석이 시원찮았던 경험 있지만 한동안 뜸했던 산행인데다 날씨조차 부담스러워 일단 걸어봐야 알겠다.

금정산은 언제가도 부담 없이 만날 수 있어 좋다. 이른 아침에도, 늦은 오후에도 등산객들을 만날 수 있는데다 진입로도 많고 넉넉한 품이 편안하게 느껴져서 마땅한 산을 정해지 못했을 때 아무 때나 가게 된다. 남편은 코스를 길게 잡았지만 그냥 쉽게 가자고 꼬드겨서 범어사에서 북문을 통과해 고당봉 정상까지 갔다가 왔던 길로 다시 하산하기로 한다. 범어사 아래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등산화 신발 끈을 조여 맨다. 범어사에 들어서자 약 100미터쯤에 시멘트 다리 아래로 계곡 하류가 불어난 비로 콸콸하다.

금정산 계곡의 새로운 발견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것이 버겁다. 이렇게 숨이 턱턱 막히는데 정상까지 갈 수 있을까. 범어사 경내를 거쳐 금정산 계곡상류로 들어서자 흐르는 계곡 물소리 귓전 가득 채운다. 한 두 걸음 더 계곡에 들어선 것인데 공기가 다르다. 계곡을 낀 숲은 제법 바람이 상쾌하다. 등산은 이제 시작인데 계곡을 그냥 지나가지 못한다.

올 여름엔 제대로 여름장마를 했고 잦은 비로 한껏 불어난 금정산계곡은 물소리 콸콸, 바위 틈 사이로 웅얼웅얼 휘돌아 쏴르르 끝없이 흘러내린다. 넘쳐흐르는 계곡 물이 발길을 붙든다. 그냥 갈 순 없잖아. 곧장 올라가는 길에서 옆으로 빠져 콸콸 흐르는 물 사이 바위를 건너 넓고 편편한 바위 하나 차지하고 앉아본다. 어쩜 이렇게 물이 많이 불었을까.

지난 7월 말에 왔을 땐 쨍쨍한 폭염 속에서 계곡으로 바다로 많은 사람들이 몰렸고 범어사 계곡도 예외는 아니어서 작년에 비해 적어도 다섯 배 이상 많은 인파가 몰렸었다. 물이란 물엔 다 사람들이 몰렸더니 오늘은 흐리고 오후엔 비 온다는 소식 때문인지 비교적 한산한 분위기다.

계곡...
▲ 금정산 계곡...
ⓒ 이명화

관련사진보기


계곡 물에 세수를 하고 팔에 물을 끼얹고 보니 훨씬 시원해진다. 지난 7월 말에 금정산을 올라가리라 맘먹고 왔다가 이 계곡에 주질러 앉아 아예 몇 시간을 놀다가 내려갔었다. 금정산 계곡이 이렇게 물이 많았었나?! 새로운 발견이었다. 가끔 산행하고 오는 길에 발을 담그긴 했어도 지금처럼 물이 많지 않아서 예사로 봤던 것 같다.

끝까지 등산 못할 수도 있다고 미리 예견이라도 했던 것일까. 만일을 대비해 차에 둔 책을 갖고 간 것인데 날이 뜨거워 버거운 마음, 산행은 할 생각 않고 한껏 불어난 시원한 계곡에 아예 들어가 물에 발을 담그고 책을 읽었다. 차가운 물에 발을 담그고 하는 독서는 온 몸과 정신이 깨어 있는 독서였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계곡에 앉아 놀다보니 편편한 바위를 얻지 못해 등이 배기는지 남편은 오래 앉아 있지 못하고 가자고 해서 오래 앉아 있진 못했다.

잔뜩 흐린 날, 안개 속을 걷다

...
▲ 안개속을 걷다... ...
ⓒ 이명화

관련사진보기


다시 찾은 금정산, 계곡에 잠시 앉아본다. 바위와 바위 사이를 휘돌아 끝없이 흘러가는 물소리 듣노라니 시들어 있던 화초가 비를 맞고 생기를 띠고 되살아나듯 힘을 내서 산행 길 다시 걷는다. 100미터 앞이 가늠되지 않는 짙은 안개 숲을 걷는 길, 넘쳐흐르는 계곡 물소리 끼고 가니 그래도 좀 낫다.

잔뜩 흐린 이런 날에도 금정산을 찾은 등산객들 많다. 젖은 바윗길 걸어가는 길엔 한발짝 한발짝 옮길 때마다 땀이 끈적거린다. 습도가 높은 날이다. 가는 길에 몇 번이고 계곡 물에 얼굴을 씻고 또 씻는다. 한참 올라가자 물소리도 잦아든다. 이 무더위에도 벌써 가을이 영글어가고 있는 것이 보인다. 밤송이 주렁주렁 안개 속에 영글어가고 있고 떡갈나무에도 도토리 깍지들이 졸망졸망 생겼다.

금정산이 이렇게 멀었었나?! 북문까지 닿는 것도 이렇게 먼 길이었나?! 새삼스럽게 이 길이 멀다. 금정산에도 이제 멧돼지가 출몰하는 모양이다. 곳곳마다 멧돼지 위험 안내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혹시나 멧돼지가 안개 자욱하니 밤인 줄 알고 돌출하진 않을까 내심 걱정도 된다. 북문이 저만치 보인다. 짙은 안개로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북문은 희미하게 그 윤곽을 드러낸다.

