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 안에서도 FTA(자유무역협정)를 극렬히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우리의 기업형 슈퍼마켓(SSM) 제한 관련법 개정 등을 들고 나와서, FTA가 발효되기 전에 '한국에서 이렇게 하고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면 우리쪽에서도 토론하기가 어려워진다."
난감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김종훈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의 말이다. 그는 15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청사에서 한 정례브리핑에서 현재 국회에서 추진 중인 SSM 진출 제한 관련 법 개정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재차 확인했다.
그는 특히 이날 브리핑장에서 백색칠판에 그림을 그려가면서, "재래시장과 주변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유통산업발전법과 상생법 등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라면서 "이 두 개 법안이 통과되면 대한민국 전 국토의 유통산업을 규제로 묶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본부장이 국내 유통문제에 대해 이처럼 구체적으로 반박한 건 국내에 들어와 있는 다국적 유통업체와 해당국가의 반발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종훈 본부장 "국회 SSM 관련법 찬성 못한다" 강하게 반박지난해부터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국내외 대형유통업체들이 기존 대형마트보다 크기를 줄인 SSM을 적극적으로 내놓고, 골목상권을 집중 공략해 왔다. 이 때문에 국내 중소 슈퍼마켓들이 대거 도산하는 등 사회문제가 되자, 정부와 국회에서 이를 규제하는 관련 법을 제출해놓은 상태다.
문제는 이같은 규제에 대해 해당 업체 뿐 아니라 영국 등 관련 국가에서 세계무역기구(WTO) 규정 위반 등을 주장하면서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 특히 이미 가서명까지 마친 한-EU FTA 협상도 일부 국가의 반대로 올해 안 협정 발효도 사실상 어려워진 상태다.
김 본부장은 "유럽연합과 FTA 발효까지는 우리 뿐 아니라 해당 국가 정치권의 토론 등을 거쳐야 한다"면서 "그런데 FTA가 발효가 되기도 전에 유럽 일부에서 우리의 SSM 법 개정을 들고 나오면, 그것만 가지고 토론하기도 힘들고 (FTA 자체가) 매우 어려워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재래시장 자체에 대한 보호에 대해선 우리의 역사성과 전통성, 문화 등이 있기 때문에 (유럽쪽을 설득할) 명분도 있고, 주변 500미터까지 SSM 진출 규제 역시 일부 완충지대 성격으로 설득할 수도 있다"면서도 "하지만 현행 공정거래법 등으로 충분히 규제 가능하며, 현재 국회에서 개정이 추진 중인 법안에 대해선 찬성할 수 없다"고 강하게 말했다.
"한-EU FTA, 올해 안 잠정 발효는 어려울 듯"
김 본부장은 또 유럽연합과 미국, 일본, 중국 등 민감한 국가들과 현재 진행 중인 FTA 협상에 대해서도 비교적 자세하게 생각을 밝혔다.
이미 유럽연합과 가서명까지 해놓았던 한-EU FTA의 경우 그는 "당초 기대했던 올해 안 잠정 발효까지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EU쪽에서 지난 10일과 13일 이틀에 걸쳐 이사회를 개최했지만, 이탈리아의 FTA 승인 반대에 막혀 합의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 본부장은 "FTA의 경우 EU 회원국의 만장일치가 필요한 의제"라며 "내일(16일) 정상회의가 열리는데, 집행위쪽으로부터 정상들 간의 정치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한-EU FTA에 대해 이탈리아가 자국의 자동차산업 보호를 이유로 반대하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반박했다. 김 본부장은 국내에서 유럽으로 수출되는 자동차 대부분이 중형차 이상으로 이탈리아가 주력으로 삼고 있는 소형차가 아니라는 점을 들었다. 또 유럽으로 수출되는 국내 소형차의 경우 인도 혹은 체코 등 유럽 현지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이번 FTA와 크게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김 본부장은 "이탈리아의 경우 국내 정치상황이 매우 혼란스럽다고 한다"면서 "이같은 정국 혼란까지 전망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한-EU FTA에 대해 당초 여러 가지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면서, "플랜 A는 올해안 발효, 늦어도 내년 1월 1일에 협정이 발효돼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이것은 사실상 물리적으로 어렵게 됐다"고 덧붙였다. 물론 '플랜 B'에 대해선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았다.
"미국, 준비 안 돼 있어... 한미FTA 11월까지 협의 마무리하기 쉽지 않아"이와 함께, 한미FTA 추가 협의에 대해서도 "지난 7월 론 커크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통화한 후 별다른 진척이 없는 상태"라며 "USTR에서도 미 의회와 계속 협의를 하고 있는 것 같고, 다만 우리가 협의를 재촉하기보다는 미국이 준비되면 협의를 시작하겠다는 입장"이라고 김 본부장은 말했다.
그는 그동안 한미FTA 추가 협의가 9월 말에는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해왔지만, 이 역시 쉽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9월말 협의) 가능성은 배제하지 않는다"면서 "하지만 그럴만큼 준비가 진척돼 있지 않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또 오는 11월 초 서울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 전까지 한미FTA 실무협의를 마무리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다. 그는 "양국 대통령이 합의한 만큼 '11월 초까지 협의 마무리'라는 당위성에 대해선 생각하고 있지만 쉽지 않을 것 같다"면서 "11월 이후에는 미국 역시 중간선거 등 선거에 매몰되고, 이후 레임덕 세션 등이 있어 향후 한미FTA의 전망에 대해 정확하게 말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일·한중FTA에 대해서도 김 본부장은 "한일FTA는 16일 도쿄에서 국장급 협의가 시작될 것이며, 이는 과거 협상이 중단된 내용에 대해 진전이 있을지 여부를 알아보는 협의"라고 말했다. 한중FTA는 오는 28~29일 이틀 동안 양국의 민감한 분야를 어떻게 다룰지에 대한 사전협의가 있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