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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국민들에게는 다소 멀게 느껴지던 '이란'이란 국가의 문제로 한국 사회가 시끄럽다. 미국이 UN 제재와는 별도로 '포괄적 이란 제재법'을 발효한 이후 한국정부에게도 추가제재안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난 7월 1일 발효된 포괄적 이란 제재법의 시행세칙을 8월 17일(한국 시각) 연방관보에 올렸다. 미국 재무부가 게재한 시행세칙은 ▲ 이란정부의 대량살상무기 및 테러활동 지원 ▲ 유엔 안보리의 이란제재 결의안에 해당하는 활동 ▲ 이란 금융기관의 돈세탁 행위 ▲ 이란혁명수비대 관련 금융행위 등을 제재대상으로 삼았다.

이란 제재법은 제재 리스트에 오른 이란의 기업이나 금융기관과 거래를 한 외국 기업들은 미국의 금융기관과 거래를 할 수 없고 새로 계좌도 만들 수 없도록 되어있다. 미국 금융기관들의 세계적 비중을 봤을 때 미국이 제재하기로 정한 기업들과 거래를 한 외국 기업들은 사실상 대외 거래가 막히게 된다.

미국이 이 법의 적용 대상 목록에 포함시킨 150개 기관 중 국내에 있는 기관은 멜라트은행 서울지점, 이란 석유화학 한국지사, 시스코 해운회사 등 3곳이다.

궁색해진 MB정부 

한미동맹을 외교정책의 제1순위로 두고 있는 이명박 정부 입장에서는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미국이 이번에 게재한 시행세칙은 7월 1일 이란제재법이 발효된 후 47일 만에 나온 것으로, 90일 이내에 발표하던 통상적인 관행에 비해 이례적으로 빠르게 발표된 것이다. 그만큼 미국은 높은 수위로 주변국들에게 대이란 제재에 동참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한국정부는 10월 1일 정도에 시행세칙이 발표될 것으로 보고 상황을 지켜보자는 입장을 취해 왔지만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특히 미국은 한국정부에게 멜라트은행 서울지점(5개 해외지점 중 중동권을 제외한 유일한 해외지점)의 폐쇄를 강력하게 압박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부터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에 대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한국 정부에 전달해 왔고, 지난 3월부터는 명시적으로 자산동결을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란과 한국간의 경제교역 규모를 봤을 때 추가제재는 정부로서 부담스럽다. 이란은 한국의 20위 수출대상국이다. 2009년 수출규모는 39억9000만 달러로 중동국가들 중 최대다. 수출비중은 2010년 6월 말 현재 1.2% 정도이지만 이란과 관련된 중소기업 수는 2000여 개에 달한다. 그에 따른 약 15만 명(4인가족 기준 60만 명)이 이란 수출과 관련을 맺고 있다. 개별 국가들만 놓고 본다면 한국의 수출에서 영국, 프랑스 등의 비중보다 큰 수치다.

더군다나 이란으로부터 들여오는 원유는 2009년 47억 달러로, 전체 원유 수입량의 9.5%를 차지했다. 이란과의 교역이 흔들리면 국내 원유 수급에 큰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주한 이란대사, 이란 부통령 등은 직접 나서 추가 제재에 동참할 경우 관세를 200%까지 올리겠다는 등 강력한 무역 보복 조치에 나서겠다고 경고하고 있는 상황이다.

청와대는 부랴부랴 8월 20일 오전 7시 30분 경제금융점검회의(서별관 회의)를 긴급 소집해 이란 국영은행인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에 대한 제재방안을 논의했다. 하지만 별다른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향후 미국과 이란을 접촉한 후 결론을 내기로 했다. 이명박 정부는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면서도 이란의 반발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는 모습이지만 그러한 방안이 존재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일각에서는 멜라트은행의 2~3개월 영업정지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폐쇄를 바라는 미국의 요구도 충족시키지 못하고, 이란의 반발도 무마시키지 못하는 최악의 안이 될 수도 있다.

한미동맹만을 보고 달려왔던 이명박 정부가 한미동맹의 덫에 걸린 모양새다. 이번 이란제재 문제는 애초부터 한미동맹에만 매달리던 이명박 정부로써는 출구를 찾기 힘든 사안이었다. 미국을 중심에 둔 일방 외교가 현 시대에서 어떤 폐해를 낳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에 따른 한국경제의 피해는 불가피해 보인다.

