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실세' 박지원과 '현직 실세' 이재오의 맞대결은 전직의 일방적인 공격으로 막을 내렸다.

김대중 정부의 실세였던 박지원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질타는 매서웠다. 박 위원장은 23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이명박 정부의 실세 이재오 특임장관 후보자를 호통에 가까운 질의로 거칠게 몰아붙였다.

이 후보자는 "네" 혹은 "잘 알겠다"는 짤막한 답변을 내놓는 데 그쳤다.

박 위원장은 이 내정자가 국민권익위원장 시절 검찰 특강에 참석해 검찰총장을 뒤에 세워 입장하는 사진을 거론하면서 "권익위원장과 같은 장관급인 검찰총장을 예우하는 차원에서 함께 가야 하는데 보기에 안 좋았다"며 "앞으로는 견습총리를 뒤에 세워놓고 실세 특임장관이 앞서가는 것 아니냐"고 따졌다.

이 내정자는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측근 차관 임명, 미국 생활비는 300달러? 박지원 일방 공세

박 위원장은 또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회동 결과를 전하면서 '정권 재창출'을 언급한 청와대 참모진에 대해서도 맹비난했다.

그는 "민생 문제가 시급한데 회동 자리에서 정권 재창출 하자고 하는 게 옳으냐"며 "설사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 해도 비서진들이 이렇게 발표하니까 염불에는 맘이 없고 잿밥에만 관심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그는 또 "이 대통령이 박영준 지식경제부 제2차관을 임명하면서 왕씨가 없으니까 '왕차관'은 없다고 했는데 정말 왕차관이 없느냐"며 "대통령의 발언을 꼭 이런 식으로 공개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박 위원장은 "(청와대 참모들에게) 서툴게 하지 말라고 하라"며 "이따위로 대통령을 모시니까 대통령이 실패하는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재오 내정자가 자신의 최측근을 특임장관실 차관으로 데려간 것도 도마에 올랐다. 박 위원장은 "나도 김대중 정부 시절 장관도 해보고 실세였지만 내가 원하는 사람을 차관으로 데리고 가지 않았다"며 "이 내정자가 측근인 김해진씨를 차관으로 데려가니까 기대하면서도 우려가 된다, 이런 거 하지 말라"고 다그쳤다. 이 내정자는 역시 "알겠습니다"고 짤막하게 답변했다.

지난 2008년 5월부터 2009년 3월까지 미국에서 머문 이재오 내정자의 10개월치 체류비도 문제였다. 박 위원장은 "이 내정자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미국에서 한 달에 생활비로 300달러를 쓰고 1년 식비를 293달러를 썼다고 했는데 이걸 누가 믿겠느냐"며 "이 돈으로는 햄버거도 못 먹는다"고 따졌다.

이 후보자는 "자료가 부실하다는 점을 인정한다"며 "친구집에 얹혀 살아서 제가 식비를 댄 적이 거의 없다"고 털어놨다.

측근의 남상태 연임 로비?... "남상태 사장 잘 모른다"

이재오 내정자는 이날 불거진 각종 의혹에 대해서는 극구 부인했다. 먼저 이날 청문회에서는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당시 이 내정자가 종친이었던 부산의 모 관광회사 이아무개 회장에게 친이계 의원들에게 불법정치자금을 건네도록 요청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권선택 자유선진당 원내대표는 "이모 회장이 불법정치자금 혐의로 기소돼 2심에서 유죄가 확정됐는데 2심에서 양형이 다소 낮춰진 이유가 '이 내정자의 요청에 따라 비자발적으로 정치자금을 기부했기 때문'이라고 판결문에 나와 있다"며 "사실이라면 정치자금법과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 후보자는 "그런 적이 없다"고 밝혔다.

민주당 의원들은 또 "이 내정자의 측근인 오동섭씨 등 한나라당 출신 인사 3명이 대우조선해양의 고문으로 들어간 것은 남상태 사장의 연임을 위해 정권 실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로비용 아니었느냐", "연임 로비 과정에서 비자금이 오가지 않았느냐"고 추궁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내정자는 "남상태 사장을 잘 모른다"고 고개를 저었다.

추궁 과정에서 박지원 위원장은 증인으로 나온 이상우 대우조선해양 상무에게 '불호령'을 내리기도 했다.

박 위원장은 이 상무가 경영상 자문이 필요해 한나라당 출신 3명을 고문으로 영입했다는 해명을 내놓자 "집권여당 인사들이 필요해서 했다고 하지 당신, 왜 거짓말을 하느냐"며 "남상태 사장에게 집권세력은 영원하지 않다고 전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사청문회 정회 불러온 박지원의 '호통'

'박지원의 호통'은 인사청문회의 정회를 불러오기도 했다. 약속된 질의 시간 5분을 넘겨 박 위원장의 질의가 이어지자 한나라당 의원석에서 불평이 터져나오기 시작했고 박 위원장이 이를 쏘아 붙인 것이 발단이었다.

박 위원장은 "민주당이 한나라당 의원들이 질의하는 데 그렇게 버르장머리 없는 짓을 했느냐"며 "할 말이 있으면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위원장에게 하라"고 소리쳤다.

이에 김성태 한나라당 의원이 "민주당의 원내대표면 초선 의원에게 버르장머리 없다고 폭언을 해도 되느냐"며 "폭언에 대해 엄중하게 항의하고 사과를 요구한다"고 반발했다.

국회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중재에 나섰지만 양당의 공방 끝에 결국 청문회는 정회되고 말았다.

한편 지난 20일 첫날 청문회에서 "야당의 치열함이 보이지 않았다"며 의원들에게 불호령을 내렸던 박 위원장은 이날 청문회에서는 최전방 공격수로 직접 나섰다. 박 위원장은 자신의 질의 순서에 발언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초시계가 작동하자 "누가 이런 식으로 운영하느냐"고 역정을 내는 등 초반부터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했다.

박 위원장이 '군기잡기'에 나선 탓인지 이날 청문회장에는 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대부분 자리를 지키는 등 첫날과는 여실히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