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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쌍용자동차 공장을 점거하고 옥쇄파업을 벌였던 한 노동자. 지금 그의 집에는 라면박스가 쌓여있습니다. 여전히 쌍용차 공장 안에 갇혀있다고 생각하는 그에게 온갖 상비물품을 자기 주변에 챙겨두는 버릇이 생긴겁니다. 싸움은 끝났지만, 그에겐 극한 투쟁이 남긴 상처가 너무도 깊습니다. 기륭, KTX 승무원에 학습지 노조 재능지부까지. 많은 노동자들이 1000일 남짓 또는 그보다 더 오랜 시간 동안 투쟁현장을 지키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투쟁 그 후]를 통해 그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재능교육 농성이 오는 15일로 1000일째를 맞는 가운데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 오수영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재능교육지부 사무국장이 부당한 해고와 단체협약의 원상회복을 요구하며 농성을 하고 있다.
 재능교육 농성이 오는 15일로 1000일째를 맞는 가운데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 오수영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재능교육지부 사무국장이 부당한 해고와 단체협약의 원상회복을 요구하며 농성을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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쌩쌩 달리는 차들로 인해 매연은 물론이고 세상의 온갖 먼지가 코와 입으로 들어오는 듯하다. 목은 컬컬해지고 눈은 뻑뻑해졌다. 눈을 껌뻑거리고 침을 삼켜도 답답한 느낌은 가시질 않았다. 자동차 소음으로 인해 작게 말해서는 옆의 사람이야기도 잘 들리지 않았다. 지나다니는 사람의 눈길도 곱지만은 않다.

집회 신고를 내고 1인 시위를 하는 데도 비켜서라며 채증용 사진기를 들이대는 용역들에 의해 신경도 잔뜩 곤두선다. 몸도 마음도 힘든, 한마디로 오래 있을 곳이 못 됐다.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 있는 재능교육 앞, 재능교육 노조가 1000일 동안 투쟁한 그곳에서 단 3시간 머문 후 느끼고 경험한 것들이다.

딱 1000일이다. 조합원들이 재능교육 앞에서 매일같이 24시간을 보낸 지 15일로 1000일이 됐다. 열악한 환경에서의 1000일은 조합원들에게 '호흡기 질환'이라는 고질병을 안겨줬다. 종로구청에서 간이 천막을 부수기도 여러 번. 때문에 천막을 칠 수 없어 바닥에 매트 3장을 깔고 큰 우산으로 햇빛을 막는 것이 농성장 대오의 다였다. 상황이 이렇기에 이번 여름의 혹독한 더위는 사람을 녹아내리게 했다.

지난 8일, 재능교육 앞에서 만난 유명자 전국학습지 산업노동조합 재능교육 지부장은 "이번 여름이 정말이지 죽도록 힘들어서 살아남은 게 기특할 정도"라고 말했다.

재능 조합원들의 투쟁 1000일,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

재능교육 농성이 오는 15일로 1000일째를 맞는 가운데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 유명자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재능교육지부 지부장이 자신들을 노동조합으로 인정해 줄 것과 단체협약의 원상회복을 요구하며 농성을 하고 있다.
 재능교육 농성이 오는 15일로 1000일째를 맞는 가운데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 유명자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재능교육지부 지부장이 자신들을 노동조합으로 인정해 줄 것과 단체협약의 원상회복을 요구하며 농성을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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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교육 조합원들은 2007년 12월 21일부터 "학습지 노동자를 착취하는 부당한 임금체계 개선, 노조와의 단체협상 체결"을 주장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만일 새로 회원 10명을 가입시키고 그만둔 회원이 10명이라면 실적은 0이 돼요. 그런데 2007년 바뀐 수수료 체계에서는 10명이 그만두었을 때 실적 0과 5명이 그만두었을 때 실적 0이 달랐어요. 전체 회원 수에 비례해서 100명 중 10명이 줄면 10%로 비율을 쳐서 5명 그만 두었을 때보다 받는 수수료가 대폭 삭감되게 되죠. 이 제도로 교사 절반 이상의 월급이 줄었어요. 이를 피하기 위해 선생님들은 자신이 돈을 내고 허위로 실적을 보고하게 됩니다. 이렇게 교사 자신이 실적을 메우다 보면 빚더미에 앉게 되는 것이죠."