금융거래 중단과 수출기업들의 피해 

이란 제재에 따라 당장 한국 기업들의 피해도 나타나고 있다.

당장에 이란과의 금융거래가 중단되면서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미국이 이란 제재법을 발표하자 7월 8일 이후부터 국내은행들은 이란과 관련된 수출입 거래를 전면 중단한 상태다. 이에 따라 이란과 무역거래를 하는 기업들이 수출대금을 회수하지 못하거나 신규자금을 받지 못해 자금난이 가중되고 있다. 8월 6일 무역협회에 따르면 국내 중소교역 업체들의 80%가량은 이란계 은행을 이용해 왔던 터라 사실상 수출입 거래가 끊긴 상태다.

다른 대체 수단을 찾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란계 은행 중 미국의 제재 리스트에 오르지 않은 소수의 몇몇 은행들은 국제적인 업무를 진행할 수 있는 역량이 크게 떨어져 현실적 대안이 되기 어려운 실정이다. UAE도 제재에 동참한 상태라 우회 수단을 찾기도 어렵게 되었다.

수출 역시 문제다.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의 대이란 수출은 중동 지역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수출액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라 피해는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현지 건설업계들은 신규 공사 수주는 거의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고, GS건설은 2009년 11월 14억 달러 규모의 가스탈황 프로젝트공사를 수주했지만 경제제재에 따른 자금회수의 어려움 때문에 지난달 공사를 포기했다. 탱크선, 벌크선 등 28척 가량의 배를 수주한 조선업체들 역시 타격이 크다.

더군다나 이란 원유수입 중단으로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3000원까지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현재 1700~1800원 선인 휘발유 가격이 두 배 가까이 뛰게 된다면 서민 가계의 충격은 엄청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석유관련 거래는 정상적으로 되도록 미국에 요구할 것이라고 하지만 한국 정부가 독자적인 제재에 나설 경우 이란의 원유공급 중단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 경제의 잠재적 손실  

하지만 이러한 것들보다 더 큰 문제는 단순히 이란과의 교역 피해가 현 상태에서만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향후 이란의 경제성장을 고려해 본다면 한국으로써는 큰 기회를 상실할 수밖에 없다. 이란은 석유 및 가스자원을 기반으로 한 풍부한 자금력과 약 7420만 명(이집트에 이어 중동 2위)의 거대 인구를 가진 발전가능성과 잠재수요가 큰 나라다.

한국의 대이란 수출은 2000년대 전까지는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다가 2000년대 들어 급속히 증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09년 세계경제 위기로 급등세가 꺾이는 모습을 보였으나 2010년 상반기 전년동기대비 수출은 48.6%, 교역량은 57.9%증가하며 위기 이전 수준을 뛰어넘고 있다. 2010년 상반기 수출액은 25억5000만달러로 이 속도대로라면 역대 최대치를 기록할 성장세다(※물론 이란제재로 이러한 속도가 유지되기 어려울 것임). 그만큼 갈수록 한국기업들에게 많은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는 나라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란과의 관계가 틀어지면 이를 포기해야 한다.

<한국의 대이란 수출액 추이(1981~2009년)>
(단위 : 천달러)
2000년대 들어 한국의 대이란 수출은 급격히 증가했다.
 2000년대 들어 한국의 대이란 수출은 급격히 증가했다.
ⓒ 한국무역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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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란은 한국이 강점을 가지고 있는 건설, 가전제품, 자동차 분야의 성장 가능성이 큰 나라다.

이란은 2009년 한국건설업계가 24억9000만 달러어치를 수주한 세계 5대 건설시장이다. 이란 건설시장은 국내건설업체들의 '달러박스'로 작용해 왔다. 향후 이란의 건설시장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란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실 직속 산업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2008~13년, 6년간 연평균 신규주택 수요는 150만에 이른다(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 향후 이란경제 현황은 KOTRA자료를 참조). 급격히 인구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1975년 당시 3500만 미만이었던 인구 수가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이후 베이비붐 세대로 인해 약 30년간 2배 이상 증가했다.

