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일상
모유수유와 천 기저귀 갈기 말고도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출산 이후 달라진 우리 부부의 일상이었다. 비록 결혼과 동시에 아이가 들어서는 바람에 아내와 꼭 해보고 싶었던 퇴근 후 포장마차 소주는 못했지만, 그래도 나름 신혼으로서 주말이 되면 영화도 보고 자유롭게 지냈던 우리 부부.
그러나 아이의 출생과 함께 그와 같은 여유로운 시간은 날아가 버렸다. 어느새 아이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일상. 좋으나 싫으나 우리는 아이에 맞춰 주말 계획을 짜야 했고, 아이의 발달수준에 따라 행동의 제약을 받아야만 했다.
특히 아내의 경우는 더욱 심했다. 나야 아내의 눈치 때문에 영화를 보지 못한다거나, 1주일에 세 번 마시던 술을 두 번으로 줄이는 수준이었지만, 아내는 아이가 너무 어려 바깥에 나가지 못할 때에는 하루 종일 집에만 있어야 했고, 생후 한 달이 지나 겨우 바깥나들이가 가능할 때에도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내가 옆에서 또 구박이다. 크리스마스에 자신의 배려로 혼자 영화를 보고 오지 않았냐며. 아마 평생 내가 지고 가야 할 바가지일 듯. 아내는 이런 나의 욕구불만이 안쓰러웠는지 결국 그럴듯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기도 하였다. 바로 자동차 극장. 비록 영화 두 편 본 이후에 이용하지 않고 있지만 어쨌든 그런 아내에게 이 지면을 빌어 고맙다고 고백하는 바이다.)
아기가 배고프면 젖을 어디서 줄 것이며, 똥을 싸면 기저귀는 어디서 갈아야 하는지, 자신의 몸이 아프든 말든 아이가 울면 우선 안고 종종거려야 하는 아내. 정말이지 밖에까지 나와 빨간 기저귀 가방을 매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아내를 보고 있노라면 짠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가능한 한 내가 아이를 안고 있으려 했지만, 아이는 평소에는 내 품에 잘 있다가도 배고프거나 졸리거나 결정적일 때는 엄마 품만 찾았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어느 날 심각하게 산후우울증을 이야기하는 아내의 말을 가볍게 넘길 수 없었다. 물론 내가 회식 때문에 술을 먹고 새벽에 들어와서 하는 잔소리라고 믿고 싶었지만, 아내는 너무도 심각했고, 그 어투는 비장했다. 시껍할 수밖에. 안 그래도 언론에서는 산후우울증 때문에 많은 여성들이 자살한다고 보도하지 않았던가.
다행히 아내는 또 그렇게 한 번 울고불고 넘어갔지만, 나는 아직도 그날 산후우울증을 읊조렸던 아내를 잊을 수 없다. 하긴 얼마나 자유로운 영혼을 가지고 있는 아내이던가. 지금도 가끔 차를 몰고 아이와 함께 밤마실을 나가면 창밖의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을 보며 맥주 한 잔에 끝없는 수다가 그립다며 한숨을 짓는 아내. 하루빨리 아이가 커서 혼자 집 보기를 바랄 수밖에.
시부모의 손주 사랑
출산 이후 달라진 또 하나의 풍경은 부쩍 잦아진 나의 부모님과의 왕래였다. 물론 신접살림을 시가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차린 까닭에 그 전에도 왕래는 잦은 편이었지만, 아이를 낳고난 뒤에는 시부모를 더 자주 찾아뵈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들의 손주사랑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44년생으로 올해 67살이 되신 나의 아버지. 워낙 늦게 결혼하신 탓에 자식도 손주도 늦게 보실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손주 사랑은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8년 전 퇴직하실 때에도 다른 친구 분들은 아들, 손자, 며느리와 함께 사진을 찍는데, 정작 당신은 단출하게 아내와 아들, 딸과 함께 사진을 찍어야만 했던 아버지. 오랜 시간 동안 친구들의 손주 자랑을 듣기만 하셨을 테니 아버지의 끔찍한 손주 사랑은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었다.
게다가 최근 아버지는 퇴임 이후 전직 경찰관의 자격으로서 마포구의 초등학교에서 노란모자 지킴이 선생님으로 활동하시는 터였다. 그러니 병아리 같은 녀석들을 보면서 당신의 손주가 얼마나 보고 싶겠는가.
문제는 그런 시부모님의 애절한 손주 사랑이 며느리에게는 부담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이었다. 오랜 시간을 같이 부대끼지 않아서 그런지, 딱히 나쁘지는 않지만 1년이 지나 아직까지도 어색한 시어머니와 며느리.
부모님은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아기를 보고 싶어 하셨지만, 아내는 1주일에 한 번씩 시댁 찾아뵙기를 부담스러워했다.