유 지부장의 말이다. 회사는 이 수수료 체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연락을 취하려는데, 재능교육 측이 먼저 다가왔다. 대학로에서 <오마이뉴스> 본사가 있는 상암동까지 와 사측의 입장이 담긴 자료를 건네주려 했다. 기사를 내지 말아달라는 부탁과 함께였다.

사측 관계자는 "10명이 신규 가입하면 그에 따른 수익을 돌려주는 게 기본 구조"라며 "수입이 늘어난 사람도 있는데 마이너스 난 부분만 이야기하면 공정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래서 교사들 중 수입이 늘어난 사람은 얼마나 되는지 물었다. "해마다, 월마다 달라서 비율을 정확하게 말하기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렇다면 2009년 자료라도 달라고 요구했다. 사측 관계자는 "지금 갖고 있는 자료가 없다"고 말했다.

노조는 수수료 체계가 부당하다고, 사측은 온당하다고 주장하는 동안 노조가 회사와 맺은 단체협약도 깨졌다. 2008년 11월의 일이다.

노동자들은 회사가 일방적으로 단체협약을 깼다고 주장한다. 유 지부장은 "이전 노조 집행부들이 회사와 말도 안 되는 수수료 체계에 합의했지만 6천 명의 재능교사 모두를 힘들게 하는 수수료 체계를 감내할 수 없었기에 다시 협상을 하자고 회사에 요구했다"며 "그러나 회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일방적으로 단체협상을 깨버렸다"고 말했다. 

회사는 "이미 노조가 단체협상에 사인한 내용을 두고 갑자기 신흥세력이 기존에 있던 이들을 사퇴시키고 다시 단협을 하자고 요구한 것이다, 집행부 바뀌었다고 다시 협상하자는데 우리가 또 사인해야 되나"는 입장이다.

결국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1000일이 지났다. 그 기간 동안 수천 명에 달하던 조합원들은 "회사의 압박을 견딜 수 없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며 지쳐갔다. 결국 조합원 규모는 1/50 이상 줄었다.

고소·고발 남발하는 재능 덕에 변호사 다 된 유 지부장

재능교육 농성이 오는 15일로 1000일째를 맞는 가운데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 오수영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재능교육지부 사무국장이 부당한 해고와 단체협약의 원상회복을 요구하며 농성을 하고 있다.
 재능교육 농성이 오는 15일로 1000일째를 맞는 가운데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 오수영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재능교육지부 사무국장이 부당한 해고와 단체협약의 원상회복을 요구하며 농성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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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이들에게 1000일의 투쟁은 어떤 의미일까. 유명자 지부장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1000일이 올 걸 누가 알고 하겠어요. 그러나 현장에서 50만 원 깎이는 임금안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버텼고 어느새 1000일이 온 거죠."

그 1000일을 버티게 한 힘을 묻자 유 지부장은 "'배울 만큼 배웠으니 다른 데 가면 힘들게 이런 짓 안 해도 되지 않냐'는 이들도 있다"며 "그러나 스스로 싸우지 않으면 세상은 바뀌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기에, 후회하지 않고 꾸준히 해나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스스로 의지를 다지며 회사와 맞선 시간동안 유 지부장은 법률 전문가가 됐다.

"회사가 고소·고발을 남발해서 쌓여있는 벌금이 1억 원이 넘어요. 우리는 벌금을 인정할 수 없다며 정식 재판을 청구해서 재판 받고 있죠. 회사에서 건 재판이 넘쳐나니까 판사가 '이렇게 하는데 재능교육이 유지가 돼요?'라고 물을 정도였어요. 우린 변호사 수임할 능력이 안 되니까 우리 스스로 변호를 준비하고 증인 심문도 해요. 이제 변호사 다 됐어요."

전문가를 자청할 정도로 법에 빠삭해져 적극적으로 사측에 대응하는 그들. 이제는 경찰을 상대로 고소·고발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용역이나 회사 직원한테 폭행당했을 때 경찰에 신고하면 경찰은 자신이 못 봤으니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 없다고 했어요. 증거 자료들을 보여줘도 막무가내였죠. 근데 이제는 회사 직원이나 용역(회사 측 표현으로는 시설관리직원)이 자신도 맞았다고 하면 저희 쪽과 회사 쪽 모두 현행범이라면서 잡아가고 있어요. 목격하지 않아도 양쪽 진술을 듣고 보니 현행범으로 체포할 만하다는 겁니다. 심지어 2년 전과 지금, 같은 경찰이 그런 이야기를 한 거예요. 이게 말이 됩니까. 이전에 벌어진 폭행에 대해 조치 안 한 건 직무유기로, 최근에 현행범으로 체포한 건 직권남용으로 고소·고발하려고 해요."

