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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에서 순천가는 863번 지방도를 따라가는 길에 해창마을에서 앵무산으로 오르는 이정표를 만난다.
 여수에서 순천가는 863번 지방도를 따라가는 길에 해창마을에서 앵무산으로 오르는 이정표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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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에서 여수로 가는 아름다운 길

순천에서 여수 가는 큰길은 17번 국도다. 시간에 여유가 있다면 863번 지방도를 타보라고 권하고 싶다. 대형차들이 씽씽 달리는 국도와는 달리, 이 마을 저 마을 기웃거리며 이어가는 지방도로는 운치가 있다. 마을 앞을 지날 때마다 과속방지턱을 넘어야 하기 때문에 속도를 낼 수도 없다. 당연히 주변 경치 구경하면서 쉬엄쉬엄 간다. 일몰이 아름다운 와온마을에서 잠시 쉬어가는 것도 좋다.

앵무산 등산로. 해창마을에서 올라, 농주마을로 내려오는 길은 5.9km다. 순천시내버스는 863번 지방도로로 수시로 다니고, 여수시내버스는 평여마을까지 온다.
 앵무산 등산로. 해창마을에서 올라, 농주마을로 내려오는 길은 5.9km다. 순천시내버스는 863번 지방도로로 수시로 다니고, 여수시내버스는 평여마을까지 온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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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찾아갈 산은 여수반도를 순천시와 여수시로 경계 짓는 앵무산(鶯鵡山, 395m)이다. 앵무산 이름의 유래는 이렇다.

고려시대에 산 아래 순천에서 세금으로 거두어들인 곡식을 저장하는 창고인 해창(海倉)이 있었다. 마을 뒷산으로 곡고산(穀庫山·343m)과 양미산(糧米山)이 있었는데, 곡고가 앵무가 되었다는 말도 있고, 양미산이 앵무산이 되었다는 말도 있다. 하여튼 앵무새가 생각나는 특이한 이름을 가진 산이다.

앵무산 오르는 길은 여러 곳이 있다. 순천 쪽에서는 해창마을, 농주마을, 하사마을. 여수 쪽에서는 평여마을, 두봉마을 등등. 바다를 인접한 산이라 마을이 발달하고 어느 곳에서든 산으로 넘어 다녔을 길이 있다. 어느 쪽으로 가든 시내버스를 타고 돌아올 수 있다. 오늘은 해창마을에서 산길을 오른다.

요즘도 기부한다고 말로만 하는 분들도 있는데….

해창마을에는 등산이정표와 함께 커다란 장승이 서있다. 곡고산 정상까지 1.8㎞, 앵무산 정상까지는 3.5㎞다. 낮은 산이라고 쉽게 오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산길이 멀다. 산길 입구에 우석 김종익(友石 金鐘翊, 1886~1937) 묘가 있다. 순천지역에서는 유명한 분인데, 생각보다 묘역이 크지 않다. 순천만 평야가 내려다보이는 봉분 하나 있을 뿐이다.

순천만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자리잡은 우석 김종익 묘
 순천만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자리잡은 우석 김종익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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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 김종익 선생은 순천 월등면에서 부잣집 큰 아들로 태어나 일본 유학까지 다녀왔으나, 일제치하의 관직에 나가기를 거부하고, 민족자본가로서 큰 재산을 모았다. 52세의 나이로 죽으면서 당시로서는 엄청 큰 재산인 175만원을 교육사업과 사회사업에 쓰라는 유언을 남겼다. 순천농업학교(1935, 현 순천대학교)를 설립하고, 돌아가신 후, 사회에 환원한 돈으로 순천중학교(1938), 순천여자고등보통학교(1940)를 세우는데 기여하였다.

호남정맥에서 여수지맥으로 흐르는 산길

시멘트포장길을 조금가다 앵무산 등산로 표지판을 보고 산길로 들어선다. 한 무더기의 장승들이 반기더니 산길은 아주 편안한 길이다. 갓 벌초를 해서 풀냄새가 물씩 배어나는 산길을 간다. 조금 오르다보니, 사람이 좀처럼 다녔을 것 같지 않은 산 속에 사람하나 겨우 다닐만한 길이 나무사이로 이어진다. 길은 단단히 다져져서 마치 평지를 걷는 것 같은 아주 편안한 기분이다. "한 번 길이 만들어지면 좀처럼 사라지는 않는가 보다."

햇살이 살짝 스미는 평온한 산길
 햇살이 살짝 스미는 평온한 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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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평한 길은 사거리를 만난다. 용전마을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고, 백두대간에서 뻗어 나온 호남정맥이 순천 계족산에서 산줄기를 만들어 여수 힛도까지 흐르는 여수지맥과 만난다. 천왕산을 넘어온 지맥은 다시 곡고산으로 오른다. 경사가 가파르다. 가는 길 중간에 옹달샘도 들른다. 바위틈에서 졸졸 흘러내리는 물이 시원하다.

