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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의령에서 뜻하지 않게 닷새나 머물렀습니다. 사흘 전부터 오락가락하는 날씨 탓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이번 여정에선 고심 끝에 자전거 대신 도보로 이동 중이기 때문입니다. 말 그대로 '살인더위' 속에 자전거로의 이동은 결코 포기하고 싶지 않은 숱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여정 자체를 어렵게 하는 요소들이 있어 아쉽지만 최선의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어제(29일) 오늘 이야기를 하지요. 양일에 걸쳐 각각 정암과 율산마을을 둘러 봤습니다. 정암은 지난 주말까지 닷새간 소싸움 대회가 열렸던 의령읍에서 멀지 않은 곳이고, 율산은 낙서면에 속해 의령읍에서는 버스를 타고 신반이란 곳을 거쳐 들어가야 합니다. 유동인구가 적다 보니 배차 간격이 보통 두어 시간입니다. 오시려면 알고 와야겠습니다.   

 

 

이 두 곳의 공통점은 산천초목 우거진 소박한 시골이란 것 외에 애석하게도 '4대강 사업' 구역에 묶여있단 것입니다. 정암은 김두관 경남도지사의 만류로 일단 사업이 보류된 상태지만 곧 재개될 거란 시각이 지배적이며, 율산은 얼마 전 봤던 함안과 마찬가지로 지난해 겨울을 시작으로 준설작업이 한창입니다.   

 

정암마을 사정부터 알려드리면 일단 이곳 주민들은 아직 4대강 사업에 따른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 사업이 일시 보류 상태이며, 토지주택공사와 해당지역 주민들 간의 보상을 둘러싼 협상 진행단계이기 때문입니다. 보류된 사업을 두고 무슨 협상이냐 하겠지만 이것이 밑어붙이기식 4대강 사업의 단면을 보여준다 하겠습니다.

 

 

마을은 아름다웠습니다. 강길 따라 쌓은 둑방 위에서 바라보니 물은 물대로, 땅은 땅대로 생명력이 넘쳤습니다. 7~8월 불볕더위에 영근 쌀보리는 어느새 노란 빛을 띠며 바람결에 춤추고 있었고 강물 위엔 이름 모를 식생들이 풍성히 자라고 있었습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물 아래에는 더 많은 생명들이 그들만의 오랜 동맹과 질서를 바탕으로 마을을 꾸리고 있겠지요.

 

하지만 4대강 사업이 시작되면 제방 따라 흐르는 강물 속 모든 동식물이 떼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물 속 뿐이겠습니까. 강바닥을 파헤쳐 긁어낸 준설토는 결국 지금 곡식이 영글고, 백로와 왜가리 등이 노니는 푸른 논밭으로 옮겨져 앞서 본 함안의 그곳처럼 이 일대를 초토화시킬 겁니다. 

 

그렇다면 당사자인 이곳 주민들 의견은 어떨까요. 마침 둑방 근처 집 앞마당을 쓸고 있는 노인 한 분을 만났습니다. "할머니, 여기 4대강 사업 중인 거 아세요?" "알지. 지금 보상 때문에 난리인데." "이거(사업) 해도 괜찮을까요?" "보상만 잘 해주면... 해도 되지." "그럼 여기 이런 강, 들 다 망가지는데요?" "그렇기도 해. 나도 어떻게 될진 몰라."

 

마을 입구 커다란 나무 아래 앉은 어르신 몇 분과 더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이번엔 찬성이냐 반대냐가 아니라 4대강 사업의 주목적이라는 치수에 관한 실상을 여쭸습니다. "어르신, 여기 홍수 피해가 잦은가요?" "아니, 제방 쌓고 나서는 한번도 안 났지." "홍수나 가뭄 피해 막으려고 4대강 사업 한다는데요." "..."

 

4대강 사업과 관련해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일반적인 반응입니다. 특히 고령일수록 남은 여생 보상금이라도 받아 얼마간 편히 살고 싶어 하거나, 그저 나랏일 하는 '분'들은 똑똑하고 훌륭한 사람이라 당신이 싫어도 응당 따라주는 게 맞다 생각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의아한 것은 대부분 주민들의 설명에 따르면 별다른 치수가 필요없는 듯 한데도 어째서 이런 지역들이 해당사업 구역으로 책정됐나 하는 겁니다. 

 

정암마을에서 나오는 길, 한참동안 버스가 오질 않아 순찰 중이던 경찰차를 픽업했습니다. 가는 방향이 달랐지만 여행 중이라니 선뜻 태워줬습니다. 보조석 앉은 경찰이 무슨 일로 왔냐 해서 잠시 머뭇거리다 사실대로 전했습니다. "4대강 사업 한다기에요..." 그러자 기가 차다는 듯 혀를 찼습니다.

 

종종 외지인 주제에 지역발전을 가로막는다는 식으로 적대감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어 조심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앞에 앉은 경찰은 4대강 사업으로 인한 부작용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었습니다. "수백, 수천 년 자연이 만든 물길을 사람이, 그것도 몇 년 만에 바꾼답시고... 이게 대체 얼마나 큰 재앙이 될 지 모르고..."

 

 

오늘 오전 본 율산마을은 상황이 더 심각합니다. 신반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낙서로 들어가는데, 얼마지 않아 이제는 '익숙한' 풍경이 내릴 때임을 알렸습니다. 차도 옆 밭작물이 자라야 할 땅에 예의 허옇게 마른 모래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도 앞자리 앉은 중절모 쓴 노부께 여쭸습니다. "어르신, 4대상 사업한다고 저런 거(무덤 같은 흙더미들) 맞죠?" "응, 맞어." "여기 홍수 피해가 자주 나나요?" "아니야, 둑방 쌓고는 계속 괜찮았어." 정암에서와 같은 대답이었습니다.