헌데, 당찬 재능 조합원들에게 큰 일이 닥칠 예정이다. 회사 측에서 준비하고 있다고 알려진 손해배상 청구에 대한 강제 이행금 추징이 그것이다. 유 지부장은 "혜화서 등을 통해 들은 바에 의하면 회사가 명예훼손과 회사 업무 방해 가처분 관련 이행금을 받아낼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며 "대략적인 금액이 20억 원 대"라고 전했다.

2008년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회사의 업무방해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재능노조에게 회사 100m 반경 내 불법적 시위 등을 금지하고 위반 행위 1회당 100만 원을 회사에 지급하라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하루에도 조합원들이 다섯 명은 왔다 가는데 이것만 해도 하루에 5회 위반, 500만 원이고 한 달이면 1억5000만 원인데 회사가 많이 깎아줘서 엄청 싸졌네요."

유 지부장은 호탕하게 웃으며 '쿨'하게 말했지만 씁쓸해 보였다. 사측은 "20억 원은 근거가 없는 이야기로 전체 금액은 추산된 바 없다"며 "이행강제금을 신청해 절차를 밟고 있지만 돈을 받겠다, 안 받겠다 못 박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해고된 유 사무처장 "계속 학습지교사 하고 싶어요"

재능교육 농성이 오는 15일로 1000일째를 맞는 가운데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 오수영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재능교육지부 사무국장이 자신들을 노동조합으로 인정해 줄 것과 단체협약의 원상회복을 요구하며 농성을 하고 있다.
 재능교육 농성이 오는 15일로 1000일째를 맞는 가운데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 오수영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재능교육지부 사무국장이 자신들을 노동조합으로 인정해 줄 것과 단체협약의 원상회복을 요구하며 농성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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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노조에 닥친 시련은 또 있다. 16년 동안 재능 선생님으로 근무한 유득규 사무처장이 해고된 것이다. 해고 통보를 받은 후 유 처장은 심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현재 갑상선 질환을 앓고 있고, 작년엔 가슴에 종양이 발견 돼 수술도 했어요. 너무 힘들어서 교실을 좀 빼달라고 했는데, 회사에선 절대 안 된다더라고요. 이를 악물고 수업했죠. 그런데 노조 활동했다고 해고 하니까 배신감과 허탈감… 많은 감정이 교차했어요."

이에 대해 사측은 "선생님이 위탁 계약을 맺었던 것과 달리 회원 관리를 철저히 하지 않고 농성 현장에 수시로 나타났으며, 재능 불매 운동에 동조하고 수수방관했다는 점에서 전체 4500명 선생님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볼 수 없었기에 계약해지를 한 것"이라며 "노조활동에 대한 책임을 물은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유 사무처장은 "내가 해고 되자 회원 어머니들이 회사가 너무하다며 내가 돌아올 때까지 수업을 받지 않겠다고 하고, 몇몇 분은 회사에 항의전화도 했다"며 "내가 회원관리에 소홀했다면 어머니들이 이렇게까지 나섰겠냐"고 반문했다.

회사의 냉담한 태도에 상처도 받았지만, 유 사무처장은 하루 빨리 복직될 날을 꿈꾼다.

"일은 너무 힘들지만 16년간 일 하면서 한글 모르던 애가 한글을 떼고 더하기 빼기를 하고 받아쓰기를 하는 변화를 지켜보는 게 참 좋았어요. 계속 학습지 교사 일을 하고 싶어요."

쏟아지는 시련에 굴하지 않고 어마어마한 이행 강제금 앞에서도 쫄지 않는, 무서울 것 없어 보이는 이들이 두려운 것이 있다. 바로 추석이다. 유득규 사무처장은 "1000일 되기 전에 투쟁을 끝내자는 의미로 그동안 기획했던 일들이 1000일 될 시점에 거의 마무리 되고, 바로 추석 연휴가 이어진다"며 "연휴도 긴데 투쟁 의지가 꺾일까 걱정이 돼서 1000일에는 새로운 투쟁을 시작한다는 각오로 앞으로 함께 나아가자는 장을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1000일을 종착점이라 여기고 달려왔지만 이제는 '1000일 그 후'를 준비해야 하는 재능교육 조합원들. 그들의 추석은 쓸쓸하지 않을 수 있을까.


태그:#재능 노조, #1000일, #투쟁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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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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