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저씨 배추가 안 보이네요."
"이(저녁) 시간 되면 없어요. 워낙 비싸서 재고 남을까봐 몇 다발 안 갖다 놓으니까요. 재고 남으면 얼마나 손해인데요."

추석을 일주일 남겨놓은 지난 15일 저녁 때의 일이다. 우선 김치를 담가야 하겠기에 시장에 갔다. 배추값이 천정부지로 올랐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채소가게마다 물건들이 시원치 않다. 여느 때 같았으면 풍성해서 안 먹어도 배가 부를 정도였건만. 배추는 구색을 맞추기 위해 몇 다발 안 갖다 놓는다고 했다. 그건 시장에 있는 대부분의 채소전이 비슷비슷한 사정이었다. 그나마 저녁에는 배추구경하기도 힘들었다.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겠네!

"이렇게 비싼 명절은 처음" 채소와 과일 가격이 올라 추석 장보기가 만만치 않다. 그나마 재래시장이 과일, 채소의 가격이 싼 편이었다. 사진은 한 재래시장 과일 가게.
"이렇게 비싼 명절은 처음"채소와 과일 가격이 올라 추석 장보기가 만만치 않다. 그나마 재래시장이 과일, 채소의 가격이 싼 편이었다. 사진은 한 재래시장 과일 가게. ⓒ 이종찬

다음날 오전에는 조금 더 큰 시장으로 가봤다. 그곳에는 그래도 비싼 배추가 구색을 갖추고 있었다. 3포기 묶어놓은 한망에 17000원~22000원, 무는 한 개에 2000원~5000원, 대파는 3850원~4850원, 쪽파는 7500원~9000원 선이었다.

주부들은 채소전 앞에서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한다. 배추, 무 등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한다. 나이가 60대 중반 정도인 주부는 "그래도 명절이 돌아오는데 어찌하겠나. 비싸도 김치는 담가야지. 물가가 이렇게 비싼 명절은 처음인 것 같아. 다른 명절 때보다 절반도 하지 않는 거야. 누구 말처럼 빵 한 가지 놓고 차례를 지낼 수도 없는 일이니"라고 한다.

배추를 들었다 놨다하다가 그대로 돌아가는 주부들도 눈에 띄었다. "며칠 있으면 조금 내리지 않을까"하며. 나도 그 말을 듣고 혹시 '며칠 지나면 조금 싸지지 않을까?' 잠시 망설이다가 나온 김에 사기로 했다 . 배추 한 망과  무, 대파, 쪽파(작은 다발), 생강 등을 사가지고 왔다.

17일은 대형마트에 갔다. 과일, 고기, 약식, 채소 등의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재래시장보다 가격이 비싼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도 깔끔하게 포장되어 있는 상품에 자꾸만 눈길이 간다. 그러나 실상 장을 보기 시작하자 깔끔하게 자리하고 있는 과일과 한우 등은 꿈도 못 꾸고 호주산 소고기와 과일 등 몇 가지 제수용품만 샀다.

호주산 소고기 산적을 사는데 옆에 기다리던 주부가 "그게 얼마치예요?"하며 묻는다. "여기 가격표 있네요"하니까 "세상에나 호주산이니깐 이렇지. 한우 같아봐. 이 정도 산적거리만 해도 20만원이 넘겠다"라며 "미국산 소고기도 맛있어요"하고 말한 뒤 미국산 소고기 앞에서 기웃기웃한다. 내 생각보다 미국산 소고기를 사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았다.

그나저나 장보기는 이제 시작인데, 계산하고 나면 산 것은 몇 가지 안 되고 무엇에 도둑이라도 맞은 기분이 들어 계산서를 보고 또 보았다. 대형마트에서 국산 도라지 100g에 2010원, 600g에는 1만 원이 넘는다는 이야기다.

대형마트도 2군데를 다녀봤다. 대형마트도 모두가 비싼 것도 모두가 싼 것도 아니다. 배가 싸면 사과는 조금 비싸고 사과가 싸면 배는 조금 비싸다. 그래서 그 마트의 특징을 찾아서 장을 보기로 했다. 이럴 때일수록 발품을 팔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도 같았다. 장보기가 힘드니 생각 같으면 한군데에서 장을 보고 끝냈으면 좋으련만.

두 군데의 대형마트에서는 주로 국산을 팔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아 나물종류는 재래시장을 찾기로 했다.

며칠을 기다렸다가 20일 오전 남편과 함께 근처의 큰 재래시장을 다시 찾았다. 물가 안정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정부의 발표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물가는 더 오르는 듯했다 . 추석을 이틀 남겨 놓아서 그런가. 아님 가격이 조금이라도 떨어질 것을 기다렸던 걸일까?  발 딛을 틈이 없었다. 가만히 서있으면 저절로 밀려 나갈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다.

전을 부치는 상점 앞에서 남편에게 "우리도 부쳐놓은 전으로  살까?"하니 마땅치 않다는듯이 대답도 하지 않는다. 내 말에 옆에 있던 중년의 주부는 "재료가 너무 비싸고 여러 종류를 사야하니깐 차라리 이게 싼지도 몰라요. 나도 생각하다가 부쳐놓은 전을 사려고요"하며 주섬주섬 부쳐놓은 전을 골고루 담는다. 

"아무래도 조상님이 후손들 경제력 시험하시나봐"

남편도 시금치 한단에 5000원, 호박 2800원(이것은 조금 내린 가격) 등 채소가격에 놀라는듯했다. 시금치를 사려하니 남편이 오히려 말린다. 몇군데 다녀 봤지만 더 싼 곳은 없었다. "시금치 한 단만 사. 조금 덜 먹으면 어때?" "그래도 두 단은 사야지." 남편과 같이 오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문 방송에서 아무리 물가가 비싸다고 떠들어도 남편은 실감을 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다른 물가를 보고 남편도 혀를 내두른다.

그나마 재래시장이 과일, 채소,생선의 가격은 많이 싸지만 국산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중국산, 러시아산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곶감은 냉장고에도 많다는 문구가 써있기도 하다. 물론 중국산이다. 하여 비싼 국산곶감이나 싼 중국산 곶감 대신 국산 단감을 샀다.

될 수 있으면 차례 상만큼은 우리 것으로 차리고 싶었지만 현실이 그럴 수만은 없는 일. 남편도 시장에 가보더니 "우리 것이 아니어도 할 수 없지" 한다.

시장을 몇 바퀴 돌았지만 특별히 싼 곳은 없었다. 거기에서 거기. 대부분은 가격이 비슷비슷했다. 언제부터인가 수입농수산물로 제수용품을 차리는 것에 별 거부 반응이 없어보였다. 올해는 유난히도 늦은 비가 자주 내려 더욱 그러려니 하는 수밖에. 음식을 하는 김에 넉넉히 해서 딸아이도 싸주고 싶은 마음이 앞섰지만 이번만큼은 눈 딱 감아야 할 것 같다.

올케도 장을 보고 와서 놀랐다면서 "이번 명절은 조상님들이 후손들 경제력을 테스트 해보는 것 같아요"하며 우스갯소리를 한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올 추석 4인 가족 기준의 차례비용은 18만 원 선이라 하는데 이 말이 너무 무색하다. '더도 덜도 말고 추석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 올해는 먼 일 같기만 하다.


#추석장보기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주로 사는이야기를 씁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