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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훈(가명)씨의 고3 딸은 이번 2학기 수시모집에서 총 4개 대학에 원서를 접수했다. 그런데 이씨는 딸의 수시원서 접수과정을 보면서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A씨는 "돈 없고 백 없는 사람은 수시 응시도 못하는 거냐"며 울분을 터트렸다.

먼저, 이씨의 딸이 응시한 중앙대 '다빈치 인재전형'을 보자. 입학사정관 전형인 이 전형은 서류평가 100%만으로 1차 합격자를 선발한다. 학교생활기록부, 지원서, 추천서 등을 입학사정관이 평가하는 것이다.

"부모가 실업자라고 쓰면 부모가 장관이라고 쓴 학생에게 밀리지 않겠나"

중앙대 입학사정관 전형인 '다빈치 미래인재 전형'과 '리더십 우수자 전형'에 응시하려면 부모님의 직업과 직위는 물론, 최종학력까지 기재해야 한다.
 중앙대 입학사정관 전형인 '다빈치 미래인재 전형'과 '리더십 우수자 전형'에 응시하려면 부모님의 직업과 직위는 물론, 최종학력까지 기재해야 한다.
ⓒ 중앙대 원서접수 화면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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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 인재전형에 응시하면서 이씨가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했던 건 '가정환경' 작성양식이었다. 이 전형이 요구하는 '가정환경'에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직업과 직장명은 물론, 직위까지 포함된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와 어머니의 '최종학력'을 초·중학교 졸업/ 고교졸업/ 전문대·대학 졸업/ 대학원 졸업(석사 또는 박사)에서 체크해야 한다. 맨 하단에는 '현재 함께 살고 있는 보호자는?'이라는 질문과 함께 부모 모두 동거/ 부만 동거/ 모만 동거/ 조부(모)/ 법적 보호자/ 기타를 선택하는 란도 있다.

부모의 직업과 직장명뿐만 아니라 직위까지 기재해야하는 건 한양대의 '미래인재 전형'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전형의 응시자는 학교생활기록부, 전 학년 성적증명서, 자기소개서, 학업계획서, 추천서 등과 함께 '가정환경'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한양대의 '가정환경' 작성양식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다.

"이 자료는 귀하의 성적뿐만 아니라 잠재력, 소질, 개인 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미래인재전형'의 특성상 부득이하게 요청하는 참고자료이며 추후 합격 및 입학 후 학교생활을 영위하는데 도움(예: 장학관련 등)을 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될 예정입니다."

한양대 '미래인재 전형'의 '가정환경' 작성 양식.
 한양대 '미래인재 전형'의 '가정환경' 작성 양식.
ⓒ 한양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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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가 아버지와 어머니로만 카테고리를 나눈 것과는 달리, 한양대는 '지원자와의 관계'에서 아버지인지, 어머니인지 혹은 '기타'인지 먼저 선택한 후 직업과 근무지 그리고 직위를 적도록 했다. 이와 함께, 현재 지원자와 동거하고 있는지, 아닌지도 선택하도록 했다.

이에 대해 이씨는 17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가정환경 서류에 부모가 이혼했다든가 실업자 혹은 무직이라고 쓴 학생은 부모가 교육부장관이라고 쓴 학생에게 아무래도 밀리지 않겠나"라며 "대학입시가 공정한 경쟁이 되어야지 처음부터 부모에 대한 선입견을 갖고 시작한다는 건 불합리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씨는 또한 "딸이 다른 두 개의 대학에도 원서를 접수했는데 중앙대와 한양대에서만 부모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요구했다"면서 "이런 불필요한 서류를 왜 요구하는지 모르겠다"고 흥분했다. 그러면서 "외교부 특채전형처럼 이것도 (부모의 직업과 학력을 묻는 것도) 고위관직자라든가 있는 집 자식들에게 특혜를 주려는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사회적 신뢰 형성안 된 상황서 부모 직위 적는 건 문제소지 있어"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한 김성민(가명) 교사 역시, 이번에 학생들 수시모집을 도와주면서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을 했다. 김 교사가 "황당하다"고 생각했던 건 중앙대의 '리더십 우수자 전형' 제출서류. 이씨의 딸이 응시한 다빈치 인재전형과 마찬가지로 입학사정관 전형인 이 전형은 지원자 부모님의 직위와 학력이 기재된 '가정환경' 서류를 필요로 한다.

