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서울 미아동 영훈초등학교 학생들이 원어민 교사의 지도를 받으며 영어로 수업을 하고 있다.
 서울 미아동 영훈초등학교 학생들이 원어민 교사의 지도를 받으며 영어로 수업을 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엄마, 영어로 존댓말은 어떻게 해?"

3학년에 들어와 영어를 처음 배운 아이에게 영어공부가 어떠냐고 묻자, 아이가 처음으로 한 질문이다. 남들은 어릴 때부터 차에서 영어노래도 들려주고 학원이나 학습지로 영어를 배우는데, 우리 아이는 3학년에 올라가 처음으로 영어를 배웠으니, 궁금하기도 할 터. 평소 존댓말을 잘 안 한다고 혼날 때가 많았기 때문이었을까.

"어, 영어는 반말, 존댓말을 따로 안 써. 어른이나 아이한테나 같은 말을 써. 선생님이나 학생이나 다 Hi, Hello 하잖아."

이야기하는 김에 조카 예를 들었다.

"데니스가 너한테 우리나라 말 할 때도 반말처럼 하잖아. 그게 그 나라 말에 존댓말이 없어서 연습이 안 되어 있어서 그래."
"아, 그래?"

"영어시간에 선생님 말씀 잘 알아듣니?"
"엄마, 스탠OO가 뭐야?"

"스탠? 스탠드 업? 어, 그거 일어서라는 말이야."
"아, 그걸 잘 몰랐네."

'문화'는 없고 '기능'으로 전락한 영어수업

올해부터 3, 4학년 영어수업시간이 1시간 늘어나 주당 2시간이고, 5, 6학년은 내년부터 3시간이 됩니다. 이 때문에 초등학생 수업시수가 더 늘어나 학생들의 학습부담이 늘어난 셈입니다.
 올해부터 3, 4학년 영어수업시간이 1시간 늘어나 주당 2시간이고, 5, 6학년은 내년부터 3시간이 됩니다. 이 때문에 초등학생 수업시수가 더 늘어나 학생들의 학습부담이 늘어난 셈입니다.
ⓒ 신은희(교과부자료)

관련사진보기


배운 데까지 교과서에 나온 문장을 이야기해보니 그건 하는데, 교실영어가 어려웠다는 이야기이다. 2학년 겨울방학부터 '아이 영어를 어떻게 하나' 고민하면서도, 한글도 학교에 들어가 익혔듯이 영어도 공교육만으로 어떻게 공부를 할 수 있는지 알아보자고 마음먹었다.

학교에서 받은 CD를 1단원만 같이 보고 가끔 보라고만 했지 바빠서 알아서 하랬더니 교실영어를 몰라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눈치보며 따라했나 보다. 부랴부랴 교실영어 몇 가지 알려주니 엄마, 아빠에게 "sit down", "stand up", "open the book", "close your mouth"라고 시키며 즐거워했다.

영어전담을 오래한 한희정(수유초) 교사는 아이들이 이런 의문을 갖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영어는 다른 나라 언어이기 때문에 한글과 다른 점을 알아가면서 배워야 하고, 문화적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영어교육과정을 보면 바로 Hi, Hello부터 들어가고 문화적인 이야기는 그 다음에 간간이 나온다.

그런 후 다시 지난 주에야 영어책을 꺼내고 복습에 들어갔다. 사회, 과학부터 복습하고 다시 영어 1단원부터 들어보는데 아이는 영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유치원 다니는 동생이 더 열심히 따라한다. 테이프를 들은 지 4일쯤 돼서야 아이가 먼저 책을 들고 카세트 앞으로 앉는다. 이제 겨우 영어에 조금 마음을 연 것일까? 단어는 많이 기억하는데 문장은 잘 기억을 못하나 보다.

남자 아이들은 싫어하는 놀이와 게임

CD는 마우스를 클릭하면서 봐야 해서, 3단원부터는 테이프를 틀었다. 그런데 계속 들어도 중심문장을 듣기가 쉽지 않다. 결국 다른 거 하나도 하지 않고 집중해서 듣고 아이와 단원마다 나오는 핵심문장을 복습했다. 교과서 뒤에 혹시 핵심문장이나 단어목록이 나와있나 찾아봤는데 없다. 아이들에게 어려운 거 공부시킬까봐 그런 것일까? 하지만 단원마다 4차시까지 읽고, 따라하고, 챈트와 노래하면서 중심되는 내용이 무엇인지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다.

게임을 해보자고 하니 싫다고 한다. 그냥 문장을 반복하는 정도만 따라한다. 초등영어는 흥미를 기른다는 목적 때문에 놀이와 게임이 많은데, 이건 남자 아이들이 싫어하는 방식이다. 고학년에 가면 부진아 중에 유독 남학생이 많다. 조진희(영일초) 교사는 "영어가 언어라서 여자가 더 유리한 데다 이런 학습방법 때문에 남학생은 더 불리하다"고 이야기한다. 최근에는 남학생을 고려해 과거 방식을 섞어서 가르치는 교사들도 많다.