(부모님이 아이 때문에 어질러진 우리 집에 찾아오시는 건 더더욱) 아이가 기침이라도 한 번 하면 괜히 자기 탓인 것 같고, 시어머니의 경험담은 괜한 자신에 대한 책망 같을 수밖에 없는 것이 며느리 마음이라나. 심지어 아내는 아이가 아빠보다 엄마 닮았다는 시댁 사람들의 대사마저 신경 쓰고 있었다. 시부모님이 조금 섭섭해 하시는 것 같다는 아내의 과도한 해석.
(아내가 옆에서 역시 또 구박이다. 그래도 한 달에 세 번은 갔었다고.)
결국 그 사이에서 곤란한 것은 바로 어머니의 아들이자, 아내의 남편인 나였다. 처가라도 가까웠으면 자주 찾아뵈며 차라리 부담이 덜 할 것을, 처가가 산청이어서 자주 찾아 뵐 수도 없는지라 난 아내에게 무턱대고 시댁에 가자고 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아들의 입장으로서는 어머니가 별 생각 없이 아이에 대해 이야기 한 것뿐인데도 며느리는 민감하게 받아들였고, 반대로 며느리는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것뿐인데 시어머니는 그걸 섭섭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러니 가운데서 아들이자 남편이 죽을 맛이라 하지. 아이가 젖을 떼고 본가에서 며칠 동안 할아버지, 할머니랑 지내다 보면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어서 그 날이 오기만을 바랄 뿐이다.
중고 마니아 누워만 있던 아이가 어느새 뒤집고, 목도 가누지 못하던 아이가 어느새 앉고, 평생 그 자리에 있을 것 같던 아이가 기기 시작했다. 하루가 다르게 부쩍부쩍 자라는 아이를 바라보는 건 분명 기쁜 일이지만, 동시에 아기용품이 얼마나 턱없이 비싼지 알게 되는 과정이기도 했다.
우리의 경우는 아내가 모유수유와 천 기저귀 사용을 통해 한 달에 꽤 많은 금액을 아끼는 편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위해 지불되는 비용은 만만치 않았다. 아이의 성장속도를 봐서는 기껏 입어봐야 1년이건만 아이 옷은 왜 그리도 비싸고, 조잡하게만 보이는 아이들 장난감은 왜 그리도 비싼지.
그러나 아기 용품들의 터무니없는 가격을 무조건 시장 탓이라고 볼 수는 없다. 아기용품의 금액을 올리는 건 바로 부모들의 욕심이기 때문이다. 물론 면역력이 약한 아기들을 위해 더 좋은 소재를 쓰고, 인체에 무해한 재료를 써야 되는 건 당연하지만, 현재 시장의 과도한 금액 거품은 내 아이에게 좀 더 좋은 거를 사주고 싶다는 부모들의 맹목적인 사랑이 투영된 결과이다. 기껏해야 1년 남짓 쓰는 용품을 가지고도 명품을 사려는 부모들. 어차피 아이들은 기억도 못하는 바, 결국 부모들의 욕심 아니겠는가.
이와 관련된 과대지출을 막는 아내의 전략은 중고품 매매였다. 아내는 출산 준비를 하면서부터 중고품을 사들이기 시작했는데 천기저귀는 물론이요, 아기용 세탁기며, 스윙, 슬립커브, 점퍼루, 카시트, 식탁의자 등등 큼직큼직한 물건들은 모두 인터넷의 중고시장을 통해 구입했다. 종종 퇴근할 때면 아내가 가르쳐 준 주소를 찾아가 중고품들을 사오는 남편.
그뿐인가. 아내는 지인들로부터도 이것저것 많이 물려받았다. 비록 잠깐이었지만 아기 침대를 나의 선배로부터 물려받았고, 아기의 옷 대부분은 그녀가 무척이나 사랑스러워했던 선배의 딸로부터 물려받았다. 문뜩 아이에게 너무 새 옷을 사 입히지 않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뭐 어떤가. 아내나 나나 모두 어렸을 때는 언니, 형들로부터 물려 입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는데.
그러나 역시 중고품 사용의 백미는 장난감나라였다. 1년에 1만원만 내면 어떤 장난감이라도 대여해, 최대 2주간 사용할 수 있는 장난감나라. 그것은 처음 보는 물건에 격하게 반응하는, 호기심 많은 아이들을 가진 부모들에게 구세주와 같은 제도였다. 어설픈 장난감도 10만원이 훌쩍 넘는 현실 속에서 장난감나라는 분명 우리 가계에 큰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주말만 되면 방문하는 장난감나라. 비록 아이를 위한 일이라지만, 많은 남편들이 무거운 장난감을 들고 낑낑대며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동병상련을 느낄 수밖에 없다. 모두들 아내의 잔소리에 주말, 지친 몸을 이끌고 여기까지 나왔겠거니.
(또 아내가 옆에서 한소리 한다. 아내들은 그 옆에서 아이들을 안고 있다고.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내 눈에는 남편들이 더 안쓰러운 걸 어찌 하겠는가.) 어쨌든 현재 우리 집은 아내가 구매한 아기 용품들로 점점 번잡해져 가고 있는 중이다. 아이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한데, 나중에 전세를 빼달라고 요청이 오고 이사를 가게 된다면 아이의 짐이 한 짐이 되지 않을까 걱정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