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7월부터 올해 6월 말까지 일 년 동안 '아이돌보미' 활동을 했다. 이 직업은 대전에서 경기도 구리로 이사 오기 전, 이웃과 함께 일도 하면서 집안살림에 도움이 되는 일을 찾다가 인연이 돼 하게됐다.
'아이돌보미' 활동은 건강상태가 양호하고 아이를 양육한 경험이 있는 고졸이상 65세 이하의 여성이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아이돌보미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3개월부터 만12세 이하의 아이에게 가사활동을 제외한 식사와 간식 챙겨주기, 보육시설의 등·하교 보조, 숙제 봐주기 등이다. 부모가 올 때까지 보육과 놀이활동, 그림책읽어주기, 정서교감, 안전과 신변보호 처리 등도 담당한다.
아이돌보미로 활동하기 전 대전지역에서 <마을마다 어린이도서관만들기> 활동을 했다. 이 사업은 2007년 5월에 (사)대전시민사회연구소에서 '반딧불터'라는 이름으로 사업단이 꾸려졌고 마을에 어린이도서관을 만들고자 하는 엄마들이 움직이게 되었다. 아이들이 걸어서 쉽게 찾아갈 수 있는 동네어린이도서관, 이곳에서 갓난아이를 둔 엄마들은 젖을 먹일 수도 있고, 아이들은 책을 보면서 놀 수 있다.
이 경험이 아이돌보미 활동에도 그대로 응용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때마침 2009년 5월에 구리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는 아이돌보미 2기를 모집하고 있었다. 1차 서류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가 통과되면 2차 면접이 있었다.
면접날, 센터에 들어서니 내 또래거나 내 나이 앞뒤로 10여 년씩의 간격이 느껴지는 여성들 20여 명 정도가 모여 있었다. 면접은 센터장과 아이돌보미관련 과장, 팀장 등 3명이 면접관이 되어 지원자 한 사람씩 5분 정도를 면접했다.
면접은 아이를 키워본 경험이 있는지, 지원을 하기 전에 무슨 일을 했는지 등을 묻는 것으로 이루어졌다. 여러 질문이 있었지만 대체로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소양이 있는지를 보았다. 면접에 통과된 사람들은 20여 일 동안 아이돌보미로서의 전문교육을 받았다.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양육과 학습 공통으로 64시간 교육을 이수해야 하지만, 유치원이나 보육교사, 간호사, 장애아관련 자격증이 있는 경우에는 25시간을 받으면 된다.
아이돌보미의 급여는 시간당 5천 원이다. 그동안 이용자들은 소득수준(전국가구 평균소득을 기준으로 '가형'은 50% 이하, '나형' 100% 이하, '다형' 100% 초과)에 따라 구분된다. '가형'은 시간당 5천 원 기준 정부가 4천 원을 보조해준다. 결국, 이용자는 천 원을 부담하면 된다. '나형'은 정부가 천 원을 보조해주고 나머지 4천 원을 이용자가 부담한다. '다형'은 5천 원 모두 이용자가 부담해야 한다.
아이돌보미 서비스 시간 절반으로 줄어
그러나 올해 들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공동예산으로 지원되던 아이돌보미서비스는 한 달 80시간에서 절반인 40시간으로 줄었다.
"정말 이해가 안 되네요. 이런 예산을 줄여버리면 도대체 아이를 낳으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어이가 없어요. 그동안 80시간을 고정적으로 쭉 이용했는데 40시간이 줄었으니 저희 같은 사람은 당장에 큰 부담이죠."두 살 된 딸아이를 아이돌보미에게 맡기며 맞벌이를 하는 이혜영(30세, 가형)씨는 그동안 8만 원을 내고 한 달 80시간 서비스를 받았다. 돌보미선생님이 친정엄마같고 아이도 잘 따르는 편이라, 남편이 지방출장으로 집을 비우거나 자신이 회사에서 야근을 할 때마다 적은 비용으로 적절하게 이용했다.
덕분에 둘째 아이까지 낳겠다고 생각했던 터라고 했다. 하지만 이제 사정이 달라졌다. 이용시간을 반으로 줄이거나 지원 받았던 40시간 모두를 자신이 부담해야 한다면 월 20만 원을 더 내야 하는 것이다.
2009년 6월부터 시작한 센터의 2기 아이돌보미들의 움직임은 초반에 무척 활발했다. 하지만 예산이 줄고 가, 나형의 이용이 위축되면서 활동에도 변화가 생겼다. 한 이용자의 서비스 기간이 끝날 시점이 되면 센터의 팀장한테 전화나 문자를 자주 받아 연계활동이 계속 이어지는 편이었지만, 뜸해진 기간이 하루, 이틀, 일주일 동안 감감무소식일 때도 있다.
