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사체(死體)는 머리와 몸이 분리돼 있었다. 사람들의 왕래가 한적한 숲이나 야산이 아니라 행세께나 하는 액정서 별감 윤치호의 집안 뒤뜰이었다.  상삿골에 위치한 그의 집은 조선의 개국공신 정도전의 집터가 멀지 않은 곳이다. 수명대로 살지 못한 정도전이 피살되자 나라에선 사복시(司僕寺)라는 관청을 두어 관리하게 했다.

상삿골이란 명칭은 사복시 때문이었다. 교미할 때가 된 말을 상사마(相思馬)라 하는 데 이 말이 한번 암내를 맡으면 길길이 날뛰어 주변은 아수라장이 된다. 말을 기르는 관리들은 상사마를 이곳의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 잡았으므로 상삿골이라 부르게 된 것인데 윤치호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병오년(丙午年)이었다.

세월은 정조 10년 5월이었다. 문효세자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공으로 정순왕후로부터 포상을 받아 사온서 잡직에 술 창고를 지키던 위인이 별감으로 떠억 홍의를 입더니 지금의 상삿골로 이주했었다.

하루아침에 따라지신세를 벗어나 액정서 별감으로 신세가 바뀌자 빌빌대며 간사스럽게 비위맞추길 좋아하던 자가 어깨에 힘이 들어가 양반 못지않은 위세를 떨쳤다.
어디서 배운 건지는 알 수 없으나 흥얼흥얼 승전놀음을 중얼대며 판을 이끌었다.

화려가 이러할 제 놀인들 없을소냐
장안 소년 유협객과 공자왕손 재상 자제
부상대고 전시정과 다방골 제갈동지
별감 무감 포도군관 정원사령 나장이라
남북촌 한량들이 각색놀음 장할시고
공물방 선유놀음 포교의 세찬놀음
각사 서리 수유놀음 각집 겸종 화류놀음
장안의 편사놀음 장안의 호걸놀음
재상의 분부놀음 백성의 중포놀음
각색놀음 벌어지니 방방곡곡 놀이철다.

1848년 경에 지어진 작자미상의 <한양가(漢陽歌)>에 나오는 승전놀음 풍경이다. 이에 의하면 기생과 가객(歌客), 금객(琴客)을 불러 노래와 춤을 거창하게 꾸민 걸판진 모습이 뛰어나게 드러난다. 윤치호는 자신이 의협심 높은 사내라고 추켜올리지만 연암 박지원은 냉소를 흘린다.

<힘으로 남을 구하는 게 협(俠), 재물로 남에게 은혜 베푸는 게 고(顧)다. 고일 경우 명사(名士)가 되고 협일 경우 전(傳)으로 남는다. 협과 고를 겸하면 의(義)다.>

은요강에 오줌누듯 항상 거만을 떨던 이집 주인 윤치호의 주검이 항간에 알려지자 조롱과 질시가 쏟아진 건 액정서 별감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해도 사헌부 관원에겐 목이 잘린 사건은 획기적인 것이어서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었다.

연락을 받은 정약용이 사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윤치호의 부인 박씨는 남편의 주검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혼절해 버렸다. 목이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는 건, 그만큼 한이 많다는 얘기다. 이런 사건의 검시기록은 터럭 하나까지 자세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몸과 머리가 따로 떨어진 걸 검험(檢驗)할 때는, 상대가 누구인지 집안사람에게 확인 받는 게 중요하다. 그게 끝나면 주검이 놓인 곳의 사방을 측량하고 머리와 몸이 떨어져 있는 원근(遠近)을 계산한다.

사지(四肢)가 몇 조각 났는질 맞춰보아야 하는데 살색이 붉지 않고 상흔이 있으면 피와 골수는 없기 마련이니 이것은 사후에 절단한 것으로 본다. 검험하는 정약용이나 기록하는 서과나 기계적인 움직임만 있을 뿐 다른 말은 없었다.

