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어느 누가 그렇듯 요망한 그림을 그렸는가. 조정 대신들 손에 그림이 오르지 않았지만 여인의 자태나 행색이 정순왕후를 닮았다는 공론은 까탈을 일으키기 충분한 사안이었다. 뜻밖에 삼화루 모퉁이 돌담길에서 사내의 주검이 발견돼 주위를 놀라게 했다.
사내는 이제 도화서에 들어온 칠서(七鼠)란 화원이었다. 사헌부에서 나온 정약용은 주위에 금줄을 치고 외부인이 가까이 오는 걸 차단시킨 후 서과와 검시에 들어갔다.
"흐음, 상흔 어귀의 피육에 피가 배어 있는 것으로 보면 예리한 칼날에 상처입은 것 같다만.""그렇습니다, 나으리. 내막이 뚫렸으며 살은 넓게 벌어지고 속살의 결무늬가 밖으로 빠져나온 데다 손가락으로 집으면 선홍색 피가 나옵니다."
"그러니까···, 죽은 지 오래 되지 않았다?""그렇습니다, 나으리. 이 사내는 살았을 때 목숨을 잃은 것으로 보입니다."
죽은 다음 칼날로 상처를 입힌 경우는 살결이 건조한 데다 피가 없고 손으로 누르면 맑은 물이 흘러나온다.
서과는 쓰러진 자의 손을 살폈다. 깨끗하다. 만약 누군가가 상대를 해치려고 칼을 들고 나서면 자신도 모르게 손으로 막으려는 방어본능 때문에 손바닥에 상처가 생긴다. 만약 상대방의 요처를 단숨에 찔러 살해했다면 죽은 자의 손엔 상처가 없다.
반면에 상처는 더욱 심각할 것이다. 그러했다. 죽은 사내의 상흔을 검험할 때, 자상(刺傷)을 입었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요해처를 단숨에 찔렀기 때문이었다.
검시에서 '자(刺)'라고 할 때엔 날붙이로 단숨에 찌른 것을 의미한다. 그런 것처럼 끝이 편편한 칼날에 상해를 입으면 '자'라고 할 수 없다.
"서과야.""예에, 나으리."
"복부 위나 갈비뼈, 배꼽 아래 상처를 입었다면 가장 급히 살펴야 할 게 어디냐?""길이와 너비와 푼촌(分寸)입니다."
"그 다음은?""비낀 것과 깊이 뚫고 들어간 것을 살핍니다. 만약 기름막이나 내장이 돌출하고 피가 더럽혀졌다면 요해처가 찔리거나 베어진 것을 살핍니다."
"네가 보기에 죽은 자는 어떠냐?""상처가 숨통 아래 있을 때는 목 안으로 들어간 깊이를 살핍니다. 쇄골과 목 주위의 베인 상처가 모가 나거나 둥글거나 가지런하지 않아 음식 먹는 구멍과 숨 쉬는 곳이 끊겨 절명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조사 보고를 들은 대신들은 자신들이 나서지 못한 걸 안타까워하며 도화서 화원들을 잡아들여 물고를 내야 한다고 떠들었다. 벽파(僻派)만이 아니었다. 시파(時派)에서도 그림의 진위를 가리기 위해 화원을 불러 시비를 가려야 한다고 목소릴 높였다.
"이 그림은 단원이 추종하고 있는 풍속화입니다. 무동(舞童)이나 고누놀이, 주막집 같은 분위기를 띠었으나 선이 굵지 않고 매끄러운 것으로 보아 단원보다 훨씬 나이 어린 젊은이가 그린 게 분명합니다. 산문에서 조바심치는 모양새가 사대부가의 여인이 분명해 보이니 그 젊은이를 찾아 사실을 확인해야질 않겠습니까."
평소대로라면 의당 잡아들여야 한다고 목소릴 높일 예조판서가 오히려 한 걸음 물러섰다.
"이것은 그림이라기보다 길거리 화가들의 춘화(春畵)가 분명합니다. 춘화란 게 뭡니까. 보는 이의 마음을 충동시키는 것 아닙니까. 요즘 <한궁유조(漢宮遺照)>란 춘화 책이 시중에 나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만, 그것들 대부분이 사내 마음을 자극하는 것들임을 여러 대신들도 알 것입니다. 삼화루 벽에 걸린 그림은 색감도 모른 어중이떠중이 화원이 막걸리 한 잔 먹으려고 그린 춘화가 분명합니다. 이 일은 더 이상 다룰 가치가 없습니다."
이 정도에서 마침표를 찍고 나오자 어진(御眞)을 그리려고 궁에 들어온 김홍도가 코웃음쳤다. 그는 손바닥을 탁! 두드리며 심상치 않은 시구를 누에처럼 뼘어냈다.
잔솔밭 언덕 아래 굴죽같은 고래실을 밤마다 쟁기 메어 씨 던지고 물을 주니두어라 자기 매득이니 타인병작 못하리라중도 사람이라 자고 가니 그립더만중의 송낙 나 베고 내 족도리 중이 베고중의 장삼 나 덮고 내 치마는 중이 덮고자다가 깨어보니 둘의 사랑이송낙으로 하나 족도리로 하나이튿날 하던 일 생각하니 못 잊을까 하노라김홍도는 '어떤가!' 하는 눈빛으로 좌중을 굽어보며 담소(淡素)를 눈가에 묻혔다. 흥미로운 건 그 다음 말이었다.