<2008~13년까지의 주택수요 발생 예상추이>
(단위 : 천 가구)

연도
신규주택수요
감소주택
재건축수요
총 주택 수요
2008
884
-154
421
1,285
2009
933
-158
443
1,365
2010
984
-162
467
1,431
2011
1,038
-166
493
1,511
2012
1,095
-170
520
1,625
2013
1,155
-174
549
1,685

비단 주택시장뿐만 아니라 향후 성장을 위해 사회기반시설을 더욱 확충해야 하는 이란은 건설관련 투자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BMI(Business Monitor International)에 따르면, 이란의 건설시장은 2010년 이후 향후 약 4~5년간 매년 약 6%의 성장이 기대된다고 한다. 더불어 전력수요 증가(매년 5000㎿의 새로운 전력 수요가 발생)에 따른 발전소 건설 요구 등 한국 기업들에게 많은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다. 최근 이란은 민간부문에게 소규모 발전소 건설이 전국적으로 허가된 바 있다.

7420만 명의 거대 인구 중 60%가 30대 이하로 구성되어 있는 이란은 새로운 가전제품 구입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 컴퓨터, 휴대폰 등의 가전제품시장 역시 큰 성장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BMI(Business Monitor International)의 2010년 1분기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컴퓨터기기, 휴대폰, 오디오·비디오, 게임기기 등의 이란 소비자 가전제품시장은 2010년에 82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는 2008년 실적인 73억 달러에 비하면 2년간 12% 증가한 수치로, 2014년까지는 108억 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등 가정용 전자제품의 한국 수출실적은 2010년 상반기 94%가 증가하는 등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휴대폰, 모니터, 컴퓨터하드웨어, 가전제품 등은 한국기업들이 세계에서 선전하는 분야로 지속 성장세에 있는 이란은 한국에게 많은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다.

자동차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이란은 1990년대 초부터 탈석유화 정책을 추진, 자국 제조업 육성정책의 일환으로 자동차 산업을 집중육성 하고 있다. 이란은 연간 130만대 이상의 자동차를 생산하는 중동 최대의 자동차 생산국(세계 16위)이다.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만큼 향후 자동차 관련 사업들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대이란 자동차 관련 수출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2억9911만 달러였던 한국의 승용차 수출 실적은 2010년 상반기까지 벌써 3억2786만 달러를 넘어서 전년동기대비 213%에 달하는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자동차 부품분야 역시 2009년 2억9994만 달러로 2008년에 비해 12.7% 증가했고, 2010년 상반기 2억2641만 달러를 기록하며 전년동기대비 66.4%의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란 제재로 인한 전반적인 교역에 차질이 생기지 않는다면 향후에도 큰 수출 증가세를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다.

결국 이명박 정부의 대미편중 외교는 한국기업들의 잠재적 성장 가치가 큰 이란진출 기회를 앗아가 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나아가 이란뿐만 아니라 이슬람 국가들과의 관계가 악화되어 간다면 그 피해는 더해갈 것이다.

한미동맹 만능주의, 이명박 정부의 자충수

서울 강남에 테헤란로가 있는 것처럼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는 서울로가 있다고 한다. 멜라트은행의 서울지점 설치는 한국이 이란의 주요 무역 상대국이라는 점 외에도 이란이 오랜 교역 상대국인 한국에 우호적인 감정을 갖고 있기에 가능했다. 이렇듯 한국과 이란은 상호 우호적인 관계를 확대해 왔다. 하지만 미국이 한국에 UN제재를 넘어선 독자적인 제재를 요구하자 이란과의 우호적인 신뢰 관계가 한순간에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한미동맹을 제1의 외교정책으로 내세우며 전시작전권 환수 연기, 한미FTA에 매달리는 이명박 정부로써는 미국의 요구에 별다른 대응을 할 수 없는 입장이다. 그렇게 '실용', '경제'를 강조하던 이명박 정부가 미국의 요구 앞에서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란과 교역이 없는 미국으로써는 이란제재로 인한 자국 산업의 피해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이란 핵 문제가 불거지면서 막대한 무기 수출 실적을 올리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에 향후 10년 동안 600억 달러 규모의 무기 패키지를 수출하는 계약에 대한 의회 승인을 요청할 예정이다. 미국의 해외무기 수출 사상 최대 규모가 될 전망이다(서울경제, 2010.8.15). 이러한 미국이 우리의 입장을 이해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세계는 미국 일방주의의 시대에서 다양한 세력들이 세계무대의 중심으로 진출하는 시대로 바뀌어 가고 있다. 미국에 편중된 외교는 후과가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명박 정부의 미국편중 외교는 향후 더 큰 피해를 불러올 것이다. 외교적 방향 전환이 절실한 때이다.


태그:#이란제재, #멜라트은행, #한미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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