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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과 때아닌 가을장마가 지나간 이번 주는 내내 청명했다. 청명한 가을날씨의 9월 중순, 나는 서울에 산 지 18년이 되도록 한번도 찾아본 적이 없는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찾아 김대중대통령 묘소에 참배하고, 동교동에 있는 김대중 도서관에 들러 그의 흔적을 둘러보았다.

방금 누가 헌화하고 분향한 듯, 향이 피어오르고 있다.
▲ 국립현충원 김대중 대통령 묘소 방금 누가 헌화하고 분향한 듯, 향이 피어오르고 있다.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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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전에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 뵌 적이 없다. 평소에 그 사실을 의식한 적도 없었고, 아쉽다고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김대중 자서전을 읽고 그의 진면목을 일부분이라도 알게 되었다 싶으니, 멀리서라도 한번 못 뵌 것이 무척 안타깝게 여겨졌다. 그래서, 사후에라도 그의 기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을 찾아보고 싶었다.

'인간 김대중'을 새롭게 발견하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인간 김대중'의 여러 면을 새롭게 발견하였다. 그가 대통령을 했고, 한국 정치사에 길이 남을 인물이라는 것에 점수를 주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가 한 인간으로서 정치적 고난에 접했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고 이겨내고 때로는 저항하는 모습과, 그런 고난의 세월마저도 '용서'로 화해했던 면, 그리고 희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상황에 처해서도 의미를 찾고 긍정적으로 자신을 돌보려 했던 면을 진정으로 높이 사게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는 대의만을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참으로 사람을 향한 측은지심의 마음이 컸던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책에서 그는 어릴 때부터 눈물도 많고 겁도 많았다고 고백하고 있지만, 내가 보기에 그건 흠이 아니라 인간이 겪는 보편적 고통에 대한 풍부한 감수성이자 그의 정치철학에 대한 기본 근간이 되어 그를 빛나게 한 큰 자산이었다.

때로는 한 송이 꽃보다도 못한 것이 사람

신군부 치하에서 사형선고가 무기징역으로 감해진 뒤, 청주교도소에서 있을 때의 일화다. 그가 감옥의 화단에서 꽃을 키우다 겨울철이 되어 화분에 아젤리아 한 송이를 옮겨 감방 안에서 햇볕 따라 옮겨가며 키우는 장면을 읽으며 참 가슴이 짠해졌다.

꽃을 키우며 마음을 달랬던 청주교도소 시절 입고 지냈던 옷과 소지품이 전시되어 있다.
▲ 김대중 도서관에 전시된 수인복 꽃을 키우며 마음을 달랬던 청주교도소 시절 입고 지냈던 옷과 소지품이 전시되어 있다.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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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젤리아는 가을에 꽃망울을 맺었다가 겨울을 나고 봄에 꽃을 피우는데, 감방 안에서 햇볕을 계속 쬐더니 꽃망울이 부풀어 올라 마침내 꽃으로 만개한다. 우연치 않게 그날 오후, 청주교도소에서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지게 된 것을 알게 된 김대중씨는 '내가 다른 곳으로 옮길 것을 미리 알고 아젤리아는 내게 꽃을 보여 주려고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날 꽃망울을 터뜨렸다' 라고 회고한다.

그 장면은 한송이 아젤리아조차도 그와 진심을 교감하며 한겨울에도 꽃을 피워냈는데, 우리는 그의 진심을 언제가 되어서야 알았나? 아니, 알면서도 그를 의도적으로 폄하하고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은 무엇이었나? 무지의 소산일지 모르나, 그의 묘소에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한 일을 생각하면 한 송이 꽃보다도 못한 것이 때로는 사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생각은 나도 그들과 별다르지 않았던 개인적인 이력과도 연결된다. 나는 대구에서 자랐고, 아버지는 직업군인이었다. 집안의 정치적 편향성은 생각하는 바 그대로였다. 1987년 대선 때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투표권은 없었지만, 익숙한 말씨에 아버지와 같은 직업에 집권여당 후보에, 나는 노태우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였다. 그에 비하면 TV 에서 가끔씩 보이는 김대중씨는 듣도 보도 못하던 사람이었다. 나에겐 아주 생소한 빠르고 쏘는 듯한 말씨에 검은색 두루마기를 입고 사람을 선동하는 말을 청산유수처럼 하는 사람이었다.

그것이 내가 살던 지역의 편견일 수 있다는 것을 안 것은 그해 1박2일의 짧은 서울 여행이엇다. 전국적으로 치러진 88서울올림픽 관련 글짓기 대회에 수상한 몇 십 명의 고등학생들을 서울로 초청한 일정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무난하게 진행되던 일정 중에, 올림픽 공원 역도 경기장에선가 학생들이 다 모였을 때 이상한 기류가 느껴졌다. 그때는 시기적으로 한창 대선 열기가 고조되어 갈 무렵이었다. 여러 지역에서 뽑힌 학생들간에 우연히 지역감정이 노출되는 말들이 오갔다.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학생들 간 분위기가 험악해지더니, 인솔하던 선생님이 겨우 수습한 일이 있었다.

그때 나는 왜 저 학생들은 저렇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졌다. 이 자리에 참석할 정도의 학생이면 뭘 몰라서 또는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저런 얘기를 하지는 않을 텐데, 분명히 무슨 사연이 있을 것 같다고 보였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내가 아는 사람들처럼 생각하는 건 아니구나라고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그때 뿐이었다. 그해 대선에선 노태우씨가 당선되었고, 학교 선생님들 중 몇몇 분이 단일화가 안 돼서 그래라며 아쉬워하던 모습을 나는 영문도 모르고 낯설게 쳐다보았다.

