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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화루(三華樓) 기생방은 서관(西館)이 폐지되자 자연스럽게 주인이 바뀌어 지금은 산홍(汕鴻)이가 주인 행세를 하고 있었다. 예전처럼 악공(樂工)이나 나인으로 들일 계집을 가려 뽑는 걸 접고, 특기랄 수 있는 사내 후리는 데만 몰두했다. 그러니 찾아오는 손님들 역시 끈적끈적한 계집의 속살 더듬는 데 이골 난 양반들이니 우선은 사람들 관심 끄는 얘기가 첫째요 그 다음이 허세를 떠는 쪽이었다.

그 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경환이 병조좌랑으로 한자릴 할 것으로 이미 알았던 지라 산홍이의 애교도 한층 강글어졌다.

"나으리께서 형조좌랑에 오르실 걸 의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만, 그 자릴 쉬이 꿰찰 줄은 뜻밖이었습니다. 앞으로 유생들의 권당(捲堂)은 보기가 힘들겠습니다."

권당. 이것은 요즘말로 단식투쟁이다. 성균관 유생들은 자신들의 뜻이 관철되지 않으면 종종 권당을 일으켰다. 이것은 권당을 일으키는 게 문제가 아니라 성균관 유생들이 나라에 항의할 일이 적지 않다는 말이다.

성균관이 소란스러우면 반촌도 그 바람을 탄다. 법령이나 규칙을 어겼다고 반촌에 들어가 함부로 조사할 수 없고 보니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권당에 물들기 마련이다. 정약용이 살인사건 조사에 나선 이 무렵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법령이나 법규를 어긴 건 금란(禁亂)이다. 그렇다 하여 반촌에 들어가 조사할 수는 없다. 조선왕조가 단속의 대상으로 삼은 소나무 벌채의 금지나 임의적인 도살, 양조 등을 어기고 반촌에 숨으면 더 이상 추적이 불가능하니 어찌할꼬.>

반촌에 사는 사람들은 백정은 아니지만 소의 도살과 판매에 관여했다. 비록 천대 받았지만 특수한 구역으로 인정받는 또 하나의 이유이고 보니 반촌 사내들은 사치스러운 복색을 즐기고 폭력적인 기질을 살리고 있었다. <한경지략> 시전의 '현방(懸房)' 조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현방은 쇠고기만을 전문적으로 파는 푸주간이다. '현(懸)'은 달아맨다는 뜻으로 현방은 시전에 속하며 나라에서 정식 인가를 받은 가게다. 도성 안팎엔 스물 세 곳의 현방이 있다 했는데 서울 성곽 10리 안까지 스물 세 곳의 정육점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잠깐 선대왕 때인 <영조실록> 6년조의 기록을 더듬어 보자.

<형조판서 김취로(金取魯)>의 말을 듣건대, 반인이 하는 짓은 해괴하다 하겠다. 북부의 장의동 주위에 금송의 정령이 행하여지지 않기에 사람을 시켜 살펴봤더니 반인의 무리가 생솔을 함부로 베어 가기에 사람들이 잡으려 하니 도끼로 사람을 찍고 성을 넘어 도주하며 그대로 반촌 안에 숨어버렸다. 모든 금란에도 반촌엔 감히 들어갈 수 없다하니 참으로 민망한 일이다.>

그런가하면 <영조실록> 41년조엔 사간원 포교가 반촌에서 도둑을 잡았는데 성묘(聖廟) 가까운 곳에서 시끄럽게 했다 하여 포도대장의 파직을 요청해 기어이 허락을 받아냈다는 기록도 보인다. 정조 때로 넘어오면 반촌에 사는 정한룡(鄭漢龍)이란 자가 환도로 사람을 공격해 무릎뼈가 절반이나 떨어져 나갔고 상해를 입은 그 사람은 그로 인해 사망하여 살인사건의 재판을 하게 됐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러한 반촌 사람들의 실상을 바로 볼 수 있는 게 <반궁잡영>이다.

반인은 본시 송도에서 온 사람들이라네
여자의 곡(哭)소리는 노래 같고
사내들 차림은 사치스럽네
호협한 성격을 살피면 연(燕)과 조(趙)의 기미를 띠고
풍속과 노래가 괴이해 서울과는 다르네

반인들의 목소리와 곡소리가 개성사람과 비슷하다는 것은 그들이 개성 출신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양에도 사람이 있고 그들도 소리치며 말하고 곡을 하는 등 소란을 떨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쓰는 언어는 특수한 방언이다.

성균관 주위가 특수지역으로 고립된 것이 여러 문헌으로 증명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고립된 지역에 사는 이곳 남자들. 그들은 사치하고 폭력적이라지만 그런 인물 중의 하나인 채직동도 알 수 없는 인사였다.

성균관에 직동(直童)으로 근무하니 들은 풍월이 있어 글줄이나 아는 건 당연했으나 조그만 이익을 던져주던 오경환의 부추김을 받아들인 건 자신의 뜻이라기보다 성균관 유생 김씨의 꼬드김 탓이었다. 그가 말했다.

"우리 집안은 정순왕후의 핏줄이니 힘이 없는 양반이라고들 하네만, 그렇다고 자네같은 직동을 수복으로 올리는 건 일도 아니라고 보네. 어떤가, 대비마마의 근심을 해갈시킬 담채화를 만들지 않겠는가?"
"무슨 말씀이신지."