나오는 단어나 문장도 순서가 뒤섞여있다. Happy birthday to you에 thank you가 나오다가, This is for you도 나온다. 이걸 열심히 복습하고 다음 단원에 가니 그제서야 단원 제목에 This is for you 가 나온다.

"뭐 이래?"

단어는 늘어나고 문장도 어려워졌다

3, 4학년이 작년까지 배운 7차와 올해 배우는 개정교과서 내용을 비교한 것입니다. 4학년 내용이 3학년으로 내려와 학습양이나 부담이 더 많아졌습니다. 영어교육의 네 영역(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를 균형있게 한다는 명분입니다.
 3, 4학년이 작년까지 배운 7차와 올해 배우는 개정교과서 내용을 비교한 것입니다. 4학년 내용이 3학년으로 내려와 학습양이나 부담이 더 많아졌습니다. 영어교육의 네 영역(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를 균형있게 한다는 명분입니다.
ⓒ 신은희

관련사진보기


한희정 교사는 "2시간이라는 이유로 영어교과서가 어려워지고 양도 많아졌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사실 정보 묻고 답하기'라는 의사소통기능에서 작년까지는 "What's this? It's a pen.(1학기)"이나 "How many cows? I have two cows(2학기)"였다면 "What time is it? It's twelve"가 2학기에 새로 나왔다. 이 표현은 전에 4학년 때 나온 것이다. "Do you like __?"라는 문장에 들어갈 단어도 무궁무진하다. 2단원을 배울 때 아이가 가져온 학습지에 나온 단어(동물 이름)가 너무 어려워 사전을 찾아야 할 정도였다.

단어 수도 많이 늘었다. (7차) 450개 이내→(2007개정) 500이내→(2008개정) 520개로 되었다. 2006년 교육과정심의회를 할 때에는 500개 이내냐, 500개 이상이냐 갖고도 한참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실제 3~6학년에 나오는 단어 수는 이보다 훨씬 많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굴절어, 파생어, 고유명사, 기수, 서수, 외래어 등은 학습해야 할 어휘수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이들은 내년부터 검인정교과서를 쓴다. 14종이나 되는 검정교과서를 통틀어보면 얼마나 많은 어휘를 알아야 할까? 

지금 3학년을 가르치는 영어전담 교사 이야기로는 지난해(7차)에 비해 수업하기는 더 수월하다고 한다. 일단 주당 2시간으로 늘어나 내용을 복습할 시간이 늘었고 1단원마다 4차시씩 공부를 하면, 어지간하면 따라온다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아이들이 사교육을 받아 미리 알고 있는 학교 상황이다.

만약 우리 아이처럼 사교육을 전혀 받지 않은 아이들끼리 모여 있으면, 교실 영어도 모르는 상태이고, 외국어를 무조건 따라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런 아이들의 특성을 교사가 다 고려하면서 수업을 할 수 있을까? 담당 교사에게 물어보니 "그런 경우는 어렵죠"라고 한다. 오죽하면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들이 사교육 안 받고 수업하는 아이들이 너무 불쌍하다고, 안 시키면 기죽고 고생한다고 꼭 시키라고 할까? 왜 엄마 때문에 아이가 고생을 해야 하냐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영어 전담 교사들에게 "이런 교육과정이라면 교과부가 또 시수가 부족하다고 시간 늘려야 한다고 하는 거 아닐까?"라고 하니 대부분 "그럴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영어만 계속 늘려야 할까? 그렇지 않다.

초등영어 13년, 사교육비 늘고 학습부담만 키워

그것보다는 영어를 배우는 목적부터 제대로 세워야 한다. 영어는 소통의 수단일 뿐이지 목적은 아니어야 한다. 이병민 서울대 교수는 "국가수준의 목표부터 세우고 외국어로 배우는 환경(EPL)에 맞는 교수법이 필요하다"고 했다.

초등영어가 도입된 지 13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제대로 된 평가나 교수법이 없다. 3, 4학년 때는 게임하고 놀면서 파닉스(음철법)도 안 가르치다가 5학년 때 단어가 팍 늘어나 부진아 생기고, 6학년 가면 "저 영포(영어포기아)예요"하게 만들었다. 이번에는 영어수업시수 늘리고 그간 하던 방법에서 근본적인 변화도 안 줬으면서 파닉스만 들어갔다고 6학년 때 에세이 쓰라고 한다. 이대로만 따라하면 영어를 잘 한다고? 어떤 영어를? 이에 대한 답은 어디에도 없다. 그냥 잘 한다고만 되어있다.

