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한국농어촌공사가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둑높이기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로 인해 농지 침수 등 부작용이 예상되고 있어 농민들이 곳곳에서 반발하고 있다.

17일 오후 충북 보은 산골마을 쌍암 1, 2, 3구 마을 대표가 모였다. 한국농어촌공사 충북지역본부 보은지사(이하 농어촌공사)에서 주민 의견도 듣지 않고, 100억 예산을 들여 2년 계획으로 쌍암저수지 둑높이기 사업을 실시하겠다고 나섰기 때문. 주민들은 지난 6일에 이어 '쌍암저수지 둑높이기 저지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이름으로 여러 차례 회의를 열고, 둑 높이기를 저지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농어촌공사는 왜 주민들이 원하지도 않는 공사를 강행하겠다고 나선 것일까.

둑 높이기, 누구를 위한 공사인가?

 만수위의 쌍암 저수지. 수면 위에 나온 저 둑을 높이겠다는 것입니다.
만수위의 쌍암 저수지. 수면 위에 나온 저 둑을 높이겠다는 것입니다. ⓒ 진옥경

이 마을 이장에 따르면, "지난해 가을, 농어촌공사 직원이 인근 쌍암마을 1·2·3구 이장들에게 현재보다 4m 정도 저수지 둑을 높이려는데 마을 의견이 어떤지 물어, 우리 마을 쌍암 2구는 회의를 거쳐 분명히 반대의사를 밝혔고, 1구와 3구 이장님도 반대의사를 밝히셨다"고 했다. 또 전 이장 역시 "군청에 이 사업의 부당성을 지적하며 질의하여, 계속 진행시키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군수 명의의 답변서를 받은 일도 있다"고 했다.

그런데 겨울 지나 봄, 여름에 이르도록 잠잠하더니 지난 6월, 이장이 길에서 측량하는 사람이 있어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니 저수지 둑높이기 공사를 위해서라고 했다는 것. 이에 무척 놀란 마을 주민 2인이 확인해본 결과,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주민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농어촌공사는 지난 7월 21일 면사무소에서 주민 설명회를 열었다. 농어촌공사 측은 지난해 6m로 둑을 높이려던 당초 계획을 3m로 변경하여(주민 반발을 고려한 것으로 보임) 100여 만 톤 증수 계획을 50만 톤 남짓으로 줄였다고 설명하였다. 또 농어촌공사 담당자가 "쌍암 저수지 둑높이기 공사의 주된 목적은 금강에 물대기 위함"이라고 해 대청호로 현재 여러 가지 제약을 받고 있는 회남 지역 주민의 반발을 샀다.

이 마을 전 이장에 따르면, 쌍암 저수지는 만들어진 이래 30년간 어떠한 가뭄에도 물이 마른 적이 없다. 더구나 지금은 장려금까지 주어가며 논을 밭으로 전환하고 있는데, 논농사에 필요한 농업용수를 더 마련하기 위함이라는 농어촌공사 측의 해명은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설사 아랫마을에 농업용수가 부족하다 할지라도 지하수 개발 등 훨씬 적은 예산을 들여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사람들의 농지를 빼앗고 환경을 훼손하며 인근 마을에 막대한 피해를 주면서까지 저수지 둑을 높일 필요가 있을까. 

저수지 둑높이기 사업은 4대강 물대기 사업

 저수지로 흘러들어가는 수로. 이 수위가 4m 높아져 주변이 모두 잠기게 됩니다.
저수지로 흘러들어가는 수로. 이 수위가 4m 높아져 주변이 모두 잠기게 됩니다. ⓒ 진옥경

전 이장에 따르면 이 마을들은 지난 1984년 저수지를 만들 때, 대대로 농사 지어 온 옥답을 거저나 다를 바 없는 헐값에 저수지 부지로 내놓았다. 그런데 3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둑 높이기 공사를 한다면서 얼마 남지 않은 땅마저 내놓으라니. 원성을 살만도 한 것이다.

과거 주민들이 잃은 게 농토만은 아니다. 저수지가 생긴 이래 점차 마을의 오래된 과실 나무들이 말라 죽고 과일도 착과가 안 되어 소출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전 이장은 말했다. 몇 년 전 마을 회관 앞에 세워진 유래비에도 적혀 있듯, 50년 전만 해도 청주 장터의 감과 밤을 주름잡았다 할 정도로 과수가 잘 되던 이 마을이 어째서 이렇게 되었을까? 주민들은 이구동성 저수지가 생긴 후 나타난 안개와 냉해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도 사전환경성검토서에서 농어촌공사 측은 쌍암저수지와 인접한 청주기상대의 자료를 제시하며 저수지 둑을 높여도 안개일수나 기온에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저수지 인근마을의 환경변화를 어떻게 청주기상대 통계만으로 평가할 수 있단 말인가.