"며칠 전 혜원(蕙園)이 나를 찾아와 멋있는 그림과 한 토막의 시를 선사한다 하여 어찌된 것이냐 물었더니 껄껄 웃던 혜원이 이 그림 어떠냐고 내밀지 않았겠나. 내가 슬쩍 화제(畵題)를 봤더니 어느 양반의 기방무사(妓房無事)라는 게야."
단원이 내놓은 그림은 어느 양반이 기생집에 들렀다가 상대가 밖에 나가고 없자 계집종을 불러 은근 슬쩍 사랑놀이를 즐기던 중이었다.
그것으로 얘기가 끝났으면 좋으련만 한창 끈적끈적한 흥이 묻어날 무렵 문 밖에서 기생이 돌아오는 발짝 소리가 자박자박 들려왔다.
황급히 작업을 접고 딴청을 피우는 '기방무사'엔 큰기침 칼칼대며 거드름 피우던 양반들의 옹색한 딴청의 찌꺼기가 묻어난다. 그런데 본래의 얘긴 다른 곳에 있었다. 혜원은 <송낙(松絡)>이란 화제가 붙은 그림을 내놓았었다.
"이 그림을 단원 선생님께 보여 드리고 싶어 몇 번을 망설이다 찾아왔습니다."
"무슨 그림인가?"
"얼마 전 소인이 도화서에서 나와 소격서 쪽으로 나가지 않았습니까. 삼청동이 지척이니 몸과 마음을 깨끗이 씻어보자는 생각이었어요. 산이 맑고 물이 맑으니 사람의 마음마저 맑아진다는 그곳 말입니다."
삼청(三淸)이란 이름은 가까이 도교의 삼청전(三淸殿)이란 전각이 있기 때문이지만 이곳에 들어오면 산이 맑으니 물이 맑고 사람의 마음마저 맑아진다는 곳이다. 삼청동 골짜기는 아름다운 경치로 인해 풍류객들이 첫 번째로 삼청(三淸)을 꼽고 그 다음이 인왕(仁旺)이요 세 번째가 쌍계(雙溪) 네 번째가 백운(白雲) 다섯 번째가 백운(白雲)이었다."소인이 삼청을 돌아보고 소격서 가까이 보림원(寶林院)이란 암자에 이르렀을 때 문 입구에서 송낙을 든 여인이 몹시 초조한 낯으로 누군가를 기다린 듯 보였습니다. 한데, 그 여인의 모습이 어디서 뵌 듯한 얼굴이지 뭐겠습니까."
"자네가 어디서 봤다?""예에."
"그 여인을?""그렇다니까요. 소인이 미인도(美人圖)에 그린 모습이었습니다. 이름을 상련(賞蓮)이라 지었는데 영락없이 보림원 문가에 서성이던 그 여인의 모습입니다. 소인은 이상하다는 생각에 집으로 돌아와 그 여인을 가볍게 화선지에 옮겼는데 칠서란 화원이 집에 들렀다가 그림을 보더니 한밑천 잡아야겠다고 튕기듯 나가지 않겠어요."
'그게 이거야!' 하는 표정의 단원은 방바닥의 그림을 검지 끝으로 가리키며 흥미로운 해석을 붙였다.
"잔솔밭 언덕 아래 깊고 기름진 땅이 있는 데, 그곳을 밤마다 쟁기 메어 씨 던지고 물을 준다 했네. 무슨 뜻이겠는가? 깊고 기름진 자궁 길을 파고 갈아 씨 뿌리고 물 준다고 했네. 그런데 그 모습을 보는 자가 있어 귀엣말로 뭐라 했겠지. 그러니까 말을 듣은 화자(話者)는 자기 여자니 가만 놔두라 했다. 다른 사람이 함께 지을 수 없으니 홀로 열심히 짓게 놔두라 한 것이다."단원은 분위기를 살피며 슬쩍 뒤로 물러섰다. 어느새 이곳을 찾아왔는지 혜원이 설명을 틀어잡았다.
"이 부분이 심상치 않습니다. 그래서 <송낙(松絡)>을 춘화라 부르는 모양이오."서른쯤 돼 보이는 화원이 참견한다.
"어째서 그럽니까?"
"이 시의 뒷부분을 보게. 송낙은 스님이 쓰는 모자 아닌가. 그에 비해 족도리는 여인의 물건이네. 송낙과 족도리를 남녀의 생식기로 고쳐 보면 '69'의 흥미있는 묘사가 그려지네. 위의 시는 이런 뜻이 되겠지. '스님도 남자라고 자고 가니 그립구나. 스님의 것은 내가 베고 내 것은 스님이 베고. 스님의 장삼 밑으로 내 고개를 집어넣고 내 치마 안엔 스님의 머리가 있네. 자다가 깨어보니 지난밤 행사 못 잊을까 하노라. 아하하하, 어떤가?"
그게 송낙(松絡)이었다. 그런데 이 그림이 어떻게 삼화루 벽면에 붙여졌는가. 기생방의 주인 산홍이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그림이 춘화의 냄새를 풍기고 보니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그림을 가져온 칠서(七鼠)란 화원이 김씨 성을 쓰는 사내에게 흥정을 걸었다는 건 기생 산홍이도 알고 있었다. 그곳의 소란이 얼마나 요란했던지 채직동은 슬그머니 그 자릴 빠져나왔다.
[주]
∎자상(刺傷) ; 끝이 뾰족한 날붙이에 의한 상처
∎화문(花文) ; 속살의 결무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