김 교사는 "유명환 장관이 '내 딸이기 때문에 더 엄격히 (심사) 했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며 "부모의 직장과 직위를 보면서 평가하게 될 경우 (심사의) 객관성이 무너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부모의 직위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김 교사는 "고려대의 고교등급제 적용이라든가, 유명환 장관 딸 특혜채용처럼 사회적 신뢰가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부모의 직위를 적으라는 건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중앙대와 한양대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과한 반응"이라는 것이다. 중앙대 홍보팀 관계자는 "그거(질문 항목) 말고 가정환경을 알 수 있는 자료가 뭐가 있을까요"라고 반문한 뒤, "아버지의 직업에 따라 불이익을 주려는 건 아니고 서류평가다보니 학생의 전반적인 상황이 고려되어야 한다"며 해당 항목을 포함시킨 이유를 설명했다. "부모님이 좋은 직업을 갖고 있는 아이들에게 특혜를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양대 입학사정관 팀장은 "한양대 미래인재전형에서는 자기소개서, 추천서, 학업계획서를 별도로 받는데 그런 경우가 많지는 않지만 (이러한 서류들을) 누가 (대신) 써주는 경우도 있다"며 "작성한 내용이 가정환경 조사 내용과 일치하는지 확인을 해야한다"며 가정환경 서류를 받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이러한 조사가 학부모나 학생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면 내년부터는 해당항목을 삭제하는 것도 상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상명대, 추천자의 직업과 직위까지 적도록 요구

김성민 교사는 이번 수시모집을 겪으면서 본 또 다른 '황당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상명대 수시전형인 전문가추천자전형, 자기추천자전형, 교사·교장추천자전형, 지역인재전형이 그것이다. 이들 전형 역시 입학사정관 전형이다. B교사가 보여준 상명대의 '추천자 경력확인서'를 보면, 추천자의 인적사항에 추천자의 직장명(직업)과 직급(직위)를 적도록 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추천자의 경력·활동사항도 기재해야 한다.

상명대의 '전문가추천자전형, 교사·교장추천자전형, 지역인재전형'에서는 추천자의 직업과 직위뿐만 아니라, 경력사항도 기재해야 한다.
 상명대의 '전문가추천자전형, 교사·교장추천자전형, 지역인재전형'에서는 추천자의 직업과 직위뿐만 아니라, 경력사항도 기재해야 한다.
ⓒ 상명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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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사는 "추천자의 경력까지 적으라는 건 경력이 대단한 사람이 (학생을) 추천해줬을 때 이 사람을 신뢰하겠다는 건데, 학생 입장에서 아버지의 뒷배경 없이 추천자를 구할 수 있겠나"라고 꼬집었다. 또한 "교사추천자 전형에서는 교사의 경력을 적도록 해, 담임교사까지 제자를 위해 스펙을 쌓아야 할 실정"이라며 씁쓸해했다.

이에 대해 상명대 입학처 관계자는 "학생이 중요한 거지 추천인이 무슨 의미가 있나"라며 펄쩍 뛰었다. 이 관계자는 "(추천자 전형은) 유명한 사람이 추천을 하고 덜 유명한 사람이 추천을 하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학생에 대해 얼마나 잘 파악하고 잘 적었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추천자의 경력사항을 적으라고 한 건, 사학과인데 국어선생님이 추천을 하면 안 되는 것처럼 지원 자격에 맞게 추천을 받았는지 보기 위한 것 뿐"이라고 강조했다. 


태그:#수시모집, #입학사정관, #중앙대 다빈치 미래인재, #중앙대 리더십 우수자, #한양대 미래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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