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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생이 체벌당한 이후 멍든 허벅지를 찍어둔 사진이다.
 한 학생이 체벌당한 이후 멍든 허벅지를 찍어둔 사진이다.
ⓒ A학교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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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1] 서울 A 고등학교 복싱부 김상현(19, 가명)군은 다른 선수와의 스파링을 끝낸 후 김아무개(37) 코치에게 턱을 세게 맞았다. 김군은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 1학년 때 일이다. 기절한 김군을 보고도 분을 삭이지 못한 김 코치는 계속해서 그에게 발길질하며 "정신 안 차려"라며 윽박질렀다. 체벌은 주변의 다른 사람이 말려 겨우 중단되었다.

[사례2] 같은 학교 복싱부의 박정철(19, 가명)군은 복싱대회에 출전한 지난 해 4월 1R를 끝낸 후 김 코치로부터 뺨을 맞았다. 귀에서 '삐삐' 소리가 들릴 정도로 맞은 박군은 이후 경기에 집중할 수 없었다. 결국 경기에서 지고 말았다. 박군은 이후 "더이상 복싱이 하기 싫다"며 한참을 방황한 채 마음을 잡지 못했다.

"코치가 술 마시면 그 날이 맞는 날이었다"

서울 A 고등학교 복싱부 3학년 학생들이 밝힌 김아무개 전 코치에 의한 체벌 사례다. 6명의 학생들은 입을 모아 "1학년 때는 하루에 한 번씩, 2학년 때는 1~2주에 한 번씩 체벌이 있었다"며 "코치가 술을 먹거나 기분이 나쁘면 그 날이 맞는 날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코치의 체벌이 반복됐고, 복싱부 김아무개(39) 감독은 이를 알고도 방관했다는 것이 학생들의 설명이다. 학생들은 "김 감독은 '너희들이 알아서 메달 따고 알아서 대학 가라'며 우리들을 방치하다시피 했다"며 "우리는 맞을 대로 맞고선 제대로 된 훈련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학생들은 "우리는 코치의 화풀이 대상, '샌드백'이었다"며 "자신이 화날 때 주워서 때린 후 버리고, 다시 주워서 때리고를 반복하는 등 코치는 우리를 '재활용' 쓰레기 취급 했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사용하는 매에도 단계가 있는데 '화남'은 플라스틱으로 된 매, '매우 화남'은 나무로 된 매, '빡침(굉장히 화가 났다는 뜻의 속어)'은 쇠몽둥이었다"고 주장했다.

복싱부 이진성(19, 가명)군은 "스파링이 끝나면 항상 맞아서 그 폭력이 무서워 스파링이 하기 싫었다"며 "복싱이 좋아서 시작했는데 언젠가부터는 살기 위해서, 맞지 않기 위해서 연습했다"고 말했다.

김 전 코치 "사실과 달라... 교육적인 차원에서 매를 든 것일 뿐"

한 학생이 체벌받은 이후 찍어둔 자신의 사진이다. 엉덩이가 까맣게 멍이들어있다. 아래는 학생들이 찍어둔 몽둥이 사진이다. 맨 위의 것이 쇠몽둥이이고 아래 두 개가 나무 몽둥이다.
 한 학생이 체벌받은 이후 찍어둔 자신의 사진이다. 엉덩이가 까맣게 멍이들어있다. 아래는 학생들이 찍어둔 몽둥이 사진이다. 맨 위의 것이 쇠몽둥이이고 아래 두 개가 나무 몽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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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전 코치는 이 같은 아이들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이다. 그는 "아이들이 술을 먹는 등 불량한 행동을 해서 교육적인 차원에서 매를 들긴 했지만 사적인 감정을 가지고 때린 적은 한 번도 없다"며 "김군이 기절한 적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 전 코치는 "경기 중간에 박군의 머리를 친 것은 복싱을 할 때 심하게 맞으면 죽기도 해서 정신 차리고 경기하라는 뜻에서 한 것"이라며 "내가 엄마 같은 역할을 해 아이들이 성적을 내고 대학을 가게 하려고 다그치다가 무리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코치의 입장에서 본다면 학생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일 터. 이에 대해 김 전 코치는 "학부모들이 내 지도방법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 아이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도록 한 것 같다"며 "그래도 손을 댄 것은 잘못이어서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치가 집에는 절대 말하지 말라고 해서, 부모님 마음이 아플까봐" 체벌에 대해 말하지 못했던 아이들은 결국 입을 열었다. 학부모들은 강력하게 학교 측에 문제를 제기해 김 전 코치는 지난 달 사표를 냈다. 체벌을 보고도 모른 척 한 김 전 감독도 감독직에서 경질됐다.

