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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한흠 목사님이 소천하셨다는 소식을 지난 목요일(9월 2일) 오전에 들었다. 아내가 교육받을 일이 있어 함께 김천교육청에 가는 도중에 기독교방송이 속보로 목사님이 돌아가셨다는 뉴스를 전했다. 우리는 망연자실했다. '망연자실'(茫然自失)이란 단어가 이렇게 사용될 줄은 몰랐다. 전혀 예기치 못했던 일을 당했을 때 갖는 심정이 망연자실이다.

한 달포 전, 목사님들이 모여 진행하는 설교 워크샵이 있었다. 초교파적으로 40여 명의 목사님들이 4박5일 일정으로 진행한 워크샵이었다. 어색하던 분위기도 하루가 지나고 나서 우리 모두 아주 가까운 사이로 만들어 주었다. 연배의 길고 짧음에 관계없이 서로 알고 있는 정보와 갖고 있는 지식을 나누며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 그때 나는 건강이 좋지 않은 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님의 근황을 알 만한 분에게 물어보았다. 그런데 그의 대답은 의외였다. 하용조 목사님보다는 사랑의교회 옥한흠 목사님이 더 위독하시다는 것이다.

옥한흠 목사님은 보수진보를 가리지 않고 후배 목회자들이 두루 존경하는 분이다. 침체된 교계에 '제자훈련'이라는 독창적 프로그램으로 부흥의 불을 지핀 분도 바로 옥한흠 목사님이다. 한국 목회자 중 그의 강의를 듣지 않은 사람이 드물 정도로 옥 목사님은 목회자 교육에 열정을 불태우셨다. 자신의 몸을 돌볼 틈도 없이 목회자가 모인 곳이라면 어디라도 달려가 그들에게 진정한 목회자, 하나님께 쓰임 받는 목회자, 평신도의 제자화 등에 대해 불을 토하셨다. 많은 목회자들이 국제제자훈련원의 CAL세미나에 참석한 경험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 교육을 받으면서 너나없이 느낀 것이 '하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나는 본의 아니게 그 세미나를 두 번에 걸쳐 받게 되었다. 등록을 하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데, 3일째 초상이 나서 퇴소할 수밖에 없었다. 목회자에게 초상은 피치 못할 사정에 해당한다. 나는 훈련 일정의 2/3가 지났으니 수료증을 받아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안 된다는 것이다. 담당 목사님은 단호했다. 평소 나긋나긋한 그의 태도에서 예상하지 못한 단호함을 만나게 된 것은 CAL세미나의 수준을 다시 모자이크하게 만들었다.

사랑의교회 성도들이 제자훈련을 받을 때 하는 말이 있다고 한다. 훈련기간 중에는 아프지도 말고 죽지도 말자는 말이 그것이다. 실감났다. 그런 각오로 임하지 않는다면 실익을 거둘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일이 있고 난 몇 년 뒤, 전에 받지 못한 훈련을 이틀에 걸쳐 마치고 나서야 수료증을 받을 수 있었다. 아마 그 때가 CAL세미나 69기가 아닌가 싶다.

두 번에 걸쳐 받은 훈련 중 어느 때인가는 잘 모르겠는데, 쉬는 시간에 로비에서 옥 목사님을 만났다. 연갈색 점퍼 차림에 가지런히 빗은 머리와 구릿빛 얼굴이 무척 건강하게 보였다. 옥 목사님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연배가 상당히 되시는 것 같은데, 훈련받기에 많이 힘드시지요?"

옥 목사님이 이렇게 특별히 관심을 가져 주신 것은 나의 외모 때문일 것이다. 반백의 머리에 권위주의적으로 생긴 얼굴은 나를 15년은 더 올려 보이게 만들었으니까. 내가 두메산골에 위치한 농촌교회에서 목회를 할 때, 옥 목사님이 담임으로 계셨던 사랑의교회로부터 적지 않은 사랑을 받았다. 매달 선교비를 2년에 걸쳐 받았으며, 짧지 않은 기간 두 번이나 사랑의교회 전도팀이 우리 교회를 방문해서 축호 전도와 마을 청소, 경로잔치 등의 사랑을 베풀어 주었다. 교단이 다른데도 그런 것은 따지지 않고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서 복음과 사랑을 전하는 그들의 모습에 받은 감동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 팀을 이끌고 온 분들 중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 있는 분들로 문인기 선교사님, 용팔이 김용남 집사님 등이 있다.