 

마을 표지석을 중심으로 세 갈래로 뻗은 낙동강로에서 우측을 바라보니 '낙동강이 살고, 사람이 살고, 지역경제가 살아납니다' 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아주 잘 보였습니다. '낙동강이 살고 사람이 살기는 우라질...' 순간 부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오가는 사람도 몇 없는 이런 산골마을까지 들어와 수목을 쳐내고 강바닥을 파헤치다니요. 대체 누구를 설득해 사업승인을 내고 무엇을 위해 이러는 건지 생각할수록 의아했습니다.    

 

 

오른편 도로 따라 10여 미터를 걸어갔다 다시 반대 방향으로 걷는데 또다른 플래카드 하나가 눈에 띕니다. '하천부지 경작금지 및 자진철거 - 의령군수'. 이유는 국가하천으로서 남강 낙동강 살리기 사업을 시행한다는 것입니다. 얼척이 없어 할말을 잃고 있는데, 갑작스레 근처 풀숲 웅덩이에서 백로 등 희고 하얀 여름철새들이 푸더덕 날아오릅니다. 그 수가 상당해 적잖이 놀랐습니다. 생각해보니 사람은 보상이라도 받는다지만(벼룩의 간을 대가로 한) 이 땅의 또다른 주인인 이들은 어떡합니까.

 

소리없이 짓이겨지고 있는 산천을 한참 바라보다 헛헛하고 노기어린 맘으로 돌아섰습니다. 버스 시간을 몰라 될대로 되란 식으로 걷기 시작했는데 금세 소형트럭 한 대가 다가왔습니다. 손을 들기도 전에 속도를 늦추는 듯 했습니다. 달려가 차 안을 확인하니 사람좋은 미소를 띤 중년 아저씨였습니다. 서울에 살다 자연 속 삶이 그리워 6년째 율산에 살고 있다 했는데, 이 분에게서 무척 중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기억나는대로 전문을 옮겨봅니다.

 

"내가 4대강만 생각하면 속에서 천불이 난다. 인적도 드문 이곳에 그저 자연이 좋아서 왔는데 지금 이 일대가 엉망이 돼버렸다. 여기 주민 대부분이 7,80대 노인인데 나라에서 보상해준다니 뭔 줄도 모르고 다 찬성했다. 작년 겨울에 자진철거와 경작금지 시키면서 수확 직전의 농작물을 다 갈아엎었다. 그 귀한 거를…. 농사하려고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럼 보상 안 해준다 협박하더라.

 

제일 말이 안 되는 게 이거다.(길가 밭마다 쌓아둔 준설토를 가리키며) 강에서 긁어낸 준설토 위에 밭흙을 다시 덮어 우량 농경지로 만든다는건데, 고작 몇 센티미터 밭흙 밑에 1미터도 넘는 모래가 쌓여있는 거다. 비 한 번 오면 물 다 빠져서 작물이 절대 자랄 수가 없는 환경이다. 초등학생도 아는 상식이다. 여기 땅주인들한테 2년 보상해준다는데 모래가 썩어서 농사가 가능해질 정도가 되려면 최소 5년이 걸린다.

 

그리고 이 일대 샘물공장이 하나 있는데 그거 생기면서 여기 식수난이 심각해졌다. 하물며 강바닥 수미터 파서 거기 물이 차려면 결국은 지하수 끌어써야 할텐데 그럼 결국 이 마을 초토화될 거다. 도대체 이명박 대통령 그 똑똑하다는 사람이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지 알 수가 없다. 내 얼굴 좀 기사에 실어줘. 불러만 주면 내 이노므 4대강 사업이 왜 안 되는 사업인지 열번도 더 설명해줄테니까!"        

 

 

다시 신반으로 나와 늦은 점심을 먹고 나서 의령군청 해당과에 전화를 걸어 물었습니다. "강가 땅주인들 밭에 준설토를 쌓아 다시 우량농지를 만들 계획이라는데, 솔직히 현실성이 있습니까?" "2년이나 보상을 해주는데 다음은 농민들이 알아서 해야지요." "거기 사시는 분 말에 따르면 모래가 썩어 농사지을 땅이 되려면 최소 5년이 걸린다는데요." "그거야 그때가서 그 사람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요. 저희가 다 책임져줄 순 없잖습니까."

 

이것이 제가 보고 들은 정암과 율산의 상황입니다. 저 역시 묻고 싶습니다. "이명박 대통령님, 왜 굳이 4대강 사업을 하려고 하십니까? 치수는 둑방만으로도 문제가 없고 지역 경제발전이라면 다른 방법도 많을텐데 도대체 왜 조국산천을 못 뒤집어 엎어서 난리십니까? 님 눈에는 돈 말고 사람 말고 자연 속에 더불어 사는 이 숱한 생명들은 보이지 않으십니까? '신화는 없다' 하셔놓고 왜 자꾸 말도 안 되는 신화를 쓰려 애를 쓰시는지요!"

 

마침 오늘 읽은 책 속의 논어 한 구절이 가슴을 때립니다. '느슨하고 불충분한 명령을 내리면서 그 성과의 시기를 엄하게 하고 그 수행을 독촉한다. 이렇게 하는 것은 사람(4대강 사업의 경우 더불어 자연을)을 손상시키는 짓이므로 적이라 말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위 기사는 네이버와 다음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합니다. 


태그:#국내여행, #4대강, #준설토, #이명박 , #자연은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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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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