"머리와 몸이 분리된 거린 다섯 자 두 치다. 머리는 주검의 좌측에 있고 다리에서 계산하면 역시 다섯 자 거리다. 일단 목을 붙였으니 살인도구가 무언질 살피거라. 주변에 피가 튀긴 흔적으로 보아 범행은 이곳에서 이뤄졌음이 분명한데 살해 도구는 뭐라 보느냐?"

범행에 사용된 도구가 날붙이라 볼 수 있지만 잘린 부분이 두부 썰듯 깨끗하니 단검 류는 아니었다.

"잘려나간 목엔 멈칫거린 흔적이 없고 한순간에 끝냈습니다. 숨통 아래 피육이 도드라지거나 양쪽 견정(肩井)이 불거졌다면 생전에 끊어진 것이나, 사체는 어깨의 오목한 곳 피부가 벗겨지지 않았으니 사후에 끊어졌습니다."

"흐음, 살인 도굴 알겠느냐?"
"한밤중에 침입해 단숨에 목을 자를 도구라면 도끼나 장검 류일 것입니다만, 굳이 뒤뜰로 끌어내 목을 잘랐다면 이것은 살인 도구를 방안으로 움직일 수 없거나, 이곳에서 행하는 게 용이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게 보면···, 작도(斫刀)라 생각됩니다."
"작도라···."

따라온 서리배들에게 집안을 뒤지게 했다. 어둡고 습기진 곳을 찾아나서니 그곳은 물건을 놓아두는 광이었다. 관원이 작도를 들고 나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작도엔 피 한 방울 묻어있지 않습니다."

서과가 얼른 다가가 작도날 위에 초(醋)를 떨어뜨리자 핏자국이 나타났다. 검시기록을 작성하고 집안을 둘러보던 정약용의 뇌리가 꿈틀거렸다.

"이번 사건은 현장을 잘 아는 자다. 집안 구조며 쓰는 물건이 어디 있는지 알기에 어렵지 않게 살인을 저질렀을 것이다. 피해자 주변을 탐문해 원한 살 일이 있었는지를 조사하라."

주검을 사헌부로 옮기고 잡인 출입을 금지시킨 이날, 윤치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을 만나보고 돌아온 서과는 고개를 내저었다.

"사람이라 하여 모두 사람이 아닌 모양입니다. 그 자와 안면이 있는 사람은 얘길 듣자 마자 침 뱉고 욕설을 퍼붓습니다. 철면피가 아니라 짐승같은 놈이랍니다."

서과는 한 장의 낡은 그림을 내놓으며 덧붙였다.
"이 그림 윗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윤치호입니다. 죽기 전까지 관우희(觀優戱)라는 모임의 총무직책에 있었던 탓에 조정의 인사들과 교분이 많았다고 합니다."

"관우희?"
관우희는 판소리, 줄타기, 땅재주 등 광대패가 공연한 모든 것을 갖고 있다. 특히 그들은 왈자타령을 즐겁게 읊는다. 그 가운데 이런 구절이 있다.

<장안의 유협을 왈자라 하니 천의 입고 초립 쓴 우림아로다(遊俠長安號曰者 茜衣草笠羽林兒).>

여기에서 말하는 천의와 초립은 별감의 복색이다. 천의의 '천(茜)'은 붉은색 염료로 쓰이는 꼭두서니고, '천의'는 붉은색 옷을 뜻한다. 초립은 다른 뜻이 아닌 초립이다. 그렇다면 '우림아'는 무엇인가? 액정서 별감을 의미한다.

"그림 속 인물은 관우희 회원인가?"
"그렇습니다. 모두 일곱 명입니다."

"이 그림은 언제 그린 건가?"
"세 해 전인 기유년(己酉年)이니 1789년에 그렸다 들었습니다. 그 해 장헌세자 능 공사비로 18만냥이 들었는데 무슨 일인지 왈자패들이 낄낄대며 기념으로 그렸답니다. 소문엔 죽은 자가 민홍섭(閔弘燮) 집안과도 인연이 있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민홍섭이라면 참판을 지낸 임오년의 주역 아닌가?"
"그렇습니다."