서비스연계 띄엄띄엄, 전문성 키울 틈 없어서비스이용의 연계가 띄엄띄엄 이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하루나 이틀로 끝나는 이런 활동은 왕성한 활동을 하고자 하는 돌보미를 무기력하게 하며 '또 다른 일'을 찾게 하는 요인이 된다. 어떤 돌보미는 서류와 면접 등 꽤 까다로운 절차가 대기업 수준인 것 같았지만, 그에 비해 일하는 과정에서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라고 했다. 예산축소에 이어 활동시간감소는 전문성을 키우기보다는 다양한 아이들을 돌보는 노하우를 약화시키지 않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아이돌보미는 '돌봄사업'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현장에서 활동하는 돌보미들에게는 직업의 개념이 자리잡혀있지 않은 경우도 많다. 이용자가 필요로 하는 신청시간이 정기적으로 정해질 때도 있지만, 일 자체가 가정에서 긴급하게 아이를 돌봐 줄 일이 발생할 때 하기 때문에 일시적이며 단기간이다. 활동은 대부분 한 달, 일주일, 하루, 혹은 주말단위로 이어지거나 끝나는 게 보통이다. 물론 이용자 가정의 요구와 아이돌보미 관계가 원만하게 잘 연계돼 한 가정의 아이를 꾸준히 돌보는 경우도 있다.
"저는 요즘 다른 돌보미선생님들 사정이 생길 때 '대타'만 해요. 보통 평일에는 제가 따로 생각하는 목표가 있으니까, 그 시간 외에 주말이나 공휴일에 연계가 들어오면 할 수 있는 거죠. 이 활동을 딱 끊을 수는 없고, 자격증을 따면서 다시 생각해보려고 해요."(41세, 2기 아이돌보미)아이돌보미활동을 하면서 한자지도사자격증을 공부하고 있는 조영순씨의 말이다. 그이는 이 활동시간이 유동적이어서 처음부터 시간제 '알바'로 생각했다고 한다. 자신의 아이가 초등학생이어서 아이 또래를 모아 일주일에 두 번 한자를 가르치는데 아이돌보미활동에 전적으로 매달리지는 않는단다.
아이돌보미활동시간은 누구나 똑같이 정해지지 않는다. 돌보미의 사정이나 연계되는 이용자에 따라 더 많은 활동을 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용자와 아이돌보미의 관계가 원만한 경우에는 계속 같은 아이를 돌보며 인간적인 친분도 쌓인다.
돌보미선생을 만나면서 아이에게 긍정적이고 좋은 변화가 생길 때, 엄마들의 입소문은 빠르게 퍼진다. 센터의 홈페이지에는 아이돌보미서비스를 받았던 사람들이 올려놓은 칭찬글이 올라오기도 한다. 이런 사례는 사업을 주관하는 센터와 활동하는 아이돌보미들의 사기를 올리는데 한 몫을 한다.
가·나형과 달리 다형은 시간당 받는 금액 모두를 이용자가 부담하기 때문에 예산지원 축소와 상관이 없다. 그래서 다형 가정의 아이를 지속적으로 돌보는 돌보미의 활동시간은 변화가 거의 없는 편이다. 아파트단지 같은 동에서 양육과 학습돌보미로 하루 8시간 이상 활동하는 김정자(50세, 2기 아이돌보미)씨는 주로 '다형'아이들과 연계되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그이는 대학생인 외아들이 군대에 가고 나서 이 활동을 시작했다.
"아침 7시 반부터 일해요. 부부가 가게를 하는데 새벽에 모두 나가요. 그래서 내가 어린이집에 가는 아이를 깨워서 옷 갈아입히고 아침 먹여서 차를 태워 보내면 돼요. 아이가 오후 늦게 집에 오면 아이엄마가 올 때까지 또 두 시간을 돌봐줘요. 하루에 4시간, 두 건으로 같은 아이를 봐주기 때문에 활동하기는 훨씬 좋아요. 같은 동이라 엘리베이터로 움직이니 시간절약도 되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활동할 수 있어요. 중간시간에 활동이 있어서 바쁘게 살아요. 힘들 때도 있지만 보람도 있고 수입도 괜찮은 편이에요."아이돌보미의 궁극적인 목표는 일하는 부모들이 경제적으로 부담없이 정서적으로 안정되게 아이를 맡길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형편이 나은 '다형'가정보다 '가· 나형'의 맞벌이부부로 혼자 있는 아이들, 한 부모나 조손가정, 다문화, 장애어린이가 있는 가정에 돌봄손길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도록 실질적인 지원을 늘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