"자네의 손재주가 남다르다고 들었네. 그러니 미로(迷路)를 만들라 그 말이야. 동글동글 꼬부장하게 만들어 개미가 셋구멍으로 찾아드는 방법도 좋겠지만, 대비마마께선 사대부가의 몸채를 위주로 보물찾기를 즐기는 것 같네. 더구나 그런 그림이 담채화인 경우는 말할 필요가 없지."

비록 정순왕후 김씨가 세력의 뒤안길에 있지만 아직도 그녀를 추종하는 벽파가 있으니 겉으론 잠잠해 보이나 그녀의 움직임은 물속의 급류나 다름없었다. 김씨가 말했다.

"자네가 아는지 모르겠네만 우리 성균관 유생들은 자넬 하인 쯤으로 생각하지만 난 다르네. 자넬 내 동지 쯤으로 생각하니까. 그래서 이번에 자네가 담채화로 대비마마를 흡족하게 한다면 자넬 일단 직동에서 수복으로 올리고 장차 도화서 화원을 삼을 것이네."

그의 눈은 아직도 반신반의하는 채직동을 힐끔거리며 소매 속에서 검고 칙칙한 얄따란 물건을 꺼냈다. 옻칠을 했는지 불빛을 받자 빛살은 진저리치듯 어른 거렸다.

"이 물건이 주목(朱木)으로 만든 것이네, 돈냥이나 있는 사대부들은 집안사람이 세상을 버리면 연년세세 복을 받고자 지문(誌文)을 쓰지 않던가."

"지문이라면 무덤 속에 넣는 글 아닙니까?"
"그렇지."

"그러나 주목은 목탁을 조각하는 나무가 아닙니까."
"바로 보았네. 바로 그 나무야.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을 산다는 나무가 목탁으로 깎이어 스님들이 또르륵 딱, 또르륵 딱, 두드리면 그 울림에 중생이 잠을 깨라는 뜻도 있지."

김씨는 마뜩치 않은 듯 혀끝을 찼다. 자신이 성균관에 어렵게 들어온 것에 대해 그 은혜를 갚고자 일을 했는데 결과가 잘못 됐다는 것이다. 선대왕의 총애를 받았던 조씨의 무덤 가까이 문인방을 이끌던 송덕상과 그의 부인을 묻었는데 탈이 생겼다는 것이다.

"자, 이걸 한번 보게."

채직동은 김씨가 건네는 칙칙한 것을 받아 눈으로 살폈다.
<北來妖士鄭持平單知一絶之死未知萬代榮華之地>
'북쪽으로부터 요사스런 학사 정씨 성을 쓰는 지평이 와서 이곳이 흉한 곳이므로 이장을 권할 것이니 그의 말을 듣지 않아야 만대에 영화가 이어진다'

김씨의 뒷말이 이어졌다.
"사암(俟菴)이란 호를 쓰는 정가 말이야. 정약용이! 그 자가 사헌부 지평으로 있을 때 장감찰을 앞세워 수사망을 좁혀오자 급히 마련한 계책이 도시혈(盜尸穴)이었네. 사체가 사라지는 무덤 말이네. 그때, 송덕상의 처 동파의 무덤에 자네가 들고 있는 그 글귀를 넣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자의 성이 정씨(鄭氏)가 아니라 정가(丁哥)였네. 성을 틀리게 쓴 일로 인해 벽파의 존재가 드러나 내가 아주 곤란을 당했다니까. 해서···."

"알겠습니다. 그리지요. 저번에 주신 모본을 근거로 사흘 후 삼화루로 가져가겠습니다."
"한 가지 참고 삼아 머리에 담아두게. 자네가 그릴 담채화는 임오년에 공을 세운 윤씨 성 쓰는 별감(別監) 댁이라 했네. 그 사람 대비마마 가까이 있으니 행세께나 할 것이야. 그리되면 자네의 입지도 좋아지리라 보네. 그런 줄 알고 나는 돌아가 대비마마께 일의 진행사항을 알리겠네."

자리에서 일어나 미닫이를 열던 김가의 눈이 크게 치뜨였다. 문 앞엔 해거름 녘 산문 입구에서 애를 태우며 조바심치는 여인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녀의 왼쪽 어깨엔 스님들이 외출할 때 쓰는 송낙이 끼어 있었다.

여인이 깊은 산사를 찾아가 산문 입구에서 근처 마을로 탁발 나간 스님을 애타도록 기다리는 건 무엇 때문일까. 더구나 벽에 붙은 그림 속 여인은 왼쪽 귀 밑에 콩알만한 점이 있었다. 그것으로 보면 여인은 정순왕후가 분명했다. 내명부가 발칵 뒤집혔다.

"어느 못된 놈이 이런 그림을 그린 게야. 도화서 별제는 그림 그린 자를 잡아들이지 않고 뭐 하는 게야!"

[주]
∎주목(朱木) ; 목탁을 깎는 나무.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으로 알려져 있다.
∎성묘(聖廟) ; 공자를 모신 사당
∎지문(誌文) ; 무덤 안에 이력 등을 적는 글
∎송낙 ; 소나무 겨우살이로 만든 여승이 쓰는 모자


#추리,명탐정,정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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