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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1호선과 6호선이 만나는 '동묘앞역'. 숲이 우거진 곳이 중국의 '관우'를 모신 '동묘'이다.
▲ 동묘앞역 서울 지하철 1호선과 6호선이 만나는 '동묘앞역'. 숲이 우거진 곳이 중국의 '관우'를 모신 '동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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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450만 명. 서울의 지하철 1호선~4호선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숫자다. 서울 구석구석을 연결하는 또 다른 지하철인 5호선~9호선 그리고 서울·경기 지역을 넘나드는 경의선을 비롯해 분당선, 중앙선 등을 이용하는 승객들을 합치면 천 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매일 서울을 지하로 누비고 다니는 셈이다.

이처럼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다 보니 지하철에서는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그 중에서 지하철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는 뉴스는 가장 가슴이 아프면서도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는 소식이다. 지금은 대부분의 지하철에 '안전문(PSD, Platform Screen Door, 플랫폼스크린도어)'을 설치해 자살 등의 사고를 많이 줄이기는 했지만.

천 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매일 누비고 다니는 서울 지하철

한편, 지하철은 버스, 택시 등과 달리 지하를 관통하기에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사건사고도 많다.

지난 8월 26일 오후 11시경, A(43)씨는 서울 동묘역 승강장에서 갑자기 쓰러졌다. 이 광경을 목격한 승객의 신고로 119구급대와 경찰이 출동했고, 밤 근무를 서던 역무원 김재덕(53) 과장은 A씨를 역무실로 옮겨 성심성의껏 응급조치하며 의식을 돌봤다.

구급대와 경찰이 돌아간 뒤, 김 과장은 A씨의 부인과 통화해 급히 동묘역으로 불렀다. 택시로 돌아가려는 부인이 A씨를 제대로 부축하지 못하자 김 과장은 애써 A씨의 서울 창동 집까지 동행하는 친절을 베풀었다. 김 과장이 A씨를 집에 뉘이고 동묘역으로 복귀한 시각은 새벽 3시가 다 될 무렵이었다.

서울메트로(1~4호선) 117개역 중에서 '고객서비스 최우수역'에 선정된 동묘앞역.
 서울메트로(1~4호선) 117개역 중에서 '고객서비스 최우수역'에 선정된 동묘앞역.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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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6일 오후 3시 무렵 김재덕 과장을 만나기 위해 동묘역을 찾았다. 동묘역은 지하철 1호선과 6호선이 만나는 환승역이지만, 그리 혼잡하지 않은 시간 때라 역내는 생각보다 조용한 편이었다.

김 과장은 A씨에게 베푼 선행 이야기를 꺼내자 쑥스러워하며 웃었다.

"최근 사람들이 공무원에 대해 갖는 불신이 커진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해요. 저희도 공직을 수행하는 사람들인데… 고객들에게 최대한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소명의식이 있어요. 역을 잘 지키는 것도 시민에 대한 봉사활동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의외였다. '소명의식'과 '봉사활동'이라니. 아무리 공무원이지만 역무원에게는 다소 거창한 개념이 아닐까. 그러나, 이어지는 김 과장의 말을 들으며, 순간이긴 했지만 철부지 없는 생각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정년퇴직과 직무변경, 자동화기기 설치 등으로 직원(1~4호선 '서울메트로')의 숫자가 1만 2천명에서 1만 3천명 가량에서 지금은 1만명 내외로 줄었어요. 동묘역의 경우 갑·을·병 5명씩 3조 2교대로 근무하다보면 업무량이 적지 않아요. 그래도 저희 역은 서울시 평가에서 '고객서비스 최우수역'으로 선정되었으니 나름의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김 과장은 지하철에서 25년 경력을 보냈다. 새벽과 낮 시간을 번갈아 출퇴근하는 지하철의 삶은 쉽게 짐작이 가지 않는다. 그는 여러 역에서 근무한 경험담을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지하철 역무원에게 '지상 역사는 꽃보직'

"지하철역에서 가장 좋은 곳이 어딘 줄 아세요? 지상에 있으면서 환승역이 아니고 사람들이 많이 오가지 않는 역이에요. 역무원이 30~40명 정도 되는 서울역의 경우 환승역인데다 노숙자 보호를 비롯해 할 일이 참 많아요. 그럼, 종착역은 편할 것 같죠? 새벽 1시까지 연장운행하면서부터 취객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습니다."