산길은 계속 오른다. 길 양옆으로는 큰 나무 아래 마살줄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지천이다. 바람이 숲을 지나간다. 쉬이이잉~~. 상수리나무 잎들이 바람을 맞아 뒤집히기를 반복하면서 운다. 청량하다. 아직은 더운 날씨. 바람소리는 스산하게 느껴지지만 마음은 시원하다.

순천시내에서 순천만까지 한눈에 볼 수 있는 곳

산길은 가파르게 오르더니 숲을 벗어난다. 곡고산 정상이다. 빙 들러 사방이 터졌다. 벤치도 몇 개 놓였다. 벤치에 앉아 가쁜 숨을 고른다. 아! 너무나 시원하다. 앞에 펼쳐진 풍경이 장관이다. 저 멀리 순천시와 순천만 사이에 곡식이 여물어가는 넓은 평야가 펼쳐진다. 그 사이로 순천을 가로지르는 동천이 흐르고, 이사천과 하나가 된다. 해룡천이 동천과 경쟁하듯 흐르다 순천만에서 하나가 된다.

앵무산 가는 길에 곡고산 정상. 조망이 확 터졌다.
 앵무산 가는 길에 곡고산 정상. 조망이 확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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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고산 정상에서 바라 본 풍경. 왼쪽이 순천만이고 오른쪽이 순천시내다. 앞에 보이는 황토 천이 해룡천.
 곡고산 정상에서 바라 본 풍경. 왼쪽이 순천만이고 오른쪽이 순천시내다. 앞에 보이는 황토 천이 해룡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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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고산에서 바라본 순천만 들판 풍경. 벼가 익어간다.
 곡고산에서 바라본 순천만 들판 풍경. 벼가 익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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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시원한 경치를 보여주는 산이 어디 있으랴? 한참을 앉아 있어도 일어서기가 싫다. 갈 길은 아직 먼데. 오가는 등산객과 인사 나누기를 여러 번.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앵무산으로 향한다. 다시 산길을 내려선다.

평여마을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공터에는 운동기구도 설치해 놓았다. 근데 이 운동기구를 이용할 사람이 있을까? 마을사람이 운동하려고 여기까지 올라오지도 않을뿐더러, 등산객들이 힘들게 산행하다기 쉬어가야 하는데, 운동기구 만났다고 열심히 운동하고 갈까? 전국적으로 운동기구를 설치하는 사업이 한창이라지만 이곳까지 운동기구를 설치할 필요는 없었을 것 같다.

이제 막 피어난 억새는 바람에 흔들리고

앵무산 정상까지 800m 남았다. 산길은 다시 오르막이다. 하지만 그리 급하지는 않다. 쉬엄쉬엄 오른다. 숲길은 시원하다. 길 가로 무릇이 보라색으로 예쁘게 반짝거린다. 소나무 숲길을 지나 나무사이로 앵무산 표지석이 보인다.

앵무산 정상. 바다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인다.
 앵무산 정상. 바다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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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산에서 본 순천만
 앵무산에서 본 순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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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산 정상에 서면 순천만이 내려다보인다. 순천만을 보려면 용산에 오르지만 앵무산에 오르면 더 큰 그림을 볼 수 있다. 용산 아래로 원을 그리는 갈대숲과 순천만 건너편 천마산이 보이고 그 뒤로 또 바다가 보인다. 이런 풍경은 용산에서 볼 수 없다.

햇살에 부셔서 점점 흐려지는 순천만 풍경을 뒤로하고 내려간다. 하산은 하사마을 쪽으로 가다가 농주마을로 내려설 계획이다. 숲길이 정비되지 않았다. 앵무산 오르는 길은 등산로 풀들을 베어서 편했는데, 거친 풀숲을 헤치고 가자니 힘들다.

하사마을과 농주마을로 내려가는 삼거리. 이정표와 억새와 바다가 너무나 잘 어울린다.
 하사마을과 농주마을로 내려가는 삼거리. 이정표와 억새와 바다가 너무나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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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능선을 타고 내려가는 길에 너무나 아름다운 이정표가 섰다. 순천만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선 이정표는 이제 막 피어나 바람에 한들거리는 억새와 잘 어울린다. 아! 아름답다. 가을이 살며시 다가오는 기분에 설레는 느낌이다. 배경으로 깔린 바다는 너무나 평온하다.

덧붙이는 글 | 9월 12일 풍경입니다.



태그:#앵무산, #순천만, #곡고산, #해창마을, #김종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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