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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라면 적어도 세상을 거꾸로 보는 관점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세상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설 수 있다. 또한 엉뚱한 생각으로 모든 것을 새롭게 창조해내야 한다. 이는 과장과 왜곡, 허상과 욕망으로 가득 찬 권력주의 세상에서 인간성 상실에 대한 회복을 꿈꾸는 하나의 모티브(동기)가 된다. 나, 너,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의 발현이 곧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기본 전제가 됨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게릴라, 아웃사이더, 이단아, 장돌뱅이 등 수많은 닉네임을 달고 다니며 사람들과 '엉뚱한 관계'를 이어가는 기인 작가 신종택(54). 하지만 이 또한 내면에 감추어진 순수한 인간성의 회복을 꿈꾸며 시작된 그만의 작품세계이자 인생철학이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설사 그것을 안다 할지라도 부러 반색하며 즐겨 동참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9월 2일부터 8일까지 부평아트센터 갤러리 꽃누리에서 열리는 9회 개인전 준비로 그는 요즘 더 없는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번 개인전은 사진작가 정희문과 김영승 시인이 함께해 나이를 잊고 사는 그의 작품세계를 다시 처음의 열정으로 환원시키겠다는 의지를 엿보게 한다.

 

지난 20일 오후 7시께 부평공원 인근에 있는 그의 작업실 근처에서 만난 그는 다짜고짜 저녁부터 먹자고 식당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검단에서 작업을 마치고 막 돌아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돌 아니면 브론즈(청동) 재료라 그 크기와 무게도 다양할 뿐 아니라 가공공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검단에서 작업할 때가 많다.

 

식당에 들어가 앉자마자 지칠 줄 모르는 그의 입담이 이어졌다. 법정 스님의 비움과 채움, 민주화 운동, 18년간의 교직 생활, 예술가로의 반항적인 삶,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 관용과 베품의 철학 등 짧지만 재차 강조되는 그의 이야기에 넋이 나갈 정도였다.

 

짧은 만남 속에서 그가 강조했던 것은 '정치가 사람을 망쳐 놓는다'는 푸념으로 들렸다.

 

"지금 여야 좌우가 어디 있나. 아군이든 적군이든 잘못된 걸 떳떳하게 말할 줄 알아야 한다. 인간답게 사는 사회를 꿈꿔왔는데, 정치가 너무 앞서가는 바람에 사람의 순수성을 자꾸 왜곡시키는 것 같다. (현상만 갖고) 제대로 봐서 잘 모르겠다면 '거꾸로'라도 봐라. 그러면 그 이면에 존재하는 본질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가수 김광석은 한창 전성기인 33세의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짧은 음악 활동이었지만 계층을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인기를 받았던 그 이유는 바로 현상에서 보이지 않는 인간의 내면 세상을 따뜻한 노래로 전해주었기 때문이었다. 그 중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라는 가사 내용을 보면 신종택 작가의 거꾸로 보는 세상의 의미가 무엇인지 조금은 이해가 가리라.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네 바퀴로 가는 자전거. 물속으로 나는 비행기, 하늘 위로 나는 돛단배. 복잡하고 아리송한 세상 위로 오늘도 애드벌룬 떠있건만 포수에게 잡혀온 잉어만이 한숨을 내쉰다~'

 

짧은 백발에 꽁무니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짧은 청반바지에 하얀 민소매 티셔츠 바람으로 혹은 짝 달라붙는 스키니 운동복 차림으로 자전거를 타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삶의 증표를 자랑삼아 표현하는 그의 행위예술은 언제나 청춘이다. 아니 언제나 거꾸로다.

 

"어느 생선통조림업체 대기업의 재벌가는 '지구본을 거꾸로 놓고 보니 온통 돈 밭이었다'고 말을 했더라.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의 의미를 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거꾸로는 순수한 인간 본연의 내면을 찾고 싶다는 의미 그 자체다. '나이가 먹을수록 입은 다물고 가방을 열라' 하였듯, 나누고 배려하는 공동체 문화의 회복이 곧 나의 작품이 인간들에게 전해주는 '거꾸로 메시지'인 것이다."