서울 동묘역에는 서울 동북부의 지하철역 몇 곳을 묶어 관리하는 '동묘서비스센터'가 있다. 김 과장과 함께 역을 지키는 이학진 역장뿐만이 아니라 센터를 관리하는 한백수 센터장을 만나기 위해 계단과 엘리베이터를 몇 차례 오르락내리락했다. 그 과정에서, 김 과장의 친절은 확실하게 몸에 밴 것임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에고, 어르신 잘못 올라오셨어요. 1층으로 가셔야 출구가 나오는데, 지하 1층에서 층수도 안 누르고 타셨죠? 여기는 4층이에요. 자, 같이 내려가세요."(센터장이 있는 지상 4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려는데 어르신 2분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당황하자)

"춘천 약국이요? 요기로 나가셔서 왼쪽으로 쭉 올라가시면 나옵니다."(뜬금없이 웬 어르신이 '춘천약국이 어디야? 청량리역에서 물어봐도 모르고…'라고 묻자)

동묘앞역에는 '동묘서비스센터'가 있다. 서울역, 시청역, 종로3가역 등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이들 역을  이곳에서 총괄한다.
▲ 동묘서비스센터 현황 동묘앞역에는 '동묘서비스센터'가 있다. 서울역, 시청역, 종로3가역 등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이들 역을 이곳에서 총괄한다.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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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묘역은 다른 역에 비해 어르신들이 많았다. 역과 바로 이어지는 곳에 우리나라 보물 제142호로 지정된 '동묘(동관왕묘)'가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장수 '관우'를 기리며 세운 '동묘'는 '종묘'처럼 길옆으로 떠들썩하게 벌어진 좌판이며, 주머니 가볍게 식사에 음주까지 해결할 수 있는 선술집 등 어르신들의 발걸음을 멈춰 세우는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넘쳐났다.

열악한 근무환경에서도 고객을 위해 최선을 다 하고 있다

25년 경력의 김재덕 과장과 27년 경력의 이학진 역장 그리고 36년 경력의 한백수 센터장은 오늘도 동묘역을 지키고 있다.

이학진 역장은 "1984년 지하철 요금이 110원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2010년 요금이 1000원 정도니까 27년 동안 10배 정도밖에 안 올랐는데 인원 부족으로 인해 고객서비스를 제대로 못 할 때가 가장 안타깝다"며 "그래도 고객들의 사랑이 있는 한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백수 센터장은 "환승으로 인한 손실이 연간 1200억원 정도 되고 무임승차하는 노인분담금까지 합하면 정부에서 연간 1400억원 정도를 지원받아야 한다"며 "5·6·7·8호선(서울시도시철도공사 운영)과 경쟁관계에 있지만, 서울메트로는 무조건적인 에너지 절감이 아니라 고객들의 편의를 최우선에 두고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묘앞역과 동묘서비스센터를 지키는 김재덕 과장, 한백수 센터장, 이학진 역장(왼쪽부터).
 동묘앞역과 동묘서비스센터를 지키는 김재덕 과장, 한백수 센터장, 이학진 역장(왼쪽부터).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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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역장과 한 센터장의 말을 종합하면, 인원과 재원 부족 등 열악한 근무환경에서도 고객을 위해 최선을 다 하고 있음을 시민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이 담겨 있다. 이들의 바람은 오늘도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지하철 속에서 하나씩 꽃을 피우고 있다.

"일본인 관광객이 환전을 해 달라고 역무실로 찾아오지 뭡니까? 말로 설명이 안 돼서 동대문까지 택시에 태워 직접 환전을 해 준 경우도 있어요. 모르긴 몰라도 '대한민국은 참 친절한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통역 센터에 연결해 주는 건 뭐 일도 아니고요."

김 과장의 일상사에는 고객을 향한 바람과 꽃이 잔뜩 묻어 날린다. 지하철이 육중한 몸을 이끌며 어둠을 뚫고 사람들을 실어 달리듯, 이번 추석처럼 긴 연휴에도 김 과장은 쉴 겨를 없이 교대 근무를 위해 달릴 것이다.


태그:#서울메트로, #지하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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