"목을 자를 때 잘려나간 곳 외에 긁히고 벤 듯한 상흔이 몇 군데 있으니 마취된 상태에서 변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그 일은 내가 조사할 테니 서과는 윤치호와 박씨 부인의 주변을 좀 더 탐문하라."

집안을 둘러보았다. 특별한 구조는 아니었지만 여느 사대부가의 몸채와 별당처럼 규모있게 나뉘어 있었다. 그렇다 보니 몸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별당에선 알 수 없고, 별당의 일도 몸채에서 알 수 없었다.

이 집안 구조에 대해 장안의 명물로 통하는 판술(判述)이란 풍수사를 찾아가 내막을 물었다.

"부처님 말씀에 그런 게 있답니다. 자신이 부처님 마음을 가지면 세상 사람이 부처로 보이고, 도둑놈 심뽀면 모든 사람이 도둑으로 보인다구요. 윤가의 심뽀야 워낙 흉측하니 부처님 마음일 리 없겠지요. 그런데도 복 받고 싶은 생각은 있나 봅니다. 나를 찾아와 한다는 소리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용(用)자형으로 바꾸고 싶다는 겁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느냐 물었더니 자신이 안동 땅 어디선가 본 집터에 그런 게 있는데 그런 집은 도둑을 예방할 수 있고 자손이 넉넉하다고 했습니다. 그런 쪽으로 고쳐 딸라기에 제가 그 집을 약간 변형시켰습니다."

판술은 윤가가 말한 안동에서 보았다는 집에 대해 운을 뗐다. 그곳은 이씨가 주인인 임청각(臨淸閣)이었다. 이 집에 대해 판술은 뒷수쇄를 달았다.

"그 집을 동쪽에서 보면 두 개의 동문(東門)과 네 귀가 반듯한 안뜰을 배치해 용(用)자를 만들었습니다, 그런가하면  삼정승을 낳으라는 삼상산실(三相産室)과 장수를 바라는 불사간(不死間) 도둑을 막는 퇴도문(退盜門)까지 뒀습니다."

윤치호의 집을 그렇게 변형시킨 이유를 판술은 설명했다. 물론 안동의 임청각을 본뜬 것이지만 세상살이에 불안을 느낀 그가 어느 정도 위안을 가진 건 사실이었다.

"임청각은 99칸으로 이루어졌는데 동과 서 양쪽에 문을 달았지만 남쪽은 문을 달지 않고 담을 쳤습니다. 어느 날 이 집을 찾아온 탁발승이 한 마디 했지요. '남쪽에 문을 내면 도둑을 막을 것'이라고요. 그래서 작은 문을 만들었는데 효험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어느 때인가 도둑이 들었는데 그는 우왕좌왕만 할 뿐 길을 잃었어요. 그때부터 이 문으로 들어오면 눈이 멀어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그럼 임청각처럼 윤치호의 집도 그런 장치를 했는가?"
"그건 아닙니다."

"그 자가 원했을 터인데?"
"그랬지요. 도둑을 막기 위해 퇴도문을 만드는 과정에 박씨 부인이 고개를 저었어요. 그런 문은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해서, 소인은 만든 흉내만 냈을 뿐입니다만 도둑이 들어와 윤가를 살해한 건 내 죄가 아닙니다. 굳이 허물을 논하자면 박씨 부인이에요."

"그것 참 이상하구먼. 도둑 막자고 퇴도문 만드는데 문을 못 만들게 했다면 남편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게 아닌가?"

[주]
∎승전놀이 ; 별감의 놀이
∎사복시 ; 말을 관리하는 관청
∎퇴도문 ; 도둑을 예방하는 문


#추리, 명탐정, 정약용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