이렇게 문제가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대입을 코앞에 둔 아이들은 개학 후에도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코치가 무서워서다. 김 전 코치가 기숙사 사감이 돼 학교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체벌로 해임된 김 전 코치, 기숙사 사감으로 복직

이군은 "코치의 실루엣만 봐도 운동한 것처럼 온 몸이 젖도록 식은땀이 났다"며 "괴물을 보는 것처럼 무섭다"고 말했다. 이군은 김 전 코치와 마주칠까 봐 기숙사 밖으로 잘 나가지도 못한 채 생활했다고 한다. 박군은 개학 후 학교에 와서 김 전 코치를 보고는 겁이 나 다음 날 학교에 나가지 못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학교는 왜 김 전 코치를 직원으로 채용한 것일까. 학교 측 관계자는 "이 학교 졸업생인 김 전 코치는  굉장히 열의를 가지고 성실하게 코치 생활을 했다"며 "또 김 전 코치에게 가정도 있고 해서 파트타임이라도 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좋게 말하면 사명감이 센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폭력을 행사한 것"이라며 "툭하면 누구를 자르라는 민원이 들어오는데 한 가정의 가장을 해고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학교로 돌아온 것에 대해 김 전 코치는 "채용된 게 아니라 무급으로 자원봉사를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학교 측 관계자는 "60만 원 정도 받고 한 일"이라고 말했다. 학교 측과 김 전 코치의 진술이 엇갈리는 대목이다.  김 전 코치는 "학교 측에서 착각한 것"이라고 일축했다.

학부모들은 즉각 반발했다. 학부모들은 "그렇게 문제가 있는 사람을 그대로 두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서울교육청에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교육청은 학교 측에 김 전 코치의 해고를 명령했고, 26일 오전 학교 측은 김 전 코치를 다시 해고했다. 그러나 학부모들은 "26일 저녁에 김 전 코치가 저학년 복싱부 아이들을 데리고 외부에 나가 운동을 하고 돌아왔다"며 "코치에서 잘리고, 사감에서도 잘린 사람이 왜 아직도 학교에서 일을 하고 있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이에 대해 또 다른 학교 측 관계자는 "오후 5시 30분이면 모든 수업이 끝난다"며 "김 전 코치가 일종의 과외를 해준 것 같은데 방과 후의 일까지 우리가 어떻게 관여하겠냐"고 말했다. 학부모들은 "본래 오후 8시부터 9시 30분까지는 학교에서 정한 야간 운동 시간"이라며 "어제 김 전 코치가 딱 그 시간에 아이들을 데리고 외부에 운동을 나갔는데, 어떻게 코치도 아닌 사람이 그런 일을 할 수 있냐"고 반박했다. 해고 조치가 제대로 취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학부모 "처음 복싱을 시킨 내 발등을 찍고 싶다"

과도한 체벌로 좋은 성적을 낸다해도 그것은 상처뿐인 영광일 것이다. 사진은 서울 A 고등학교 현관에 전시된 트로피들이다.
 과도한 체벌로 좋은 성적을 낸다해도 그것은 상처뿐인 영광일 것이다. 사진은 서울 A 고등학교 현관에 전시된 트로피들이다.
ⓒ 이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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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들은 "코치가 당장 학교를 떠나 아이들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아이들이 폭행 당하는데도 수수방관하고 아이들의 진학과 훈련에 힘을 기울이지 않은 김 전 감독도 해고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불안정한 상황에서 아버지들은 코치가 되고, 감독이 되어야 했다. 처음 학교 측에 문제를 제기한 지난 6월부터 여섯 학생들의 아버지는 아들 뒷바라지에 '올인'하고 있다. 코치에게 보복 당할까 봐 학교에 보내지 못하고 직접 복싱장을 돌아다니며, 공원을 돌며 아들을 훈련시키고 있다.

한 아버지는 "이 복싱장 저 복싱장 다니며 동냥젖 얻으러 다니듯 운동을 시키고 있다"며 "아이들 데리고 숙소에 갔다가 밥 먹이고, 다시 훈련시키고 하느라 다른 일은 전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학교 때부터 운동을 한 아들이 이걸 못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싶어서 복싱을 못 그만두게 하고 있다"며 "처음 복싱을 시킨 내 발등을 찍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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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체벌, #학교 체벌,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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