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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군대 많이 좋아졌다는"는 말은 군복무를 마친 남성들이 자주하는 말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군내 폭력과 자살, 군무이탈은 끊임없이 되풀이 되고 있다. 최근 들어 전방 부대에서 잇따라 발생한 총기 자살사고, 해병대원 성추행 사건은 병영문화의 개선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병영문화가 개선되기 위해선 지휘관의 인권의식 향상과 함께 장병들의 기본권을 보장할 제도적 장치의 확보를 꼽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군 인권의 현 주소와 함께 해외 사례를 통해 병영문화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앞으로 3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말]
영화 <탈주>의 한 장면.
 영화 <탈주>의 한 장면.
ⓒ 청년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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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9월 2일 개봉하는 영화 <탈주>(감독 이송희일)는 군대 탈영을 소재로 했다. 홀어머니가 자궁암 말기 선고를 받았지만 의가사제대 신청을 계속 거부당하는 강 일병, 상관에게 집요하게 성추행을 당해 온 박 상병, 고참들의 끊임없는 구타에 시달리던 김 이병 등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절박한 사연을 가졌다.

<탈주>가 한낱 허구로만 읽히지 않는 이유는 이 영화가 애써 외면하고 싶지만 군대 안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어두운 그림자를 솔직하게 직시하고 있다는 데 있다.

영화가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듯 지난 21일 화천의 한 군부대에서 경계근무 중이던 병사가 총기사고로 숨진 데 이어 22일에는 강릉의 한 군부대에서 순찰 중이던 병사가 총상을 입고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특히 화천에서 숨진 서아무개(21) 일병은 사고 발생 직전, 선임병으로부터 여러 차례 구타를 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탄약고 경계근무를 서던 서 일병은 후임병이 나간 사이 '탕'하는 총소리와 함께 발견되었으며 실탄은 서 일병의 K-1 소총에서 발사된 것으로 확인됐다. 군 당국이 구타와 총기사고와의 관련성을 조사중이지만 선임병의 폭행이 자살의 직접적인 이유가 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월 29일에는 군무이탈(탈영) 혐의로 지명수배 중이던 육군 모 부대 소속 김아무개 (27) 대위가 강원도 태백시의 한 원룸에서 목을 매 숨진 채로 발견됐다.

군인 사망자 수는 감소, 하지만 자살은 증가

지난 1월 국방부는 지난해 군내 사망사고가 전년 대비 16%(21건) 줄어든 113건으로 나타나 창군 이래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군 사망사고는 지난 2000년 182명, 2002년 158명, 2006년 128명, 2007년 121명, 2008년 134명, 2009년 113명 등 점차적으로 줄어드는 추세다. 하지만 군 사망사고 중 자살에 의한 사망은 여전히 전체 군인 사망원인 중 1위를 기록하고 있다.

2009년 전체 군 사망사고 113건 중 자살에 의한 사망사고는 81건. 지난 2000년 82명에서 2005년 64명으로 꾸준히 감소 추세를 보였으나 이후 2006년 77명, 2007년 80명, 2008년 75명, 2009년 81명 등 오히려 증가세로 돌아섰다.

작년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에 대한 국회 국방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김옥이 한나라당 의원은 "최근 5년 군 내부 사망사고 유형별 현황을 보면 2006년 77명, 2007년 80명, 2008년 75명으로 군 내부 사망사고 383명 중 자살이 232명"이라며 "(전체 사망자) 10명 중 6명이 자살사고여서 자살사고 비율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또 "자살원인을 분석한 결과 상당수는 사전조치가 취해졌다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던 내용"이라며 "군인 자살은 국가의 책임인 만큼 국방부가 국민건강보험공단, 교육과학기술부, 법무부 등으로부터 사고위험이 있는 장병에 대한 진료기록, 학교생활 내역 등을 제공받을 수 있도록 관련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사실상 유명무실하게 운영되고 있는 현행 '소원수리제도' 등 병사 구제수단이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대폭 개선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2005년 연천 총기난사사고 직후 정부는 병영생활 전반에 대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병영문화개선대책위원회'를 구성, 각종 대책들을 제시했다. 하지만 시민사회가 군 인권 문제를 해결할 중요한 제도로 도입을 주장했던 국방 옴부즈만 제도는 처음 취지보다 대폭 후퇴해 당시 국민고충처리위원회(현 국민권익위원회)에 군사소위원회를 설치하면서 군인 관련 민원을 해결하는 수준으로 정리됐다.

군인 인권 강조하면 군 기강이 해이해진다?

대한민국 군대 현실을 고발한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
 대한민국 군대 현실을 고발한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
ⓒ 에이앤디 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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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인권 전문단체인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은 장병들의 자살과 각종 군기 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임 소장은 "개인적 가치를 존중받던 신세대 장병들이 입대하는데도 지휘관의 인권의식과 군 시스템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며 "무엇보다도 군대 내의 불합리한 관행과 문화가 근본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임 소장은 현재 병무청 입영신체 검사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며 정신분열증이나 우울증, 불안증 증세가 있는 사람을 걸러낼 수 있는 '다면적 인성검사'(MNPI)가 다분히 형식적으로 행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신과적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 입대를 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 그는 "일단 입대를 하게 되면 의병제대가 쉽지 않다는 점도 군내 자살률이 떨어지지 않는 이유"라며 이에 대한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임 소장은 지휘관의 인권의식이 개선되어야 한다며 규정과 법규에 의한 부대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부 지휘관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남용하는 사례가 드물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간부들의 경우 지휘관이 일과 이후의 시간까지 전적으로 통제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고 전했다. 일례로 한 부대의 경우 지휘관이 휘하 간부들을 대상으로 '술자리는 2차를 가지 않고, 22시(오후 10시)까지 귀가하도록 하는' 이른바 '222 운동'을 추진하면서 오후 10시 이후에는 개인 승용차 열쇠를 모두 회수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상담 사례를 공개했다.

임 소장은 이런 행위는 합리적인 지휘권을 벗어난 월권행위이며 이런 분위기에서는 말단 병사들도 규제와 통제의 대상이 되어버려 기본적 인권을 보장받기 힘들어진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그는 '군인 인권을 강조하면 군의 기강이 해이해진다'는 일각의 우려에 대해 "병사들이 서로 존중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질 때 비로소 믿음이 생기고 전투력도 향상될 것"이라며 "인권이 존중되는 군 문화가 절실하다"고 역설했다.


태그:#탈주, #군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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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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