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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새벽 충남 서북부 지역을 마구 짓밟고 지나간 제7호 태풍 '곤파스'를 생각하면 지금도 오금이 저린다. 어감도 좋지 않은 곤파스는 평생 동안 잊히지 않을 이름이 되었다. 올해 87세이신 노친은 "내 평생 그런 난리, 그렇게 센 바람은 처음"이라고 했다. 서해로 돌출된 반도인 태안지역의 피해가 가장 심한 건 자명한 일이다. '태안(泰安)'이라는 한자 이름의 뜻을 무색하게 만든 초유의 자연재해였다.

태풍 '곤파스'의 위력 폭격을 맞은 것 같은 태안성당 공원묘지 주변임야 풍경이다. 흥선대원군 시절 '경복궁 재건'에 크게 기여했던 안면도 송림에는 부러진 소나무들이 수천 그루에 이른다.
태풍 '곤파스'의 위력폭격을 맞은 것 같은 태안성당 공원묘지 주변임야 풍경이다. 흥선대원군 시절 '경복궁 재건'에 크게 기여했던 안면도 송림에는 부러진 소나무들이 수천 그루에 이른다. ⓒ 지요하

조경수 농장을 가진 친구는 졸지에 웃음을 잃었다. 그는 적송(赤松)을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 거의 부러지거나 뽑혔다고 했다. 과수농장을 가진 친구는 올해뿐만 아니라 내년에도 수확이 어렵다고 했다. 이파리들까지 잃은 나무들이 겨울나무처럼 헐벗은 꼴이 되어서 나무들의 생장 자체가 어렵다는 얘기였다. 인삼밭을 가진 교우(敎友) 한 분은 6년근과 5년근 인삼밭의 쓰러진 햇볕가리개부터 일으켜 세우는 일로 초주검이 되었다.

고추밭마다 붙어 있는 고추보다 떨어진 고추가 많고, 생강밭들은 부러진 대궁들이 밭을 덮었다. 잦은 비로 땅이 물러서 나무들이 쉽게 뽑혔는데, 뿌리가 깊고 단단한 소나무들은 뽑힌 나무들보다 부러진 나무들이 많다. 소나무 중에서도 어느 정도 유연성이 있는 해송들보다 곧고 단단한 적송들이 많이 부러졌다. 부러지거나 비스듬히 기울어진 적송들을 보노라면, 소나무가 왜 절개와 기상을 상징하는지도 느껴지고, 애처로움 가운데서 태풍 곤파스에 대한 공포심과 야속한 마음도 피어오른다.

사람들은 말한다. 태풍 곤파스가 꼭두새벽 무렵에 그 난리를 쳤기 망정이지 낮에 심술을 부렸다면 인명 피해도 많았을 거라고. 그것을 천만다행으로 여겨야 한다고. 그런데 '천만 다행'이라는 말이 나는 왠지 불안하다. 곤파스와 같은 태풍은 과거완료형일 수 없기 때문이다. 지구환경의 변화는 한반도의 기후를 변화시키고 있다. 한반도의 사계절은 점점 희박해져 가고, 온대지방에서 아열대지방으로 편입되어 가는 중이다.

바다 한류는 점점 위로 밀려나서 캄차카반도 근방에나 가야 명태를 잡을 수 있고, 난류 생물인 큰 해파리들이 어민들의 어업을 방해한다. 머지잖아 한반도 연안에서 바다뱀에 물리는 사람도 생겨날 것이다. 또 열대야는 점점 더 기승을 부리고, 잦은 비로 농민들의 시름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자연을 온통 까뒤집고 마구 난도질하는 일을 벌이고 있다. 4대강 사업은 강을 살리는 일이 아니라 뭔가에 눈이 뒤집혀서 멀쩡하던 강을 죽이는 일이고 아예 강을 없애는 일이다.

자연은 인간의 방자한 만행으로 모멸을 당하고 핍박을 당하면 어떤 형태로든 보복을 하게 되어 있다. 인재(人災)에 자연재해가 겹치는 상황이 두렵다. 자연재해에 대한 확대된 시각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16일치 <대전일보> 문화면 칼럼 ‘한밭춘추’에 게재된 글입니다.



#태풍 피해#태풍 곤파스#지구온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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