이런 이야기도 신선했다. 사랑의교회 안성수양관에서 CAL 세미나 후속 프로그램으로 '체험학습'이란 교육을 받았을 때이다. 소수가 모여 합숙하며 받는 훈련인데, CAL 세미나에서 받은 내용을 심화 적용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그때 식당 봉사를 하는 사랑의교회 권사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다. 후임자인 오정현 목사님에게 바통을 넘겨주고 조기 은퇴를 하셨을 즈음의 일화 같다. 사랑의교회를 개척해서 큰 교회로 성장 발전시킨 옥 목사님에게 당회에서 50평이 넘는 고급 아파트를 선물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옥 목사님도 그 말을 듣고 처음에는 그 정도는 받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날 밤, 그 문제로 한숨도 자지 못하고 고민을 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괜찮을 것 같고 또 달리 생각하면 그것은 아니라는 마음이 엄습하더라는 것이다.

고민을 거듭한 끝에 옥 목사님은 고급 아파트를 받지 않기로 했다. 성도들을 만나 사랑을 나누는 데는 지금 살고 있는 32평 아파트로도 충분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아니 사랑의교회 성도들도 모두 부자가 아니요 그중에는 사글세로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는데, 최신식 고급 아파트에 거주하게 되면 그들과 장벽이 생겨 섬기는 데 오히려 해가 된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이것이 고급 아파트를 선물로 받지 않은 이유였다.

아내는 옥 목사님의 소천 소식을 듣고 그날 밤을 지새우며 그분의 설교를 들었다. 폐암 선고를 받고 죽음을 눈앞에 둔 분이 어떻게 저런 힘 있는 설교를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아니, 죽음을 앞둔 분이기 때문에 매 순간이 마지막이라고 여기고 말씀을 선포하니까 저런 힘 있는 설교를 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옷깃을 여몄다.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돌팔매질을 당하면서도 하나님 말씀을 진실하게 전한 예언자로 기억되듯이, 옥 목사님도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말씀을 전한 목회자로 우리에게 남아 있을 것이다.

은퇴하신 뒤 옥 목사님은 이런 염려를 많이 하셨다. 요즘 목회자들이 회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성도들의 구미에 맞는 설교만 하려고 하지 시대에 꼭 필요한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것은 피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죄를 짓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덧붙여 평소 존경하던 선배 목사님 얘기를 곁들였다. 그 목사님은 만날 때마다 "옥 목사, 나는 성도들이 싫어하는 말은 설교 시간에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라며 자랑하듯 말하더라는 것이다. 옥 목사님은 선배 목사의 그런 말을 듣고 저분이야말로 성도들을 망하게 하고 교계를 타락케 하는 장본인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목회자가 성도들의 눈치 보며 그들의 구미를 좇는 설교를 한다는 것은 영혼을 병들게 하는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귀하신 옥 목사님은 가셨다. 이젠 그의 생생한 열변도 들을 수 없다. 그의 눈물도 더 이상 볼 수 없다. 옥 목사님은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있지 아니"한(계 21:4) 천국으로 가셨다. 그곳에 가셔서 이 세상 일 다 잊어버리시고 안식을 취하시기를 빈다. 사모님을 비롯한 유족들, 그리고 사랑의교회 성도들에게 위로의 말을 드린다. 하나님 앞에 진실한 목회자로부터 양육 받고 신앙생활 한 행복은 아무 데서나 맛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행복감으로 옥 목사님이 다하지 못하신 일을 이어나가기를 바란다. 다시 한 번 옥 목사님의 천국 안식을 기도한다.


태그:#옥한흠 목사, #소천, #사랑의교회, #CAL세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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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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