그러던 내가 김대중씨에 대해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된 건, 김영상 대통령과의 대선에서 석패하고 정치은퇴를 선언하던 시점(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서 직장을 얻게 되던 즈음)부터였다. 나는 TV로 방송되던 그의 정계은퇴 선언에 충격을 받았다.

그 전까지 자세한 상황을 모르던 나는, 그를 그저 정치적 욕망이 가득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대선 패배 후 바로 다음 날 깨끗하게 승복하고 정치적 야망을 접다니, 이건 쉬운 일이 아니다. 저 사람에겐 뭔가가 있다고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이다.

나이 마흔여덟 살에 영어공부를 새로 시작한 사람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그가 펴낸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란 책을 읽었다. 그를 조금씩 알고 싶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정계은퇴 선언으로 그가 신선해 보였고 호감도 생기기 시작했지만, 그가 영어공부를 마흔여덟 살에 시작했다는 문장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때 난 겨우 스물네 살에 불과했지만, 벌써 내 인생은 대학전공과목과 그와 연결된 직장생활로 고착되어 간다고 보았고, 그 상태를 바꿀 수 있는 건 꽤 큰 용기가 필요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무려 마흔여덟(그때 내 나이의 2배)의 나이에도 영어를 새로이 공부하기 시작했다니, 나는 그의 의지가 예사로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를 닮고 싶었다. 그의 한 송이 아젤리아처럼 나도 서서히 그의 진심에 귀 기울이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나 같은 사람조차 그에게 호감을 가지고 그를 알고 싶어하게 된 시대의 기운에 부응해서일까? 몇 년 후 그는 정계에 복귀했고, 다음 대통령이 되었다. 그를 지지했고 그의 선거 승리를 축하했지만, 그때는 나도 결혼한 후 아이 엄마가 되었고, 새롭게 시작한 일과 IMF라는 국가적 재난상황에 남편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며 그에 대해서 서서히 잊었다.

또다시 그가 내 눈앞에 전면으로 등장한 건 2000년 6월 15일이다. 그때 나는 둘째 아이 산후 휴가 중이었다. 덕분에 평양으로 도착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는 장면을 생방송으로 처음부터 계속 지켜볼 수 있었다. 어찌나 가슴이 벅차던지 나중엔 눈물까지 흘리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나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랬다. 그저 덤덤하던 국민 눈에 감격의 눈물을 흘리게 하던 그 순간, 그는 그가 평생의 신념을 가지고 추진했던 평화통일 의지를 바로 국민과 교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기억 때문인지,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기술하고 있는 부분을 읽을 때는 이미 지난 일인데도 그 구체적인 일의 진척상황을 가슴 졸이며 보았다. 숨겨진 막후 조율자,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의 조율과 노고에도 치하를 보내고 싶었다.

첵을 읽으며 아쉬움과 행복이 교차하다

8월초에 책을 주문하고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일주일이 지나서야 받은 책은 정말 두꺼웠다. 다 읽을 수나 있으려나 싶었는데, 펼치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우리의 현대사가 그대로 읽히는데 직장을 다니는 와중에도 밤마다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퇴근해서 밤에 읽기 시작해서 하루에 200페이지씩 일주일 읽는 동안 새롭게 체득하는 현대사와 김대중이라는 걸출한 인물과의 만남이 무척 행복했다.

반면, 속속들이 알게 되면서 아쉬움으로 땅을 치고픈 순간도 많았다. 박정희의 쿠데타 순간에 잠적한 장면 총리와 그 상황을 자신 위주의 정계개편으로 오판한 윤보선 대통령, 10.26 사태 이후의 권력 공백기, 1987년 양 김의 분열, 남북정상회담 이후 화해무드로 들어서는 북한을 방문하려 했던 클린턴이 임기 말미 일정 조정으로 북한방문을 취소하고 아랍권방문으로 틀어버린 일, 그 이후 집권하게 된 부시와 북한의 대립, 그리고 말년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까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고, 국운이 융성하는 기운에는 시기가 따라야 한다고는 하지만 김대중 그도 한 인간이었을 터, 그 모든 일을 겪어낸 심정이 오죽했을까 싶다. 그는 정말 우리 현대사를 위한 한 알의 밀알이요 거름이었다. 

한 권의 좋은 책은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한 NGO활동가는 내가 이 책을 읽고 국립묘지를 참배할 생각이라고 하자, 자신은 강준만 교수가 쓴 <김대중 죽이기>라는 책을 읽고 NGO 활동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그 활동가의 청년기처럼 바로 내 인생을 바꿀 용기는 아직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적어도 세상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를, 우리가 어떤 시대의 모퉁이를 살고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행동하는 양심'을 가슴에 지니고 살고 싶다. 우리 아이들의 질문에 내가 어떻게 답변할 것인지, 사람과 인생과 역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 앞으로 계속될 선거와 투표에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큰 지침이 된다. 이미 많은 분들이 보셨겠지만, 아직 그 기회를 가지지 못한 분들께 일독을 권하고 싶다.


김대중 자서전 - 전2권

김대중 지음, 삼인(2010)


태그:#김대중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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