핀란드 교육과정의 이론적 배경이 되는 비고츠키를 연구하는 배희철(강원 지암분교) 교사는 "영어는 모국어를 잘 배우기 위한 수단"이라고 한다. 언어는 비교대상이 있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전문가들이 모국어 학습이 어느 정도 완성된 청소년기에 외국어를 배우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초등학교 3학년은 그래서 영어를 배우기에 너무 아까운 나이가 아닐까? 3학년은 1, 2학년에 배운 국어를 바탕으로 한글 어휘가 대폭 늘어나고 나와 세상을 분리시켜 생각하는 시기일 뿐 아니라, 존재에 대한 고민도 싹트는 시기다. 3학년에 오면 문자를 비로소 제대로 인식하여 책을 볼 때 빨려들 듯이 읽게 된단다. 또 3학년은 구체어 발달이 가장 폭발적인 시기라고 한다. 아이와 같은 학년을 가르치면서 학교와 집에서 아이들의 이런 성장을 누구보다 가깝게 지켜본 결과다. 

그런데 모국어 교육의 꽃이 피기 시작할 때 다른 나라 언어인 영어를, 그것도 제대로 된 교수학습이론도 없는 영어를 가르치다보니, 모국어에 대한 고민은 저만치 달아나버렸다. 아이의 생각과 말이 어떻게 커나가는지 전혀 돌아보기 어렵고 영어시간에 스트레스나 받지 않게 해야겠다는 생각에 남는 시간은 테이프나 CD를 들으라고 닦달하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사교육시장에 영어교육을 맡기고 아이의 영혼발달은 상관없이 무조건 영어를 잘하라고 닦달하게 된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영어를 보는 눈부터 새롭게!

2008년 시애틀 공항 출구에 있던 사진이라고 합니다. "신발을 벗어주세요"하면 될 것을 국어 체계를 잘 몰라서 이렇게 번역했다고 추측됩니다.
 2008년 시애틀 공항 출구에 있던 사진이라고 합니다. "신발을 벗어주세요"하면 될 것을 국어 체계를 잘 몰라서 이렇게 번역했다고 추측됩니다.
ⓒ 이동갑

관련사진보기


"제발 너의 단화를 제거하십시요"

같이 근무하는 선생님이 2008년 시애틀 공항에서 본 문구다. 다른 건 몰라도 국어를 잘 몰랐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냥 "신발을 벗어주세요"하면 될 것을 말이다.

이런 현상은 공교육 현장에서도 흔히 일어난다. 2008년에 1, 2 학년 실험본을 검토할 기회가 있었는데, 교과서 학습목표에 "~에 대한 나의 생활을 알아봅시다"라고 써있었다. 일일이 "OO를 잘 하고 있나요?", "OO 생활은 어떻게 하고 있나요?"라고 바꾸면서 '이 사람이 영어로 about를 먼저 써놓고 번역한 건가?'란 생각이 들었다. 어색한 번역글 때문에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는 현상은 누구나 겪어봤을 것이다.

영어사교육비를 줄이고 도농, 지역, 계층간 격차를 줄인다고 도입된 초등영어. 13년이 지나 다시 사교육비를 줄이고 격차를 줄인다고 시수가 많이 늘어났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영어를 잘 하니 더 어려워도 된다고 수준을 높여놓았다.

공교롭게 그 첫 대상이 된 올해 초등학교 3학년. 하지만 학부모는 영어시간이 늘어나니 더 일찍 사교육을 시킨다. 그렇다보니, 사교육 안 받고 집에서 복습도 어려운 아이들은 그냥 부진아가 되고 만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사교육에 의존할수록 교과부는 잘 하는 학생들이 많고 격차가 크니 수준별 수업을 하자고 하면서 또 영어교육 수준을 높일 것이다. 지금까지 계속 그래왔다. 그럴수록 사교육비만 계속 들고 아이들은 힘들어진다.

해결책은 사교육이 아니다. 우선 영어에 대한 두려움을 직시하고 공교육에서 영어교육의 목표부터 세워야 한다. 아울러 아이들이 모국어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이후 아이들이 주변과 소통하는 도구로 영어를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게 올바른 초등영어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이게 바로 영어 사교육 안 시키고 3학년 교육을 고민하는 엄마의, 영어공교육정책의 허구성을 연구하고 대안을 고민하는 교사의 마음이다.

덧붙이는 글 | 초등영어교육은 사교육비를 늘리고 아이들을 유치원때부터 힘들게 하는 주범입니다. 초등학교 교육도 영어와 기타교육으로 나뉠 정도입니다. 하지만 교육은 총체적으로 바라보고,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나는 가가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정치적 목적이 더 커진 영어를 초등부터 계속 시켜야 하는지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와 현장 교사들의 바람입니다.



태그:#초등교과서, #초등영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