북문...안개에 싸여있다...
▲ 금정산 북문...안개에 싸여있다...
ⓒ 이명화

관련사진보기


안개 속 희미하게 드러난 북문은 사람들이 없다면 마치 괴괴한 숲 속 외딴 집처럼 으스스 할 것 같다. 마치 전설의 고향에 나올 것 같은 배경이다. 북문 가까이 있는 화장실도 안개 속에 희미하다. 그것이야말로 괴기스럽게 보인다. 안개 속 북문 주변에서 아이들 뛰노는 소리 들려온다. 북문 통과하니 그 앞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모습이 보인다. 부모와 함께 놀러 온 아이들인 모양이다.

여느 때 같으면 북문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일 시간인데 젖은 날이라 한산한 풍경이다. 북문에서 금정산 고당봉까지는 아래 계곡 쪽보다 안개가 더욱 짙어 마치 눈 앞 사물을 지우개로 하얗게 지워버린 듯 아예 보이지 않는다. 젖어 미끄러운 흙길과 바윗길을 걸어서 눈 앞 보이는 데만 가늠해가면서 걷는다. 고당봉 근처에 오자 나무 계단 길 높이 이어지고 금정산 고당봉은 아직도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

정상 고당봉 아래 전망대...지우개로 지운 듯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 금정산 가는 길... 정상 고당봉 아래 전망대...지우개로 지운 듯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 이명화

관련사진보기


흐린 날, 짙은 안개속에서 정상에 선 사람들...
▲ 금정산 정상 고당봉... 흐린 날, 짙은 안개속에서 정상에 선 사람들...
ⓒ 이명화

관련사진보기


지독한 안개다. 고당봉 정상에 오르자 이 흐린 안개 속에 먼저 당도한 사람들 시끌시끌 시장바닥 같다. 사진을 찍어보지만 희미할 뿐이다. 땀으로 젖은 몸이 고당봉 높은 바위에 앉으니 금세 식어 몸에 소름이 돋는다. 점심으로 싸간 주먹밥과 커피 한 잔 참 좋다.

멀리 김포에서 왔다는 산악회 사람들이 "젊음이여 오라! 나이여 가라! 사랑이여 하라!"하고 외치며 맥주 캔을 높이 들어 시선을 끈다. 우리가 그들을 보며 웃자 유쾌하게 웃어 제친다. 두 번 짼 뭘 손에 들었더라?! 다시 한 번 "희망찬 삶을 위하여!...위하여'를 외치며 들이키고 좋아라한다. 금정산 등산하고 부산 바닷가에 가서 생선회를 먹을 것이라고 한다. 그렇지 부산은 역시 바다고, 타지 사람들이 찾아오면 생선회를 빼놓을 순 없을 것이다.

안개 속에서...아직도 무더위...그래도 가을은 영글어가고...
▲ 금정산 가는 길... 안개 속에서...아직도 무더위...그래도 가을은 영글어가고...
ⓒ 이명화

관련사진보기


또 한 무더기의 사람들 목소리 들어보니 멀리 전라도에서 온 사람들인 모양이다. 이렇게 안개 낀 흐린 날씨에 금정산 정상에 왔다는 것만으로도 흥분되는지 한마디씩 떠들썩하다. 가까운 부산, 경남에서 그리고 먼 데서 온 사람들로 어우러진 금정산 정상은 한바탕 시끌시끌 한다.

소음도 잠시라면 좋으련만 조금 더 오래 앉아 있고 싶어 있노라니 시장바닥처럼 떠들썩해서 있을 수가 없다. 오랜만에 산에 올랐으니 충분히 쉬어 가고 싶어 앉았건만 하는 수없이 그만 엉덩이를 들고 일어나고 만다. 산은 좋건만 여기도 소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올라올 땐 축축하고 바람 없고 눅눅해서 힘들었지만 하신 길은 땀이 덜하다. 젖은 길이라 미끄러워서 조심스럽게 디뎌간다. 다시 범어사 계곡에 이르자 아까 앉았던 바위가 비워 있어 다시 자리를 펴고 앉아 이젠 신발도 벗고 양말도 벗은 채로 앉아 발을 담근다.

온 몸에 찬 기운이 번지며 상쾌해진다. 계곡에 발을 담근 채로 시간은 물처럼 흘러가고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계곡물을 바라보며 마음과 몸이 쉼을 얻는다. 오랜만에 산에 오른 기쁨과 계곡에 발 담근 채 쉬는 즐거움 만끽하며 보슬비 조금씩 내리기 시작해도 오래 앉아 뭉기적거리다 내려간다. 비는 대지를 흠뻑 적시도록 내린다. 비에 젖는 것도 시원하다.

계곡에 발을 담그고...
▲ 하산길... 계곡에 발을 담그고...
ⓒ 이명화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산행수첩
1.일시: 2010. 8. 14
2.산행기점: 범어사 아래 주차장
3.진행:범어사 밑 주차장(낮11시)-범어사경내(1:05)-북문(12:35)-금정산 정상(1:15)-식사 후 하산(1:45)-북문(2:15)-범어사계곡(3:10)-주차장(4시)



태그:#금정산, #계곡, #고당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전5:16~17)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