 

신 작가의 이력은 그의 인생철학만큼이나 굴곡졌다. 1984년, 당시로는 상상 못할 야외 조각전을 최초로 시도해 '저게 무슨 작품이라고'하는 핀잔 세례를 받았으며, 1990년 가나갤러리에서 열린 평면·입체·행위예술 전시회를 통해 보여준 몸을 팔아(?) 승부를 건 그의 작품 세계는 '저질과 변태'로 낙인찍히며 조롱을 당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야유와 질시 또한 당연한 것이라 받아들이며 인간이 누려야할 원초적 본능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그대로 고수해 나간다.

 

예술 나눔을 통한 사회 환원     

 

작가 신종택은 이번 9회 개인전의 제목을 '종택이의 짓거리'로 달았다. 짓거리, 언뜻 듣기엔 굉장히 불쾌한 단어 같지만 순수 우리말이다. '흥에 겨워 멋으로 하는 짓'이라는 뜻으로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내 흥대로 자연스레 즐긴다는 개념이다. 역시 신 작가의 인생철학을 담았다.

 

신 작가는 그의 엉뚱하고 기발한 작품세계와는 전혀 닮지 않은 여러 개의 직함을 매달고 다닌다. 인천조형작가협회 회장, 부평예술인협회 부회장, 인천시립미술관 부평유치 위원장, 부평문화재단 자문위원장 등 현실의 연결 고리를 끊지 않고 그가 가진 청춘의 열정을 이곳저곳에 쏟아 붓고 있다. 이건 어쩐지 그 답지 않다는 느낌이다.

 

"오해를 살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추구하는 엉뚱함과 '거꾸로'의 예술적 관점은 현실을 통해 반영돼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돈도 있어야 하고, 힘도 있어야 하고, 사회적 관계도 있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작품일지라도 세상을 변혁시키는 힘이 없으면 그건 '지나간' 작품에 불과하다. 하지만 작품의 철학을 알리고 그 메시지를 통해 교감을 한다면 작품은 곧 현실을 변화시켜 내가, 우리가 원하는 인간다운 세상의 구현으로 승화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랬다. 장돌뱅이이고 김삿갓 같기만 한 그의 행동과 작품세계는 언제나 아름다운 세상을 구현하고자 하는 그의 의지에 따라 끊임없이 재생산되며 현실과 연결돼있었던 것이다. 그는 예술인이든 일반인이든 자신의 내면과 맞닥뜨리며 수양을 통한 자기반성으로 사회를 위해 무언가를 남길 수 있는 그릇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작가 신종택은 편협한 장르개념에 속박되지 않고 조각은 물론 설치·영상·평면·퍼포먼스 등 전방위적 시각예술 부문에 관심을 보여 왔다. 미술평론가 이경모씨는 그의 이러한 작품 세계를 미술의 표현적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부단한 작가정신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리얼리티가 초월적이고 고정불변이며 선험적인 것이 아니라 특정한 사회문화적 조건 속에서 인간행위의 결과에 따라 생산되는 유동적인 실체라는 것이다. 현실에 대한 솔직성과 좀 더 거대한 가치에 대한 욕망에 사로잡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치 부나비처럼 부와 권력에 집착할지 모른다. 신종택의 작품에서 이 모든 현실적 상황은 진정성이라는 매개항으로 상호 교통하면서 재현과 함축의 과정을 거치며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고 있다."

 

그의 거침없는 표현처럼 '지랄을 해서라도, 몸을 팔아서라도' 작가 신종택을 알리고자 하는 것은 곧 인간 본연의 순수성을 회복하기 위함이라는 메시지가 어느새 마음을 다독여 놓는다. 아름다운 짓거리를 통해 마지막 몸부림에 고통스러워하는 신 작가는 마지막으로 지역 문화 발전을 위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작품하는 교사에서 전업 작가로 살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 지역문화는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다. 예술을 본업으로 해서 살아가는 지역 전문가들을 위해 관이 나서서 그들의 가치를 되살려주어야 할 것이고 (그것이 돈이든 공간이든 전시회든 상관없이), 형식적인 축제가 아닌 상시적인 순수예술 축제 메커니즘을 구현해 문화도시 부평을 가꿔나가는 데 작은 밀알이 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것이 바로 지역예술인과 지역문화가 연결되는 중요한 소통의 고리가 되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부평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신종택, #조형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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