 쌍암2구 마을 어귀. 다리 아래 왼편으로 흐르는 물이 바로 저수지로 들어갑니다.
쌍암2구 마을 어귀. 다리 아래 왼편으로 흐르는 물이 바로 저수지로 들어갑니다. ⓒ 진옥경

또 저수지 둑이 높아지면, 지금 마을 앞에 줄지어 자라고 있는 들깨와 호박, 콩과 벼의 자리에 물이 차오르고, 갈수기에는 주인 잃은 땅에 잡초가 우거지고 해충이 우글거릴 것이다. 당장 공사 기간 내내 중장비들은 엄청난 굉음과 먼지를 일으키며, 지척에서 농사짓는 주민들을 괴롭힐 것이다.

둑을 높이면 저수지 옆으로 난 도로가 침수될 것이니 길도 높여야 하는데, 농어촌공사 측은 교통 소통에 아무런 지장이 없을 거라고 강변한다. 차 두 대가 겨우 지나는 길 바로 옆이 공사판인데, 상식적으로 어떻게 아무 지장이 없을 수 있을까. 겨울이면 빙판길로 변하는 이 급경사의 도로는 둑이 높아지면서 앞으로 어떻게 변할 것인가.   

저수지 근처에 살고 있는 원앙새와 붉은배새매 같은 천연기념물들은 공사가 시작되면  날아갈 것이니 별 문제 없다는 식으로 설명하였다. 서식지를 잃은 철새는 때 되어 그 자리로 되돌아오는 기억력에 혼란을 일으켜 결국 죽고 만다는 것은 초등학생도 아는 상식이다.

남획과 먹이 오염으로 개체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는 희귀종 여름 철새 붉은배새매는 이제 자신들의 앞날을 기약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이런 식의 형식적 환경평가는 결국 사업 강행을 위한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곳곳마다 주민 마찰...예산낭비 사업 반대, 농민들은 힘에 겹다

 저수지 둑에서 바라본 마을 방향의 풍경
저수지 둑에서 바라본 마을 방향의 풍경 ⓒ 진옥경

둑 높이기 사업 논란은 비단 우리 마을 뿐만이 아니다. 충청북도에 계획되고 있는 16개 저수지 둑 높이기 사업은 곳곳에서 주민들과 마찰을 빚고 있다. 최근 언론에 보도된 것만 보아도 괴산 소수, 진천 백곡, 증평 삼기 저수지 등이 주민들의 큰 반발을 사고 있고, 진천 초평 공사는 주민 반대로 백지화되었다.

지난 12일자 경향신문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예산안 설명서에서 저수지 둑높임 사업의 목적을 "농업용수가 부족하거나 노후화로 인한 붕괴 위험성이 있고 홍수 피해가 우려되는 곳의 담수 능력을 제고하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민주당 김우남 의원이  한국농어촌공사로부터 받은 '저수지 둑높이기 사업 현황 및 계획'에 따르면, 지난 7월 6일 정부가 둑 높임 사업 대상지로 최종 확정한 저수지 113곳 중 62곳은 1999~2009년 노후시설 보강 및 재해 예방을 위한 수리시설 개·보수 작업을 했던 곳으며 이 중 24곳은 2005년 이후 개·보수가 이뤄졌다"고 이 신문은 보도했다.

특히 둑 높임 사업 대상 저수지 113곳 중 정밀안전진단을 받은 98개 저수지의 안전등급을 보면, 보수가 가장 시급한 E등급 저수지는 한 곳도 없었고 D등급은 8곳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자료에 따르면 농어촌공사가 관리하는 저수지 중 안전진단에서 D등급을 받았지만 둑 높임 사업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저수지는 45곳이나 되며, 둑높이기 사업 대상 113개 저수지 가운데 최근 30년간 홍수·가뭄 피해를 입은 곳은 한 곳도 없다. 바로 우리 마을이 그렇다.

경향신문에 보도된 "정부가 저수지 둑높이기 사업의 목적을 왜곡하며 수차례 대상 저수지를 교체했지만 결국 선정 기준은 얼마나 많은 물을 4대강에 흘려보낼 수 있느냐에 불과했다"는 김우남 의원의 말처럼, 4대강을 위해 우리 마을 주민들의 희생을 묻지도 않고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그 지역에 필요한 사업은 지역 자체의 논의를 거쳐 시행 시기와 방법 등이 결정되는 것이 옳지 않은가. 그런데 어떻게 민주 국가에서 주민 의견을 들어보지도 않고, 주민 반발만 야기하는 사업이 이처럼 전국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시행될 수 있는가.

가을걷이를 앞두고 비지땀을 흘리는 농민들은 이처럼 불필요한 예산낭비 사업에 반대하기도 힘에 겹다는 거, 좀 알아줬으면 좋겠다.


#저수지둑높이기#4대강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시민운동을 하다가 7년 전 보은 회인 산골에 들어와 매실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