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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 사는 사람들은 하늘을 동경했다. '우주'라는 넓은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그곳에 가고 싶어 했다. 비교적 화성이 지구와 비슷하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는 그 정도가 더했다. 사람들은 화성에 가고 싶어 했다. 그곳에 있을지도 모를 화성인들을 상상하고 만나고 싶어 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상상하는 화성인이란, 흉측한 외모로 지구를 침공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 또한 관심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

 

그런 관심이 높아지던 20세기 중반, SF소설가 레이 브래드버리는 조금은 독특한 상상을 했던 것 같다. 지구인이 화성에 가면 어떤 일이 생길 것인가, 하는 것이다. 화성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본 것도 그렇다.

 

화성인의 입장에서 로켓을 타고 날아온 지구인이 있다면 어떨까? 쌍수를 들고 반겨줄까? 사람들은 당연히 그러겠거니 하지만 꼭 그렇게 될 것 같지는 않다. 지구의 밖에서 보자면, 인간은 지구를 발전시킨 종족이 아니다. 거의 멸망시킨 종족이다. 그런 종족이 로켓 타고 날아온다는데, 정말 반겨줄까?

 

<화성 연대기>는 1990년 초반부터 2026년까지 화성을 탐험했고 마침내 지구와 화성을 오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그 내용이 적잖이 당황스럽다. 소설이 시작하는 대목부터 당연하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화성인들은 자신들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이런 상상을 했던가? 소설 속의 화성인들은 행복해보였다. 그런 그들에게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난 건, 지구인이라고 자청하는 이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지구인들은 당연히 화성인들이 반겨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화성인들은 지구인이라는 존재를 의심하다가 기어코 배척한다. 그들은 최면 등의 방법으로 지구에서 온 탐험대를 무찌른다. 그렇다고 해서 지구인들이 화성을 포기할 리는 없었다. 소설 속의 지구인들은 우주에서 친구를 만들고 싶어 안달난 사람들이 아니었다.

 

전쟁이 벌어질 것이고, 그로 인해 지구가 멸망할 것이 뻔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는 다른 행성이 필요했고 그것이 화성이었다. 그들은 절박했다. 그 절박함의 끝에서, 마침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력이 화성에 이주한다. 그리고 그들은, 선언한다. 화성의 이 부분이 누구 땅이며 저 부분은 누구 땅이라고.

 

화성인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누군가는 알 수 없는 바이러스로 죽었다고 하고 누군가는 흔한 질병으로 전멸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어디선가 화성인의 흔적이 보이고 있다. 아직 누군가가 살아있다는 뜻이었지만 지구인들은 그런 사실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마을을 만들고 도시를 세운다. 지구에서는 계속해서 로켓을 보내고 사람들을 이주시킨다. 그리하여 화성은 점점 변한다. 지구처럼 되어가는 것이다.

 

그것은 좋은 일이었을까? 지구가 위험해서 거의 탈출하다시피 하여 온 사람들이, 아이러니하게도 화성에서 비슷한 일을 벌인다. 화성인의 입장에서 보면 이보다 더 황당한 일도 없었을 것이다. 더 당황스러운 건,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는 것을 예감하면서도 지구인들이 그것을 막지 않고 화성으로 도망치고 있다는 것이다. 레이 브래드버리가 소설을 위해 '억지'를 부린 것일까? 꼭 그렇게만 여겨지지는 않는다. 당황스럽지만, 지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든 역사가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지구인이 화성에 갔고, 그로 인해 화성은 지구처럼 변해간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화성 연대기>는 디스토피아 소설이 그렇듯 그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그것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까. 웃어넘겨야 할까. SF소설, 그 이상의 문학성에 감탄해야 할까. 답은 역사가 알려주고 있다. 조금은 특별한 '연대기'가 그것을 가리키고 있다.


화성 연대기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김영선 옮김, 샘터사(2010)


태그:#SF문학, #화성, #디스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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